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일반]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 (내 글 아님)

Volksverraete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11 23:02:01
조회 824 추천 21 댓글 4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 -집안, 감투, 체면, 눈치, 파벌, 의리 그리고 집단이기주의

최재석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정치제도의 민주화나 정치집단의 근대화에는 관심을 쏟으면서도 정작 학교 및 직장생활의 민주화나, 모든 사회제도의 동력이자 기본 단위가 되는 가정생활의 민주화에 대해서는 거의 등한시하고 있다. 우리는 왜 민주주의의 기초훈련장이 되어야 할 가정을 전제와 예속, 이기와 배타의 단련장으로 만들어 놓았는가? 그러면서도 이 사회의 합리적ㆍ보편적 가치의 추구를 꿈꿀 수 있겠는가? 이에 이런 문제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라고 일컬어지는 최재석(崔在錫)의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이라는 글 중에서, 우리가 마음을 열고 한번쯤은 스스로를 성찰해 보아야 할 주요 대목을 발췌 정리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옮긴이 주

 

 

   * 이 글에서 ‘사회적 성격’이라 함은 반드시 민족성이나 국민성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민족의 하위 개념인 사회 내지 집단의 성격을 그 단위로 보고 접근하였으며, 또 모든 사회학적 탐구가 그렇듯이 여기 논구한 것도 변할 수 없는 정설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사회의 어떤 경향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글임을 밝힌다.

 

 

   가족주의와 가족적 인간관계의 사회적 확대

 

   우리 사회는 인간관계의 평가 단위를 개인에 두지 않고 집(家)에 두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다음 인용하는 말들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아무개라고 하지 않고 ‘아무개집 아들’ ‘아무개집 딸’ ‘아무개집 며느리’ ‘아무개집 손자’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여자를 호칭하는 말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친정 소재지를 차용한 ‘아랫마을댁’ ‘원동댁’ ‘평산댁’ 등의 택호(宅號)를 쓰고 있다. 또 결혼을 의미하는 말로 ‘시집간다’ ‘장가간다’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사회 구성의 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집(家)’이 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개인의 부도덕한 행위를 책망할 때도 그 당사자인 개인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저놈은 누구집 자식이냐?”고 함으로써 일차적인 문책의 대상을 집이나 그 집의 가장(家長)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집 위주의 사상’은 사회로 확대되어 사회의 모든 집단을 각기 하나의 집(家)으로 인식하게 한다. 즉, 한국인은 제집단의 인간관계를 평가함에 있어서 가족집단의 인간관계를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한집안 식구처럼 지냅시다’ ‘가족적인 분위기’ ‘한집같이 다정하게’ ‘한 지붕 세 가족’과 같은 표현 등에서 그러한 경향의 일단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적인 분위기의 강조는 어떤 친밀성을 전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수평적 관계보다는 오히려 엄격한 상하관계의 질서를 세우려는 쪽에 기여한다. ‘네 이놈 너는 에미 애비도 없냐?“와 같은 표현에는 가족적 인간관계의 질서를 강조함으로써 상위자가 하위자를 억압하는 논리적 정당성 확보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강력한 가부장적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어려서부터 이러한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란 한국인들은 어떤 조직에서도 그 집단의 최고 권위자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순종이 몸에 배어 있다. 그리고 윗사람들 또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자기를 섬기고 순종하며 기분 좋게 해주는 부하 직원을 가장 아끼고 착실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유교의 근간을 이루었던 충효(忠孝) 사상의 무비판적인 전승일 뿐이다. 우리의 사회적 관계는 갈수록 다양화되고 복잡해지고 있는데 반해 이를 규율하고 소통시키는 원리는 묵은 사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몸이 자라면 거기에 맞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낡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꼴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가정은 이렇게 집단이 요구하는 착실한 심복을 만드는 훈련장으로서 항렬, 연령, 성(性)의 기준에 따라 사회생활에 임하는 자세를 가르쳐왔다. 형제가 싸우면 무조건 동생을 나무라고, 오누이가 싸우면 누이를, 숙질이 싸우면 조카를 꾸짖는 비합리성을 쌓아온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정에서부터 평등한 입장에서 당당하게 경쟁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귀속적인 지위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방식을 훈련시킨 것이다. 그러니 직장의 장(長)이 어떤 의사표시를 하지 않더라도 부하 직원은 그 심중을 파악해야 하고, 그가 원하는 바를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에 대처할 방도 ── 흔히 말하는 아부를 포함해서 ──를 터득한 자가 출세가 빠르고 또 그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사회적 통념이 형성된 것이다. 'H그룹‘에서 자랑하는 ’막걸리 정신‘이라는 것도 결국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가족주의적 전통과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변형일 뿐이다. 경쟁의 룰이 오직 가족주의라는 잣대 하나로 통합됨으로써 사회적 불합리는 더욱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가족주의적인 질서는 농촌 사회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한국의 농촌이 아직도 황폐와 빈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자주적이고 의욕적인 집단이 농촌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하지 못한 측면을 반영한다고 한다면 지나친 판단일까? 기실, 농민을 위한 대표적 기관이라는 ‘농협(農協)’을 살펴보면 이미 자본 축적의 논리에 충실한 금융기관의 한계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분명 농협이라는 단체가 타율적으로 조직된 데서 오는 한계다. 진실로 자주적인 집단이 농촌 내부에서 태동하려면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가부장적ㆍ가족주의적인 의식구조를 농촌사회 스스로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감투 지향, 일류 지향의 사회

