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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현대/가상] 그날 이후.

런던사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8.25 01: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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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하품이 났다. 황색과 갈색을 아무렇게나 섞어 흩뿌려 놓은 빛깔의 황야와 민둥산의 파노라마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 삭막한 풍경에 가만히 시선을 던지고 있자니 최면에 걸리듯 무감각 속으로 의식이 침전한다. 차창 밖 쓸쓸한 풍경을 멍하니 보고 있자면 드는 이런저런 상념이 정리되는 그 느낌이 나는 좋았다. 그 차가움에, 몽롱한 감각에 취한 채 나는 종종 지금처럼 맞은편 차창 너머를 눈으로 좇곤 했다. 물론 지금처럼 의무적으로 깨어있어야 하는 불침번 때가 아니라면 차 안 좌석에 낑겨 궁상맞은 폼으로 졸고 있는 다른 분대원들과 같은 폼으로 조느라 바빴지만 말이다.


  차가 또 도로 구덩이 어딘가를 넘는지 한번 크게 요동친다. 그 바람에 뒤통수를 차량 좌석에 세게 부딪힌 최 상병이 ‘에이 씨팔’하고 꿍얼거리더니 이내 부스럭부스럭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 잠을 청한다. 도로관리가 제대로 안돼서일까 아니면 전쟁 때문일까, 아니면 그 모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격하는 도로 노상에는 여기저기 구덩이가 많았다. 그런 구덩이를 지날 때면 차가 크게 요동치곤 했는데, 이놈의 지뢰방호차량이란 놈은 높은 차고 탓에 무게중심이 높아 요동침이 더욱 격렬했다. 차 안에서 방탄을 벗고 있다가 봉변을 당해보지 않은 분대원이 없을 정도였다. 


  그 요동침이 어찌나 심한지 심지어 한번은 험지를 넘을때 포탑에 올라가 있던 포탑 사수 이 상병이 갑자기 차 안으로 쓰러져 내린 일이 있었다. 다들 ‘뭐야’ 하고 그를 보니 그가 코피를 줄줄 흘리며 의식을 잃은 꼴이기에 처음에는 그가 총에 맞은 줄 알고 나를 포함한 온 분대원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기겁을 했더랬다. 하지만 실상은 어처구니없게도 하도 차가 요동치는 바람에 균형을 잃은 그가 포방패에 코를 거하게 찧고 기절한 것뿐이었다. 진상을 깨닫고 나선 다들 얼마나 헛웃음을 지었는지 모른다. 덕분에 당분간 코에 깁스를 차고 다닌 그의 별명은 ‘코를 박고 죽었다’고 ‘코박죽’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여러모로 불편한 구석이 많은 차였지만 그래도 별로 불평할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이 차 덕분에 지금까지 겪은 세 번의 급조폭발물 - 미군 애들을 따라 IED라 부르는, 공격에서 모두 사지 멀쩡한 채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다만 그 세 번 중 한 번은 운전병이 피곤죽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대원들은 남아도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벌인 무의미한 토론 끝에 우리는 괜찮았으니 충분히 안전이란 단어의 사전적 적용 범위 내라고 합의를 보았더랬다.


  늦가을의 공기가 대지 위로 엉덩이를 뭉개고 앉아 그런 것일까, 어디에 시선을 두던 황량함만 뭍은 벌판을 하염없이 보고 있자니 자꾸 하품이 나왔다. 비좁은 차내에서의 답답함이란 일종의 관성이 있는 것이라 한번 불편함을 인지하고 나니 점점 더 견딜 수 없이 갑갑해왔다. 결국 찌뿌둥한 몸이 참기 힘들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살짝 몸을 구부려 포탑 위에 올라선 이 상병의 다리를 탁탁 쳤다. 그의 다리가 움찔하더니만 그가 포탑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심까!”


  마스크나 귀도리 따위의 월동장비로 얼굴을 꽁꽁 싸맨 탓에 그의 목소리가 한 꺼풀 허물 너머로 말하듯 먹먹히 들려왔다. 얼굴을 어찌나 잘 동여맸는지 스포츠 고글 너머로 째진 외꺼풀의 눈이나 간신히 알아볼 정도였다. 그 모습이 어쩐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퍽 불쌍했다.


 “야, 이혁태! 좀 쉬어. 오늘 아침에 출발하고서부터 쭉 포탑 쥐고 있었잖아. 내가 잠깐 교대할게.”


  바람소리에 목소리가 묻혀 잘 들리지 않는지 눈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내 쪽으로 더 숙이던 그였지만 용케 ‘교대’라는 단어와 그를 의미하는 내 손짓은 귀신같이 알아들은 모양이다. 희희낙락해서는 잽싸게 포탑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말이다. 되묻지도 않고는 “역시 부분대장님은 된 사람 아니십니까. 후임사랑 나라사랑, 최고최고.”하고 아부성 멘트를 뱉어내는 그를 보며 피식 웃고는 나는 포탑에 올라갈 채비를 했다. 마스크를 올리고 팔뚝에 걸어둔 귀도리를 착용하고 포탑위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차디찬 북녘의 늦가을 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려왔다. 포방패가 찬바람을 한 번 막아줌에도 뼛속까지 사무치는 그 한기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 한기에 ‘아차’ 싶어 건빵주머니에서 전투장갑을 꺼내 이미 요술 장갑을 낀 손 위로 장갑을 덧끼고 헬멧에서 고글을 내렸다. 그제야 괜히 객기를 부렸나 하는 후회가 좀 밀려왔다. 차 안도 이미 충분히 쌀쌀했는데 말이다.


