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만난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치지만, 나에게는 별로 그렇지 않다. 성애를 전제로 사랑을 나눈다는 것 자체도 사랑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 같다. 순수하게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게 사랑의 본질인데, 타인을 위해서라면 내 것을 희생하기도 하는 게 사랑인데 거기에 굳이 자극적인 양념을 친다는 느낌? 종교인이라 그런지 성적 접촉을 목적으로 사랑한다는 게 좀 불순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나에겐 좀 그렇다. 서로가 서로에게 정서적 만족과 힘을 주는 관계만 해도 대단한 이득인데 말이지. 성적 접촉을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김치를 밥 대신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 경우는 성적 유인력이 생기는 것 자체를 뭐랄까, 시스템적으로 차단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어떤 사람을 친교의 대상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정신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리는 거지. 저 사람을 내가 소유하거나 정복하려고 해선 안 된다, 정말 사랑한다면 놔 줘야 한다면서 유인력이 없어진다. 여기엔 종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게 반복되다 보니 이 또한 내 성향의 일부가 되었다. 습관은 제 2의 천성이라더니 정말로 그렇게 된 거지.  

결국 성욕이 있고, 성적 매력이 뭔지도 알고, 거기에 반응까지 하는데 그걸 현실로 가져갈 의지는 없는 인간이 되었다. 특정한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두려운 마음과 저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떠나간다는 두 마음이 공존하는데, 어느 쪽도 줄다리기에서 이기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식으면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간다. 내가 성애적인 대상으로 여겨지는 걸 원치 않으니까, 남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