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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어쌔신 크리드 : 포세이큰 -16

ㅇㅇ(45.67) 2024.05.22 01:43:12
조회 54 추천 1 댓글 0
														

2년 후, 1778년 1월 7일


1


워싱턴을 향한 찰스의 분개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암살 시도가 실패 한 것이 그의 화를 돋구는 연료가 된 모양이다. 찰스는 워싱턴이 살아남은 것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여기는 듯 했다, 어떻게 감히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은 영국군의 손에 떨어졌고 워싱턴은 거의 붙잡힐 뻔 했지만, 적어도 그게 혁명 세력에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트렌톤 전투 승리에 이어 델라웨어 강을 건넌다는 워싱턴의 과감한 시도에 그다지 감명 받지 않은 찰스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워싱턴이 브랜디윈과 필라델피아에서 패배 했다는 소식은 찰스에게 있어서 몹시 유용한 먹이감이었다. 저먼타운에서 벌어졌던 워싱턴과 영국군의 대결은 재앙에 가깝게 마무리됐다. 그리고 그들은 밸리 포지(Valley Forge)에 있었다.

마침내 화이트 마쉬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점으로 워싱턴은 좀 더 안전한 곳에서 새해를 맞이하고자 그의 군대를 이끌고 밸리 포지에 자리 잡았다. 그가 선택한 펜실베니아의 밸리 포지 고지에서 피로에 지치고 신발조차 잃은 12,000명의 대륙군은 피묻은 발자국을 남기며 행진하면서도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했다.

결국에는 난장판에 가까웠다. 음식과 옷가지는 절망적으로 부족했으며, 말들은 선 채로 굶어 죽어갔다. 장티푸스, 황달, 이질, 폐렴이 돌아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 도덕이나 규율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밸리 포지에서 서서히 얼어 죽어가는 그 동안에도, 여전히, 워싱턴에게는 그만의 수호천사가 존재하였다. 코너, 그래 코너. 워싱턴을 신뢰하는걸 보면 아직도 어린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무리 말로 설득한들 마음을 돌려 놓을 수는 없을 테지. 내가 어떤 말을 늘어 놓더라도 제 어머니의 죽음이 워싱턴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곧이 곧대로 듣지는 않을 것이다. 불 보듯 뻔한 일이지만, 누군들 그와 같이 생각하지 않겠는가? 결국에는 그날 그가 본 것은 찰스였다. 찰스뿐만이 아니라, 윌리엄, 토마스와 벤자민까지.

아, 벤자민. 나의 또 다른 골칫거리. 그는 지난 몇 년을 기사단에, 부드럽게 말하자면, 망신을 안겨주며 보냈다. 영국군에 정보를 빼돌리려던 그는 75년 특별조사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다름아닌 조지 워싱턴이 직접 연 조사였다. 지금 벤자민은 수년전 자신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수석 군의관이자 독립군의 보건소장 자리에서 물러나있다. '적군과의 내통 죄'로 유죄를 받고 올해 초까지 수감되어 있었으나, 출소와 동시에 사실상 사라져 버린 상태다.

그가 그 옛날 브래독의 경우처럼 기사단의 이상을 버리기로 결심한 건지는 나 역시 알 수가 없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밸리 포지로 공급될 예정이던 군수 물자들이 벤자민에 의해 빼돌려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안그래도 비참했던 영혼들이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그는 개인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기사단의 이상을 저버렸다. 그러니 그는 멈춰져야만 한다. 이것은 내가 직접 해결 해야할 문제이기에 나는 말을 달려 밸리 포지와 눈덮인 필라델피아의 벌판을 지나 벤자민이 캠프를 차렸을 한 교회 앞에 당도했다.


