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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 괴문서) "당신은 그래서 내 마음에 들지 못하는거야..."

불쏘시개(58.125) 2024.05.21 00: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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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 땅이 대한이라 불리기 이전, 삼한이라고 불리 우던 먼나 먼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벽 하나를 두고 같은 핏줄이 흐르는 집안이 각자의 가족들만을 어여삐여기며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며 한 무리의 들 짐승들과 같이 으르렁대던 시절.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는 고구려의 평양의 백성들만 알던 이야기.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 세상 가장 바보 같은 남자 온달과 그런 그를 사랑하는 평강 공주의 이야기를. 

시대를 내려와 흐르는 강의 물 줄기가 굽이쳐 자신만의 새로운 줄기를 만들어내듯,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 또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면서, 또 다른 설화를 낳기도 했다.

오늘의 이야기는 또한 그러한 이야기의 줄기들중 하나 임을 확실히 하고 싶다.



궁궐을 나가 쓰지 않는 보물들을 패물로 삼아 다짜고짜 자신을 부인으로 맞이해줄걸 요구하는 평강을 맞이한지 몇 해가 지나갔다.

그간 평강의 패물들로 땅과 사람을 구하고 집을 재건하며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데 성공한 온달에게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부인의 재산인 부와 고구려 공주의 지아비와, 바보라는 명성을 고구려 전역에 가진 그였지만, 차마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은 난제.

그는 그 난제를 자신의 어머님께 얻어내려고 했다.

그녀가 오기 전부터 온달은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걸 잊지 않았다.

그때는 집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다 쓰러져가는 집에 추위를 견디려고 같은 방을 사용해왔기에 눈을 뜨면 바로 문안 인사를 드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따로 마련된 별채까지 걸어가 문안 인사를 드린다.

"어머님. 어찌해야 부인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이 못난 아들에게 알려주십시요."

아들의 문안 인사를 받으러 방문을 연 그녀는 곧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청한 아들을 목도했다.

"어째 이제는 지 어미의 안부보다 이제는 부인을 더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침하였습니까? 간밤에 평안하게 주무셨는지보다, 제 부인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서 심술을 부리는 그의 어머니.

"아, 아니 그런게 아니오라, 제 어찌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그럼, 하나뿐인 가장이 이제는 제 부인보다 이 어미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안되겠습니다. 게 아무도 없느냐! 아무나 내 자부(子婦)를 데려오거라-!!"

'으아악-!! 이 못난 소자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부인만은 불러주지 마세요!!"

그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지적하는 모습에 아들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목소리에 울음소리가 가득하자 그녀의 입가에 웃음 꽃이 살짝 피어올랐다. 장난은 이 정도까지만. 더 하다가는 진짜 제 자식을 울려버릴지 모른다.

"농입니다. 앞으로 여기에서만은 부인보다 어미를 먼저 생각하라는 충고이기도 하고요."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더 깊게 새기기로 한 그는 그의미로 문안 인사를 드릴 때 보다 정성을 다해 더 허리를 숙여보였다.

"그렇게나 평강이가 좋습니까?"

"네. 너무 좋습니다..."

아까 혼이 그리 났음에도 또 평강을 떠올리는지 쑥쓰러움을 감추지 못해 제 표정에 미처 숨기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걸렸다.

"됐습니다. 어서 고개를 돌리시죠. 어찌 제 어머와 대화를 하려는데 고개를 돌려 대화를 하려는 아들이 세상 어디 있사옵니까."

어머니에게 또 꾸중을 듣지 않으려고 고개를 황급히 돌렸던 그는 또 꾸중을 들어버렸다.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자 그녀는 아까 그가 했던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그나저나 아까 하신 말이 무엇입니까. 평강의 마음에 드는법을 알려달라고요?"

"네. 어머니라면 그 방법을 알고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하여 이리 묻사옵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평강의 마음에 드는 방법이라니요? 혹시 싸운겁니까?! 제가 보지 못한다 해서 저 모르게 싸우기라도 한것입니까?!! "

그녀는 깜짝 놀라며 불안한 자신의 예상이 틀리길 바랬다. 다행이 곧 그녀의 예상은 그가 고개를 연신 돌림으로 떨쳐버렸다.

