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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핫산) 고백의 날에 울면서 라멘을 먹는 하야세 유우카 - 後

슬로보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3 03: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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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핫산 모음집


원문


18,150자


일상, 연애









어른들은 퇴근하고 나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알코올의 일종인 에탄올을 수혈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이른바 술이다. 미성년자인 나는 당연히 술을 마셔 본 적은 없지만 그 효능은 알고 있다. 대뇌 신피질의 작용을 둔화시키고 감정이나 충동과 같은 본능적인 부분의 작용이 활성화된다. 너무 많이 마시면 졸음이 오거나 생각이 산만해지고, 더욱 과음하면 기억이 사라지거나 쓰러지기도 한다.

왜 그런 술을 피곤할 때 찾게 되는 걸까? 나는 그게 항상 의문이었다. 피곤하다면 그런 상태를 나아지게 해 줄 만한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에탄올 수혈의 효능이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반대로 자신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일로만 보였다. 뇌를 지치게 만들고, 위장과 간이 피로해지고, 수면이 얕아지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너무 피곤할 때, 단순한 휴식이나 힐링이 무의미해질 만큼 흐물흐물해졌을 때, 피로를 덜어주는 것보다는 오히려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는 듯한… 나를 망가뜨려 주는 무언가를 원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지금의 나였다. 소중하고 특별한 감정을 가졌던 사람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자기 마음대로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상처를 받고, 너덜너덜해져 있다. 그런 나에게 위로의 한 마디나 휴식하면서 마시는 차 따위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이성을 버려야 한다는,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생각이 떠올랐다. 마음껏 건강에 나쁘게, 원하는 만큼 게으르게, 얼마든지 소녀답지 않게 행동하자는 생각.

그건 어쩌면 단순히 절박해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분명 그럴 때가… 있는 법이다. 이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어른들이 하는 자포자기와 똑같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자, 아직 행복한 식사가 다 끝나지 않았다. 그럼 전투를 재개해 볼까요…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눈에서 어떤 액체가 떨어졌다. 처음에는 김이 물방울로 맺힌 줄 알았다. 하지만 왜 눈에서만 떨어질까. 곧 깨달았다. 나는… 울고 있구나. 어라,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나? 그렇게 머릿속으로 되짚어 본다. 엉망진창이 된 뇌라도 그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그 사람과 같이 먹고 싶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라멘의 맛에 가려져 있었던 절망과 후회가 다시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 교전 중인 신 데카그라마톤 ‘RAMEN’에서 지휘자는 내 본능이지만 목소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로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상처받았고, 부끄러워하고 있고, 지금은 일단 싹 다 잊어버리고 싶은데, 아무래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머릿속에는 그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뚝뚝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부끄럽다. 주인이 주방 안쪽에 들어가 있으니까 안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큰 소리로 울 수는 없었다. 사실은 목놓아 펑펑 울고 싶다.

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썩이는 어깨를 어떻게든 억누르려 했다.

그 사람과 함께 행복을 공유하고 싶었다. 내가 늘 가지고 있었던 그런 감정이 마침내 폭발해 버렸다. 무너져 가던 내 이성의 댐이 라멘이라는 맛의 폭력에 결정타를 맞아서 마침내 무너져버린 것이다. 무너진 댐의 구멍은 점점 더 커져 내 얼굴에 홍수를 일으키고 있다.

여기가 라멘집이라 참 다행이다. 왜냐하면 테이블에 휴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코를 풀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10개가 넘는 휴지 뭉치들을 누가 본다면 변명할 여지가 없지 않을까.

나는 울면서도 다시 라멘을 먹는다. 맛있다, 정말로. 슬퍼, 엄청. 짜증 나. 난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이 바보, 멍청이, 바보야! 차슈 너무 맛있어. 비계를 두 배로 넣었어도 됐겠네. 이번에는 진짜로 미움받았을 거야.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해 버렸어. 그 사람과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어.

좀 더 실컷 먹고 싶지만 토할 것 같기도 하다. 이미 감정도 내장도 엉망진창이다.

정신없이 먹다가 울기를 반복하고, 그릇에 담긴 음식이 점점 줄어들어 이제 그만 먹어야겠다… 싶은 양이 되었을 즈음에 또 다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윽고 눈물을 멈출 수 없게 되었다.

