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써보는 장문의 글.

뉴비들은 갤 보면서 여기 갤매는 어탐 야짤이나 그려대는 이상성욕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고인물들은 알겠지만 저예가 그래도 이런 진지한 감상문 적지않게 남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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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오랫동안 기다렸던 피오나 한 개 시즌이 드디어 끝났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몰두하고 즐길 거리를 제공해주는 아담무토 및 스튜디오에 감사를 표함.

본 감상문을 통해 주요 내용을 되짚어보면서

일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작중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의도를 통해 뜻하고자 했던 피오나 시즌 1의 핵심 주제의식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1. 두 주인공

이야기는 각자의 세계에서 삶을 살고있는 두 주인공이 엮이면서 메인스토리가 진행된다.

피오나는 지루한 도시에서의 삶을 지겨워하며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고,

사이먼은 베티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우랜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지.

피오나의 세계가 사이먼의 머릿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나서,

피오나의 세상을 마법처럼 만들어주기 위해, 그리고 쫓아오는 스캐럽을 물리치기 위해

사이먼은 다시 얼음왕관을 쓰고 얼음대왕이 되기로 결심한다.

온갖 멀티버스 속을 다 헤집고 다닌 끝에

사이먼은 그토록 다시 만나고 싶어했던 골베티와 재회하고...

캐스퍼와 노바 이야기를 통해 베티가 자신을 위해 여태 희생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베티의 희생'에 대해 좀 더 깊게 얘기해보고자 함.

2. 베티의 희생

적지않은 사람들이 '왜 갑자기 사이먼과 베티의 훈훈했던 관계가 왜이렇게 일방적인 희생 관계로 묘사되었냐'

'순정남 사이먼이 희생을 바탕으로 살아남은 이기적인 존재로 전락했냐' 등 불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라 생각함.

일단 사이먼과 베티의 관계에서 베티가 자신의 욕망을 접고 희생했다는 점은 작중에 묘사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

다만, 어탐은 이러한 사랑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캐스퍼와 노바는) 둘 다 서로 사랑했지만, 그 정도가 완전히 같지는 않았어.

그렇다고 그게 캐스퍼의 잘못은 아니었다고 생각해."

"우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지난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이 희생은... 어떤 비대칭적인 관계 하에 동의없이 발생하는 약탈적인 희생이 아니라,

진심어린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자애의 표시로 봐야 옳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자식을 이기적이라 비난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성애의 아름다움을 칭송함.

노바의 희생이 캐스퍼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베티의 희생은 사이먼의 잘못이 아니며,

어머니가 자신의 희생을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베티는 자신의 희생을 후회하지 않음.

어탐 본편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베티의 희생이 갑자기 드러난 것은,

그로 인해 생존한 사이먼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거룩하게 돋보이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앞으로 영원히 사이먼을 떠나보내려 하는 베티가 사이먼에게 마지막 작별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껏 사이먼을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했었는지를 보여주고

자신 없이 살아갈 사이먼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려는 의도였음.

'삶에 대한 애정'이라는 새로운 힘을.

3. 삶에 대한 애정

멀티버스 내용이 워낙 강렬해서 9, 10화 시점에 잊혀졌을 범한 점이,

사이먼은 우울감과 상실감에 지친 나머지 얼음왕관을 쓰고 옛날 모습으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1천년 후 우랜드에서 안그래도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 피오나를 돕는다는 구실도 생겼겠다 아예 왕관의 광기에 휩쓸려 자아를 상실하려는...

일종의 정신적 자살을 꾀하고 있었던 것.

"나는... 내 삶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느껴져서

얼음대왕이 되겠다고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자신이 '베티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 후,

사이먼은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피오나와 케이크의 삶 만큼이나 나의 삶도 소중해!"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

이것을 매개로 지금까지 각자의 스토리를 보였던 피오나와 사이먼의 스토리가 대칭을 이루게 된다.

4. 피오나와 사이먼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자.

피오나는 늘 무채색의 일상이 반복되는 도시 속에서의 삶을 경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험의 끝, 자신의 세상이 멸망하려는 위기 속에서...

"취소할래. 나 우리 세상이 좋아!!"

수많은 멀티버스 속을 여행하며, 역경을 마주할 때 피오나는 늘 도피해왔다.

하지만 도망친 끝에 더이상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보금자리로 되돌아왔을 때,

피오나는 드디어 "세상을 위해"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운다.

자신이 싫어했던 기존의 세상을 다시 사랑하게 된 피오나.

자신이 싫어했던 기존의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된 사이먼.

두 인물의 스토리아크는 '삶을 사랑하라'라는... 뻔하지만 참 어려운 교훈을 종착지로

장장 10개 에피소드 300분을 거쳐 마침내 한 데 이어지게 된다.

"삶을 사랑하면, 삶도 당신을 사랑하게 된다."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5. 나가며

사실 삶을 사랑하라는 교훈은 어탐이 선보이기엔 굉장히 의외의 것이기도 함.

어탐의 교훈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윤회, 해탈 등 동양철학에 기반한 것이 많은데,

사실 동양철학의 특징이 분노와 집착을 제거하는 데엔 탁월한데

역으로 삶이 너무 보잘 것 없게 느껴져서 은둔주의, 허무주의와 줄곧 연관되기도 한다.

(참고 : 말뚝 미니시리즈의 해탈 관조 / The Mountain 에피와 무아설無我說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