 

   우리 사회에서 ‘감투’ 또는 ‘한자리’ 라는 말이야말로 권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것이 되고 있다. 이것은 보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관리’가 되기를 바라는 ‘감투=양명(揚名)’이라는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관리가 되어야만 부(富)를 축적할 수 있고 지배계급이 될 수 있다는 조선사회의 전통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관료의 권위의식은 해방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사회 저변의 ‘심층무의식’을 형성한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감투’에 집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구구한 해설이 필요 없을 것이다. 가문 자랑은 족보 자랑에 들어가고, 족보 자랑은 결국 조상의 감투(벼슬) 자랑에 귀착한다. 감투 쓴 조상이 하나보다는 두 개, 두 개보다는 세 개, 그리고 작은 감투보다는 큰 감투가 많이 있을수록 양반 집안이다. 한번이라도 관직에 나간 적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현직을 퇴임한 후에도 계속 관직명으로 그 사람을 통칭하는 것이 감투 지향 사회의 단적인 예일 것이다. ‘김의원’ ‘박주사’ ‘이장관’ ‘신군수’ ‘최영감’ 등등의 호칭은 우리 사회 어디를 가더라도 들을 수 있는 말들이 아니던가.

   또 묘석이나 족보 등에는 반드시 관직명만큼은 빼놓지 않고 기재하는데, 오늘날에는 명문대를 나온 것도 감투로 인식하여 ‘S대학 졸업’이라는 족보 내용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상신(祖上神)의 상징인 신주(神主)에도 관직명만큼은 빼놓지 않고 기재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일례로, 아무리 가장의 권위가 높더라도 아들이 무슨 관직에 오르면 아버지가 오히려 아들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명함에 무수히 많은 감투명을 새겨 놓고는 득의만면해 하는 것이라든가, 심지어 상주명(喪主名)을 기재하면서 ‘미국유학중’이라는 부기를 다는 것도 감투가 갖는 권위의식의 반영이라고 할 것이다. 미국에 유학 중인 것도 감투인 셈이다.

   이러한 감투 의식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사람을 소개할 때는 그 사람 본인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국회의원 아무개 있잖소, 그 분과 사촌지간이지요“ ”경찰서장 누구의 처당숙올시다“ 하는 식으로 자기의 신분을 표현하는 것이 우세하다. 흔히 쓰이는 입신출세(立身出世), 부귀영화(富貴榮華), 금의환향(錦衣還鄕) 같은 말들이 우리 사회의 감투 의식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들일 것이다.

 

   이러다보니, 학교 교육의 목적도 전인교육이 아니라 입신출세나 양명(揚名)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일류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인식, 이는 과거(科擧)를 통해 한 자리 차지해야만 양반 집안이라는 뿌리 깊은 감투 의식의 소산이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에 내몰면서도 ‘다 너희들의 입신출세와 행복을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능력과 소질을 발견하여 이것을 제대로 발휘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입신출세라는 지상목표를 위해 개인의 개성과 건강한 생활의 영위라는 측면을 완전히 무시하고 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일류병’이 결국 이러한 감투 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아직도 변함없이 감투에 집착하는 것은 개인의 삶과 직책(감투)이 미분화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청을 관가(官家)라고 표현하는 데서 엿볼 수 있듯이 처음에 언급한 가족주의적 전통의 연장이다. 이는 조선사회의 억압적 관료주의가 저지른 폐해,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감투가 있어야 자신이나 가족의 안위를 지킬 수 있다는 피해의식의 소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국가가 민을 보호해주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자구책(自救策)의 정점에 감투가 있게 된 셈이다. 더구나 아이엠에프(IMF)를 겪으면서 이러한 관직(공무원) 선호 의식은 극에 달한 느낌이다. 공무원이 되는 것이야말로 가족의 안위를 지키는 최선의 길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체면과 눈치의 사회

