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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치트받아 조선말에 왔지만 최선을 다하기 싫다-3

아르모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1.10 21:30:42
조회 268 추천 10 댓글 4
														

"부디 사랑이신 천주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땅을 파고 묻어버린 포졸들의 무덤 앞에서 하늘로 기도가 올라간다. 물론 내 기도가 아니다. 천주교도 부부가 외는 것이다. 포졸들에게 온 몸이 멍들게 몽둥이 찜질 당해며 끌려갈 뻔 했는데, 심지어 어린 딸이 두 눈 뜨고 강간당할뻔 했는데도. 이 사람들 얼마나 마음씨가 좋은 걸까 천하 제일 호구인 걸까. 가난한데다가 매까지 맞아서 걸래짝같은 옷소매를 털래털래 털면서 그들의 기도가 끝났다.

"내가 천주교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렇게 기도하면 쟤들 천국에 갑니까?"

"그거는... 우리도 모르는 거라. 신부님이 잘 아실텐데."

"우리는 신부님을 아직 한 번도 뵙지를 못했지요."

잠깐 머리가 띵해져서 이마를 잡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아니, 그... 내가 아무리 천주교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 신부라는 사람을 만나서 뭘 해야 세례받고 입교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요. 교우들끼리 만나서 천주학을 배우고, 기도를 배우고, 그런 식으로 하지요."

"우리도 신부님을 만나뵙고 세례받지 못해서 아쉽지만, 한 서른해 전에, 신유년에 주신부님이 순교하신 뒤로는 신부님이 더 없으니..."

"그러니까... 당신들은 신부하고는 한 번도 못 만났고, 다른 신자들하고 만나서 그 사람들 이야기만 듣고서 신자가 되었다?"

"바로 그렇습죠."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믿는 겁니까?"

내가 어이가 없어서 물어보는데,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빛은 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선비님, 그게 사실은..."

"실은?"

"우리가 배교를 두 번이나 해버렸지요. 그게 몇 년 전이더라...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을해년하고 정해년이요. 십오년 전인가 하고 삼년 전쯤에 감옥에 끌려가서 매를 너무 심하게 맞아버려서 그만..."

을해? 정해? 잘 모르겠다. 내가 조선역사와 천주교 교회사에 대해서 대충 대충 알고 있는 탓이다. 그러니 모르면 물어봐야지.

"내가 천주학 박해에 대해서 아는건 1801... 어흠, 신유년에 척사윤음으로, 아까 당신들이 말한 청나라 사람 주문모 신부가 죽고 남인 당파에서 여러 양반들이 죽었다는게 전부인데, 을해년하고 정해년에도 박해가 있었습니까?"

"있었지요. 선비님도 을해년 바로 전 해, 갑술년에 지독하게 가뭄하고 기근 든 거 기억하시죠? 그 때 사람들이 얼마나 죽어나갔는지"

아니, 전혀 모르는데... 그래도 아는 척 고개를 끄덕여보자.

"그 때 이미 우리 교우들은 산 속 깊은 곳에 숨어들어서 어떻게든 농사지으면서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요. 지주 양반에게 소작세도, 나라에 세금도 안 바치니까 어찌어찌 식량이 남았지요."

"그런데 포졸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식량을 다 털어가고, 우리도 관아에 다 잡아다가 매를 때리면서 배교하라고 해가지고..."

"매 앞에 장사 없다고 일단은 배교하고 살아나와서 더 깊은 산골로 숨어들어갔는데, 또 정해년에 우릴 찾아내서 다 털어내고 잡아갔어라."

"그러다 오늘 또 잡혔는데, 이제는 아이가 생겨버려서 더 이상 배교를 못해요."

아이? 소녀라면 지금 움막 안에서 마음을 편히 가지면서 쉬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걔가 소녀라도 나이가 세 살은 절대 아닌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쟤 나이가 최소로 잡아서 열 살은 되어 보이는데 삼년 전이라는 정해년에는 배교했고 이제는 못한다니."

"후우... 쟤가 우리 아이가 아닌지라."

"그 정해년에 우리가 배교하고 관청에서 나올때, 부모님을 잃고 울길래 챙긴 애입니다. 근데 쟤는 우리하고 마음씨가 달라서, 언제나 죽으면 죽었지 배교는 못 한다고 하고..."

"걔들 부모님이 참말로 독하게 믿던 분들이니까 닮은 게 확실한 거라. 소문을 듣자하니 그 분들은 포졸에게 마을을 신고하고 쌀 받아 챙긴 밀고자 놈이 무슨 죄를 지어서 같은 감옥에 갇히니까, 배고프지 않게 자기네 밥까지 다 몰아주고 대신 굶어죽었다고 들었어라."

"...뭐요?"

"배교를 안하면 어차피 망나니들에게 목이 잘려 죽는 목숨이고, 어차피 천주님 만나러 가는 길이니,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씀 그대로 다 용서했다는 거지요."

아니 시발. 도대체 저게 무슨 소리하는 거야. 세상에 어떤 멍청이가 자길 죽으라고 신고해서 감옥에 넣어버린 원수를 용서하고 먹여살려주냐. 모르겠다. 골이 띵할 정도로 머리가 아프고 이해가 안 되니 생각을 포기해야겠다.

"저어, 선비님?"

고생에 찌든 남녀의 목소리가 아니라,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서 보니까 움막에 있는 줄 알았던 소녀가 다가왔다. 손에 뭔가 따끈한 것이 들어있는 그릇을 들고서. 얘 많이 맞고 쓰러져서 치마 찢기고 강간까지 당할 뻔 했는데 괜찮은 건가.

