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요뿌요』를 세상에 낸 주식회사 컴파일의 창업자로 사장이었던 니이타니 마사미츠 씨 촬영/이토 카즈유키
'안녕하세요. 오늘은~'
빈말로도 깨끗하다고는 말 못 할 아파트를 대부분 점유하고 있는 코타츠에 들어가서,
직접 만든 요리를 먹거나 게임을 하는 모습을 한결같이 방송하는, 백발의 노인 유튜버.
이 사람이 그 [뿌요뿌요]를 만들고,
전성기에는 연 매출 70억 엔이나 벌었던 장본인이라니 놀랍네요?!
'남자애들의 놀이'라는 인상이 강했던 TV 게임을 '여자애들이 푹 빠진
'가족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오락으로 승화시킨
누벨바그라 할만한 타이틀 중 하나가 1991년의 [뿌요뿌요]일 겁니다.
화면 위에서 떨어지는 젤리처럼 둥근 물체를 같은 색끼리 합쳐 나간다.
자꾸자꾸 떨어지는 컬러풀한 그것들 중에서 같은 색 네 개가 합쳐지면
그 '뿌요'라는 물체가 터져서 사라진다.
또 지우는 방법을 궁리하면 '연쇄'도 가능해서,
그걸로 대전 상대에게 방해용 구슬을 떨어트리는 전략성도 있었던 퍼즐게임.
심지어 그 시절에는 모에 요소가 있는 여성 캐릭터가 메인인 작품은 거의 없었는데,
뿌요뿌요가 전면에 내세운 '아루루'라는 귀여운 캐릭터의 존재도 인기폭발의 원인이었다.
'그런 세계관을 허용한 게 저였으니, 즉 저는 그런 인간이라는 소리죠. 그래서 [뿌요뿌요]는 접니다'
뿌요뿌요를 세상에 내놓은 주식회사 컴파일의 창업자이자 사장이었던
니이타니 마사미츠 씨를 찾아간 곳은 치바현 신마츠도에 있는 집세 5만엔, 2DK 아파트.
'처음 빌렸을 때 지은지 40년이었으니까, 지금은 45년이나 50년은 되지 않았을까요.'
모니터나 컴퓨터, 기타 생활용품으로 넘쳐나는 방에 기자와 카메라맨을 초대한 사람.
유튜브 방송 그대로 코타츠에 다리를 넣는 니이타니 씨. 현재 71세.
'연금은 빚 갚는데 쓰고 있다. 앞으로 1년 정도 걸린다.'
'주 2회 간병 알바를 하고 있다.'
시원시원한 말투로 근황을 말해준 다음,
[뿌요뿌요]의 탄생 비화나 현재의 아파트 생활로 이어진 '버블이 터진 이유'를.... 들어본다.
YouTube 방송으로 보았던 공간이 거기에. 촬영 / 이토 카즈유키
'학생 시절에 학원을 차렸다가 (그걸) 이런저런 일로 때려치웠죠.
히로시마에 살아서 히로시마 전철의 운전수나, 인쇄업, 사진 인쇄 같은 일도 했는데,
그 후에 컴퓨터 판매. 그다음에 창업했습니다.'
온갖 직업을 젊었을 때부터 경험하는 과정에서 구입한 컴퓨터를 통해
'어깨 너머로, 스스로 어쩌다 보니' 프로그래밍을 익히고,
주식회사 컴파일을 창립한 것이 1982년, 32세 때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아니라 마이컴이라고 불렀는데,
마이컴 붐이 왔을 때 젊은 사람이 이것저것 해서 그렇게 창업한 사람이 많이 있죠.
허드슨**이나 에닉스**처럼 대체로 저와 같은 세대입니다. 그래서 단카이 세대***의 경영자가 많이 있죠.'
*일본 게임 회사, 몰락.
**스퀘어와 합병한 일본 게임 회사. 스퀘어 에닉스의 에닉스 그거다.
***일본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세대
그로부터 약 10년간, 여러가지 게임을 개발. 바쁜 나날 속에서,
그 세계적 타이틀의 붐을 보고 단숨에 아이디어맨의 무언가에 불이 붙고 말았다.