 “어쩔 수 없지.”하고 입맛을 다시며 주변을 둘러보자니 도로 선상 저 멀리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제외하면 온 사방은 여전히 그저 황량한 허허벌판의 연속뿐이었다.


  황량함. 그것이 나에게 다가오는 북한의 풍경이었다.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참 정 안가는 동네였다. 2달에 걸친 전쟁이 끝나가는 이 마당에는 더더욱. 크게 한숨을 한 번 내쉰 나는 100m쯤 앞서 가는 소대 선두차량을 눈길로 좇았다.


  완만한 커브길로 진입하는 선두차량의 뒤꽁무니만을 하염없이 보고 있던 때였다. 어째서일까 기묘한 느낌이 척수를 훑었다. 종종 그런 순간이 있었다. 육감으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기묘한 감각이 드는 순간이. 찰나의 순간, 시간이 잠시 멎고 온 세상의 소리가 일순 숨을 죽이는 것만 같은 그런 소름끼치도록 기분 나쁜 감각이 말이다. IED가 폭발하기 직전에 그랬다. 바로 지금처럼. 몸은 의식보다 먼저 반응했다. 까닭 없이 목덜미와 팔뚝에 닭살이 솟아오르는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정적을 찢으며 몸을 움츠리게 하는 굉음과 함께 선두차량의 운전부가 폭발했다. 무겁기도 무겁지만 이런 종류의 공격에 내성이 있는 지뢰방호차량이 공중에 한번 크게 들린 뒤 옆으로 넘어질 정도였으니 어지간히도 큰 폭발이었다. 좆됐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기관총에 쇄골을 받을 뻔했다. 간신히 몸을 틀어 쇄골을 박살내는 일은 모면했으나 포방패를 왼어깨로 부서져라 들이받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뒤따라오던 중대 대열 전체가 마찬가지로 급정거하고, 폭음과 폭발의 순간은 간데없이 걸레짝마냥 반쯤 분해되어 검은 연기를 내뿜는 차량 한 대만이 남았다. 병풍으로 깔린 황색 민둥산의 살풍경함에 그 모습이 더욱 처연하다. 포탑 아래 운전석에서 무어라고 무전을 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씨발놈의 IED.”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고글을 슥 올리고 포탑에서 내려오니 차안은 이미 하차하는 인원들의 움직임에 도떼기시장 저리가라 할 정도로 어수선하다. 이 상병은 포탑에서 어깨를 움켜쥐고 내려오는 나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더니 포탑 위로 올라섰다. 분대원들 중 마지막 순서로 하차 도어를 나서는데 하차 도어 옆에 분대원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던 분대장 신 병장이 나를 붙잡았다. 나와 동기인 그는 나보다 전입일이 2주 이른 탓에 분대의 최선임자였다. 다크서클이 완연한 그의 눈에는 피곤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소대장님이 우리 분대가 먼저 가서 생존자 확인하고 1차 조치하라신다. 우리가 가서 애들 끌어내면 의무반 애들이 와서 데려간다니까, 나는 우리조 애들 데리고 가볼테니 네가 부분대장 조 통제해서 엄호해줘.”

 “오냐.”


  몇 번이나 이골이 나도록 겪어본 일에 나는 자연스럽게 후임들에게 지시를 하달한 뒤 차량 좌전방의 움푹 팬 작은 도랑을 골라 자리 잡았다. 아까 폭발의 규모로 미루어보건데 아마 무식하게 152mm 포탄을 폭발물로 써먹은 것이리라. 운이 좋아도 태반은 죽었을 것이 분명해보였다. 


  나머지 반은 죽어가고 있는 중일 테고. 


  잔류한 나의 부분대장조가 자리를 잡고 사주경계를 하는 사이 신 병장과 그 일행은 자세를 낮추고 재빨리 선두차량에 접근했다.


  차량에 도착한 신 병장이 차 뒷문을 엶과 동시에 차 안에서 검은색의 연기와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함께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는 어느 샌가 우리 차량에 다가와 엄폐한 채 대기하고 있던 의무반원들이 들것과 함께 약진해 나아갔다. 중대장은 아마 후송 무전을 치고 있으리라.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것이 마음이 초조하게 했다. 급조폭발물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급조’된 폭발물이었다. 결코 고상한 물건이 아닌 급조폭발물을 이용한 공격은 매설자들이 관측하고 있다가 직접 원격 수단을 통해 폭파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북쪽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공격 받는 빈도가 늘어났다. 지겨웠다. 그렇게나 많이 죽여대며 올라왔는데 아직까지도 저렇게나 많이 살아있다는게. 최근 몇 주간을 생각해보면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지금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급조폭발물을 설치하고 폭파한 놈들은 근처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직감에 뒷목이 뻐근해져왔다. 의심 가는 지점 몇 곳을 주시하며 신 병장과 의무반이 부상병을 두어 명 끌어내는 모습을 곁눈질하고 있을 때였다.