"얘아, 아프면 너무 무리하지 말고 들어가서 쉬거라."

"저 이제 괜찮아요. 이거 선비님에게 드리려고요..."

애가 소중하게 두 손으로 꼬옥 잡아들고 온 질그릇에는 잡곡으로 만든 죽이 들어서 따뜻한 연기를 올리고 있다. 척 봐도 쌀은 전혀 없이 맛없을 죽. 하지만 이 가족에겐 너무나 소중한 한끼 식사일거다.

"아니, 이거는 네가 먹고 무럭무럭 자라야지."

"저 배불러요."

"너희 부모님... 에흠. 이 분들이라도 드셔야지. 포졸들이 안 돌아오면 관아에서 더 보낼테니 어서 깊이 들어가서 숨어야 하는데."

"선비님이야말로 이 일로 불똥튀기 전에 멀리 가셔야 하니 드셔야지요."

"구해주셨는데 이거라도 못 드리면 우린 은혜를 어찌합니까요."

"..."

거절할 말이 마땅치 않아서 가만히 있으니, 누더기 꼴의 소녀가 내 손에 질그릇을 떠넘긴다. 그래도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가만히 있으니 소녀가 뭔가 주섬주섬 더 꺼낸다.

"여기, 이거 뿌려드릴께요..."

조그맣고 새빨간 열매. 초여름 산에 자주 보이는 그것. 산딸기 서너 개가 죽 위에 올라갔다.

먹었다. 눈물이 갑자기 핑 돌았다. 너무 맵다. 고추가루 냄새가 하나도 안 나고 소금맛도 없지만 이렇게 매울 수가 없다. 불닭면을 맛볼 때도 이렇게 눈물이 나지는 않았는데, 왜 이렇게 매운 맛이 산딸기 넣은 잡곡 죽에서 나온단 말이냐.

악마여. 너는 굶어죽는 사람이 세상에 널린 이 가난한 시대에서 칼로리 0 콜라를 마음껏 마시라고 했고 나는 그걸 너무나 고맙게 여겼지. 그건 배고픈 가족에게 한 바가지 줘봤자 영양 상태 회복에 전혀 도움도 안 될 음료수일뿐인데. 그냥 콜라였다면 설탕 성분 덕분에 사람도 살릴 생명수가 되었을텐데. 너의 센스는 진짜로 악마로 불릴 자격이 있다.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아대면서 세상에서 제일 매운 잡곡죽을 다 먹으니 겨우 머리회전이 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결심했다.

"자, 이리 좀 와 봐요. 내가 의과에는 합격을 못했지만, 그래도 내 손이 약손이라는 평은 몇 번 들어봤으니 몽둥이 맞고 아픈 곳을 좀 만져드리겠습니다... 너부터."

"네? 예에... 앗. 으응."

있는지 없는지 모를 신에 맹세코 나는 로리콘도 페도새끼도 아니다. 다만 아이가 피멍들게 맞은 상처 위에 내 손이 올라간 탓에 소녀 입에서 어쩔 수 없는 소리가 났을 뿐이다. 참고로 약손이라는 평은 어린시절 아빠 엄마에게 들어봤으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악마가 말한대로, 치유하는 힘이 생겨서 정말로 약손이 되어버렸으니 정말로 거짓말이 아니다.

"아이고, 아하이고!? 다리에, 팔에 멍이 어디로 가버렸어야?"

"세상에, 내가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는데 쌩쌩하게..."

"자, 다들 괜찮아진 것 같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만, 한양이 여기서 어느 방향입니까."

"여기가 충청이니 한양이 북서쪽 저어기인데, 선비님은 도대체?"

"혹시 천사님이세요?"

눈이 똘망똘망하게 올려다보는 가족을 향해 내가 악마년하고 계약한 인간인데, 라고는 말해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진짜 천사나 지쟈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고 했다가, 만에 하나라도 신이 있으면 좋은 결말은 안 나겠지. 그렇다면 적당히 은유적인 의미라고 우길 수 있는 거짓말을 골라서 해버려야겠다.

"동방 박사의 후손의 제자"

내가 동방 박사에 속하는 페르시안 마-기의 후손의 제자일수도 있지 뭐. 나한테 이런 힘을 준 악마도 대제국의 수도에서 잘먹고 잘살았다고 하니까 페르시안 마기였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들은 동방박사가 등장하는 부분까지는 이야기를 못 들었는지 전혀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것 같다.

"??? 그게 뭐에요?"

"거기까지는 천주학을 안 배운 모양인데, 당신들이 포졸이 더 몰려오기 전에 잘 숨어들어서 10여년 정도 더 버틸 수 있고, 그래서 그 때쯤에 멀리 서역에서 온 신부하고 만나면 동방 박사에 대해 물어보면 좋을 겁니다."

"예? 신부님이 10년 안에는 오신다구요? 그걸 어찌..."

"선비님? 어디 가세요?"

"한양으로! 이렇게 착한 백성을 괴롭히는 못 된 임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러!"

더 이상 달라붙지 않게 냉큼 산 아래로 달려가면서, 나는 효명세자 고쳐주기 프로젝트의 기존 계획을 완전히 수정했다.

정석적인 소개와 신분 확보, 왕궁으로 들어가기 위한 연줄 따위 다 필요없다. 바로 궁성 궁궐로 들어간다. 두들겨 패서라도 참교육을 시켜주마.


===


뭔가 실수가 있어서 몇 분 전에 올린거 지우고 다시 올림


모든 고증 사항은 조사 제대로 안 했으니 지적시 네 말 맞을 거임 아마도


1.14 치트받아 조선말에 왔지만 최선을 다하기 싫다, 로 제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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