"아아닙니다. 제가 부인과 싸우다니요. 싸운다면 누가 이기실지 아시면서... 그리고 부인과 싸우고 싶지도 않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혹시 모르니, 행여 싸우는 일이 있더라 해도 반드시 평강이 이기게 하십시요. 누구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지내는지 잊지 말란 말입니다."

그녀의 말에 철저하게 공감을 한 온달은 그 의미로 아까와는 다른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 집의 주인이 다시 한번 누구인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왜 그런 말을 하시는겁니까? 싸워서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아니고."

"실은... 부인의 곁에 제가 없는 것 같아서... 요..."
 
한편으로는 듣지 못하게 기어들어 갈 것만 같은 목소리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자, 평강보다 더 뛰어난 청각을 지닌 그녀는 제 아들의 고민을 놓치지 않고 버럭 화를 내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부인 곁에 없는 사람이라니요? 평강이가 이제 부인 노릇을 못해주겠다 합니까? 그래서 구박이라도 하는겁니까?!"

아무리 집안을 살리고 제 며느리가 되어 자신을 친 어머니처럼 여겨서 자신 또한 어 여삐 여긴 아이라도 자신의 아들을 무시한거란 생각에 그를 앞에 두고 화를 참지 못했다.

자신의 말이 실수였음을 알아차린 그가 뒤늦지 않게 어머니가 앉아있는 방의 문까지 달려가 그녀의 늙은 손을 잡고 고민에 대해 더 상세히 설명하여 오해를 풀기로 한다.

"아아닙니다 그런 거. 단지... 해 가 지날수록 그녀가 점점 멀게 만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오해를 풀려는 아들의 대답에 더 의문만 남기는 어머니였다.

"아니? 더 멀게 느껴지다니요? 평소에 제 부인곁을 충견처럼 지키며 부인께서 시키는 모든 일을 군말없이 즐겁게 하시지 않습니까?"

"네. 그래서 더더욱 멀게 만 느껴집니다."

그녀가 온달에게 시집을 오면서 한 가지 약조한게 있었다.

자신의 지아비가 될 사람은 자신의 기준에 모두 부합되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사랑은 꿈꾸지도 말라고 말이다.

그는 미천하긴 해도 자신에게 시집을 온 평강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의 사랑을 얻고 싶었다. 이미 부부가 되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없이 함께 지내는 걸 부부라고 할 수 있겠는나.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사내 구실을 할 수 있게 평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평생 가난에서 지 어머니를 모셔야했기에 못해왔던 고구려의 사내 구실을 위해. 고구려의 사내라면 당연 해야 할 덕목인, 학문과 무예를 그녀의 지도 아래 수련을 시작한 온달.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서 잔 실수가 눈에 띄게 많아 부인의 차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지만, 무예는 첫 해가 지나자 활쏘기와 검술은 그녀와 대등하게 합을 겨룰 정도로 성장했다.

학문 또한 배움이 늦어 큰 어려움이 있으나, 부인의 뛰어난 능력과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한 열정으로 두 해가 지나자 겨우, 글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어엿한 고구려의 사내가 되지 않았습니까. 헌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하시는겁니까?"

이미 그는 고구려의 사내가 되어있었다. 바보 온달이라 부르던 고을의 사람들은 이미 사라졌고, 이제는 근육이 붙고 얼굴에 자신감이 넘치니, 고을의 처녀들은 차츰 그를 연모하였고, 사내들은 그런 그를 이제는 시기 질투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 무엇도 만족하지 못하였다.

"이제 부인덕에 제가 사내 구실을 하였습니다. 허나, 그건 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한거지. 남들 좋으려고 노력한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녀가 원하는 지아비에 다가가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독촉하며 맞지도 않은 공부와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그런데, 몸이 좋아지고 더 어려운 글을 읽고 쓰게 되어가면, 점점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차갑고 남 대하듯이 느껴져만갔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대로 전 영영 부인의 마음에 들지 못하는 사내가 되는겁니까. 그건 싫사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요. 도와주세요. 어머니... 제게는 이제 어머니의 도움뿐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모르는 어머니, 그럼에도 자기 자식이 이토록 괴로워하며 제 품에 기대려고만 하는데, 이제야 그가 어떤 괴로움은 느끼는지 알아차린 어머니는 보이지도 않은 아들의 머리를 향해 머리를 쓰담아주며 괴로워하는 그를 진정시켜주었다.