  신 병장 옆에서 전방을 주시하던 임 이병의 목이 터지다시피 반쯤 찢겨나감과 ‘텅!’ 하는 둔중한 총성이 귓전을 때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몇 발자국 뒷걸음질 치며 비틀거리던 임 이병은 이내 균형을 잃고 쓰러져 고꾸라졌다. 보충병으로 그가 전입해온 것이 2주전이었다. 몸이 얼어붙는 것도 한순간, 몸은 의식보다 빠르게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격수! 전원...!”


  미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상병 하나를 등에 메치고 달려오던 신 병장이 목을 째는 단말마를 내지르며 부상병과 함께 도로 위를 나뒹굴었다. 그의 장딴지가 찢겨나가며 피가 흩뿌려진다.


 “이런 ㅆ...”


  신 병장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뒹구는 꼴을 목도하던 순간, 어처구니없게도 내 머릿속엔 응당 떠올라야하는 ‘구해야한다’거나 ‘큰일 났다’ 따위의 생각 대신 ‘재수 지지리도 없는 날이네.’하는 생각이 머리를 메웠다. 지난 2개월간 꾸준히 크고 작은 사상자가 발생해온 우리 분대에서 신 병장은 총알 파편 한번 스치지 않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내였다. 방금 전까지는.


 “아오, 몰라.”


  나는 신 병장을 향해 달렸다. 저격수가 이것을 노리는 것임을 알면서도 나는 제발 오늘 내 운수가 내 생애 최고로 좋은 날이기를, 혹은 저격수의 운수가 지지리도 안 좋은 날이기를 빌며 몸을 최대한 낮춘 채 달렸다. 오늘따라 유달리 무겁게 느껴지는 방탄복과 총의 무게에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 했지만 나는 신 병장에게 무사히 도착해냈다. ‘끄으으’ 신음하는 신 병장의 목덜미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부상병의 목덜미를 그러쥐는 순간 발치에 ‘팍!’하고 깨지는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인다. 곧바로 나는 사력을 다해 신 병장과 부상병을 도로 옆으로 질질 끌어냈다. 발광하듯 비명을 지르는 신 병장과 축 늘어진 부상병을 도랑으로 밀어 넣고 따라 몸을 숨겼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신 병장을 보니 고통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그는 장딴지를 붙잡고 있었다.


 “야 이 또라이 같은 새끼야, 좀 살살하면 어디 덧나냐?!”

 “아 미안.”


  신 병장이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끅끅 웃으며 지혈대를 꺼낸다. 그 모습에 멀쩡하구나 싶어 그가 메치고 오던 부상병을 살펴보니 옆 분대 부분대장 박 상병이었다. 그는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간헐적으로 경련하는 꼴이 누가 봐도 당장 후송해야할 모습이었다.


  살짝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니 신 병장과 함께 갔던 오 일병 또한 이제는 부상병이 되어 도로에 고개를 처박고 널브러져 있었다. 오 일병이 선두차량에서 끌어낸 옆 분대 김 일병도 마찬가지의 모습이었다. 거리를 가늠해보니 아까 신 병장을 끌어온 지점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보였다. 혈관을 타고 달음질치는 아드레날린에 한 번 해낸 것, 두 번은 못하겠냐는 객기어린 생각이 고개를 든다. 숨을 한 번 훅 하고 크게 내뱉어 자신을 다잡은 나는 ‘다녀올게’ 하며 도랑에서 뛰쳐나갔다. 응사하는 K-6기관총의 요란한 총성 속에서도 총탄이 공기를 찢으며 내는 깨끗하고 섬뜩한 파공음이 선명히 귓전을 스친다. 몇 센티미터 옆에서 죽음이 지나친다. 이를 악물었다. 오 일병의 곁에 미끄러지듯 넘어진 나는 곧장 오 일병과 그 옆에 쓰러진 김 일병을 뒤집었다. 그리고 신음하는 둘의 목덜미를 그러쥔 채 떨어져나갈 것만 같은 팔에 억지로 힘을 주어 끌기 시작했다. 그들이 끌려오는 도로 위로 붓자국 같이 핏자국이 남는다. 도랑에 거의 다다르자 신 병장이 도랑 밖으로 몸을 내밀어 오 일병의 견장을 낚아챘다. 오 일병을 신병장에게 맡기고 나는 김 일병을 도랑 안으로 던지듯 밀어 넣었다. 그에 이어 도랑 안으로 몸을 숨기는 순간 수통에서 ‘깡!’ 하는 강렬한 금속성의 파열음이 울려 퍼진다. 경기를 하며 도랑 안으로 몸을 던지고 다급히 수통을 꺼내보니 구멍이 난 수통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엉덩이가 축축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 병장은 슬그머니 엄지를 추켜올렸다.


