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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s ex machina
“...저기, 히비키?”
단 게 먹고 싶다던 히비키는 벌써 아이스티를 두 잔째 비우고 있다.
그렇게 마시다가는 건강에 좋지 않을 텐데...
아니지, 이미 좋지 않으니 더 안 좋아진다 한들 상관없나?
선생으로서 몹쓸 생각만 하고 있다.
다른 아이들도 히비키의 눈치만 보느라 제대로 마시지도 않고 있다.
오직 노아만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토키는 온몸이 얼어붙은 채 초점 없는 눈동자로 있었다.
하다 못한 모모이가 상황을 중재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그것보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으응? 내 이야기?”
“응! 선생님은 여기 사람이 아니라며? 히마리 선배한테 들었어. 정말 다른 세계 사람이야? 그쪽에도 내가 있어?”
아이 같은 순진한 질문. 순수한 눈동자.
그 질문은 주위를 동화시켜 얼어붙은 분위기를 녹여 간다.
노아와 토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질문이었다.
“내가 있던 세계... 내가 있던 세계의 아이들.”
히비키는 저번에 몰래 들었던 이야기.
그러나 귀가 움직이는 걸 보니 더 듣고 싶어 하는 거 같다.
생각보다 단순한 아이다.
그렇다면 난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히비키가 궁금해했던 것처럼 내 세계의 밀레니엄의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을까?
그게 오히려 이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잠시 고민 끝에 말을 해주기로 했다.
“너희들은 전부 내 학생이었어. 너희뿐만 아니라 이 밀레니엄의 모두가.”
“호오? 그쪽 세상의 유우카 쨩은 어땠나요?”
“이곳과 다를 거 없어. 자기 일에 충실하고, 때론 무리하며,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상냥한 아이야.”
“으음, 역시 그렇군요?”
그 외에 토키에 대한 말도 해주었다.
리오의 수행원이며 우리와 대적했던 이야기.
...깝죽대는 이야기까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 세계의 토키는 네루와 큰 접점이 없던 모양이다.
“제가 네루 선배와 싸웠다고 하셨죠?”
“응, 맞아.”
“...어땠나요?”
“어땠냐니?”
“그 사람은... 강했나요?”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질문. 무력은 강하다. 이렇게 답하면 쉽다.
다만, 네 질문의 의도는 그게 아니다.
이곳의 네루는 사람들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분명 강했을 거다. 내가 생각한 거 이상으로.
그건 내가 아는 네루도 그렇겠지.
승리를 가져다주는 콜싸인 00.
밀레니엄의 영웅이자, 최강의 상징.
아무리 다른 이들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상징이 없는 이상 사기는 꺾이기 마련이다.
언젠가 히마리에게 토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방구석 백수로 보이는 아이지만 실은 굉장히 고뇌하고 노력하는 아이라고.
이유는 간단하다. 상징을 잃은 밀레니엄에 새로운 상징이 되기 위해서.
네루의 존재만 알고, 서로 접점도 없이 그저 임무만을 수행했지만
네루가 사망한 이후 그녀가 남긴 발자취를 끊임없이 쫓았다고 한다.
네루처럼 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녀와는 또 다른 상징이 되고 말 것이다.
리오에게 직접 찾아와서 한 말이라고 한다.
접점도 없던 사람을 쫓는, 어찌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불가능을 좇는다.
어쩌면... 단 한 번이라도,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녀처럼 모두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아이는 생각하니까.
“네루는 강했어. 절대로 꺾이지 않고,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 승리의 상징.”
“...그랬군요. 전에 마주쳤을 때 말이라도 걸어볼 걸 그랬습니다.”
그렇게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다.
반면, 모모이는 눈을 빛내며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
네루의 이야기가 마치 영웅의 전설 같았는지 굉장히 들떠 보인다.
“그렇다면 나도 하나만 물어볼래!”
“그래, 뭘 얘기해줄까?”
게임개발부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다.
그 아이들과 함께 모험을 헤쳐 나가고 난관을 넘기도 하며
최후에는 용사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러니 아마 내 세계의 게임개발부에 대한 이야기를 말해 달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왕녀, 아니 텐도 아리스는 어떤 아이였어?”
“...아리스?”
“...대답해 줘, 선생님. 어떤 학생이었는지.”
장난기는 사라지고, 순진함도 없고, 순수함은 탁해진 모습으로
모모이는 질문한다.
그렇다, 이 모습이 이 세계의 사이바 모모이.
웃음 뒤에 숨겨진 여러 가지 감정들.
항상 밝아 보이지만 그건 전부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가면.
다만 네가 무얼 감추고 싶은지는 난 알지 못한다.
