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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메이지 일본과 이순신, 그 애증의 역사

까다로프스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8.16 17: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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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정신교육, 특히 해군에서 정신교육을 받아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러일전쟁의 승장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나는 넬슨과는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순신에 비하면 하사관에 불과하다'라며, 충무공의 지략을 칭송하였다."


또, 1929년 해군소좌 출신 작가 가와타 이사오(川田功)는 그의 소설 <포탄을 뚫고서(砲弾を潜りて)>에서 주인공인 한 해군 병사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러일전쟁을 앞두고) 당연히 세계 제1의 해장인 조선의 이순신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인격, 그의 전술, 그의 발명, 그의 통솔능력, 그의 모계(謀計), 그의 용기, 하나라도 칭찬할 가치가 없는 것이 없다." (김준배 2018, 104에서 재인용)


이러한 이순신 고평가 담론은,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태동하여, 도고 헤이하치로의 우상화로 일본이 '새로운 넬슨'을 찾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1920년대 서양 일본사학자들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오늘날에는 한국에서 민족주의적 자부심을 환기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필자는 충무공의 군사적 위업과 그 의의에 대해 어떤 폄훼의 의도도 없으며, 오히려 보다 객관적인 연구를 통한 시의적절한 숭앙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음을 미리 밝힌다.).


그렇다면 왜 메이지 일본은 이순신을 영웅화하였는가? 이는 크게 두 가지 상이한 흐름이 종합된 결과로 볼 수 있다.



1. 민중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 근대국가를 만나다.


에도 막부를 거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타이코(태합), 풍공(豊公) 등으로 지칭되는 민중영웅으로 재창조되었다. 특히 1798년 히데요시 사망 200주년 기념이라는 거창한 마케팅 슬로건을 제시하며 발간된 <에혼타이코기((絵本太閤記)>는 1804년 작중에 묘사된 다이묘 후손들의 항의로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졌다가 1859년 다시 막부에 의해 출판이 허용될 정도로 (즉 50년이 지나도록 (아마도 암암리에) 유통되면서 재출간의 사회적 욕구가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큰 인기를 끌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타이코기> 류의 군담소설들은, 이순신을 단순히 적진의 명장 A 수준으로 묘사할 뿐, 캐릭터적으로 그를 가다듬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명량해전에서 기책으로 일본군을 무찌르거나 (이마저도 어떤 판본에서는, 명량해전의 승패 자체를 뒤바꾸어 일본군의 가공의 무장이 승리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명 수군의 진린을 구원하는 정도가 주된 창작 포인트다. 심지어 일본의 '승리'로 포장할 수도 있을 노량해전이나, 이순신의 백의종군과 같은 에피소드도 묘사되지 않는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변화하게 된다. 히데요시를 '동방의 나폴레옹'으로 포장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1888년 출간된 스기야마(杉山思海)의 <여섯 영웅과 여덟 장수(六雄八將論)>에는 이러한 언급이 있다.


"나폴레옹과 풍공(히데요시) 두 영웅의 실력은 거의 백중지세여서 겨룰 수 없다 (...) 알렉산더 이하 다섯 영웅에 풍공을 더하여 세계 6영웅으로 호칭해야 한다." (김준배 2017, 241 재인용)


이처럼 근대를 거치며 히데요시는 실제 역사에서도,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민중영웅적 성격을 지녔던 에도 막부 시기의 대중적 이미지를 벗어나, '완벽한 영웅', '세계사적 위인'으로 재포장 내지는 날조되었다 (김광옥 2007).


하지만 이와 같은 비교는,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히데요시 역시 정복전쟁에서 실패하고 말았다는 유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귀결은, '영웅' 나폴레옹의 유럽 제패라는 꿈이 또 다른 영웅 넬슨에 의해 무위로 돌아간 것처럼, '동양의 나폴레옹'에게도 '동양의 넬슨'이 있었다는, 즉 적 안에서 새롭게 영웅상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이순신 같은 위인이 없는 현재의 조선을 사정이 더 나은 일본이 지켜주어야 한다는 확장주의 논리로도 이어졌다.