  저격수의 추정 위치로 응사하는 50구경 기관총의 둔중하면서도 경쾌한 발포음이 차량 행렬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다시 한 번 살짝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지금이 기회 같았다. 판단을 마친 나는 온갖 욕설과 함께 목이 터져라 ‘나 원래 저번 주 전역인데!’ 따위의 비명을 꽥꽥거리는 신 병장을 들쳐 메고 뒤뚱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양 어깨 위로 둘러멘 체대 출신 사내의 거구에 휘청거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대여섯 발자국 정도 나아갔을 때였다. 트럭에 받힌 것만 같은 충격감과 전신을 헤집는 쇼크, 50구경의 총성 사이에서도 확연히 구별되는 총성이 나를 덮친 것은 거의 동시였다. 다음 순간 어둠이 찾아왔다.


* * *


 몽롱한 감각 속에서 나는 꿈을 꾸었다. 유학생활 때 자주 걷던 이국의 거리에 서있었다. 기억이 닳아 흐려질 정도의 옛날을 추억하는 것만 같은 아련하고도 빛바랜 느낌. 꿈의 감각이란 본디 추상적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으로 좇으려 하면 할수록 꿈은 비웃듯 선명함에서 멀어져간다. 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일이 그래서 어려운 것 아닐까. 항상 쓰고 있는 논리적이고 이성적 사고회로 대신 삐걱거리고 녹슨 추상적 사고회로를 머리에게 강요하는 꼴이니. 굳이 애써 머리를 쥐어짜보자면 나는 침침한 과거의 잔상을 안간힘을 다해 더듬고 있었다. 무채빛 살풍경한 색채와 완벽한 무음 - 그 조합의 비현실적 단절감. 나는 내 자신이되 내 자신이 아니요, 타인의 시점으로 나를 객체화하여 바라보면서도 그와 연결된 하나이자 둘인 존재였다. 기묘하게도 메슥거리는 어지러운 기분이었다. 저것은 분명 불과 몇 년 전의 자신임에도 완벽히 자신을 흉내 내고 있는 타인을 보는 것만 같았다. 마치 도플갱어와 마주했을 때 이런 기분일까. 웃는 모습, 흑백의 세상에서 어지럽게 얼굴을 스치는 클럽의 백색 조명, 술에 취해 누군가에게 기댄 나의 모습, 멍하니 캠퍼스 교정 잔디에 앉아 회색빛 햇볕을 쬐는 한가한 모습, 사랑을 나누는 순간의 단편, 그 스치는 씬(scene)들의 견딜 수 없는 이질감. 지나쳐간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철저한 관찰자로써의 내가 느낀 감정은 무어라 할까, 나를 똑 닮은 생면부지의 타인의 보는 때의 응당 당연한 경계심, 호기심, 그리고 묘한 혐오감이었다.


 공기 중 어딘가 비릿한 피비린내가 감도는 야전병원의 병상 위에서 나는 깨어났다. 문간 옆의 병상이었다. 머리가 깨어지듯 쑤셨다. 사방을 둘러보니 꽤 널찍한 병실이었다. 병상과 부상병들이 그득히 들어찬. 내려다본 왼다리에는 핏자국 난 붕대가 감겨있었다. 망연한 광경에 가슴이 내려앉아 옆자리 부상병에게 말을 거려는 순간 간호부사관이 나타났다. 끝없이 밀려드는 부상병들을 상대하느라 일까 초췌해 보이는 그녀는 어딘가 신경질적인 말투였다. 투박한 손길로 다리의 붕대와 드레싱을 갈아주며 그녀가 설명하길, 총알이 왼쪽 허벅지 바깥에 맞았고 그 때문에 넘어지며 뇌진탕이 생겼더랬다.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후유증은 없겠는가 물으니 그녀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는 신경질적인 면박을 남기고 황망히 자리를 떴다. 그녀가 떠난 병실 문간 밖으로는 앞이 안 보인다며 패닉에 빠져 기괴한 비명을 질러대며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중위 하나가 병상에 실려 지나쳤다. 오른쪽 몸 절반이 너덜너덜해진 그가 지나간 저리에는 고기 타는 것 같은 역한 냄새가 남아, 그날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나중에 어깨에 총을 맞고 후송 온 옆 소대 후임 김 상병에게 듣기를 신 병장은 공간이 모자란 후송헬기의 자리를 다른 부상병들에게 양보했더랬다. 그 바람에 차량으로 후송되었지만 후송 중 습격을 당하는 바람에 후송이 지체되었고, 결국 무릎 밑으로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고 들었다고 김 상병은 말했다. 육상을 하던 애가 다리를 절단하다니. 그 이야기에 마음 한 구석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대에 있을 적엔 매일 같이 일과 뒤에 3km를 더 뛸 정도로 뛰는 것을 좋아하던 그였다. 피격당한 차량에서는 애초부터 여덟 명 중 두 명만 살아 있었고, 그 둘을 구한답시고 셋이 죽었다. 분대장조의 임 이병, 하 일병, 그리고 내가 이끄는 부분대장조의 이 상병이었다. 차에서 내릴 때 마지막으로 본, 고개를 까딱이던 그의 얼굴이 생각나 입맛이 썼다. 며칠 뒤 지뢰를 밟아 왼쪽 발목과 왼손가락 두 개 없이 후송 온 옆 소대 동기가 일러주길, 저격수의 시체는 결국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얼마 안 있어 허벅다리의 염증이 악화되었다. 미처 끄집어내지 못한 미세한 총알 파편이 일으킨 감염 때문이었다. 그 까닭에 나는 야전병원이 있는 평안남도 안주시에서 국군수도병원으로 수송기 편에 이송되었다. 신의주로 향하는 차량행렬에 실려 있던 나는 불과 2주 만에 수백 킬로미터 남쪽, 성남에 있었다. 올라가는 데는 2달이 걸렸는데, 내려오는 데엔 1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훨씬 덜 신경질적인 간호장교들과 간호부사관들, 훨씬 쾌적한 환경, 환자들에게 인간적 연민을 쏟는 군의관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한달음에 달려오신 부모님들에게 둘러 쌓여있으면서 나는 기괴하게도 편안하지 못했다. 몸은 분명히 편안했는데, 오히려 마음은 외계행성에 내팽개쳐지기라도 한 듯 거북하고 기분 나쁘기 짝이 없었다. 특히 병상에 누우면 보이는 그 지독히도 깨끗한 크림색 천장이 나를 까닭 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병원에서 종전을 맞았다.