"우리 아들. 엄마가 도와줄게."

"어떻게... 어떻게요...?"

"앞으로는 평강이 좋아할 것만 하세요."

"그건, 이미 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어머니는 두 손으로 더듬어가며 그의 얼굴을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그건, 자신을 위한 일이지 않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부인을 위한 일이 어찌 저를 위한 일이라는게..."

"평강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지아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게 어찌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게 어찌 그녀를 위한 일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녀는 천천히 그가 평강의 마음에 들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평강의 마음에 들지 못한 건, 오롯이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음에 들려면 학문과 무예를 통한 사내구실보다, 서방의 모습이 그에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아직도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그를 위해 그녀는 과거 평강을 만나기전 일을 꺼내 든다.

"예전, 산에 들어가 힘들게 캔 약초를 헐값에 팔았다고 저에게 이야기 했지요?"

그때 일을 곰곰히 떠올리며 그렇다고 대답하는 온달.

"그럼, 그때 무슨 연유로 그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그 귀한 약초를 거저 주신겁니까?"

"저보다 더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럼, 받은 사람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감사할 것 같습니다. 평생을 잊지 못할... 아...!"

이제야 어머니가 하고자 하는 말 뜻을 이해한 온달을 뒤 로하고 그녀는 이해를 확실히 하기 위해 말을 이어간다.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은 그러한 것입니다. 내게 얻을걸 염두해두고 마음을 주려는게 아니라, 그런 거 생각 없이, 그저 자신의 마음을 주고 싶어 주는게 상대의 마음에 드는 거란 말입니다."

어머니의 말에 자신의 아둔함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소자 어머니께 문안 인사를 마치고 이만 물러가옵니다. 이따가 아침식사 때 뵈요."

해야 할 일이 생긴 그는 품에서 벗어나, 그는 해답을 해준 어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매정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아들이 미워져도 마냥 싫지는 않았다. 언제나 자신만을 생각하여 걱정만 남겨온 아들이 이제는 자기 부인을 생각해주어서, 자신이 떠나도 남길 걱정 따위는 사라진 듯 후련했기 떄문이다. 



어머니와 헤어진 그는 곧장 부인에게 달려가지 않았다.

부인과 함께 지내는 방에 들어가 무언가 하고, 또 그녀의 말 한마디 없이 집에서 모습을 감추고 몇 칠 간 사라지고 다 헤진 활과 함께 돌아와, 평소와 같이 부인을 맞이하고 부인과 함께 수련을 하며 하루하루 보내며 기다렸다.

그러던 홀로 고을의 저잣거리에 볼일이 생긴 평강에게 난데없는 소나기가 귀갓길을 막아버렸다.

"비가 오네..."

"누굴 기다리시는 겁니까?"

어느새 바짝 곁에 다가온 온달. 깜짝 놀랄걸 기대하기에는 평강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이럴 경우에는 평온했다고 하는게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놀라지는 않으셨소."

"서방님이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놀랬다는 말을 굳이 둘러서 하는 평강에게 자신의 멋쩍은 표정을 숨기고자 서둘러 가져온 우산을 펼쳐 들어 그녀를 끌어 안아주었다.

"오해하지는 마시요. 내 여기서 남들에게 부부의 연을 보여주려고 끌어안은게 아니니. 부인을 우산 아래에 두기 위해 그러한 점 이해해주시오."

그녀가 불쾌하지 않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그를 보며 뭔 소리 하냐고 인상을 무너뜨리는 평강이 자신의 표정을 대답해주었다.

"무슨 오해요? 저희가 부부인게 숨길 일입니까?"

"그럼, 상관없소. 자! 집으로 갑시다. 내 바래다 주겠소."

평강은 자신을 끌어 안은 온달의 손을 제 손으로 쳐서 떨어뜨려 놓은 체 나란히 우산 아래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어가면서 온달의 오른쪽 어깨가 비로 젖어가는 걸 보았지만, 일부로 못 본체 했다.