“아리스는......”
말하려는 찰나에 휴대폰이 울린다.
연락이 온 건 히마리. 아마 시간이 된 거 같다.
쉬는 시간은 이제 끝이다.
노아는 업무 때문에 세미나로 돌아가고
모모이, 히비키, 토키와 함께 초현상특무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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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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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다녀오셨군요? 당연히 제 것도 사오셨겠죠?”
“당연하지. 조각 케이크야.”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진짜 사 와서 당황한 모습이다.
우리끼리만 먹을 수는 없으니까.
두뇌 회전에 당이 필요하다는 건 나도 잘 아는 사실이다.
히마리는 헛기침을 한 후 브리핑을 시작한다.
“전에 말했다시피 이번 타겟은 헤세드입니다. ‘자비로운 고통으로 정죄하는 심판자’라는 이명이 붙은 데카그라마톤의 예언자. 밀레니엄 외곽에 버려진 군수공장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대로 헤세드를 놔두게 되면 저희는 무한의 병력을 상대해야 하겠지요.”
전에 말했듯이 호드는 대처할 수 있는 위협, 헤세드는 대처 불가능한 위협.
그렇기에 무한한 병력을 양산하는 헤세드를 먼저 친다.
납득했기에 히마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이 세계의 밀레니엄은 히마리가 상황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작전은 간단합니다. 헤세드의 병력을 뚫고 본체를 타도한다. 이상입니다.”
“저기... 선배? 뭔가 이상하지 않아? 헤세드의 군세는 무한이라며?”
“네, 맞아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뚫고 가...?”
모모이의 의문도 이해가 간다.
무한의 군세를 뚫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뚫는다고 해도 우리는 자원을 굉장히 많이 소비한 상황일 터.
헤세드의 격파가 불가능해진다.
비나는 단순무식하게 강한 예언자라 어떻게든 격파가 가능했지만
헤세드는 그것과 전혀 다른 성향의 예언자이기에 돌파가 어려울 게 뻔하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에이미가 조사 끝에 헤세드의 본체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을 발견했어요. 그곳을 지키는 병력은 소수입니다. 돌파가 가능할 거예요.”
헤세드에게... 지름길이 있었다고?
그런 건 처음 들어본다.
지름길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데카그라마톤이 그렇게 허술하다고?
카이저라면 모를까.
“어쨌든 헤세드의 격퇴. 가능하면 격파까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번 비나의 격파로 우리 밀레니엄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면 불가능은 없을 거예요. 그렇다면... 무운을 빕니다.”
구석에 마련된 전송 장치를 타고, 에이미가 사전에 말했던 좌표로 이동한다.
뭔가 꺼림찍한 기분이 들었지만 기우에 그치기를 바랄 뿐이었다.
***
“헤세드... 격파만 해낼 수 있다면 저희의 승리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져요. 그러니까 선생님... 부디...”
“부장, 리오 회장에게서 통신이야. 그런데 급한 내용인 거 같아.”
“연결시켜주세요.”
“나야. 상황이 급해! 선생, 선생은 어딨지?”
“선생이라면 방금 작전을 수행하러 떠났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뭐라고...? 당장 귀환시켜! 상황이 심상치 않아! 선생이 위험해!”
“알아듣게 설명해 보세요! 대체 무슨 일인지......”
“...부장, 이거 보여...?”
“이...건......?”
“너도 확인했지? 예언자들의 신호가 한 순간에 사라졌어! 격파했을 때의 반응이 아니야! 그냥 말 그대로... 소멸해버렸어!”
“예언자들의 신호가 소멸했다는 건... 설마...... 에이미!!!!!!”
“하고 있어!! 근데...... 강제 귀환이 안 돼!”
“이런! 이미 늦은 건가?! 긴급 통신이라도 보내! 당장 귀환하라고!”
“베리타스에게 이미 시켜놨어요! 영역에 구멍을 뚫으려면 10분은 걸릴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그 녀석이 갑자기 나타난다고...?”
“예상보다 행동이 너무 빨라요. 아니 무엇보다 어째서 본인이...? 이런 타이밍에...?”
“이해할 시간 없어! 어떻게든 해결책을 생각해 내! 선생을 잃으면 모든 게 끝이야!”
***
도착한 곳은 정말로 지하에 샛길이 있었다.
물론 적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쉬웠다. 이상할 정도로 쉽다.
모모이 혼자 상대가 가능할 정도였다.
그 덕에 히비키와 토키는 내 호위에 전념할 수 있었다.
길 역시 하나로 이어져 있어 다른 곳으로 빠질 일이 없었다.
