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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한 연구자의 조언

ㅇㅇ(223.62) 2021.06.14 02:46:42
조회 1686 추천 25 댓글 3
														
은퇴한 연구자의 조언


mediocre researcher
나는 자신이 mediocre researcher이라고 생각한다. mediocre란 무엇을 뜻하는가. top30에서 degree를 받은 후 relatively obscure 저널에 논문을 publish한다면 mediocre인가. 리서치스쿨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학교에 자리잡아 미국에서 뼈를 묻는다면 mediocre인가. 국책 연구소에서 단기 프로젝트에 매몰되어 있다면 mediocre인가. 국내 대학교수라는 명함에 의존하여 정권 바뀔 때마다 정치권을 기웃대는 폴리페서라면 mediocre인가. 대기업이나 금융회사에서 이코노미스트란 명칭을 달고 내부 보고용 자료를 양산한다면 mediocre인가.

이런 외부적 시선과 관계없이 meiocre란 자신의 연구에 대해 딱히 말할 게 없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싶다. 뛰어난 연구자는 본인의 세부연구분야에 관해 기초부터 최신연구까지 3시간 이상을 이야기할수있어야 한다. 외부자에게는 그/그녀의 연구가 동 분야에 공헌한 바가 크지 않다고 보일수있다. 하지만 뛰어난 연구자는 본인의 연구가 세부분야에 미친 영향을 확신한다. 동 분야 연구자들 중에서 일부나마 이에 동의하는 자들이 분명 있다고 확신하는 것도 그/그녀의 특징이다.

연구자가 될지 망설이는 이들에게 mediocre researcher가 해줄 유익한 조언이 있을까. 유익할지 여부는 모르나, 조언은 해줄수있다.


학부 저학년
학부 1,2년생이 대학원에 갈지 고민하는 건 바보짓이다. 수학과 과목을 들어야할지 망설이는 것도 바보짓이다. 그때는 닥치는 대로 공부만 하면 된다. 미시와 거시를 완전히 이해한 후 세부과목을 여러 개 듣는다면 본인의 관심분야가 무엇인지 알게될것이다. 1학년인데 예를 들어 국제경제학이 내가 평생 연구해야할 분야라고 깨달았다면 good for you이다. 그래도 충고하는데 서두르지 마라. 관심없는 분야도 들어두는게 좋다. 잘 하는 분야가 미시라면 거시세부과목도 들어두자.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서 얻는 경제적직관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본인이 거시에 흥미가 더 있다고 깨닫는 계기가 될수도 있다. 일반적인 1,2년생이 이렇다면 수학적 재능을 갖춘 경제학도는 수학과에 가서 일찌감치 미적분학과 해석학 수업부터 들어야 한다. 수학적 재능은 기존에 쌓은 수학공부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제일 잘 알것이다. 본인이 능력은 있는데 intimidated되어 안 하는 거와 i'm not mathematically minded와는 천지차이이다. 미국이라면 수학과 수업 대신 경제학 대학원 수업을 미리 들어보는 길도 있지만 국내는 어려울거같다. 아주 드물지만, 1,2년생 중에 성적이 뛰어나지 않지만 경제학자의 길을 확신하는 경우가 있다. 전생에 자신이 마르크스나 케인즈였다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린다. 대학의 최고권력자로 간주되는 교수의 후광에 눈이 먼 것이다. 사실, 대학의 최고권력자는 행정직원이다. 사회나가면 교수는 권력의 찌끄러기조차 누리지 못하는 존재이니 어서빨리 현실에 눈을 뜨길 바란다.


고학년 이상
학부 3년 이상이라면 대충 길이 보인다. 유학을 갈수있을지, 간다면 어느정도 랭킹을 노릴수있을지, 석사를 어떻게 하고갈지 막연히 알게된다. 그런데 석사시절에 유학준비를 하는 것보다 3,4년시절의 준비가 어쩌면 더 중요하다. 학점을 잘 받는다. 영어와 수학공부를 별도로 한다. 운동을 한다. 미필이면 군대를 다녀온다. 교수들과 얼굴을 익혀둔다. 석사때는 코스웍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시간이 흘러가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드미션 결과가 나와있을 것이다. 그러니 학부3,4년이라면 정신바짝차리고 해라. 운이 좋으면 곧바로 유학을 갈수있는 길도 열린다.