'[테트리스]라는 게임이 유행했는데, 게임보이로 4000만 장 가까이 팔렸다는 얘기를 들었죠.
프로그래머 시점에서 보면 그런 식으로 된 게임은
제가 만들어도 기본적인 구조는 한 달 정도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RPG를 만들려면 드래곤 퀘스트가 유행한 이래, 인재와 개발 기간이 많이 듭니다.
그것과 비교해서 [테트리스]는 아이디어 하나로 그만큼 팔린다는 걸 보여줬죠.
그리고 1990년의 [닥터 마리오]. 이런 걸 살짝 시험해 보고 싶어서
우리도 낙하물 퍼즐 게임을 만들어 보자고 했죠.'
그러나 기존의 퍼즐 게임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이,
'귀여운 요소라고 할까요.
그런 점은 컴파일이라는 회사가 그런 작품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자연스럽죠.
개발자인 게임 오타쿠 남자, 여자들은 그런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거든요.
단지 그뿐입니다. 결국 그들의 취향으로 그런 노선이 원래부터 있었던 거죠.'
저도 그 시절에 플레이하면서 어린 마음에 신선했어요.
퍼즐게임에 소녀 캐릭터가 큼지막하게 나와서.
'역사를 보면 결국 컴파일이 게임 업계에서 전부 최초라는 것 같더군요.
예를 들면 컴파일에서 슈팅게임을 만들 때 주인공을 소녀로 삼았죠.
당시 게임을 만드는 남자들이 역시 솔직히 말해서 젊은 소녀를 너무 좋아하니까.
왠지 소녀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거예요.'
1988년의 [알레스터]라는 슈팅게임이 그거죠.
'근데 처음에는 한 소리 들었어요, 유저한테. "왜 여자가 주인공이냐" 라고요.
그걸 만든 본인들은 그런 걸 의식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듣고서 여자가 주인공인 슈팅게임은 처음이라 알았죠. 그래도 괜찮다 싶었어요.
그런 게 뭔 상관이냐 생각했죠. 역시 그래도 자기만의 오리지널로 뭔가를 만들고 싶으니까요.'
당시는 아직 TV 게임은 남자애들이 즐기는 일이 많았고,
주인공이 용사라는 이미지가 강했잖아요?
모에 요소가 있는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건 도박이랄까,
약간의 위험부담이 있지 않으셨나요?
'아니 위험부담이 아니라 현장이 그렇게 만들어요.
그 친구들은 자기 취향으로. 소녀를 너무 좋아하니까. 여자가 좋아서 여자를 등장시키고 싶다,
단지 그뿐입니다. 그걸 허용했다고 할까요. 그런 걸 저는 허용하는 편이에요.
안된다고는 말하지 않아요. "어? 그런 일을 할 거야? 재밌겠는데" 라는 반응을 하죠.'
「그런 세계관을 허용한 것이 자신」 촬영/이토 카즈유키
하루아침에 성공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몇 년 동안 계속한
어느 사업이 성과를 가져왔다고 하던데요.
'잡지 "디스크 스테이션"이라는 걸 매달 냈어요. 부록으로 플로피 디스켓을 넣어서.
거기에 우리 회사 게임의 샘플이나, 새롭게 만든 자잘한 게임도 넣어서 말이죠.
그래야 잔뜩 게임을 만들거든. 그러다 보면 좋은 물건이 나오게 돼요. 서서히 말이죠.'
그 집대성이?
'1992년의 [뿌요뿌요]였죠. 내가 42세였을 때.
1982년 창업부터 딱 10년 차에 그야말로 결실을 맺었죠.
다양한 노하우가 담겼기 때문에.'
이렇게 여성들의 반응이 좋았던 이유는?
'알기 쉽고, 플레이하기 쉬움. 컴파일이 만들어왔던 것은 줄곧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뿌요뿌요]만 그런 게 아니라요. 딱히 의식한 건 아니거든요. 원래부터 그렇게 만들어 왔어요.
재밌고 웃기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게임.
