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자고 싶은데, 안 될까 스미쨩?"

"안 된다. 일어나라."

"...아직 여섯 시 반밖에 안 됐잖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모르겠다. 더 자야지..."

"...애를 껴안고 뒹굴지 말고 네놈 방 가서 자란 말이다...!"

셀렌은 스틸레토의 귀를 살짝 꼬집고 옆에서 자는 아이가 깨지 않도록 귓속말로 작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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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방 문이 왜 열려 있나 했더니만...엊그제 장 본 거, 너냐?"

"...그러네."

"너 말이다...너 때문에 지금 냉장고의 절반이 술이라는 걸 알긴 한가?"

"...그랬나?"

"꼬라지를 보니 또 진탕 땡기셨구만그래. 그러니 방을 착각했든 귀찮았든 이쪽으로 왔을 테고."

"...그런가 봐?"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일어나라. 에잇, 뭐가 이렇게 무거운 거냐...?"
팔을 잡아당기는 것만으로는 스틸레토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셀렌의 머리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어이, 스틸레토. 너 키 얼마냐."

"...178? 안 잰 지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

"...몸무게는?"

"...어제 목욕탕에서 봤는데 7X."

"너 임마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아님 암퇘지 새끼냐...!!"
휴일에 자는 아이를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성을 내지 못하는 애 엄마의 속은 타들어만 갔으나, 진상 주취객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마냥 빙글거리기만 했다.

"네놈의 복부지방이라도 좀 보고 경각심을 가져라...! 그 배둘레햄을 대체 뭐라고 부를 셈이냐...!"

"...으응, 러브 핸들?"

아이 옆에서 절대 나와서는 안 될 법한 단어를 듣고 셀렌은 하늘을 뒤덮은 어설트 셀이라도 본 듯 기겁하고 말았다.
이 술주정뱅이 녀석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여야만 한다...


"...왜 그러지? 체중이 늘어난 게 무슨 문제라도 있니? 자아, 얘. 이것 좀 만져보렴. 이모 뱃살이란다."

"이 정신 나간 자식...애 깬다, 그만 해라...!"

자기 캐미솔 위에 곤히 잠든 아이의 손바닥을 올리고 주물럭대게 만들려는 꼬라지를 보며, 셀렌 헤이즈는 윈 D가 자신이 아니라 스틸레토야말로 갱생이 필요한 완폐아로 지정해야 한다는 굳은 마음을 가져버렸다.
물론, 얼마 전까지의 셀렌 자신의 머저리같던 모습에 반성일랑 일절 없는 그 행태는 가히 인테리올 유니온 임원진의 인지부조화에 가까운 모럴 해저드에 필적했다. 과연 혈통이란 속일 수 없는 것일까.

"...봐. 내 안의 '아이'가 이렇게 커졌어..."

"그건 자랑이 아니다, 이 치녀야..."

"...어머, 시어머님 아니세요오?"

"지랄...! 나보다 나이 많은 며느리를 둘까보냐...! 다른 놈은 몰라도 네놈한텐 안 준다...!"

이 이상 가면 어딜 봐도 훌륭한 성추행이므로 누구도 따라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결국 셀렌은 밤새 꺾은 채 만취한 스틸레토를 뒤에서 껴안고 들어 낑낑대면서 질질 끌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답지 않게도 '링크스를 은퇴한 뒤 체력 단련을 소홀히 한 것만큼은 재고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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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간에! 군가한다! 군가는! 인테리올! 사가! 박자! 빠르게! 군가시작! 하나! 둘! 셋! 넷!"

"...헤엑, 헤엑. 저기, 못 하겠어..."

"헛소리 집어치우고 적어도 뛰기라도 해라! 뜀걸음은커녕 거의 경보 수준인데 이것도 못 하면 어쩌자는 거냐!"

기업 연합이 기증한 셀렌과 그 제자의 전용 자동화 콜로니에는 ORCA 사태의 승리자인 셀렌의 제자 단 한 명만을 위한 각종 설비가 대량으로 갖추어져 있다. 체력단련 부지 역시 그 중 하나로, 돔 구장 이상의 넓이에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운동기구들이 총집결한 그야말로 헬창들의 꿈의 장소라 할 법한 곳이었다.
의외로 아이는 천성적으로 운동을 좋아하는 편인지 새로 사귄 학교 친구들과 함께 하루에 꼭 한 번은 들르곤 했으나, 셀렌 본인은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링크스를 은퇴한 뒤에는 오퍼레이팅과 사무에 집중하느라 가벼운 스트레칭만 하게 되다 보니 이 쪽은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지금 당장만 해도 겨우 100미터 정도의 런닝에 30초 가까이 쓰지 않았던가.
그리고 스틸레토는 그런 셀렌의 초저속 런닝에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저질 체력이었다. 과연 탱크 파일럿.

"너 말이다, 넥스트는 어떻게 모는 거냐? 우린 애초에 체력 승부 아니었나?"

"...헥, 헥...모르겠는데...신경써본 적 없는걸..."

이쯤 되면 과학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홀로 신비주의를 믿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셀렌은 생각하고 말았다.

링크스는 신분상 팍스 내부적으로는 콜로니 외부 특수직 종사자로 분류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직업군인, 그것도 넥스트라는 초고속 전투기계의 조종사이기에 아무리 자본이 모자란 독립 용병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COAM을 갈아넣어가며 온갖 체력 단련과 대G를 비롯한 각종 값비싼 훈련들을 지속적으로 이행해 전투력을 유지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윈 D의 경우 이미 현역 애슬리트 수준이며, 겉보기에는 약골인 에이 플 역시 그에 준하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
허나 이렇게까지 느려터진 인간은 군인은커녕 민간인 중에서도 폐급, 넥스트는커녕 노멀이나 가드 메카도 조종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이 녀석, 정말로 현역 고위 링크스가 맞긴 한 건가...? 아님 구 메리에스의 방침이 문제인가...?

"...에잇,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나도 오늘부터 아침 런닝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 그 때마다 네놈도 끌고 나와주마! 어서 뛰어라!"

"...소사포 파괴 쪽이 더 운동 됐던 것 같은데, 의뢰 수주라도 할까..."

"소사포고 아르테리아고 뭐고 간에 일단 네놈은 여길 완주하기 전까진 못 돌아간다! 아니라면 밧줄로 묶어서라도 강제로 알콜 중독을 낫게 해 주마!"

그 말을 듣자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기어가다시피 뛰는 스틸레토를 본 셀렌 헤이즈가, 자신에게 밑도끝도없는 꼴통 제자(연상, 경력직)가 하나 더 늘어버렸다고 직감해 버린 순간이었다.

"...냉장고, 돌아가면 정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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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개조에 가장 좋은 방안은 역시 반면교사

카스미 스미카와 스틸레토의 차이: 레오네 메카니카와 메리에스의 차이. 아마도?

얠 이렇게까지 능글맞은 성격으로 쓸 생각은 없었는데, 원본 그대로는 너무 재미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알콜의 힘은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