  전쟁이 끝났다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나는 실감하지 못했다. 아니, 거기서 눈을 돌렸다는 편이 오히려 더 적절한 표현일까.

  종전 두 달 후, 나는 외계와 다름없는 사회로, 세상으로 내던져졌다.


* * * 


  국군 병원 로비에 비치된 대형 TV 화면이 띄워주던 금수산 태양궁전 앞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승전 기념 열병식을 지켜보며 내가 무엇을 생각했는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역사적 분수령에 서서, 도달에 일조한 하나의 개인으로써 응당 느껴져야 할 벅참이나 영광스러움 따위는 없었다. 그저 마취된 듯 감각 없이 멍하니 서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던가 하고 회고한다.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에게 나의 상황을 묘사한 지문을 주고 화자의 감정을 추론해보라고 주문했다면 짐짓 서사적인 투로 승리에 대한 환희, 혹은 분노, 허무감, 미래에 대한 공포, 이따위 감정들을 짐작하지 않았을까.


  웃기는 이야기지만, 나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어쩌면 나는 종전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거기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일 자체를 거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종전에 대해 무언가 느껴버리게 된다면, 거기에 감상을 남길 수 있게 된다면, 종전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게 되어버리는 것일 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외계와 같은, 도무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지는 꼴이 되어버릴 테니까. 아마 의식 깊은 곳의 나는 그것이 무서웠던 것이리라.

 

  성남으로 후송되어 생활한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면회 온 부모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어딘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지냈다. 사실 부모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몇 번쯤 상담한 정신과 군의관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얼굴로 차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덤덤히 휘갈겨 썼다. 안정제니 수면보조제니 하는 약들을 잔뜩 처방 받은 덕에 까닭모를 불면증에서는 해방될 수 있었지만 이따금 덮쳐오는 끔찍한 두통은 아무리 약을 먹어도 약간의 진통 효과만이 있을 뿐, 도무지 나아질 기색이 없었다. 안정제를 과복용 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한번 시도했다가 강제로 위세척을 당한 이후로는 방법이 없었다.


  넋을 놓고 지낸다고 한들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하루하루 복제된 시간이 흘러가다보니 약식이지만 사진병을 대동하고 부대에서 파견 나온 처음 보는 정훈장교에게 인헌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국가보훈처에서 보내온 참전용사증과 상이기장, 배지도 받았다. 그리고 퇴원 하루 전, 21개월이어야 했을 테지만 입원기간까지 포함하여 총 22개월하고도 보름의 복무를 마친 예비역 하사로서의 전역증을 받았다. 진급은 훈장 수훈에 대한 포상이었다. 축하도 무엇도 없는, 지극히 사무적이고 무미건조한 전역이었다.


 전역증을 받은 그날 밤, 악몽을 꿨다.


  아드레날린에 찌든 심장이 고막에 와서 붙은 듯 쿵쿵 날뛰며 박동한다. 날카로운 하이 피치의 이명과 북소리 같은 심장소리, 폐부 가득 허겁지겁 들이마시고 내뱉는 거친 숨소리만이 귓전에 가득하다. 머리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아프게 울려대고, 입 안의 텁텁한 이물감에 켁켁 토해내듯 침을 뱉으려하니 입에서 시멘트 조각들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손을 더듬어 총을 집으니 이상하리만치 안도감이 몰려왔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몇 번이나 넘어지면서도 억지로 소총에 의지해 나는 일어섰다. 어디선가 돼지고기 태우는 것 같은 역한 살 타는 냄새가 났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먼지 자욱한 시야 속에서 검붉은 피가, 시멘트 가루가 스며 지저분해진 피가 스멀스멀 어디선가 퍼져 나와 전투화를 적신다. 피가 스며오는 방향으로 걷는다. 걸음걸음마다 핏물이 찰박이는 소리가 송곳으로 귓속을 쑤시듯 끔찍하게 파고든다. 거기에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 부들거리며 발작하는 후임병 임 상병이 있었다. 그에게 다가서니 그가 피범벅이 된 손으로 내 팔뚝을 꽉 잡았다. 꺽꺽이며 무어라 말을 하려 안간힘을 쓰는 그의 입에서 왈칵 터져 나온 피가 내 얼굴을 적셨다. 이내 나를 붙든 그의 팔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먼지가 조금 걷혔다. 창가에 기댄 오 일병은 삐져나온 창자를 배에 쑤셔 넣으려 하며 ‘엄마, 엄마’ 하고 통곡하고 있다. 폭발을 가장 정면에서 받아낸 하 일병은 전투화와 그 속에 담긴 발만 덩그러니 남아 자신이 이곳에 서있었음을 주장할 뿐, 나머지는 육편이 되어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 알동기 민준이가 보였다.