걸어가면서도 그녀는 온달의 달라진 모습에 의아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약간 자신을 대하는게 쭈뼛쭈뼛거리는 혼이 난 어린아이와 같던 온달이, 지금은 어딘가 여유로워 보이는 선비처럼 보였다.
 
칭찬은 아니었다. 그녀가 떠올린 여유로운 선비란, 신선 노름이나 좋아하는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한량과도 같은 인상이었다.

갑자기 태도가 변한 이유에 대해 묻고 싶어도, 묻지 않았다. 태도가 일변 한 그를 향한 경계를 풀지 않은 그녀를 위해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인께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소. 우산을 잡아 주실 수 있소?"

그녀는 의심 없이 그가 건넨 우산을 잡아주었다. 두 손이 자유로워진 그는 품속에 가지고 있던 그녀의 선물을 꺼내 목에 걸어주었다.

"이건..."

"목걸이오. 내 밤낮을 부인만 생각하며 만들었소."

나무로 만들어진 목걸이. 그의 전성이 담긴 목걸이었다.

"잘 어울리오."

"한동안 방안에만 틀어 박히시더니 이런 걸 만들고 계셨습니까?"

"만드는데 꽤 힘들었소. 손에 익숙치가 않아서. 그것보다 어떻소? 마음에 드시오?"

잔뜩 우수에 찬 눈으로 그녀으 대답을 기다리는 온달의 모습을 본 평강은 목걸이를 한 번 만져보았다.

"뭐...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헌데, 갑자기 저에게 이걸 주시는 연유가 있사옵니까?"

그녀는 한번도 그에게 목을 치장할 목걸이를 원하지 않았다. 궐에 살던 때야 언제나 차고 있는 물건이어서 목걸이는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닌 탓도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목에 목걸이가 채워지니, 허전하게 느껴졌던 목 주변이 편안해졌다.

"내 부인과 부부가 되었음에도 무엇 하나 해준게 없어서 그게, 늘 아쉬웠소. 그래서 만든 거요. 부인의 아름다움을 담기에는 부족할지라도 부인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해서."

"뇌물... 같군요..."

자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목걸이를 준비했다니, 나지막하게 말한 그녀의 말을 들은 온달은 정말 자신의 선물이 뇌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뇌물이면 어떠한가. 그녀는 마음에 드는지 좋다라는 말은 없더라도 몇 번이고 목걸이를 만지며 처음으로 즐거운 표정을 옆에서 볼 수 있다면 그도 만족했다. 하지만 아직 그녀를 위한 선물은 끝나지 않았다.

목걸이에 정신을 빼앗긴 평강을 깨우기 위해 헛기침을 해본다. 그녀가 헛기침에 놀라 그에게 시선을 움직이자 온달은 그간 준비해둔 자신의 가장 큰 선물을 알려주었다. 

"부인. 부인께 지금 알려줄게 있소. 그제 말없이 나간 일을 기억하시오?"

"네 기억합니다. 어딜 가시기에 저에게 조차 알려주시지 않으신겁니까."

"부인께서 좋아할 만한 소식을 가지러 갔소."

"지금 말씀드리시는거라면, 제가 좋아하는 소식을 가져오셨나 보군요."

온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 나는 폐하께서 주최하신 사냥 대회에 나갔소. 거기서 사슴 하나를 맞추어 폐하께 받치자, 폐하께서는 황공하옵게도 나에게, 고구려의 무관으로 임명하였소."

관직을 얻었다는 말은 동서막론하고 축하받아야 할 일이 맞았다. 그것도 무예를 숭상하는 고구려에서 활쏘기로 사슴을 잡아낸 바보 온달이 관직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고을의 사람들, 집안의 가솔들, 그의 어머니까지 이 소식을 들으면 모두가 하나같이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소식이었다. 물론, 그녀가 가장 놀랄 소식이기에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곧장 평강에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받은 그녀의 반응은 놀람보다 싸늘한 시선이었다.

"어떻소 또 놀라지는 않으셨...오?"

이게 아닌데...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자 오히려 놀란 온달을 향해 무겁게 닫은 것 같은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저의 마음에 들려고 저에게 무예와 학문을 가르침 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헌데, 어찌 제게 배운 걸로 관직에 든단 말입니까. 그것도, 문관도 아닌 무관에...!"