 

   인류학자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는 『국화와 칼』이라는 저서에서 일본문화를 ‘수치의 문화’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일본인들은 오랜 막부(幕府) 봉건시대를 거치면서 유아기 때부터 수치, 명예, 의리, 보은에 철저한, 소위 사무라이 정신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사회를 특징하는 말로서 ‘체면의 사회’라고 규정한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체면의식은 엄격한 신분적 상하관계의 지속에서 형성된 한국인만의 독특한 관념이다. 한국인은 누구나 윗사람이 되는 자는 자신이 아무리 과오를 범했다 하더라도 자기 손아랫사람에게는 이를 쉽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체면의식 때문이다. 자기의 무지나 과오를 자인하게 되면 체면이 손상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즉 자기 행위의 정당함을 끝까지 주장하고 고집하여야만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분쟁이 생겼을 때 당사자끼리 직접 상면하여 해결하기 보다는 반드시 ‘중재자’를 가운데 세워서 이를 조정하려고 한다던가, 남에게 어떤 부탁이나 의뢰를 위해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도 주된 용건을 쉽게 꺼내지 않고 빙빙 돌려서 딴청을 부리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런데 말입니다, 실은…’ 하면서 그제서야 용건을 꺼내는 경우 등이 체면의식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체면의식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무수한 계층 질서를 이루면서 서열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계층적인 지위는 거기에 상응하는 ‘외적행동양식’의 수반에 의해서만 그 존재가 보존된다. 쉽게 말해서, 체면은 반드시 자기의 격을 높이는 행동양식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배가 고파도 부른 것처럼, 맛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먹고 싶어도 먹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본심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 체면에 수반되는 행동양식의 특징이다. 이러한 행동양식은 그야말로 비합리적인 것이지만 이의 뒷받침 없이는 그 지위에 있는 당사자는 그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차린 것은 변변치 않으나, 주인장의 성의를 봐서…“ 잔치집이나 연회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인사말이다. ‘차린 것은 변변치 않다’는 표현이야말로 체면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겸양도 지나치면 체면치례에 머물고 만다. 체면은 미덕이 아니라 심리적 방어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소극적인 방어의식은 자신의 지위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지만, 본의 아닌 행동을 취하게 되므로 언제나 심리적 긴장 및 불안감을 초래하여 사회의 어두운 면을 형성한다.

 

   우리 사회에는 “눈치 없는 자는 성공하지 못 한다”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 눈치란 상사의 표정을 탐색하여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취해지는 행동양식이다. 그러므로 이 ‘눈치’라는 말 속에는 정당성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윗사람의 개인적 취향이나 욕망 등을 충족시키면 족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 할지라도 윗사람을 만족케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눈치문화’는 전술한 체면의식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나타난다. 예를 들어 직장 내에 경조사가 있어 갹출을 위한 회람이 돌려졌을 때, 거기에 자기 소신껏 금액을 적어 넣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먼저 쓴 사람의 금액을 하한선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눈치와 체면의 동시적 결합의 예이다. 이 때는 물론 윗사람도 아랫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는 셈이다. 만일 아랫사람보다 적은 금액을 적어 넣는다면 그는 금방 째째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으로 자기의 체면을 손상 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눈치는 엄격한 상하질서와 존중해야 할 공동체의 분위기 속에서 형성되는 행동양식인 것이다. 다시 말해 비합리적인 상하질서 및 부당한 집단(공동체)의 분위기적 압력과 정당한 개인의 합리성이 충돌되는 지점에서 왜곡된 적응의 결과로써 눈치가 자리한다. 위로부터의 부당한 압력과 옆으로부터의 비합리적 압력 속에서 눈치가 형성ㆍ유지된다고 할 것이다.