2

처치(church)를 찾으러 교회(church)에 오다니. 그러나 이미 버려진 곳이다. 신자들 뿐만이 아니라 벤자민의 부하들 마저 떠나버린 곳이었다. 그들이 몇일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있었던 듯 하나,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물자들도 부하들도 없다. 단지 차게 식어버린 장작더미와 천막이 있던 자리에 남은 자국 뿐이었다. 말을 매어둔 뒤 뼛속까지 마비되는 듯한 추위를 피해 교회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문 옆에는 신도석을 잘라내어 마련한 듯한 장작들이 쌓여 있었다. 경외심이 추위의 첫번째 희생자가 되었던 모양이군. 남아있는 신도석은 교회 한쪽에 밀어져 인상적이지만 오랬동안 사용되지 않았을 설교단을 향해 있었다. 통로에는 더러워진 창문에서 새어 들어온 빛속에 먼지들이 춤을 추듯 떠다녔다. 교회 돌바닥에 드문드문 빈 상자와 포장지가 눈에 띄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벤자민의 행방에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아 뒤집어 보던 그 순간.

소리. 문쪽에서 발자국이 들렸다. 재빨리 설교단 뒤로 숨자 나무문이 살며시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어쩌면 나의 발자국을 쫒아 따라왔을지 모르는 그 누군가는, 나와 같이 교회를 둘러보고는, 나와 같이 상자들을 뒤집어 보더니, 심지어 내가 그랬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코너였다.

나는 연단의 그림자 밑에서 그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암살자의 복장을 입고 있는 강렬한 인상. 마치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 했다, 좀 더 젊은 버전의 나, 암살자였을, 내가 걸어야만 했을 그 길,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그 길, 그렇게 되었어야만 했다, 레지널드 버치의 기만이 없었더라면, 코너를 보고 있자니 온갖 강렬한 감정들이 뒤엉켜 뿜어나왔다. 원통함, 쓰라림, 심지어 질투까지도.

좀 더 가까히 가보았다. 어디, 녀석이 얼마나 훌륭한 암살자인지 확인해 볼까.

아니지, 바꿔 말하자면, 내 감각이 여전히 살아있는지 확인해 보자.


3


내가 저질렀다.

"아버지." 목에 칼날을 겨누자 녀석이 말했다.

"코너," 나는 비꼬는듯한 어조로 말했다. "유언으로 남길 말이라도?"

"잠깐."

"빈약한 선택이로군."

녀석이 눈을 빛내며 저항해냈다. "처치를 보러 오셨군요? 놈이 당신의 영국 친구들을 위해 충분히 훔쳤는지 확인이라도 하러 온겁니까?"

"벤자민 처치는 더이상 나의 형제가 아니다." 나는 혀를 찼다. "영국군과 저 바보같은 조지 왕 역시 아니지. 순진해 빠졌을거라 예상은 했다만, 이건 대체... 기사단은 왕을 지지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너와 같은 것을 찾고 있다, 얘야. 자유, 정의, 그리고 자주권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뭐?" 내가 물었다.

"존슨, 핏케언, 힉키. 그들이 땅을 훔치려 했어요. 마을을 강탈하고, 조지 워싱턴을 살해하려 했다구요."

한숨을 내쉬었다."존슨은 우리가 그들의 땅을 보호해 줄수 있을거라 생각 했던거다. 핏케언의 목적은 외교를 강제 해보려는 것이었어, 네 녀석이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망쳐버린 그것 말이다! 그리고 힉키? 조지 워싱턴은 참담하기 짝이 없는 리더다. 그가 벌리는 전투는 거의 다 실패하고 있어. 그의 불확실함과 불안감으로 고통 받을 뿐이지. 밸리 포지의 경우만 보더라도 내가 옳다는건 알 수 있을게다. 우리 모두를 위해 놈은 존재하지 않는게 나아."

내가 하는 말이 그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게 분명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들어보거라- 너와 옥신각신 하는 것도 재미는 있다만, 벤자민 처치의 입은 그 자만심 만큼이나 크지. 네가 그의 군수품을 원한다는 건 알고있다. 나는 그의 처단을 원해. 우리의 관심사는 나란히 놓여있는거야."

"뭘 제안하는 겁니까?" 그가 신중하게 물었다.