그녀가 이토록 화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저리 차가운 얼굴에 입술을 잘근 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나가는 남들이 보고있노라면, 분명 바로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어 용서를 바랄 거다.

"제가 왜 지아비의 상을 서방님께 말하지 않았는지 아십니까. 제가 바라던 지아비들은 이 나라에는 없는 존재여서 그랬습니다. 고구려의 사내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바보처럼 나라를 위해 죽으려고 안달이 난  정신 나간 사내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온달이 무예를 알려달라 했을 때 그리 순순히 알려준 이유가 무엇인가. 그녀의 말대로라면 무예를 가꾸는건 곧 이 나라의 무사를 양성하는 일과 진배없는 일이었다. 그 뜻은 온달을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고백과 다를게 없었다.

"왜 말리지 않은 거요?"

"서방님은 그리 해도 될 줄 알았으니까요. 서방님께서 저에게 무예와 학문을 배우시려는건 저의 마음에 드려고 하시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제가 아버지와 척을 지고 있으니, 관직에는 나가지 않으리라고 착각을 했사옵니다."

평강은 온달이 관직에는 나가지 않으리라 여겼다. 약초를 캐고, 밭 농사에 더 흥미가 있는 그가 설마 자신을 위해 관직에 나설 줄은 꿈에도 모를 일이었다.

무릇, 고구려의 귀족 여인들은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우고 전리품과 함께 평양으로 개선하는 사내들을 좋아했다.

특히 평강과 같은 말딸들은 전장에서 자신의 강함을 입증한 무사들을 더욱 선호하는 성향이 있었다. 평강의 의견은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을 크게 흔드는 말이었다.

"제가 혼례품으로 수의를 안 주신지 아십니까? 서방님께서는 전장에 나서지도 말라고! 생각조차 떠올리지 말라고 주지 않은 것입니다. 저를 위한다는게 결국... 정말 시시한 남자가 다 되었습니다."

고구려의 풍습에는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수의를 건네준다.

일찍히 전장에 나가 이른 죽음을 맞이하는 고구려의 사내들과 말딸들이 기다리지 않고 바로 묻을 수 있게 미리 준비를 하려는 의도였다.

그녀가 수의를 주지 않은 까닭은 그러한 풍습이 싫어서였다. 자기 서방이 빨리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는게 불쾌했다.

처음으로 온달에게 화를 내본 평강을 그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는 말딸의 분노인데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도를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디 하나 모습 없이 그녀의 분노가 잠시 수그러 들기까지 기다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분노가 어느 정도 사그라 들었는지 다시 차분해 보이는 차가운 눈매로 돌아온 평강에게 그가 관직에 든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할 차례였다.

"부인, 나도 알고 있소. 부인께서 그 날, 내게 수의를 주지 않은 것도, 부인이 원하는 내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최근에 알긴 했으나, 알고 있었소."

"... 들어나 봅시다. 제게 미움 받을 각오를 하고 관직에 든 이유를..."

"나는 부인이 걱정하는 것처럼 전장에 나가 내 존재를 증명하려고 무관직을 받은게 아니요. 내가 원하는건 페하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원하였소."

"폐하의 곁에 있으면 부귀영화라도 누릴 줄 아시는겁니까. 착각도 유분수지... 언제부터 그리 사람의 마음이 탁해진겁니까."

그녀의 매도에 그는 고개를 크게 저었다.

"아니요아니요. 내 말을 끊지 말고 들어주시오. 내가 무관에 있으면 부인께서도 페하의 곁에 있을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걸 원해서 무관직을 받아들인겁니다. 당신이 폐하와 다시 화해하기를 원해서 말입니다..."

대답하려는 그녀는 그의 사실에 말을 잊지 못했다. 아버지와의 화해를 위해 무관직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식이었다. 

"제가 제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싶은지 아닌지는 제가 정합니다. 서방님께서 나설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나도 가족이지 않소, 폐하께서는 나의 장인이고, 폐하께서 나는 사위입니다. 집안이 하나가 되었으니까요. 저는 당신이 아버지와 화해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말은 아니라 하면서도 사실은 화해하고 싶은 거 아니었습니까?"

