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갔다 오지 않은 자 말을 말라(2)에서 필제 머리에 벼루던지면서 한번 나왔던 이야기들인데

'빈 소매 처량히 흩날리며 돌아온 둘째 형도, 겨우겨우 모시고 내려온 어머니도 곁을 떠났을 무렵은 이미 전쟁 끄트머리. 소집영장이 아예 없었던 것인지 나왔더라도 제게 전달이 안 된 것인지는 몰라도 어쨋든 그저 따라오라 하니 따라간 군대였다.

다행히 최전방으로 가지는 않았다지만, 그 무렵 반토막난 삼천리 땅에 전방 아닌곳이 있었던가? 되놈들  없는곳에는 빨치산들, 빨치산 없는 곳에서는 추위와 굶주림이 적이었고 원수였다. 제 형과는 달리 사지는 (거의)멀쩡히 남아 후방으로 옮겨온 선임들은, 그 넋만은 전방에 두고 온 듯했다. 그뿐이랴. 전선 가깝지도 않은 그의 부대였지만 한때 전선이 여기까지 밀렸음을 방증하듯 곳곳에 수습되지 않고 널린 시체. 잊을만 하면 터져 무고한 사람을 원혼으로 만드는 지뢰.

그때는 그저 그게 삶이려니 생각하며,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서러움을 마음 속에 묻고 또 묻었다. 그러고서 살아온것이 이제 두 생을 합쳐 팔십 년 조금 안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서러움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쟁을 말하는 이 자 앞에서 마치 그 옛날 제 눈앞에서 우마차 한 대와 함께 터졌던 대전차지뢰처럼 터져 나왔다.'

라고 서술했었음.

전쟁이 자기의 부모형제를 다 잡아먹은 다음에야 그 전쟁이란것이 무엇인지 볼수 있었는데, 전방에서 싸우다가 후송와서 이제 사람으로서 살아갈수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넋나간 사람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그렇게 사람들을 집어삼키고도 만족하지 못했다는 양 근처에있는 사람들 또 한명씩 잡아먹는 지뢰와 빨치산들. 죽음에대한 공포와 삶을 포기하고 싶을정도로 지치게 만드는 그 끝없는 굶주림. 이걸 보고온 귀남옹이 전쟁을 잊을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네.

마음이 아직도 전쟁에 갇혀있는 사람이란게 어떤건지 알것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