클릭으로 따지자면 원클릭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전제였거든요.'
캐릭터 콘텐츠로도 대성공이었죠.
'그 사람들(컴파일의 제작진)이 항상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었죠. 그런 게 먹혔어요.'
계속해서 축적된 노하우가 대히트로 이어진 거군요. 전성기는 언제였죠?
'1997년일까? 연 매출 70억 엔.*'
*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면 1547억원 정도.
상장을 노리셨다고 하던데요.
'그걸 위해서는 자사주를 늘려야 하니까 현금으로 주식을 계속 사야만 했죠.
제 급여는 평범한 사람의 연봉급인데. 아무튼 주식과 사람을 늘리는 것만 생각했죠.'
무조건 상장을 믿고서 질주했지만, 당연하게도 거기에는 큰 꿈도 있었다.
'상장을 하면, 어쩌면 수백억 엔의 수입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걸 재원 삼아서 제가 디즈니를 좋아해서 [뿌요뿌요 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도면도 만들었었죠. 그걸 위해서도 인재가 필요하니까.
그래서 사람을 너무 많이 고용해 버렸던 거죠...
종업원 수는 그 시절 최대 400명이었거든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역자) 크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후 히트작을 내지 못해서 직원 급여를 지불하지 못하게 됐고
1998년에 부도. 부채총액 90억 엔!!
'상장하려고 하지만 않았다면 아마, 자빠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사원을 그렇게 늘리지도 않았을 거고 투자하는 일도 없었겠죠.
원래 상장할 생각도 없었거든요.
근데 어느 엄청난 유명 게임메이커 사장이 "자네도 상장해 보지 그래?" 라고
말을 하길래 "그럼 해볼까" 했던 거죠.'
「뿌요 뿌요 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니이타니 씨. 촬영 / 이토 카즈유키
패인을 분석하자면..
'가장 큰 걸림돌은 히로시마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물 안 개구리라서 주위에 조언을 해줄 상대가 없었어요.
역시 수도랑은 다르죠.'
컴파일의 본사는 도쿄가 아니라 니이타니 씨의 고향 히로시마에 있었죠.
거꾸로 말하면 지방임에도 대히트작을 배출한 사장의 아이디어나 열의는 굉장했던 거네요.
'나밖에 내질 못해. 그게 글렀지.
그러니까 결국 사원이 내는 아이디어 열 개 중 하나나 두 개를 채용해서 경영해야 하는데,
그 영역에 이르지 못했어요.
그전에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있어서 내가 계속 아이디어를 내고, 계속 돌아갔죠...'
카리스마 경영자니까 생기는 고민의 전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 회사니까 매달 재깍재깍 돈이 들어오질 않아요.
소프트를 출시하고 한 번에 대량의 수입이 있고, 그걸로 연명하죠.
그 소프트를 내서 한꺼번에 돈이 들어오는 타이밍이 뒤로 밀려나면 돈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돈을 저축하면서, 사람을 고용하니까 버는 돈도 충분해야 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달리고 있었으니까,
들어온 돈을 다음 작품의 개발비나 광고비처럼, 다른 투자에 써버렸죠.
바퀴가 굴러갈 때는 괜찮지만, 무슨 일로 비틀거리거나 멈추면 끝장이죠.
400명의 인건비로 순식간에 펑크가 난 거예요.'
컴파일의 실패와 함께 니이타니 씨 자신도 파산. [뿌요뿌요]의 권리도 매각하는 처지가 되었다.
참고로 [뿌요뿌요] 히트 전인 39세에 한 번 결혼했으나, 1년 만에 이혼했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니이타니 씨는 그 후 여기저기를 전전하며...
빈털터리가 된 니이타니 씨의 대역전극은 있을까. 촬영 / 이토 카즈유키
개인 파산을 경험한 니이타니 마사유키씨 촬영/이토 카즈유키
니이타니 씨는 이 방에서 생활해, YouTube를 방송하고, 새로운 게임의 구상을 궁리한다. 촬영/이토 카즈유키
'기본적으로는 자잘한 아르바이트. 특히 40대, 50대가 된 다음부터는 그것도 힘듭니다.