이걸 다 먹고 나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전원을 끈 핸드폰을 켜서 그 사람이 보낸 모모톡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기는 싫다. 무슨 답장이 왔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아니, 어쩌면 아직 답장도 안 왔을지도 모른다. 차단당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계속 귀찮고 시끄러웠지만 어른스럽게 대응했던 건지도 몰라…

고백의 날에 고백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 더 이상 수치심을 느끼고 싶지 않아.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그 사람이 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미움받았어. 지금까지 맨날 귀찮게 했으니까 오늘 안 오셨던 거야. 메시지도 안 읽고. 줄곧 이 날, 그 시간을 위해서 준비해 왔는데. 장미공원에서 계속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 그게 아냐.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후회와 죄책감, 약간의 분노와 절망감이 차례로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나는 더 이상 라멘에 손을 댈 수 없게 되었다. 다 먹고 난 그때 분명 내 사랑이 끝날 테니까… 이미 끝나버리기는 했지만, 그 사실을 두 눈으로 보는 건 이 그릇이 비워졌을 때다. 그런 생각을 했더니 이제 영원히 다 먹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 랩을 씌워서 냉동보관해서 평생 그대로 두면 되겠지. 내 마음과 함께 꽁꽁 얼려서 마지막에는 내 무덤 속에 가지고 들어가면 된다.

그렇게 합리성도 이성도 없는 어린아이처럼 망설이고 있을 때. 갑자기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울어서 부어오르고 콧물로 범벅이 돼서 분명히 끔찍한 몰골일 것이다. 지금은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니, 그나마 남아있던 합리성 덕분에 나는 가게 안쪽,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다.

주인이 주방 안쪽에서 나온다.


“어서옵쇼! …어라, 오랜만이네~!”

“아, 주인장 오랜만이에요!”


그 순간, 내 사고와 신체가 얼어붙었다.

…심장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리고 라멘도. 왜냐하면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외진 곳에 내가 아는 사람이 올 리가 없는데.

그러나 그런 나의 가설은 가게 주인의 말 한 마디로 부정된다.


“샬레의 선생은 바쁘다고 하던데~. 오늘도 일 때문에 이쪽에 왔나?”


설마, 아니지?


“아뇨, 오늘은… 여기 라멘이 먹고 싶어서요.”

“호오, 그것 참 반가운 소리구만!”


잠깐, 아니, 어떻게 된 거지? 샬레의 선생님…? ‘그 사람’이 지금 이 가게에 왔다고? 이게 현실이야? 아니면 꿈인가?


“아, 그럼 이거 주세요.”

“그래. 취향은?”

“진하게, 많이, 단단하게.”


선생님의 ‘취향’은 나와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히죽거리는 표정을 내 절친에게 지적받으면서 놀림받았을 상황이다.


“음, 평소랑 정반대네. 기름은 적게, 연하게, 면 보통 아니었나?”

“하핫… 제 건강을 좀 걱정하는 학생이 있어서요…”

“그랬구만, 그런데 오늘은 다르네.”


내가 늘 하는 이야기였다. 식사를 컵라면 하나로 해결하려고 하거나, 편의점 도시락 아니면 컵라면만 먹는 선생님을 볼 때마다 나는 좋았다. 왜냐면 그걸 지적하면서 선생님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선생님을 혼낼 때는 나와 선생님 둘만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같이 쇼핑을 가거나 식사를 하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건강하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매번 마음이 복잡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잘 된 거 아니냐.”

“그게 참… 혼자 있어도 왠지 어디서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막 그러네요.”


가게 주인이 웃는다.


“나도 말이지, 마누라한테 늘 잔소리를 듣는단 말이야. 술도 담배도 좀 끊으라고.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서도.”

“네.”

“그런데 글쎄, 뭐라 할 때마다 더 하고 싶어진단 말이지!”

“아하하, 뭔지 알겠네요!”


두 사람은 와하하 웃는다.


“또 잔소리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 말야.”


‘해 준다’?


“남자들은 다 그렇지. 집사람한테는 말 못 하지만.”


두 사람은 또 다시 와하하 웃는다.

잠깐, 진짜로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내 너덜너덜한 뇌가 긴급사태로 인해 급히 복구되기 시작한다. 진정해, 하야세 유우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카운터에서 은근슬쩍 얼굴을 내민다. 입구 근처 카운터에 있는 사람은 정말로 선생님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평소 같았으면 잘 먹었다고 말한 다음에 가게를 나섰을 텐데 지금은 말없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그러나 재빠르게 가게 출구까지 달려 나간다. 제발 들키지 마라, 들키지 마, 제발 나를 못 보길…!

닫혀있던 문을 힘차게 벌컥 열고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나간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 목소리를 뒤로 한다. 가게 주인의 반응으로 보아 아마 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내 계산대로 완벽하고 은밀한 퇴장이었다.