 민준이의 오른팔 팔꿈치 아래로 있어야 할 팔이 없었다. 기침을 할 때마다 그의 입에서는 피거품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목을 누르고 있는 그의 왼손 손가락 사이로 피가 울컥울컥 스며 나와, 그가 호흡을 할 때마다 씨근거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의 앞에 꿇어앉아 붕대를 꺼내려고 하는데 벌벌 떨리는 손에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 텅빈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가 눈을 감았다. 그의 감은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나의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그가 감은 눈을 다시 뜨는 일은 없었다.


 IED를 폭파시키고는 충격에 빠져 멍하니 서있던 소년병을 폭탄이 터진 그 건물에서 잡았다. “잘못했습네다, 제발 살려주시라요, 살려주시라요.” 흐느끼던 열다여섯 된 그 소년을 나는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 찌를 때마다 새된 비명을 지르는 소년을, 나는 끈적이는 피에 손이 완전히 절여지도록 반복해서 찔렀다. 소년의 꿈틀거림이 비로소 멈췄을 때 마주한 소년의 눈동자 속에는 기괴한 모습의 내가 있었다.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피투성이의 내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깬 내가 화장실 거울 속에서 마주한 나는 꿈속 소년의 눈동자 속 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세면대에 그날 저녁식사를 모두 게워냈다.


 그날만큼은 진정제와 수면제를 정량보다 배로 먹고도 다시 잠에 들 수 없었다.


* * *


  퇴원하는 날 나를 데리러 오신 아버지의 차 뒷좌석에 앉아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서울은 참 낯설었다. 곧 크리스마스라며 도시 여기저기 걸린 형형색색의 조명들과 장식들. 거리 여기저기 보이는 밝은 표정의 사람들. 여기저기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캐럴 송과 도로에 가득 찬 차량들.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의 북한과는 많이 다른, 정말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서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전쟁 같은 것은 먼 나라 이야기인 듯 평화롭고 북적였다. 내 지난 모든 것들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아버지는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별 말이 없으셨다. 할 말씀이 없으시다기 보다는 어떻게 운을 떼셔야 할지 망설이시는 것 같았다. 룸미러를 통해 아버지의 시선이 계속해서 느껴졌으니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것은 마찬가지라 나는 그저 모른 척 가만히 차창 밖을 바라봤다. 성남 국군수도 병원에서 집까지 도착하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전쟁 터지기 직전 휴가 때 집에 왔었으니 근 5개월 만에 오는 집인데, 마치 5년 만에 온 것처럼 낯설기 그지없었다. 차 문을 닫고 멍하니 그저 아파트 입구를 바라보기만 하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내 등을 한 번 두드리시며 그저 “어서 와라 아들. 들어가자” 하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무언가 망설이듯 입술을 깨무시던 아버지께서 마침내 입을 여셨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네가 집에 오니 좋구나.”

 “예.”

 “당분간은 아무 걱정 말고 푹 쉬어도 되니 푹 쉬고, 그 다음 일은 네가 좀 마음이 가라앉으면 이야기해보자.”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집 현관문이 보였다. 우리 집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반갑다기보다는 무섭다는 느낌이 불현 듯 덮쳐왔다. 이상스럽게도 그 낯익음이란 감정이 무섭게 낯설었다.


 “네가 온다는 말에 네 엄마가 아침부터 일어나서 너 좋아하는 돼지고기 구울 준비를 하더구나. 네 할아버지도 와계신다. 배고플 텐데 어서 들어가 먹자.”


 아버지께서 현관문을 여셨다.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문틈 사이로 확 밀려나왔다. 발길이 우뚝 멈춘다. 어라, 내 총이 어디 갔지? 심장박동이 질주하고 머리끝까지 열이 솟구친다. 어디선가 포성이 들려온다. 군홧발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분대원들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내 총, 내 총 어디갔어. 군홧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온다. 공포스러웠다. 씨발 내 총, 내 총!


 나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나를 꼭 안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용사셨다. 나를 온 힘 가득 꼭 끌어안은 할아버지께서는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다 이해한다. 얘야, 다 이해해... 얼마나 힘들었겠누...” 달래듯 되뇌셨다. 나의 손을 꼭 잡은 아버지는 흐느끼며, 그저 “괜찮다. 괜찮아. 이젠 집이야. 이제는 다 괜찮다. 다 잘 될 거다.” 하고 속삭이실 뿐이었다. 그들의 품 안에 매달려 씩씩거리며 벌벌 떨던 나는,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마치 나뿐만이 아니라 아버지 당신에게도 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없이 서글픈 마음이 울컥 밀려와 그들을 껴안고 엉엉 울었다.