   아버지의 눈치를 슬슬 살피다가 아버지가 기분이 좋을 것 같으면 용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어린애의 행동 속에 이 눈치문화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인은 매일 눈치를 보면서 산다. 언제나 윗사람의 눈치나 옆 사람(동료)의 분위기에 적응하려는 데에 신경을 쓰게 되므로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이러한 눈치와 체면 문화의 폐해는 너무도 크다. 가정 내에서도 사내아이가 아버지에 대해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살살 눈치를 살피다가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발버둥을 치고 떼를 쓰고 심지어 폭행까지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집단 내에서는 회사의 룰(rule)에 충실한 사람보다 상사나 사장 개인에 충성하는 사람이 출세가 빠르다. 다시 말해서 회사의 발전에 협력하는 것 보다는 상사 개인을 위해 충성하는 셈이다. 물론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경향을 많이 벗어나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원리로 경영되는 회사도 많지만, 아직도 이런 눈치와 체면 의식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우리 속담에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라는 말이 있다. 집단 내부에서의 억압의 강도가 높을수록 그 구성원은 한강에서 화풀이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눈치와 체면 때문에 이렇게 자아를 상실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결국 눈치와 체면 문화는 엄격하고도 비합리적인 가부장적 전통의 폐해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친소 및 파벌의식

 

   우리가 일상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를 보자. 먼저 이름을 묻고 성씨(姓氏)가 같으면 대게는 또다시 본(本)을 묻는다. 본마저 같다면 그 다음은 파(派)를 묻는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친소의식(親疎意識)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이다. 이 친소의식은 우리사회의 혈연중시 의식을 나타낸다. 무수히 많은 종중회, 문중회, 친목회, 종친회, 돈목회, 간친회, 종회 등등이 바로 그러한 혈연관계 즉, 족보의식의 발로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족보가 갖는 의미와 기능은 다음 4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동족의 단결을 강화한다. 2) 족보의 체제로도 알 수 있듯이, 효(孝)를 축으로 한 친자중심 및 가계 존중의 사상을 조장한다. 3) 상하 신분의식을 공고히 한다. 이는 동족외의 집단에 대해서는 문벌적 우위의식을 갖게 하고 동족 내에서는 존비, 적서, 직계, 방계, 남녀유별의 상하 신분의식을 갖게 한다. 4) 이 친소의식의 원근(遠近) 관념에 의하여 분파의식이 나타난다.

   이 친소의식은 ‘4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 속에 함축되어 있는 바, 동족이면서도 친소의 원근관계에 따라 자신의 행동양식을 결정한다. 즉, 보다 친근한 쪽의 이익을 생각하고 그 밖의 사람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친소의 원근관계를 재는 바로미터가 바로 ‘촌수(寸數)’이다. 촌수의 멀고 가까움이 한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친소의식은 이처럼 족보로 대표되는 혈연관계에서 더욱 발전하여, 동향(同鄕), 향우(鄕友), 동창(同窓), 동문(同門), 전우(戰友) 등 지연(地緣)과 학연(學緣) 등으로 확대되어 한 개인의 행동양식을 결정한다. 특기할만한 것으로, 고흥 지역에 특유한 친소의식의 결정체로 ‘갑계(甲契)’가 있다. 갑계란 동갑계(同甲契)라고도 하는데, 원래 같은 절에 있는 승려들이 친목과 절을 보조할 목적으로 조직한 계이다. 자(子)년생에서 사(巳)년생까지, 오(午)년생에서 해(亥)년생까지를 각각 하나의 단체로 조직한 계이다. 그 방법은 계원이 되는 이들이 얼마씩의 입계금(入稧金)을 내고, 또 절에서 받은 찬조금으로 기본금을 삼아 식리(殖利)도 하고, 계원들의 공동노력으로 사중 공사를 맡아 생기는 소득을 계 자금에 넣어 기본금을 늘린다. 계원들이 늙으면 땅을 사서 절에 바치고, 그 밖에 필요한 불사(佛事)나 도구 따위를 계금으로 마련하여 절에 비치하기도 한다. 이 계는 경상도의 사찰들에서 성행하였는데, 한말까지 존속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승려들의 문화인 갑계가 일반에 전파되어 고흥 사회에 새롭게 이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주요 의사결정의 구심점으로 기능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 고흥 지역의 갑계 문화에 대해서는 지면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다만, 우리는 갑계가 갖는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친소의식은 결국 파벌의식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관계, 정계, 경제계, 학계, 종교계, 문화ㆍ예술계 등 우리 사회의 어디를 들여다보아도 이 파벌(sectionalism)이 없는 곳은 없다. 이 파벌의 특징은 항상 상하관계를 강조할 뿐 횡적인 수평관계는 경시한다는 점이다. 즉, 자기 집단의 윗사람의 권위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면서도 그 밖의 모든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또 파벌의식에서 파생되는 왜곡된 자의식이 바로 의리(義理)라는 관념이다. 아무리 비합리적인 결과라 할지라도 자기 파벌의 이익을 위해서는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겠다는 왜곡된 의식이 의리 관념인 바, 이것은 한 마디로 천박한 왕초─똘마니 의식에 다름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의리를 지키다’ 거의 모든 합리성을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가 바로 파벌의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파벌의식이야말로 모든 정당한 의사표현과 합리적 토론문화를 가로막는 원흉인 것이다.