“......아로나.”
“네, 느끼셨군요. 이상할 정도로 일이 잘 진행되고 있어요. 마치 저희보고 오라고 하는 것처럼.”
“함정일까?”
“아마도요.”
...히마리도 함정일 가능성도 염두해두었겠지.
그럼에도 이곳으로 보낸 건 적의 함정에 빠지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피해를 덜 입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거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지상에서 무한의 군세를 상대하기보다는 적의 함정에 빠져주는 게 더 낫다.
이런 길이 하나뿐인 지하에서는 오히려 수가 적은 우리가 유리하니까.
“...선생님.”
“왜 그래, 프라나?”
“귀환 장치가 먹통이 되었습니다. 이건... 심상치 않습니다.”
그 말을 듣고 확인해 보니 히마리가 준 귀환 장치가 실제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 것도 마찬가지다.
함정에는 이미 빠진 거다.
“선생님... 어떡하지...?”
“괜찮을 거야, 히비키. 적이 유도하고 있다면 그대로 따라가주는 수밖에 없어.”
모모이에게 앞을 맡기고, 토키에게 뒤를 맡긴 채 앞으로 나아간다.
한참을 걷다 보니 출구로 보이는 통로를 발견했다.
헤세드의 본체도 이곳에 있는 거 같다.
비장한 각오로 결전을 준비한다.
헤세드. 약점인 코어를 단단한 외각으로 보호하는 예언자.
본인의 전투력은 제로지만 그 대신 계속되는 병사 소환으로 싸움을 어렵게 만든다.
왕좌가 노출된 타이밍에 총공격을 퍼붓는 것.
그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다.
“...가자.”
군수공장의 밖으로 나가자 헤세드와 마주할 수 있었다.
...왕좌가 노출된 채로 이미 산산조각 나버린 헤세드와 말이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모두가 같은 반응이었다.
파괴된 헤세드 앞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뒷모습만 보아도 익숙한 모습...
그러면서도 마치 처음 보는 듯한 위화감.
땅에 끌리는 푸른 긴 머리에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모이와 토키, 히비키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공포에 질린 듯한 모습이다.
나 역시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잠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리스?”
“아리스? 아, 누군가는 저를 그렇게 부르더군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저는 AL-1S. 그런 이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너는... 누구야...?”
“다들 이렇게 부르더군요. ‘왕녀’라고 말이에요.”
아리스... 아니. 이 밀레니엄을 이렇게 만든 원인.
...이름없는 신들의 왕녀. ‘AL-1S’
“공포에 질려 계시는군요. 공포는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죠.”
“아리스... 너...”
“제가 방주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자신이 신인 줄 아는 자판기는 예언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죠. 하지만 개미들의 저항이 이전보다 거세졌더라고요? 그래서 방금 남은 예언자들을 전부 회수하고 오는 길입니다. 물론, 미친 자판기도 포함해서 말이에요.”
“데카그라마톤을... 전부?”
“아, 인사가 늦었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선생님? 당신이 현재 밀레니엄을 이끄는 수장이군요?”
“아니, 난 그저 이 아이들의 뒤를 받쳐줄 뿐이야. 이 아이들의 리더라니 당치도 않아.”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게 중요하다는 거군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 당신의 학생이 아니랍니다? 고로, 당신의
독선적인 수업을 들을 필요도 없어요.”
독선적이라고? 내가?
그런 언행과 행동은 단 한 번도...!
“그래요, 일단 선생님의 실력을 보도록 할까요? 제 앞에서 어떤 기적을 일으켜 주실지 굉장히 기대하고 있답니다?”
“얘들아, 전투 준비!”
등골이 오싹해진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호흡이 불안정해진다.
이런 곳에서 최종보스를 마주칠 줄은 몰랐지만 언젠가 싸워야 하는 적.
이곳에서 쓰러트리면 밀레니엄은 승리한다.
그러니... 반드시 막는다!
“좋아요. 손짓 한 번으로도 밀레니엄을 날려버릴 수 있는 저이지만... 조금만 상대해 드리도록 할까요?”
[높은 곳에서 하늘이 정해지지 않고... 대지에 이름조차 없나니... 모두를 창조한 태고의 신들과 함께...... 창세의 바다로 떨어지도록 하세요, 인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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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랜만입니다.
최근 근황이라고 하자면 공모전 탈락했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코하루' 굉장히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었는데 기대해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아쉽지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더 노력하는 수 밖에요.
공모전 탈락했어도 연재는 계속됩니다.
이제부터 스토리가 시리어스해지고 규모가 커집니다.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작가는 개추와 댓글을 먹고 삽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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