그는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게 무엇인 지를 그녀의 주변에서 찾아 헤멨다.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그녀의 훈련을 받으면서 그녀가 사물을 보았을 때의 표정이나, 그녀의 걸음걸이, 그녀가 쓰는 글의 의도를 해석하는 일도 즐겁게 하였다.

그녀와 글 짓기를 할 때면 그는 주로 자신의 어머니와 평강에 대한 글을 쓰곤 했다. 평강은 온달의 글을 읽으면서 가족에 대한 문구를 놓치지 않고 온달 몰래 보고 있음을 눈치챘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에서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가 만날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기로 했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에 들 수 있는 방법이였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럼에도 무관은 아닙니다. 서방님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쟁은 찾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서방님은 전장에 나가 큰 공을 세우겠지요. 저는 그런 서방님이 죽지 않길 기도하며 집 밖 문 앞에서 서방님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그의 진심을 알아차린 평강은 그래도 무관이 된다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장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수의를 가지고 그의 곁으로 다가가는 일이었다.

"지금 사람들은 서방님을 바보라고 기억하겠지만, 내일이면 고구려의 장수로 기억할 것 입니다. 안국군과 유유장군을 기억하듯 서방님도 그리 기억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안국군과 유유장군은 고구려의 사내들과 같이 전장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며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

온달이 그리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니, 그녀의 손이 떨려왔다.

처음으로 떨려오는 두 손 때문에 어찌 할지 모르다가 손을 뒤로 숨기려고 했다. 온달은 그런 도망가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그녀가 걱정하지 않게 언제나 보여주던 실없는 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세상 제일의 바보가 아니요. 세상은 나를 바보로, 부인은 나를 서방으로, 나는 당신을 부인으로 기억하고 기록될거요. 그러니 죽는다는 걱정은 하지 마시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그걸로 만족하니. 나는 장군으로 기록되지 않을 거요. 장군으로 기록되지 않기에 나는 죽지 않을 거요. 내 반드시 약속하겠소. 살아서 비오는 날 이렇게 우산을 들고 부인께 마중나가겠다고. 기다려주시겠소?"

자신이 죽지 않을 거라 안심시키며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기다린 온달. 입으로 하는 소릴 누가 못하겠냐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온달 덕분에 손의 떨림을 멈출 수가 있었다.

그녀는 그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맺었다.

죽지 않겠다고 약속한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여전히 그의 얼굴은 웃기 바빠보였다.

"그리 실실 웃기만 하니, 아직도 제 마음에 들지 못하시는 겁니다."

"알고 있소.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부인의 마음에 들려 노력해보겠소."

그러면서 또 실실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온달. 그런 그가 적응이 안되는 평강이 말하기를.

"이리 능글 맞으신 분일 줄은 몰랐습니다."

"능글 맞은 게 아니라, 솔직한거요."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에 대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빗소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비가 온다.

일기예보에도 없던 장대비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사람들이 난데없는 장대비에 우왕자왕하며 비를 피하기 위한 소란을 일으키는데도, 소란을 일으키지 않은 한 우마무스메 소녀가 있었다.

서점의 처마에 차분히 소란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차가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소녀는 트레센 교복을 입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를 피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분위기에 홀려 그녀의 교복를 처음 보고 그 다음 얼굴을 보고나서야 그녀가 누구 인지를 놓치지 않았다.

메지로의 지보라고 불리는 메지로 라모누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아버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를 피하려고 도망치는 와중에도 궁금해졌다. 세상을 자신의 기준대로 정의내리며 자신의 기준에 부합한 자를 용서하지 않는 그녀가 서점 앞에 우산도 없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비를 피하느라 그녀의 상대가 누구인지 못 보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했지만, 몇 몇 운이 좋은 사람은 그 사람을 볼 운수 좋은 날이 될 수 있었다.

"라모누-!!"

멀찍이서 우산을 펼쳐 그 밑으로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그녀를 향해 뛰어오며 그녀를 마중 하러 오는 청년.. 그를 본 사람들은 단번에 그가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임을 알아보았다.

"늦어서 미안해 라모누... 일이 생겨버려서...!"

"나의 트레이너가 나보다 다른 일을 처리하러 가다니, 나를 너무 실망시키는 건 아닌가 싶어. 트레이너?"

"미안...해...! 후우! 다음번에는 미리 연락이라도 줄게."