 

 

   집단이기주의

 

   한국인은 너무도 가족 중심적이다. ‘나’라는 인격을 가족이라는 집단 속에 매몰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의식의 밀도를 보자면 우리 집>우리 마을>우리 고장>우리 나라>의 순으로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공동체로부터 개인의 미분화를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을 평가할 때 반드시 그 사람의 집안, 마을, 고장 등도 동시에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이렇게 개인의 미분화의 결과로써 ‘집단이기주의(group egoism)’가 형성된다. 개인이 속해 있는 공동체나 집단의 체면 내지 이익만이 관심의 대상일 뿐이고 개인의 존엄성이나 사리(事理)의 정당성 여부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흔히 아이들의 용변을 자기 집에서 보게 하지 않고 공용도로인 대로상에서 보게 한다든지, 쓰레기를 우리 집, 우리 마을에 버리지 않고 멀리 떨어진 대로상이나 인접 마을에 갖다 버리는 행위 등이 모두 이러한 집단이기주의를 반영한다. 더럽고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공중변소, 도서관이나 학교 책상 위에 흉측하게 그어진 칼자국과 낙서 등등 공중의식의 결여야 말로 집단이기주의의 단적인 예이다.

   이러한 공중의식의 결여에는 일제강점기의 권위주의적 무단통치의 쓰라린 경험이 작용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 (도올 김용옥의 주장) 즉,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우리 민중들의 의식 속에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곳은 이미 우리 땅이 아니라는 의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내 집 울타리 너머의 땅은 왜놈들의 땅이고 칼 차고 으름장을 놓고 다니는 순사들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기 집 마당은 쓸어도 동구 밖까지 자진해서 쓸어주던 미덕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공중의식이 이토록 낮은 데에는 일제 강점기의 영향이 크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공중의식의 결여는 필연적으로 공사(公私) 구별을 모호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근무시간이 지나서까지 일을 하는 것은 예사이고 심지어 공적인 일을 집에까지 가져와서 하는 것을 예사로 하는가 하면, 반면에 근무시간에 사적인 일을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직장 내에서 동료 여직원에게 커피를 끓여오게 하는 것도 넓게 보면 모두 공사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공사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나타난 것이 적당주의, 보신주의라고 할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그러한 보신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합리성과 책임감이 행동의 지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상하서열의 질서나 공동체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둥글둥글 사는 게 좋다는 의식이다.

 

   이상,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을 대표적인 몇 가지의 지표로써 살펴보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많은 부분들이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자화자찬도 좋지 않지만, 낙담도 금물이다. 다만 위에서 살펴본 대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합리적인 생각과 합리적인 생활태도의 존중, 활발한 토론문화의 확립, 그리고 개인적 삶의 회복 등은 시급히 이루어 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리하여 지나친 상하서열 관계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평등하고도 합리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 내에서의 룰(규율)을 존중하며, 좁은 집단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보다 넓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을 교육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21

