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츄 : 크로세인더스(동인게임), 큐라레 마법도서관, 블루아카이브 제작자.
배상현 : 인디게임 체이싱 라이트 제작자.
시작하기 전 스몰토킹)
피카츄 - 님 저 사진 언제 찍음?
배상현 - 5년전에 찍음
피카츄 - 25살 때였을텐데 저 포즈는 무슨 의미임?
배상현 - 그럼 님 사진은 뭐임?
피카츄
0. (대담자와) 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재밌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한다.
나는 대기업 소속 직원으로 대중 지향 게임을 개발하는 입장이고
배상현씨는 인디 게임으로서 예술적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개발자.
하지만 동시에 게임 개발자라는 정체성은 동일하다.
이런 부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초청에 응해 이 자리에 왔다.
1.
같은 대담에 참석한 사람들과 달리
나(피카츄)는 남의 돈 받아가면서 개발하는 사람.
거기에서 자유롭지가 못하다.
판타지 소설도 써봤었고, (동인게임도 만들고 이것저것하다) 쪽박찰때까지만 해도
문학, 예술가로서의 자아가 있었지만
쪽박차고 나서 먹고 살기 위한 길 찾다보니 (그땐 웹소설 시장 같은게 없었다)
게임 업계에 투신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굉장히 오랫동안 게임 개발자로 살면서
자기 검열적으로 예술가 적 에고를 억누르고 지내왔다.
"나는 예술가가 되는데에 실패했다. 자본의 세계로 온 이상 철저하게 돈을 벌어야 한다."
선을 긋고 시장, 고용주가 원하는 것만 받들기로 해왔었고
게임 개발자는 예술을 해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최근와서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됨.
영화 제작에 빗대어 보자면. 영화 제작자는 예술가인가?
영화 제작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가?의 얘기 같다.
봉준호(박찬욱, 나홍진 등)는 예술가라 할 수 있는가?
상업적으로 호평받으면서 작품, 예술성도 인정받지 않았는가.
블아로 성공한 부분도 조금 영향이 있는것 같다 (청중 웃음)
이탈리아 로마에 갔을때 르네상스 시절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봤는데.
그 그림은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예술작품이었지만
정작 미켈란젤로가 그거 그렸을때는 교황청 스폰 받아 그린거고,
매일같이 교황청에서 와서 감독하고 갈구지 않았던가 (상업적으로)
대담자 -
내 예술가로서의 세계관과 출발점은 백남준.(어렸을때 가깝게 지냈던 옆집 사이이기도 하다.)
이미 70년 전에 이것도 예술이라고 선언해 예술의 개념이 다 박살났기 때문에
굳이 지금와서 게임이 예술인걸 니가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그걸 왜 해? 하는 질문들이 있다.
내가 교육받은건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는 부분이고
거기서 더 들어가면 예술이 아닌게 뭔데?가 되겠다.
피카츄가 예술가가 아니면 세상 누가 예술가인가?
그동안 피카츄가 스스로 밟고 있던 친구(예술가 적 자아)를 구하려 노력했는데
어느정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피카츄 - 지금도 계속 밟고 있다.
다만 너 절대 일어나면 안돼 -> 이제는 좀 그만 밟아도 되지 않을까.
2.
나는 상업지향적이기 때문에 나를 작가가 아닌 시나리오 라이터라 표현한다.
게임 개발에 있어 실시간적으로 여러 기술이 도입되며 환경이 급변하는데
(AI는 개발자라는 개인적 의견으로서는 반대한다. 이건 따로 자리가 있으면 이야기하겠지만 어쨌든 반대의 입장.)
급변하는 환경을 예로 들어.
내가 쪽박차고 돈 벌어야 했을때
웹소설 시장이 있었다면 게임 개발에 투신했을까?
정답을 잘 모르겠지만 그랬을수도 있겠다 싶음.
테크(기술)는 시대를 기반으로 올라가고 있고
환경도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가 그 시절이 아닌 지금 태어났다면 똑같이 예술 했을까?
나는 예술가적 자아를 억누르고 있는 입장이지만
내가 만드는 물건이 유의미하기를 바라고,
상업적으로든 가치적으로든 영향력이 있기를 바란다.
이 모든건 자본주의 안에서 돈 잘 번다를 증명한 뒤에 보이고 싶은 부분이다.