빵빵한 배를 움켜쥔 채로 달려서 뒷골목으로 왔다. 어떡하지… 하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복구된 뇌는 순식간에 새로운 연산 결과를 내놓았다. 내가 해야 할 일,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기회를 하야세 유우카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 이상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서둘러서 가게를 나오느라 아직 라멘 국물도 다 못 마셨다. 그러니까 내 사랑도,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계산 결과에 따라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내 계산대로라면 선생님이 그 양을 다 먹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5분, 국물까지 마시면 8분은 걸릴 것이다. 서둘러, 나! 제발 늦지 마라, 늦지 마라…!





“...에엣!?”

“우왓, 왜 그래. 그렇게 놀랄 일이냐?”


갑작스러운 사실을 듣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반쯤 먹은 라멘도 함께.


“방금 학생이 왔었다고요!? …그것도 파란 머리!!?”

“어어, 맞아. 급하게 나가버리긴 했는데.”


내가 이 가게를 찾아온 건 정말 우연이었다.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다는 절망감과, 어떻게든 되찾고 싶다는 초조함에 휩싸인 채로 키보토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 소녀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시간은 이미 20시 전이었다. 오늘 중으로 직접 만나서 사과를 하는 건 이미 포기했다. 아마 그녀도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할 테니, 나 자신도 이 무거운 십자가를 한동안 더 짊어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지칠 대로 지친 내 몸은 본능적으로 진하고 걸쭉한,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원하고 있었다. 어느 가게로 갈지 고민하다가 문득, 정말 우연히 ‘라멘 센쥬기쿠’가 떠올랐다. 이 집은 맛도 확실하고, ‘취향’도 고를 수 있으니까 오늘은 마음껏 이 몸이 원하는 대로 맛과 토핑을 추가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좀 애 같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을 먹으면 그녀가 혼내러 올 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망상하고 있었던 것도 있다.

그렇게 나온 라멘은 정말 맛있어서 젓가락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반쯤 먹었나 싶었을 때, 갑자기 주인장께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아까 전에 학생이 왔었다고.

그것도… 아마 울고 있었던 것 같았다고.

틀림없이 유우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크게 놀란 나머지 모든 사고가 정지해 버렸다. 주인장의 벙찐 표정을 계속 바라보면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는 유우카와 달리 계산을 잘 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같이 보냈던 많은 시간이 있기에 그녀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라면 어떻게 할까. 하야세 유우카, 너라면…

나는 확신에 가까운 가설을 세우고 실행하기로 했다.

우선 라멘을 조금 서둘러 먹기로 했다. 지금 당장 가게를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 지금 당장은 안 된다. 그녀라면 분명…

먹으면서 설마 주인장이랑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겠지. 만약 그랬다면 엄청 부끄러운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냉정함을 조금 되찾은 것 같다.

진하고 기름진 라멘 그릇을 다 비웠다. 그럼 이제 해야 할 일은 뭘까? 게다가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분명 평범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나도 일단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키보토스에 적응을 한 사람이다.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엔젤24에서 미리 구입해 둔 알약을 가방에서 3개 정도 꺼내 우드득 씹어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오, 고마워!”


빨리 따라가 보라는 말을 뒤로 한 채 가게를 나선다. 사실은 좀 더 천천히 맛보고 싶었던 최고의 라멘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우선해야 할 일이 있다.

이 절망을 마주하자.

그리고 전하자, 내 마음을. 이미 절반은 전해졌다. 그녀에게 결코 말할 수 없었던 나의 진심… 유우카, 네가 혼내 주는 그 시간이 나는 정말 기다려진다고.






냄새 대책, 일단은 완벽해~ …아닌가? 편의점에서 산 알약에는 3알만 먹으라고 써 있었는데 만일을 위해 3알을 더 씹어먹는다. 이제 위장도 입 안도 무취가… 될 수 있을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한다. 우연히 가게에서 나온 선생님이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내게 말을 건다. 이게 내 작전이었다.

큰일이다. 너무 긴장해서 호흡이 얕아졌다. 주변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다. 선생님이 나를 제대로 찾을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내 절친한 친구처럼 밝은 머리색이었다면… 그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한다.

그게 아니잖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하야세 유우카’가 마주해야 하는 거야. 그 사람과, 그리고 이렇게 부풀어오른 이 사랑의 감정과 마주 보아야 한다. 이 괴로움도 슬픔도 그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는다.

결착을 짓자.

그 사람의 진심을… 듣는 거야.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스읍… 하


“유우카!!!!”

“...으에엣!!?”


펄쩍 뛰어올랐다. 재빨리 뒤를 돌아본다. 그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눈이 이렇게까지 벌어질 수 있구나 싶을 만큼 커진다.


“서, 선생님…”

“유우카!!”

“엇, 네엣!?”


“미안해,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시간이 없어.”

“...역시 바쁘신가 보네요.”