고정닉 4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8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56871 공지 단 한놈의 한.남도 놓칠 수 없다 [8] ㅇㅇ(118.235) 24.05.01 3859 63
60196 공지 매니저 위임 요청합니다.(종료) [79] 조선인의안락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5.12 2805 161
15261 공지 무출갤 통합규정(23.11.16ver) [9] non-birth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25 7990 50
54316 공지 신고 게시판 [4] 무갤러(39.7) 24.04.23 12644 14
34946 공지 끝올탭 만듬 ㅇㅇ(118.235) 24.02.14 2637 13
24407 공지 이의제기 게시판 [1] 쌍쌍ba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1.07 6486 16
36480 공지 차단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차단소명, 차단회피, 소명방법 [2] montage24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2.19 1916 13
53424 공지 건의및 문의글은 고닉, 일반 유동만 받겠음 [3] 조선인의안락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4.19 415 14
15 공지 출생아수 발표일 조선인의안락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6.21 2096 31
8078 공지 제식갤같은 스탠스를 더 조심해야 함 [15] Fairwind(106.245) 23.10.09 2953 140
71387 일반 훈련병관련 586 헛소리들이 너무 역한데 [1] ㅇ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5:35 6 0
71386 일반 꽃뱀하니 생각난건데 한녀충들 ㅇㅇ(174.243) 05:31 10 0
71385 일반 일본 귀화해서 쓸 이름 ㅇㅇ(14.42) 05:23 23 0
71384 일반 팔육이 사장들이 악날한. 이유 무갤러(112.161) 05:16 20 0
71383 일반 한국의 심장이라 불리는 한강의 기적 ㅇㅇ(115.140) 04:51 52 2
71382 일반 K-혐일 부두술사 1타 강사.jpg ㅇㅇ(116.34) 04:41 48 0
71381 고찰 모두가 자산가라는 착각 [2] 무갤러(182.230) 04:29 62 3
71380 일반 한욕자약 ㅇㅇ(116.34) 04:20 30 1
71379 일반 탕핑을 즐기기 위한 추천 게임 [4] ㅇㅇ(121.186) 04:06 81 2
71377 일반 조선인들의 골든타임 타령에 대해서 반박했던 한 사람 무갤러(121.143) 03:21 116 8
71376 뉴스 나거한 좆소 근황 [4] ㅇㅇ(119.198) 03:07 287 17
71375 일반 한국 존나 무서운점 [3] 무갤러(122.44) 02:59 190 6
71374 일반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하다 ㅋㅋ(211.62) 02:51 65 3
71373 일반 내가 공들여쓴 장문이 주갤 한줄 댓글만 못하네 [5] ㅇㅇ(59.11) 02:37 274 20
71372 일반 법이 약한 이유 이거아님? ㅇㅇ(58.235) 02:04 88 3
71371 일반 현실성 없는 년들 말은 걸러야됨.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03 102 2
71369 일반 애들 쇼츠나 가챠겜하는거보면 gta하는게 더 좋지 않나 생각듬 [3] 무갤러(116.120) 01:44 140 2
71368 일반 QS 대학랭킹도 믿을게 못되는구나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38 181 3
71362 웃음벨 혐) 한녀는 씨발 현실성이 없네 ㅋㅋㅋ [1] 노무라-운지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2 294 8
71361 칼럼 여름이 오면 하는 것들(잡소리) [3] 용감한역병의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8 224 4
71360 일반 일본 여자들이 세계최고여자가 된 배경 [3] ㅋㅋ(211.62) 00:57 199 3
71359 생활 알리 바다장어 [2] 조선인의안락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55 169 8
71358 일반 기형아싸개 아줌마 과학이랑 기싸움 하시느냐고 고생이 많습니노.. [4] SCHD80년분할매수투자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52 180 11
71356 일반 느그나라 유일하게 도움되는거 무갤러(59.11) 00:48 77 3
71355 생활 식재료 탐구- 매콤한 식초, [타바스코 소스] [3] 노무라-운지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47 90 6
71354 일반 환율 1388 [1] SCHD80년분할매수투자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39 185 3
71353 일반 조선인들 이중성 ㅇㅇ(121.143) 00:31 58 3
71352 일반 이거 조선인들 왜 이러는 거임? [6] 무갤러(175.193) 00:16 265 12
71351 생활 탈조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1] 노무라-운지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0:11 211 12
71350 일반 꿩 적(翟)이 들어간 한자 구성원리 [4] ㅇㅇ(182.212) 00:04 106 7
71209 웃음벨 혐) "전쟁나면 cage오빠 콘서트, 마블영화 못봐서 아쉬워" [18] 잭런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4 1666 83
71349 일반 이민간 한녀 미래 한사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4 105 1
71348 일반 실베 베플 골라봤음 노차이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4 355 21
71347 일반 내가 조선게를 증오하는 이유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4 77 2
71119 칼럼 군 사건사고들을 보면 보이는 것 [3] DamLee28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3 699 24
71346 일반 나거한 군대 전역자들 현실 [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4 782 48
71345 일반 나무위키가 유일하게 잘하는거 [4] 노무라-운지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4 252 10
71344 일반 (주갤명문) 주펜하우어 명언모음 [3] 무갤러(211.212) 06.14 378 25
71342 웃음벨 오늘 지하철에서 어깨빵 있었던 일 (강자 호소인) [24] Takecare햇반(112.168) 06.14 537 27
71341 생활 무갤요리- [운지 스튜] [11] 노무라-운지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14 308 17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