* * *


  그러니까 그것은 정말로 우연한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의례적으로 느껴지는 상담을 하고, 처방전을 받고, 원무과와 상이용사 보험 행정 처리에 관련해 가볍게 실랑이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원무과를 나오는데 병원 로비에서 신 병장과 마주쳤다.


  “어... 어...?”


  반년 만에 처음 신 병장을 본 나의 입에선 그런 얼빠진 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나를 발견한 그는 나의 모습에 놀라는 듯 흠칫 하더니, 곧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그의 말없는 미소 아래 발목께의 의족이 눈에 띄었다. 김 상병의 말을 현실로 마주하니 갈 곳 없는 죄책감이 가슴을 찔러왔다. 믿고 싶지 않았는데.


  신 병장은 내내 그렇게 닳도록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던 여자친구와 함께였다. 그가 그녀에게 옛날 부대원이라며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고 하니 그녀는 상냥한 어조로 차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며 나에게 꾸벅 목례를 하고는 멀어져갔다. 엉거주춤 나도 인사를 했다. 사진보다도 미인이었다. 사리원에 있을 때 신 병장이 편지와 함께 온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소대원들은 저런 고릴라에게 저런 착하고 예쁜 여자친구가 말이 되냐며 납치범, 도둑놈, 미녀와 야수라고 놀려댔었다. 문득 스치는 강렬한 향수에 기분이 묘했다. 그때가 그리운 것만 같았다.


  절뚝거리는 그와 함께 병원 밖으로 나온 우리 둘은 한적한 화단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속도 모르고 날씨가 참 좋았다. 해는 쨍쨍하고 구름 없이 날은 선선했다. 어디론가 드라이브라도 가고 싶어지는 기분 나쁘리만치 밝고 상쾌한 봄날이었다.


  담배를 꺼내 그에게 권하니 그가 꽤 놀란 기색이다.


 “원래 담배 안하지 않았냐?”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그가 힘 빠진 얼굴로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담배를 받았다. 담배를 한번 살펴보던 그는 ‘아니 프렌치 블랙이라니. 군바리 새끼도 아니고 이게 뭐냐 임마.’하고 낄낄거리며 핀잔을 줬다. 불만이면 내놓으라하니 익살스럽게 눈을 굴리며 모르는 척이다.


 “그 미쳐 돌아가던 북쪽에서도 안 피더니만 남쪽 넘어와서 담배를 피네. 거 그놈의 전쟁이 사람 여럿 버려 놓는구먼.”


  담배를 입에 가져가니 그가 불을 내밀었다. 까딱 목인사를 하고 한 모금 깊게 빨아 하늘을 향해 담배연기를 내뿜으니 마침 그 희뿌연 연기 사이로 육군 헬리콥터 하나가 낮게 날아갔다. 또 어떤 불운한 누구일까.


 “요즘은 뭐 어떻게 지내냐?”

 “뭐 별거 있겠어? 네 말마따나 맛간 사람마냥 지내지. 악몽 꾸고, 약기운 빌려 자고, 그냥 숨만 쉬고 산다. 다리 얘긴 김 상병한테 들었어. 미안해. 유감이야 정말.”

 “아, 김민철이? 됐다 임마. 네가 미안할게 뭐 있다고. 오히려 내가 미안하면 미안했지.”


  그가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다리는 고사하고 목숨 건사도 너 아니었음 못할 뻔했는데 뭐. 이제 좀 그래도 살만해져서 조만간 어떻게든 너한테 연락해보려 했는데... 페이스북도 비활성하고, 인스타도 비공개 걸고, 핸드폰 번호도 바뀌고, 어휴, 청승도 지랄이다 임마. 콱 뒈지기라도 한줄 알았잖아.”

 “아 미안. 반사회성격장애가 또 도져서.”


  일부로 너스레를 떠니 그가 ‘미친 새끼.’ 하고 실실 웃었다.


 “인연이란 게 있긴 있나봐. 이렇게 어쨌거나 만난걸 보면.”

 “그러게 말이다.”

 “김민철이 걔는 집에 잘 갔는가 몰라. 집이 어디랬더라. 충청도 어디였는데.”

 “아마 천안이었을걸.”

 “그래 맞다. 천안이었지. 나중에 한번 호두과자도 사먹을 겸 내려가 봐야겠네. 사회서도 독립기념관 간다고 휴가 주면 좋을 텐데.”


  자기가 던진 농담이 우스웠는지 그가 실없이 낄낄 웃었다. 그가 담배를 한 번 길게 빨아들인다. 어디선가 살랑 봄바람이 불어와 그가 한숨처럼 내뱉은 담배연기를 흩어버린다.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의 눈은 흩어진 파란 담배연기처럼 어딘가 착잡한 빛으로 텅 비어있다. 멍하니 시선을 옮겨 병원 주차장에 주차된 승용차 하나를 지켜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참 세상 일 돌아가는 꼴들이 좆같지 않냐?”


  그가 가래침을 퉤 뱉었다.