숨을 헐떡이며 숨을 진정시키는 일보다 그녀에게 사과를 먼저 하는 트레이너를 바라보며, 라모누는 더는 그를 질책하려 들지 않았다. 이 정도로만 해도 충분할거다.

"그런데, 서점에 와 달라고 해서 왔는데 무슨 책을 산 거야?"

트레이너가 무슨 책인지 궁금해 하자 그녀는 바로 그녀가 산 책을 들어 보여주었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거 우리나라 전래 동화 아니야?"

"맞아. 일전에 당신이 해준 온달과 평강의 이야기."

그는 한국에서 온 트레이너였다.

어쩌다 보니, 한국이 아니라 일본 트레센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불만인 트레이너였지만, 그 대신으로 자신의 애마, 메지로 라모누를 볼 수 있었다는 건 그나마 타지 생활에서 몇 안되는 좋은 점이었다.

사람 일에 원체 관심이 없던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을까 하고, 한국의 전래 동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날들이 있었는데, 그녀가 지닌 책,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도 그때 말해준 전래 동화였다.

"이 이야기가 꽤나 마음에 들었나보네. 책까지 사는 거 보면."

"맞아, 당신이 한 이야기들 중에서 그나마 마음에 든 동화 속 이야기지. 당신이 이야기하다가 일이 생겼다고 이야기의 끝을 내지 못해서 결말을 기다린 덕분도 있고."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을 잃은 트레이너는 앓는 소리만 내었다.

"가장 큰 불만은 이야기의 결말보다 이야기의 내용이 짧은 게 문제지만, 이렇게 짧은 이야기라니, 이러면 자기 전에 다 읽게 생겨버리게 되겠어."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보는 전래 동화가 되었기에, 책은 그림책으로, 내용도 다 합치면 육천 자도 넘기지는 못할것다. 많으면 일 만 자는 넘겠지.

게다가, 삼국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도 더 전 이야기다. 그때도 구전이나 몇 줄 되지 않는 이야기로 지금까지 내려왔는데, 기록이 더 부족한 현대에 그녀가 만족할 만한 분량은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비가 오는 날, 야외 레이스장에서 연습도 못하고, 분량도 적고... 무엇 하나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 상황이 그녀의 심기를 건들까봐, 두려워진 트레이너는 이야기의 주제로 그녀의 관심을 유도해본다.

"라모누는 이 이야기에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든 거야?"

"마음에 드는 건 거의 없었어. 잘 살고 있는 공주는 모든 걸 버리고 가진 거 하나 없는 거지에게 시집을 가버린다는 게.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공주가 바보는 아닌지, 거지를 훈련시키고 입신양명하게 만든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정도?"

"낭만도 없는 그런 속사정을 왜 좋아하는 거야? 우울하게."

"글쎄? 당신하고 내 이야기 같아서...?"

"그리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아무것도 없이 몸만 덜렁온 트레이너와 좋은 집안에 능력까지 출중한 라모누, 그녀의 말대로 가히, 온달과 평강의 이야기와 너무나도 닮아있기에 또 그만,  할 말을 잃고 만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는 거지?"

"... 안 읽게? 스포일러 하기 싫은데."

"기숙사에서 내 시간을 낭비하는 것 보다, 지금 여기서 당신에게 직접 듣는 게 효율적이라 생각이 들어서."

그녀의 시간을 낭비한데에는 그의 책임도 있으니까, 그리 생각하며 이 이야기의 결말을 라모누에게 알려주었다.

후주의 침공을 막은 온달은 고구려의 영웅이 된다.

그 뒤, 남쪽의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원정군의 지휘관이 된 온달은 계립현과 죽령을 탈환하는 전투에서 아단성의 신라군의 화살에 맞고 전사를 한다.

그의 시신은 검을 쥔 체 관이 들리지 않았고, 평강이 직접 찾아와 이야기를 주고 나서야 관이 들려 고구려로 돌아갈 수 있었다.

"꽤나 슬픈 이야기지. 행복한 이야기보다."

"그러네, 꽤나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볼 전래 동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결말이었다.

"시집을 간 평강도 온달이 죽을 줄 알고 있었을까? 온달은 자신이 죽을 줄 알고 있었을까."