그 기준에서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복잡해지더라도, 내가 해야 하는, 하고 싶은 것은 이야기.
이야기는 인류가 탄생한 뒤 절대로 죽은 적이 없으며 플랫폼만 바뀌고 있다.
신화 시대의 신들의 이야기를 거쳐 -> 영웅 -> 왕 -> 귀족 -> 시민의 이야기로 이어져왔고
이제는 개인의 자아를 해체하는 영역까지 왔다.
예를 들자면 버츄얼 유튜버.
기존에 아이돌이 되기 위해 굉장히 중요했던 물리적 조건(외형, 나이 등)을 극복하지 않았는가?
다 해체해버리고 자아만 남아버렸다.
그런식으로 복잡 다양해지는 환경 안에서도 글을 쓸거다.
블루아카에서 모바일에 걸맞는 가독성과 글을 전달할 수 있게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건 모바일이니까 하는 것.
90년대? 였다면 PC기반으로 전달했을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창작자가
하고자 하는것, 하고 싶은것, 좋아하는게 확고하다면
주변 환경(플랫폼, 기술 등)은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일것.
대담자
피카츄가 옛날 중세 시대에 태어났으면 로스코 벽화 그리고 있었을거고
10년전이라면 컴퓨터로 이야기 전달했을것이다.
피카츄가 (쪽박차고) 10년대에 개인의 에고를 억눌렀을때
때마침 발견한게 자본중심으로 돌아가는 게임 업계였던것.
이야기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럼 (사람들이) 왜 이야기에 빠져들까.
이야기 없이는 살 수 없는가?
나는 체이싱 라이트를 통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들의 관념에 대해 그렸다.
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는가는 말로 풀 수 있는게 아닌것 같다.
피카츄 - 매우 어려운 이야기 같다.
대담자 - 그래서 행복하다. 그걸 질문할거였으니까. 피카츄는 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가?
3.
(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대담자 질문에 대해)
매우 어려운 이야기인데, 왜 이야기를 만들고 싶냐 하면
돈이 되는것도 있겠지만 인간으로서 안에 들어있는 욕망이 있다.
청빈한 문학가의 삶을 포기하고 위악을 걸치며 상업세계로 온 이상
돈을 잘 벌어야지만 된다는 일종의 도망친 자로서의 긍지가 있다.
내가 처한 환경은 거대 자본을 기반으로
서브컬쳐 오타쿠 게임을 만들어 글로벌하게 판매하는 일을 하는게 환경.
여기까지 많은 결정과 운과 사고가 있었고. 나의 상황을 긍정한채로 일을 하고 있는데.
굳이 안해도 되는 영역까지 파고 들고 있다.
주말 없이 일을 한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본다.
대담자 - 이 양반 밤 12시에 카톡해댄다.
4.
(왜 그렇게까지 하냐면)
같은 대담자로 참여한 배상현씨가
체이싱 라이트라는 인디 게임에 담긴 전위적, 아방가르드함으로
인지의 한계를 두들기는 선봉장의 역을 맡고 있다.
전위는 첨단, 제일 앞에서 인식, 사상, 사고, 모든 단계를 뚫고 나가는 아방가르드의 핵심.
이걸 뚫고 나가게 되면 인간의 관념, 한계가 늘어나게 된다.
과학에서 지식의 한계지평을 넓히는 일과 비슷하다 보기 때문에
나는 배상현씨를 응원하고 잇다.
대담자 - 프로필 사진 게임 개발하기 전에 찍은거다.
5년전. 게임 개발 하기 전.
현재.
여기는 젖과 꿀이 흐르고 수요가 있는 반면, 저기는 힘들지 않냐.
나는 최전방에서 도망쳐온 사람으로서, 내가 위치한 시장의 유저들과 함께
"다같이 저 경계의 방향성을 향해 반 발짝 정도 같이 가볼까요?"라고
하는게 내가 처한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의미한 행위라 생각한다.
피카소의 추상화 같이 이게 예술이라고?하고
대립하면서 인지 한계를 강력하게 넓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이 조금씩이라도 모두를 이끄는 사람도 있는게 아닌가.
이게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역할 같다.
대담자 -
선택의 차이 같다.
할 수 없는 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이란게 있는데.
나는 이런 길을 택하겠어에서 오는 것.
피카츄도 그렇고 나도 그랬고 구체적인 것의 차이일뿐.
