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사람은 봤을 텐데 다시 올려봄.
글 출처:
https://m.cafe.naver.com/wotat/380758워게이밍넷 러시아 지부가 올리는 역사 컬럼의 내용을 번역하였습니다. 이야기가 기록된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미화가 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예 지어낸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획한 적의 차량을 이용하는 것은 어떤 국가의 군대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무 구식이거나 상태가 나쁘지만 않으면 상관없었지요. 2차대전 중에는 소련과 독일 모두 상대 국가의 차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이 글에서 다뤄질 내용은 1942년의 이른 봄에 볼호프 전선(역주 : 독소전 초기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진공을 저지하기 위해 편성된 전선)에서 일어난 일이며, 그 주인공은 107 독립전차대대 3중대의 니콜라이 바리셰프 상사와 휘하 승무원들, 그리고 그들이 조종한 3호 전차입니다.
군 장비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기 힘들었던 시절, 어떨 때는 노획 장비를 사용하는 것만이 부대 전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107대대의 대대장이었던 B. A. 샤리모프는 독일군의 전차를 최대한 끌어모아, 쓸만한 것을 수리해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대대의 전차 수가 많이 모자랐기 때문에, 예하 지휘관들도 그의 계획에 찬성했습니다.
3중대는 독일 전차로 완편된 부대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바리셰프가 지휘한 3호 전차는 바리셰프 본인이 직접 독일군의 코밑에서 대담하게 가져온 전차였지요. 이 3호 전차는 독일군 진지로부터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전기식 주포 격발장치와 동력보조식 조향장치가 유탄 파편에 맞아 고장난 것 외에는 거의 멀쩡한 상태였습니다. 바리셰프와 부하들은 쏟아지는 독일군의 사격을 무릅쓰고 전차를 수리한 뒤, 전차에 올라타고 그대로 줄행랑쳤습니다.
므가 강 인근의 베냐골로보와 샤프키 마을에 대해 이루어진 소규모 공격작전 당시, 노획된 3호 전차로 이루어진 전차소대가 산악병 2개 중대를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차 두 대가 대열에서 떨어지고 말았는데, 무전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전기 문제는 전쟁 초부터 꽤나 번거로운 문제였습니다. 당시 소련의 무전기 생산량은 자국산 전차 전체에 싣기에도 좀 부족한 정도였던지라 노획 차량에 실을 무전기를 따로 내 줄 여유는 없었고, 노획 차량에 원래 실려 있던 무전기는 으레 부서져 있거나 멀쩡하더라도 사용법을 도통 알기 어려운 것들 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바리셰프의 소대가 통신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요.
바리셰프는 전차를 몰아 늪지대 투성이인 숲을 돌파해 독일군 경계부대를 격파한 뒤, 므가 강을 건너서 보병부대와 함께 베냐골로보와 샤프키를 잇는 도로를 확보해 독일군의 보급선을 절단하였습니다. 공격 중 독일군의 보급창을 하나 점령했었는데, 원래 가지고 있던 포탄을 거의 다 소모해 버렸던 바리셰프에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소련군은 독일군의 집중포격 속에서 4월 10일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바리셰프는 열려 있던 해치로 날아들어온 포탄 파편에 맞아 가벼운 부상을 입었는데, 전차 장갑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다른 보병들은 더 큰 피해를 입어야 했습니다. 해가 뜰 무렵 스키보병 1개 대대가 보병 전력에 합류하였고, 그 덕분에 소련군은 정오 무렵 밀어닥친 독일군의 반격을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샤프키 마을 방향에서 전차 한 대를 대동한 독일군 보병들이 공격해 왔지만, 바리셰프와 부정치장교 자크로유가 노획한 대전차포를 이용해 전차를 파괴하였지요. 독일군은 그 날 세 번의 공격을 더 가해 왔고, 큰 손실을 입은 뒤에야 공격을 멈추었습니다.
4월 11일, 독일군의 증원병력이 도착하여 2개 대대 병력 중 150명밖에 남지 않은 소련군을 포위했습니다.
4월 12일, 준비포격 이후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약간의 보병과 전차 한 대를 향해 독일군의 3호 전차 6대와 호위 보병부대가 몰려들었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몇 시간 동안 계속된 후, 소련군이 현 위치를 더 고수하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습니다. 독일군은 포위망을 점점 좁혀 왔고, 스키보병들이 가지고 왔던 마지막 무전기가 포탄 파편에 망가져 증원도 요청할 수 없었습니다. 바리셰프는 생존자 23명을 규합해 전선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선은 단 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전차 한 대와 20여명의 지친 병사들을 이끌고 독일군의 포위망을 뚫고 거기까지 가는 것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소련군 병사들 중 그 누구도 항복이란 단어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셰프는 소련군 진지 바로 건너편에 있는 므가 강 교두보까지 간 뒤, 보병들이 강을 건너 후퇴하는 동안 그들을 엄호할 생각이었습니다. 바리셰프가 독일군 전차를 몰고 있다는 사실은 천운이었습니다. 독일군의 포위망이 교두보 근처까지 가까워졌을 때 바리셰프가 독일군 쪽으로 전차의 방향을 돌렸는데, 전차에 원래 그려져 있던 독일군 표식을 아직 지우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독일군들이 바리셰프의 전차를 자기 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바리셰프가 독일군 병사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마치 전차가 어딘가에 걸린 것처럼 앞뒤로 조금씩 움직이게 하는 동안, 보병들은 전차 뒤쪽에 숨은 채 강을 건너갔습니다. 강을 주시하던 독일군이 소련군 보병들을 발견하고 사격을 개시했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고, 총격을 당해 강물에 휩쓸려간 불운한 두세 명의 병사를 제외하고 모두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바리셰프의 전차는 그곳에서 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도강 지점은 약 1km 가량 떨어져 있었고, 바리셰프는 포위망을 향해 그대로 전진했습니다. 바리셰프의 전차가 독일군의 참호와 대전차포, 전차들 옆을 지나는 동안 독일군 병사들은 전차에 손을 흔들어 주었고, 몇몇은 심지어 전차 위에 올라타 전차에 달린 보관함을 뒤져 안에 들어있던 양가죽 코트와 펠트 장화들을 꺼내 들며 웃기도 했습니다. 소련군이 보관함에 넣어 두었던 장구류들을 자기 편이 소련군으로부터 빼앗아 가져온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리셰프의 전차가 강에 가까워지자 독일군 병사들이 깜짝 놀라 전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리셰프의 눈에 띈 것은 그의 전차를 미심쩍게 생각해 거리를 두고 뒤를 따라온 독일군 전차 두 대였습니다. 진지를 지나면서도 아무도 나오지 않고 조용히 지나온 이 3호 전차가 너무 수상했던 것이지요. 바리셰프는 강 건너의 소련군 진지에서 오인사격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부하 두 명을 먼저 진지로 보낸 뒤 독일군 전차들이 가까이 온 순간 해치 바깥에 붉은 천을 내걸고 강으로 돌진했습니다. 독일군 전차들이 쏜 사격은 포탑 뒤에 맞고 튕겨나갔고, 그 직후 소련군 진지에서 강변에 포탄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엄호사격 덕에 바리셰프와 그의 3호 전차는 무사히 진지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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