트레이너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많은 아쉬움만 남겼다.

평강은 한 순간에 자신의 삶 전부를 받친 남편을 잃었고, 온달은 바보였던 자신과 집안을 살려준 부인에게 작별의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당신은 온달이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아?"

그녀의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그는 이 이야기를 듣고 예전부터 생각해둔 감상을 그녀를 바라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엄청 미안하겠지. 살아서 돌아오길 빈 평강에게 얼굴을 들 수 없었을 거야.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또 그녀를 만나고 싶어서 관에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게 아닐까? 라는 상상을 했어. 그럼 너는? 너는 평강이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아?"

마치 라모누에게 직접 사과를 하듯 온달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트레이너는 이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리석은 여자야. 아버지가 한 농담도 구분 못하고 아무것도 없는 온달과 결혼을 하다니... 뭐, 좋아하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겠지. 능력이 있는 똑똑한 여자니까, 이미 무관이 된 시점부터 직감했을 거야. 내가 평강이였으면, 당신의 사과도 받아주지 않겠지. 각오한 시점에서 온달은 잘못한 게 없으니까."

그녀의 대답에 그는 머리에 무언가를 맞은 듯 멍해졌다.

어쩌면, 라모누의 답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미 평강은 장군이 된 그를 보며 그가 죽을걸 예상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야기의 전부를 알 수는 없어도, 알려진 이야기 속 평강은 먼저 떠난 온달에 대해 원망하거나 분을 못 이겨내기 보다, 담담하게 그의 이별을 받아들였으니까.

어딘가 막혀오는 가슴이 답답했던 트레이너의 속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가게? 우산이 하나 뿐이라서 어딜 가든 너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근처에 야구장이 하나 있어. 거기로 가자. 맥퀸이 자기 트레이너하고 몰래 경기를 보러 갔거든."

데이트인가... 동생의 데이트 상황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겠지. 좋은 일은 아니지만.

라모누는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트레이너의 우산 안으로 몸을 피했다.

트레이너가 우산의  상당부분을 그녀가 비에 젖지 않게 하기 위해 자리를 양보해주자, 라모누는 오른쪽 어깨가 젖어 들어가는 트레이너를 놓치지 않았다.

"어째서 우산을 하나만 가져온 거지? 내가 분명 두 개를 가져오라고 했을 텐데."

"그, 그게... 사실은... 여기 오기 전에 길을 잃어버린 할머니가 있었는데, 앞이 안 보인다 해서, 두고 갈 수는 없잖아. 그래서, 우산을 쥐어주고 경찰서까지 데려가 주다 보니까, 우산이 이거... 하나 밖에 안 남아 버렸네..."

편의점에서 우산이라도 사올걸. 하고 속으로 후회하기 시작한 트레이너를 보며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서 당신은 여전히 내 마음에 들지 못하는 거야. 아니지. 그거라도 내 마음에 들었으니 합격인 건가..."

"그럴게... 뭐라고?"

그가 알아듣기 전에 라모누는 그가 놀랄 수 있게 그를 끌어 안아주었다.

"이상한 생각하지마, 내 트레이너가 비에 젖어 감기에 걸리는 한심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으니까."

"원래 이런 성격이였니...? 오늘 따라 너무 적극적인 것 같은데... 게다가 남들이 보면 어쩌려고."

"남들의 시선은 내 알빠 아니야. 나는 지금 당신이 더 중요하니까. 그러니 더 안쪽으로 들어와. 이대로 경기장까지 가자."

그녀의 요구를 더는 뿌리칠 수가 없던 그는 마지못해 그녀를 꼬옥 끌어 안은 체 맥퀸이 있는 야구 경기장까지 발걸음을 옮겨야했다.

기자들이나 시민들에게 자칫 밀회의 한 장면으로 오해 받을까 걱정만 앞선 트레이너와는 반대로, 라모누는 그저 이 상황이 즐거워 꼬리가 흔드는 것도 잊은 체 그의 품에 몸을 맡겼다.

"처음부터 이렇게 받아줄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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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이렇게 길어져버렸네요.
역사 말딸을 써보는건 또 오랜만이라 즐겁게 써서 좋았어요.
긴 글을 읽어주셨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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