 “한 번도 아니고 70년 전에 한 번 해봤으니 이게 얼마나 좆같은 짓인지 다 알면서, 그걸 다 까먹고 또 빨갱이다 남반부 괴뢰 반동이다 똑같은 말 쓰는 놈들끼리 총질해대고, 드디어 이번엔 끝장이란 걸 봐서 민족의 숙원이라는 걸 이뤄놨더니만 너랑 나를 봐라. 그 주역들은 죄 몸이고 머리고 맛이 가서 돌아와 있네. 고귀한 희생이라고 정치인 새끼들이 씨불이던데, 지랄. 그러면 지들이 나가서 희생할 것이지. 내가 나가서 멸사봉공 고귀한 희생했다고 해도 너네 말고 씨발 누가 알아주는데?”

 “그래도 수당은 올랐더만.”


  멍하니 자조적으로 읊조리는 내 말에 그가 날 흘긋 보며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끼었다. 그러고는 어느 샌가 짧아진 담배를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다시 입에 문다.


 “그래, 그나마 수당은 쥐꼬리만큼 올랐더라.”

 “후회해?”


  그 질문에 그가 찡그린 듯 놀란 듯 아리송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너는 옛날부터 가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더라.”


  담뱃불이 필터까지 다 태우는 모습을 나는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담배를 끼워놓은 검지와 중지가 따끔거릴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담배를 멀리 튕겨버렸다. 한참을 말이 없던 그는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후회는 안하는 것 같아. 복잡한 감정이지만.”

 “다리가 그렇게 됐는데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을 했었어야 했겠지. 게다가 어쨌거나 나는 살아 돌아왔어. 당장 우리 분대를 거쳐 간 놈들 중에서도 여덟이나 그러지 못했는데. 씨발. 다섯은 보충병 애들이니 그렇다고 쳐도, 성렬이랑 혁태랑 훈이는 씨발.”


  혁태. 이혁태. 그 이름에 그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순간 뇌리를 스친다. 그 얼굴을 억지로 지워낸다. 그가 이야기를 잠깐 멈추고는 의족을 땅에 툭툭하며 굴렀다.


 “그리고 내가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조금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회라도 주는데 한 몫 했다고 생각하면 내가 그리 나쁜 사람 같지 않은 기분이라 조금 괜찮더라고.”

 

  그는 담배 한 대를 더 빼어 물었다. 


 “...다만 전쟁터에서 분대장 견장 달고 내가 너네들한테 충분히 좋은 분대장이었나 하는 생각은 가끔 해. 내가 더 지휘를 잘 했으면, 좀만 더 좋은 판단을 순간순간 했으면 좀 더 많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자책 마. 넌 네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했어.”

 

  그 소리에 그가 “자책 같은 거 안 한다, 임마.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는 소리야.” 하며 쓰게 웃고는 꽁초통에 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읊조리듯 낮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가 덧붙인 한 마디의 울림에는 그 음량에 비할 데 없이 큰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나는 씨발 옳은 대의를 위해 싸웠어.”


  그런 그를 보며 나는 “그래.” 하고 조용히 맞장구 칠 뿐이었다. 침묵이 조금은 어색해 내가 먼저 다시 말을 꺼냈다.


 “애들은... 애들 소식은 좀 알아? 알아볼 기회가 없었어서.”

 “태반이 아직도 북쪽에 있다. 나도 다리만 이 꼴이 아니었음 다시 돌아갈 텐데. 슬슬 결혼 준비도 해야하고... 나는 무리지. 마음만 같아서는 돌아가고 싶은데. 이러니까 나도 좀 미친놈 같냐?”

 “...뭐?”

 “아, 미안 말하는 게 늦었구나. 나 이번에 결혼해. 주소 알려다오. 정식으로 청첩장 보내줄게.”

 “아니 그거 말고, 애들이 아직도 북쪽에 있다고?”

 “어. 얘가 뭔 소리래? 눈이랑 귀도 멀어서 왔냐. 너 뉴스 안 보냐? 거기 인민군 잔당 놈들이 쉬지도 않고 계속 나와요 지금. 마약 카르텔화 되는 조짐이 있대나, 아무튼 아주 본격적이야. 갓 상병 짬이던 애들까진 거의 다 거기에 있어. 뒈지거나 어디 다리 한짝 날아가서 내려온 거 아니라면.”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날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는데 함경북도에서의 교전 뉴스가 나왔다. 그 이질적임을 견딜 수 없어 종전일 이래로 4개월이나 피하던 TV였다. 리포터가 격앙된 어조로 전하는 현장의 처참한 모습과 불타는 전술차량, 수송대의 모습.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니는 장병들과 들것에 실린 부상자들의 모자이크 된 모습이 차례로 화면에 나왔다. 뉴스는 곧 금융 소식으로 넘어갔지만, 나는 한참동안을 TV 앞에서 못박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어디선가 화약 냄새가 나는것만 같아서.


  미친 소리 같지만, 종전 뒤 처음으로 살아있음을,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 * *


  어머니는 펑펑 눈물을 쏟으셨고 아버지는 몇 년 전 끊으셨던 줄담배를 연신 피워대셨다. 하지만 두 분 다 나를 막지는 않으셨다. 그런 부모님 두 분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신 병장을 만난 뒤로 정확히 2주하고도 4일 뒤, 나는 현역 하사로써 자강도 희천시로 향하는 버스에 다시 군복을 입고 몸을 실었다. 버스에는 나 말고도 사람이 많았다. 희천시로 향하는 내내, 나는 뛰는 가슴에 제대로 잠에 들 수 없었다.


*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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