문화예술은 인간의 정신을 증진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방가르드, 전위라면 저기로 갑시다 하고 선봉장 역할을 하며
깃발들고 나가며 화살 맞고 다리 잘리고도 아득바득 기어가는 모습이겠지만
블루아카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로서 상냥하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하고 이상을 제기한다고 본다.
블루아카에 들어가 있는 메세지 (인간의 의미, 어른의 책임 등)
이것이 양주영이라는 한명의 어른 역할을 해야만 하는
선봉장이 이끄는 양주영 식의 아방가르드함이 아닌가라 본다.
피카츄 - 나는 거기 동의 안한다 (비행기 태우지마)
대담자 - 사전적 의미의 아방가르드함이라기 보단 개인적 해석을 붙였다.
어쨌든 대표적인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함께 나갈 수 있게 만들지 않나.
대기업이라는 족쇄를 걸고 이 이야기를 합시다. 하고 안간힘을 써서 하게 만드는.
5.
그 정도는 아니다. 내가 속한 회사는 나를 존중한다.
좋은 상품을 팔고 싶다. 그 상품이 만족감을 주고,
소비자의 삶이 나아지거나 좋아지면 좋겠다에 가깝다.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당연히 상품은 잘 팔려야겠지만, 좋은 의미로서 전달되면 좋겠다.
(※ 이 부분은 녹음이 뭉개져서 잘 안들리는 파트)
윤리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쉽다.
내가 만드는 상품은 나보다 낫기를 바라는 마음.
나는 윤리적 사람이 아니다. 당장 이오리의 발을 핥는 내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블루아카는 서브컬쳐 오타쿠 게임.
오타쿠라 했을때 생각나는 로우한 영역.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거야 말로 윤리적일 수 있다 본다.
오타쿠여야 하니까 잘 팔려야 하고.
오타쿠들이 좋아하는걸 나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걸 오타쿠들도 좋아할거다.
이 안에서 좋은 양품을 팔고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고 싶다.
정도다.
(※ 안들리는 부분 끝 )
때문에 나와 배상현씨 같은 서로 극단에 위치한 사람들의 대담으로 전해지는
긴장감, 충돌이 게임판을 더 낫게 만들거라 생각한다.
상업 게임 제작 환경에서는 이런 일련의 논의 자체가 너무 없다.
내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 훨씬 많고.
배상현(대담자)씨 같은 첨단에 가 있는 사람이 훨씬 적어
그 언밸런스 함이 안좋은 쪽으로 커지면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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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자 -
피카츄를 (예술에 관해서) 매번 꼬드겨보지만 안넘어온다.
안넘어온다는것 자체가 피카츄가 자기가 지켜야 할 포지션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이게 나의 것이라고 강하게 쥐고 있어서 가능한게 아닐까.
무엇이 예술인가 같은 이야기는 5년전까지만 해도 재밌었는데 이젠 재미없다
(피카츄 : 그건 대담자가 자신의 예술에 대해 이미 명확히 정의내려서 그렇다. 갈 길이 명확하게 정해져있지 않냐)
영화 감독의 일과 게임 개발자들의 일이 비슷한 부분이 있는것 같아서
영화계 사람들이 앞에 앉아있었어도 위화감이 없을것 같다.
영화계 사람들도 같은 이야기 하기 때문, 소비자들이 무얼 원하는가. 배급은 어떻게 하는가 등등.
이 업계 들어온지 10년 정도 되었지만
내 이야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피카츄가 처음이었다.
피카츄와 이야기하면
그도 예술적 배경, 레퍼런스를 다 이해하고 있으며
나 역시 상업적 배경과 레퍼런스를 다 알고 있어 이야기가 통한다.
피카츄는 레퍼런스를 다 알고 있어 자기 포지션을 명확히 할 수 있고
나도 어디까지 해야 선을 지킬 수 있는가 알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산업, 문화 예술 전체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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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도 더 있는데 녹음 품질이 개판이라 웅얼거리는 소리 밖에 안들려서 여기까지만
대담자 (배상현씨) 파트도 들을만한 내용이 많으니 들어보세요.
본문은 피카츄 내용을 우선으로 옮겨보았기 때문에 서순이 안맞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IAC는 다음에 영상 촬영 할 일 있으면 제발 녹음 환경 개선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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