일이 없거든. 그래서 경비원 같은 일을. 때로는 게임 관련 전문학교의 강사도 했었지만,
그것도 점점 하기 힘들어져서 다시 경비 일 같은걸 했죠.'
그런 생활 속에서 걸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뿌요뿌요는 개선할 점이 있었어요.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연쇄를 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특히 6연쇄, 7연쇄를 하기 위해서는 4~5년은 연습해야 되죠. 이게 힘들어요.
이러면 유저를 한정시키게 되잖아요? 처음에는 다 같이 즐길 수 있었는데,
점점 나는 연쇄를 못한다는 이유로 게임에서 멀어져 가는 겁니다.'
또 하나는?
'플레이한지 1주일 된 사람과 마스터 클래스인 사람이 대전하면 100 대 0으로 못 이기는 점'
순삭 당하죠.
'100명 중 몇 명만 몇 년이나 계속 플레이하게 되고, 심지어 신규 유저는 금방 포기하죠.
이 두 가지를 개량하고 싶어서 새로운 게임을 구상해 봤어요.
그게 2016년에 발매한 [뇨키뇨키]입니다.'
"Nyoki Niki Takadachi Hen"에서 (c) COMPILE-🌕 INC. / (c) D4Enterprise Co., Ltd.
구상은 언제부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에 초심자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10명 정도 있다고 칩시다.
일단 해보면 1시간 후에 다 같이 재밌게, 심지어 저마다 자기 나름의 작전을 갖고 즐길 수 있죠.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이렇게 해, 저렇게 해'라고 코멘트를 할 수 있죠.
80세, 90세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도 한번 해볼래라고 말할 수 있죠.
그림을 그리는 감각으로 3살 어린애도 할 수 있고요.'
'게다가 이 점이 중요한데 일주일 했던 사람과 초심자가 붙었을 때
50 대 50은 아니지만 70 대 30으로 초심자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바둑, 장기, 골프랑 마찬가지로 핸디캡을 줄 수 있으니까.'
이 [뇨키뇨키]를 위해서 회사도 차리셨습니다.
'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면 닌텐도에서 게임을 내줬으면 했는데,
그러질 않으니까 할 수 없이 그랬죠.
대체로 저는 제 회사를 항상 어쩔 수 없이 차렸거든요.
남들 밑에서 일하면 아무래도 의욕이 나질 않아서.'
그 이름은 컴파일 마루 주식회사. 2016년 4월에 창업하여,
같은 해 11월에 닌텐도 3DS 다운로드판 [뇨키뇨키]를 세상에 내놓았다.
반응은 어땠나요?
'평범한 매상이었겠죠. 잘 모릅니다.
(투자액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매출액에 한두 자릿수가 부족했어요.
정가가 800엔이니까요. 뭐가 문제였냐면 기본적으로 네트워크 대전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거기서 이제 끝났죠. 그걸 출시하기 전까지 몰랐어요.'
고생 이야기도 소년과 같은 미소를 보이면서 말한다. 촬영/이토 카즈유키
요즘 시대는 갈수록 네트워크 대전이 중심이니까 말이죠. 참고로 자금의 회수는?
'기본적으로 생활만 따지자면 연금으로도 가능해요.
근데 연금을 [뇨키뇨키]를 만들 때 빌린 500만 엔을 상환하는 데 쓰고 있어요.
앞으로 1년은 걸리는데, 그게 끝나면 일단 연금과 유튜브로 빠듯하게 먹고 살 수 있네요.'
개발, 제작에 든 총액은 약 1000만 엔이었다고 하던데, 적금이 있었나요?
'0엔입니다. 저는 항상 적금을 못합니다.
가령 월 20~30만 엔 벌어도 매달 돈이 날아가 버립니다.
1000만 엔은 부모의 원조로 500만 엔, 나머지 500만 엔은 나라 정책 금융기관에서 빌렸죠.
그걸 지금 갚고 있는 거죠. 이래서 나라는 대단합니다.
역시 경영자한테는 친절하거든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500만 엔을 빌려주죠.'
