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누가 추천해줘서 적긴 했는데
이게 피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혹시 몰라서 일단 태그 달아놓음
총학생회 건물 지하 어딘가
칠흑같은 어둠이 덮어버린 공간 속에서 하늘색의 안광을 띈 노란 머리 소녀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소녀의 앞에는 한 어른이 있었다.
그저 나약하고 힘 없고 총알 한발 한발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평범한 인간
피칠갑이 된 그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소녀를 바라봤다
"저는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제가 하는 일만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이젠 더 이상 변명할 필요도 없겠군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견디지 못해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을 버려가면서도 그럼에도 버티지 못해서 스스로가 옳다고 세뇌해버린 망가진 삼류 악당일 뿐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옳은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는 것보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명령만 따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SRT가 해체될 때도 키리노가 늦은 밤 혼자 사격장에서 울고 있을 때도 RABBIT 소대가 공원에서 농성할때도 농성하는 RABBIT 소대를 체포하기 위해 다 헤지고 찢어진 장비를 입은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았을때도 단 한순간도 저 스스로에게 되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SRT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품고 있던 정의라던가 사명감 따위는 어느새 퇴색되고 풍화되어 아비도스 모래사막 한복판에 뿌려뒀을뿐입니다.
언젠가 제게 자신의 길은 스스로 정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죠.
그 말을 듣고나서 처음으로 고민해봤습니다
제 행동을 돌아보고 마주했습니다
그러자 새로운 것들이 보이더군요
SRT가 철거될 때 발키리의 방패벽에 막혀 울부짖던 학생들의 모습이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도 다음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밝은 얼굴로 경례를 건네던 키리노가
농성을 위해 장비를 들고 묵묵히 코우사기 공원으로 걸어가던 RABBIT 소대의 얼굴이
RABBIT 소대에게 제압당해 고통을 호소하며 들것에 실려나오던 부하들의 신음소리가
조금만 눈을 뜨고 있었더라면 알 수 있었을 것을 그리 당연한 것을 저는 어째서 이제서야 마주할 수 있었던걸까요
그 날 이후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습니다
제가 복종이라는 이름의 안대로 제 눈을 가리고 충성이라는 이름의 귀마개로 귀를 덮고 권력이라는 옷으로 몸을 가리는동안 제 앞에 펼쳐진것은 지옥이요 제 몸에 닿은것은 부하들의 피와 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달라지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항명했습니다
처음으로 제 신념을 찾았습니다
처음으로.. 정의로웠습니다..
그런데 결국 너무 늦어버렸군요
방위실장에게 제압당해 이렇게 꼴사납게 묶여있는 처지라니.. 배신자에게 걸맞는 최후 아닙니까?
스스로를 배신하고 부하들을 배신하고 끝끝내 그렇게 믿고 따르던 상부마저 배신해버린 제가 맞이하기엔 더할나위 없는 최후입니다"
일장 연설이 끝났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자책하고 울부짖던 소녀는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대로 넘어져버리고 만다.
눈 앞의 어른은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부질없는 인생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학생을 바라보며 소녀가 살아남길 바라는 작은 소망을 하늘에 올려보낼 뿐이다.
"선생님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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