예컨대 1891년 강경한 확장주의자 가와사키 시잔이 쓴 위인전 <일본백걸전(日本百傑傳)>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이순신, 정운(鄭運)이 수군을 지휘하여 (일본수군을) 한산도에서 대패시켰다. … (중략)… 옛날 나폴레옹 1세가 산을 뽑고 바다를 뒤짚어엎을 세력을 갖고도 영국을 무찌르는 것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넬슨의 해군에게 제압 당하였기 때문이다. 조선반도의 쇠약함과 영국의 부강함은, 날을 같이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동서의 영웅(나폴레옹과 히데요시)이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결과는 동일하다." (김준배 2017, 243. 재인용 및 일부 편집.)


2. 지정학과 해군력의 시대


19세기 말 장기공황이 끝나고 '새로운 제국주의(New Imperialism)'의 시대가 열리면서, 수익성과 무관하게 세력의 확장과 군비팽창을 주장하는 이익집단이 구미 국가들 내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독일 등에서 독립적으로 출범한 해군연대(Navy League)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대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러한 집단은 일시적인 민족주의/국수주의 광풍을 등에 업었을 때를 제외하면, 항상 군비 지출의 합리화, 지속적 군축 등을 주장하는 다른 세력을 이기기 위해 힘겹게 싸워야만 했다.


지정학이라는, 여전히 학술적으로 엄밀하다고 보기 어려운 '학문'이 등장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당대의 '석학'으로 칭송받으며, 본국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에서도 명성을 떨쳤던 알프레드 머핸(Alfred T. Mahan)이 1890년 제시한 '해군력(Sea power)' 개념은 그 시초로 볼 수 있다. 확장주의에 대한 완벽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고도 할 수 있는 머핸의 지정학 이론은 다음과 같은 얼개를 가지고 있다.


1. 바다를 통한 통상은 모든 국가의 생명줄과 같다.

2. 따라서 전쟁이 발발하면 이 생명줄을 노리기 위한 다툼, 즉 해군 간의 싸움이 전쟁 전체의 승패를 결정지을 것이다.

3. 해군력 경쟁에서의 승리는 전함의 톤수뿐 아니라, 유리한 해안선의 선점, 충분한 인구를 가진 식민지의 확보, 그리고 해군력 증대에 대한 사회와 정부의 태도 등이 중요한 변인으로 작용한다.


식민지 쟁탈과 건함경쟁에 소중한 재정을 투자하는 것이, 바로 그 재정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이 논리는 (다시 군 정신교육을 언급하자면 아직까지도) 엄청난 영향력을 보였다.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특히 '육주해종(陸主海從)'의 국방노선을 '해주육종(海主陸從)'으로 바꿈으로써 해군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내려던 해군의 주요 인물들은 이순신의 영웅화를 통해 해군력 이론에 지역적 색채를 가미하고, 이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였다.


대표적으로 메이지 덴노에게 직접 진상된 뒤 전국 중학교로 배포되었던 <제국해군사론(帝国海軍史論, 1898)>을 쓴 오가사와라 나가나리(小笠原 長生), <제국국방사론((帝国国防史論, 1907)>을 쓴 해군대학교 교관 사토 테츠타로(佐藤鉄太郎) 등이 있다 (두 사람 모두 훗날 전시총리까지 올라가는 스즈키 칸타로의 동기다.).


