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천주교 신앙 때문에 내 성욕이 억압받아서 무성애자가 '된'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중이야. 내가 여기 1년 넘게 붙어 있는 것만 봐도 알겠지만, 그레이로서 유성애자보단 무성애자들과 훨씬 더 공감대 형성이 쉽다는 걸 느껴. 됐고, 그래서 종교 때문에 성욕을 억누르는 게 아니란 건 어떻게 증명할 거냐?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어. 얼마 전, 아니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그랬어. 무성애자란 '없다'는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한 결과지. 물론 천주교 신앙이 내 안에 무성애적 성향이 발달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인정해.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세례를 받을 때부터 난 무성애자 그리스도인이었고-비록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도 그렇지. 앞으로도 그럴 거야.

이 사실을 받아들이니까 내 삶의 태도가 좀 달라졌어. 내가 '남자'라면, '이성애자'라면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걸 내면화하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은 거지. 그 결과 난 섹슈얼리티에 집착하고 있었어. 내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불안해서, 뭔가 허전해서 성애화 과정을 거치고 있던 거지. 사람이 원래부터 성애적으로 태어난다기 보다는 사회와 상호작용하면서 성애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거잖아? 내가 자위를 멈춘다고 해도 남자가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고, 성애나 패티시를 알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거지. 그리고 내 성격도 마초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그런 의미에서 남자가 되고 이성애자자가 되기 보다는 나답게, 즐겁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왜 더 행복한지 조금씩 맛보고 있어.

오해는 하지 마, 무성애자라고 곧 순수하다는 얘기는 아니니까. 대신에 100% 남자도 없고, 100% 유성애자-혹은 100%무성애자-도 없지만 그 중간적인 존재로도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 그것도 신앙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