학부고학년이나 석사과정이라면 학교수업과 학점은 기본이며 반드시 따로 해야 할 공부가 있다. 자신의 세부분야가 무엇인지 정해야 한다. 난 잘 모르겠는데라면 당연하다.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차피 유학가면 세부분야 바뀌는 사람이 반이다. 세부분야를 정하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치가 필요한 것이다. 미국학부와 국내학부의 가장 큰 차이가 여기에 있다. 미국학생들은 잘 몰라도 큰그림 하나는 기가막히게 그린다. 대학원 갈 학부생들이 자신이 하고싶은 연구에 관해 주구장창 늘어놓는다. top5에 갈 학생과 top15, top30에 갈 학생의 차이는 자신의 능력을 냉정히 판단하여 실현가능성을 얼마나 정확히 보느냐에 있다. 그래도 뭔가 구체적으로 하려는게 확실히 있다. 지금은 성적만 잘 받아놓으면 된다고 이 시절을 안일하게 살았던 한국인학생들이 유학가서 퀄 이후 지도교수를 못 잡고 방황하게 된다.


지도교수
유학가면 지도교수를 어떻게 정할까. 한국에서처럼 성적 좋으면 예쁨 받을까. 그런 학교도 있긴 하니 잘 찾아가면 그렇게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 2년차 이후 전공수업을 듣거나 RA를 하면서 교수와 얼굴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적이 좋으면 교수가 이름을 기억하겠지만 국내처럼 너의 이름이 각인되지 않는다. 교수의 귀중한 시간을 끊임없이 뺏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교수는 연구와 관계없는 노가리까는 걸 제일 싫어한다. 그들의 시간을 뺏으려면 네가 뛰어난 연구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혹은 네 열정과 정성에 감복되어야 한다. 정말 뛰어난 연구아이디어가 있다면 그들도 즉각 알아본다. 하지만 뛰어난 아이디어도 우리의 영어로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수식으로 써서 가져가봐라. 그들이 읽어주기는 커녕 미팅잡을 시간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아이디어가 설명 한 번에 받아들여진다면 그건 뛰어난게 아니다. 세월이 흘러 직관적으로 보이는 위대한 경제모형 대부분이 처음에는 조롱과 반대에 부딪혔다는 것을 기억해라. 고만고만한 아이디어를 교수에게 들고가서 생산적인 방향으로 확장하도록 지도를 받는게 대학원생 90%이상이 경험하는 길이다. 그런데 수학과처럼 교수가 문제 던져주는 곳도 아니니 괜찮은 아이디어도 만들어가는게 쉽지 않다. 그래서 고만고만한 아이디어를, 지도하고 싶을만한 괜찮은 아이디어로 바꿔줄만한 학생의 열정과 정성이 필요한 거다. 열정과 정성이 하늘에서 솟아나냐. 처음에는 지도교수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계속 이야기해서 설득하려는 tenacity를 가지려면 내 아이디어가 지도교수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지도교수의 조언을 수용해서 내 아이디어를 어떻게 다시 다듬었는지, 발전된 아이디어가 논문주제로 적합하다고 왜 생각하는지 등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달할수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는데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이 가능하겠는가.


조언
구체적으로 무얼 하고 싶은가. 그걸 위해 연습삼아 학부시절에 세부분야를 더 열심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여기 글들을 읽어보면서 느끼는 건 국내학생은 교과서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최신 연구트렌드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관심있는 세부분야가 있다고 하자. 자신이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해당 분야 교과서를 외우다시피 아는건 당연하다. 그 외 관련서적이나 논문을 얼마나 아는가. 최근 십년 내에 나온 해당분야 논문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게 무엇인가. 왜 이 논문이 중요한가. 난 이 논문이 이해되는가. 안 되면 어떤 테크닉이 필요한가. 그렇게 찾다보면 그 분야 최근 논문 중에 my favorite이 생길거다. 왜 내 최애논문인지 설명하며 앞으로 어떤 발전이 있을지 생각하면서 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게 훈련이다. 이런 과정을 위해 학부시절에 survey 논문을 읽을 필요가 있다.

교과서는 이미 완성된 제품만을 실어주는 곳이다. 연구란 미완성된 아이디어를 다듬어 완성된 제품으로 만들어가는 다수 연구자의 공동작업이다. 교과서만 읽으며 혼자서 완성된 제품을 만드는게 연구인줄 착각하니 유학가서 그렇게 생고생을 하는거다. 이 글을 읽는 학부생이나 석사과정은 일찍부터 논문읽기에 맛들이면 나처럼 mediocre하다고 느끼지 않는 학자가 될 것이다. 두서없이 썼는데 읽느라 고생했다.


p.s. 원래는 consistency / asdi3lkjf님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어 이 글을 시작했는데 딴 길로 샜다. 두 분이 미국에서 박사과정 마지막이나 교수라면 할말없다. 3-4년차라면 이런데 글쓰는 걸로 한순간이라도 젊은날을 보내지 마라.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때가 있다.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건 축복이다. 그 축복은 경험해본 자만이 이해할 것이니 그대들의 선한 의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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