10년 정도 전부터 몇 차례 유튜브의 트라이&에러를 반복했다. 그러나 잘 풀리지 않았다.
[뇨키뇨키]를 알리기 위해서 다시 유튜브를 열심히 하기 시작하여,
2017년부터 현재의 채널 [MOOTV]를 개설했더니,
의외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2021년 12월 하순 시점에서 구독자 수 7700명을 넘기는 반향을 불러 모았다.
'한국에 컴파일 팬이 많이 있거든요. 그 사람들이 내 방송을 발견했죠.
제 시청자의 8할이나 9할은 한국인. 그래서 올라오는 댓글도 한글이 많아요.
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일본의 게임 회사 중에서 제일 먼저 한국 현지법인을 만든 게 컴파일이었다고 해요.
[환세취호전]이라는 1997년작 게임이 있는데, 그게 한국의 학교 컴퓨터에 전부 깔려 있었대요.
덕분에 어떤 의미로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게임 회사였다고...'
현재의 방송 빈도는.
'생방송이 일주일에 1번. 토요일 6시부터 12시까지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콘텐츠를 사실은 일주일에 한 편씩 올리고 싶지만 여건이 좀 그렇네요.
편집도 직접 하고 있거든요.
이 마이크처럼 유튜브용 장비도 직접 구입했고.'
정력적으로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금은 뇨키뇨키를 닌텐도 스위치로도 발매해서 최소 10만, 20만 장은 팔고 싶어요.
사실은 한 자릿수 더해서 100만 장은 팔고 싶네요.
아마 닌텐도 스위치판으로 네트워크 대전이 가능하게 만들면 전 세계에 팔 수 있으니까요.'
닌텐도 3DS로 출시했잖아요? 그걸 닌텐도 스위치판으로 이식하는데 돈이 얼마나 드나요?
'5000만 엔 정도. 스태프가 5~6명으로, 반년은 걸려요. 결국 그렇습니다.
한다면 룰은 살짝 진화시킬 예정입니다. 좀 더 알기 쉽게.'
자금 마련 계획은?
'이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방 한편에 있는 노트북 모니터에 비친 차트를 가리켰다.
FX의 차트를 비추는 노트북 모니터 촬영/이토 카즈유키
'직접 벌거나 투자를 받는 수밖에 없겠죠. 그게 이겁니다.
근데 아직 전혀 못 벌고 있어서 화납니다.(웃음) 돈을 잔뜩 걸었는데.'
FX(외환선물)로 아직 못 벌고 있나요?
'이번 시스템으로 벌겁니다. 일 년에 수십 배는 불릴 겁니다. 반드시.'
생활을 위해 하는 일은?
'현재의 주된 수입원은 일주일에 두 번 하는 간호 알바. 데이 서비스라고 해야 할까.
기본적으로는 하루 숙박하면서, 밤 6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시설에 있는 노인들을 보살핍니다.
기본적으로는 밥을 먹여드리고, 용변 보는 걸 도와드리는 정도. 그 밖에도 잡무가 있지만요.
오줌이나 똥은 빡세지만, 그것도 대수로운 일은 아닙니다.
야근이니까 스태프는 저 혼자고, 5명 정도 노인을 돌봐드리고 있죠.'
71세 나이에 고령자 간호라니 육체적으로 힘든 일 아닌가요.
'아뇨. 전혀요. 체력은 좋은 편입니다.
겨울에도 추위를 느끼지 않고, 여름에도 더위를 느끼지 않거든요.
다른 사람에 비해 체력은 좋은 편일 겁니다.'
70세를 넘어도 열정은 쇠퇴하지 않고 있다. 촬영/이토 카즈유키
70세를 넘기고도 정열은 식지 않고, 그의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FX로 벌어서 닌텐도 스위치판 뇨키뇨키를 내고 싶습니다. 유튜브 구독자도 10만 명이 된다면, 아마 가능할 겁니다.'
그렇다. [뿌요뿌요]에 대역전이 있듯이, 인생도 틀림없이...
2022.01.06. 12:01 일자.
취재, 사가라 요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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