일례로 오가사와라의 글 중에 언급되는 이순신 이야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같은 것을 사실대로 씀(直筆)으로 그 진면목을 기술하는 것은 자못 불쾌한 감이 있으나, 만일 해상권력을 쥐는 것의 필요성을 말하길 원한다면, 먼저 우리의 실패한 사적(事蹟)을 들어 은감(殷鑑, 거울)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히데요시(秀吉)는 동양에 둘도 없는 영걸(英傑)로서 부하 장수도 모두 천군만마 중 뛰어난 인물들이다. (중략) (그러나 그들은) 평양에서 북진할 수 없었다. (중략) 이것은 우리 수군(水軍)의 여러 장수들이 해전 전술에 졸렬(拙劣)하여 순신 때문에 시종 해상권력을 장악당한 죄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다. (...) 어떠한 경우에도 어떠한 행동을 할 때도 우세한 해군력을 보유하지 않으면 안 됨은 만세불변의 원리로서 또한 성공의 기초이다" (김준배 2018, 94-96 재인용. 필자 강조)


오가사와라의 글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이순신 연구를 추가한 사토의 글 중 다음 대목은, 지금도 종종 인용되고는 한다.


"(본인은 현재 일본의) 제국 국방의 방침이 과연 국가가 어려울 때 이에 응할 방법인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이어 조선의 명장(名將) 이순신의 사적을 조사하여, 임진왜란 당시 (그가) 우리 수군을 격파한 것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인격과 위대한 공적은 격렬히 나의 정신을 일깨웠고, (나는) 공세적 국방의 의의(意義)에 관해 더욱 각성하는 바가 있었다.


이순신은 실로 세상을 뒤덮을(蓋世) 해군 장수로서, 불행히도 조선에서 살았기 때문에 용명(勇名)도 지명(智名)도 서양에 전해지지 않았으나, 불완전하지만 임진 왜란에 관한 전기를 보면 실로 훌륭한 해군 장수였다. 서양에 있어 이와 필적할 자를 찾는다면 확실히 네덜란드의 장수 드 로이터(Michiel de Ruyter) 이상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넬슨 같은 자는 인격에서 도저히 비견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실로 장갑함(裝甲艦)의 창조자로서, 3백년 이전에 이미 훌륭한 해군전술로 싸운 장수이다." (김준배 2018. 103 재인용. 필자 강조)


당시 일본 해군은 자국 방위 우선노선으로 육군에만 투자가 편중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1893년 해군참모본부 독립창설 시도가 육군의 반대로 좌절된 것에서 볼 수 있듯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청일전쟁에서 해군이 보인 성과 덕에 어느 정도는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해군이 육군에 비해 불리한 처지에 있던 것은 사실이었고, 따라서 해군은 머핸의 해군력 관련 저작을 번역하고 널리 퍼뜨리고자 했다.


이순신 영웅화를 통해 해군력 팽창의 정당화를 꾀하던 당시 일본 해군의 노력에 관해, 후대의 문필가 시바 료타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순신을 발견한 것은 메이지 일본해군이었다. (중략) 1904, 5년경의 일본 해군사관은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학교에서 배우고, 책으로 읽어서 잘 알고 있던 것이다." (김준배 2018 재인용)


그리고 1905년, 일본이 '일본의 넬슨' 도고 헤이하치로라는 영웅을 새로이 얻게 되면서 '조선의 넬슨'은 그 활용가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비록 군사(軍史)의 한 토막으로 자리를 지키기는 했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굳이 자국의 패배를 환기시키며까지 사용해야 할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군부 내 이순신 영웅화의 선두라 할 수 있는 오가사와라가 도고 헤이하치로 신성화의 거두 중 하나였음을 감안하면, 애초에 이들이 이순신의 위명을 등에 업으려 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가 조금 더 잘 드러난다 하겠다.



참고문헌


김광옥. 2007. "근대 일본의 豐臣秀吉·임진왜란에 대한 인식" <역사와 경계> 제64집.

김준배. 2018. "근대 일본 이순신-넬슨 비교담론의 등장과 변화: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고 헤이하치로 담론의 영향을 중심으로" <일본언어문화> 제 38집.

김준배. 2020. "19세기 에혼요미혼에 그려진 이순신" <일본문화연구> 제46집.

석영달. 2009. "이순신 해외 전파의 연결고리: 제임스 머독의 <일본의 역사>" <군사> 제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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