어차피 또 다른 학생들이랑 약속이 있으시겠지. 역시 나보다는 다른 학생을 더 신경 쓰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자 부풀어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저 같은 건 됐으니까…”

“유우카!!!”

“네, 네엣!!?”

“...큰 소리로 불러서 미안해, 유우카. 근데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아서.”


“약속도 제대로 못 지키는 이런 어른이지만…”

“...뭐예요, 갑자기. 사과하셔도 용서 안 할 거예요.”


“계속 안 해줄 거야?”

“네, 평생이요! 당연하잖아요!!”


나는 또 다시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편의점 화장실에서 기껏 화장도 고쳤는데 지금은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평소랑 똑같고, 그런 내 모습이 싫고, 분해서 눈물이…


“그거 좋네.”

“...엥?”


“계속 기억해 주겠다는 말이잖아?”

“아?”


“유우카.”


“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나는 좋아.”


“혼내 주고, 웃어주고, 곤란해하는 네가 좋아.”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랑 함께해 주지 않을래?”


쿠궁 소리가 나는 착각이 들 만큼, 나는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 굳어버렸다.


“...그, 그런 말을 하시는 건 선생님으로서 좀 아닌 것 같은데요.”


모든 학생에게 평등해야 한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던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행동은 늘 그랬다. 불량학생이든 일곱 죄수든, 학교와 관련된 대규모 분쟁을 일으킨 학생이든간에, 선생님. 당신은 언제나 따뜻하게 먼저 다가가서 그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셨죠.

당신은 평등해야만 해요.

그래서 그 사실이 줄곧, 언제나 괴로웠어요.

저는 선생님,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구요.

하지만 그런 건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 부풀어오르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결국 넘쳐 버렸어요. 그래서 오늘, 이 고백의 날과 고백의 시간에…


“유우카도 숫자에 약할 때가 있구나.”

“...네?”

“지금은 이미 근무 시간이 아니야. 정시 퇴근은 이미 지났어. 지금 나는 선생님이지만 선생님이 아냐.”


“유우카, 한 명의 사람으로서 말할게.”

“앞으로도 계속, 나랑 함께해 주지 않을래?”


…나는 선생님을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뚝뚝하고 둔감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이 사람은 오늘 내가 하던 생각들도 모두 다 꿰뚫어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금 시각은 밤…


“...선생님!”

“왜?”

“저, 선생님에게 보여드리지 않은 부분이 엄청 많다구요?”

“응, 그렇겠지. 나도 그래.”

“...질릴 수도 있는데요?”

“나를 얕보면 곤란해.”

“...라멘 같은 거 먹을 때 완전 지저분하게 먹을 수도 있고요?”

“혼자 있을 때 아냐? 나도 그래. 왜 그래야지 더 맛있을까.”

“...그거 말고도 많아요. 더러운 내면이라든가…”

“좋네. 전부 다 알고 싶어.”

“진심이에요?”

“응, 진심이야.”



“앞으로 긴 시간 동안 조금씩이나마, 천천히 알아가고 싶어.”

“유우카.”

“나는, 유우카 너를…”



선생님의 뜻밖의 반격에 나는 웃음이 새어 나오다가도 그만 울어 버리고 말았다. 오늘 선생님과의 대결은 내가 졌는지도 모른다. 아니, 선생님이 약속을 어겼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무승부 아닐까.

선생님의 나를 닮은, 로맨틱한 부분을 두 눈으로 보니 좋아하는 마음이 더해졌다. 아니, 곱해진 것 같기도 하다. 더 많이, 선생님을 더 많이 알고 싶다. 둘이서 더 많은 것들을 같이 하고, 이런저런 곳들에 가서 당신을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싶다.

선생님, 이런 저를 용서해 주고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솔직해지고 싶었지만 솔직하지 못했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선생님한테는 항상 귀엽지 못한 구석만 보여드렸어요. 하지만 선생님과 같이 있는 시간은 너무 설레고 또 즐거웠고, 기숙사에 돌아가면 언제나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면서 다음에는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던 거예요. 반드시 실패할 줄 알았어요. 당신이 저를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 따위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저를 받아주는 게 아니라… 설마 같은 마음이었을 줄이야.

그래서 내가 그 사람 앞에서 라멘을 지저분하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언제쯤일까. 그리고 선생님이 혼나는 걸 좋아한다는 그 비밀도 언제쯤 당신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을까. 아니,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드시 털어놓게 만들 거야. 그리고 나도 좀 더 솔직해질 수 있게 노력할 거야.

앞으로, 조금으로는 모자라. 아~주 많은 시간을 들여서.



“선생님…! 저도, 예전부터 줄곧, 선생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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