내가 뭘 제안하고 있냐고? 나는 생각해봤다. 녀석의 시선은 내 목에 걸려있는 부적을 향해 있었고, 나 또한 그의 목걸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 어머니가 이 목걸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을게 분명하다. 이것을 가져가고 싶어할 것 또한 분명하지. 한편으로는, 우리들의 목에 걸려있는 이 상징들이 녀석과 나로 하여금 그녀를 떠오르게 만드는 듯 했다.

"휴전이지," 내가 말했다. "어쩌면-, 어쩌면 함께 시간을 좀 보내는게 서로에게 좋을 듯 싶구나. 결국에는 너는 나의 아들이니 말이다. 네 녀석을 무지로부터 구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니면 지금 죽여 줄 수도 있지, 네가 그걸 더 선호한다면 말이다?" 난 웃으며 말했다.

"처치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고 있는 겁니까?" 녀석이 물었다.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놈이나 부하들이 되돌아오면 습격하려고 매복 해봤다만, 보아하니 너무 늦은 것 같구나. 이곳을 완전히 정리해 버렸어."

"제가 흔적을 찾아 낼 수 있을 것 같군요," 녀석이 오묘한 자부심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나는 뒤에 서서 그가 아킬레스로부터 훈련받은 듯한 어마어마한 시연을 감상해보았다.

"화물이 무거웠던 겁니다," 교회 바닥의 끌린 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수레를 이용해 운반 했을텐데, 아마도 식량이나 의료품과 의복이 들었었겠죠."

교회 밖으로 나간 코너가 뭉게진 눈을 가리켰다. "여기에 수레가 있었어요... 짐을 싣자 눌린겁니다. 눈자국이 희미해져 버리긴 했지만 추적 하는데는 충분하죠. 어서요..."

메어두었던 말을 끌고와 함께 말에 올라탔다. 코너가 흔적들을 가리킬 때마다 나는 찬양 하고픈 충동을 참아내려 애써야 했다. 녀석의 사고방식이 나와 같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 내가 했을 것과 똑같이 행동한다는 점에 말이다. 15마일 정도 이동했을 때 코너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돌아봤다. 이어지는 길 위에는 반쯤 부서진 짐수레와 그 바퀴를 들여다보며 궁시렁거리는 남자가 보였다. "재수 옴 붙었구만, 못 고치면 여기서 딱 얼어죽게 생겼..."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놀란 사내의 휘둥그란 눈에 공포가 서렸다. 화승총이 보였지만 그의 손에 닿지는 못할 거리였다. 놈이 도망갈 것임을 예상한 순간, 코너가 호기롭게도 '당신, 벤자민 처치의 사람입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도망치기 시작했다. 엉뚱하게도 하필 지척이 눈더미인 숲속으로 도망친 사내가 허겁지겁 달리는 꼴이 상처난 코끼리 마냥 변변찮아 보였다.

"잘했다." 내가 웃자, 코너는 성난 얼굴로 쏘아보고는 안장에서 뛰어내려 수레꾼을 뒤쫒았다. 한숨과 함께 녀석을 가게두고 나 역시 말에서 내려 검날을 점검하고 있는데, 코너가 그 자를 잡았는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성큼성큼 달려 그들과 합류했다.

"도망치는건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오." 수레꾼을 나무에 밀어붙인 채 코너가 말했다.

"뭘... 뭘 원하는 거요?" 그 불쌍한 인간이 용캐 말을 꺼냈다.

"벤자민 처치는 어디에 있지?"

"나는 몰라요, 그저 여기서 북쪽에 있는 캠프로 이동하는 중이였습죠. 평소 화물을 가져다 두는 곳 말입니다. 거기서 찾아보시는- "

그 자의 시선이 내게 멈췄다, 마치 도움을 바라는 듯이. 그래서 나는 총을 꺼내, 그를 쏘았다.

"그 정도면 됐다," 내가 말했다. "이제 이동하는게 좋겠군."

"그를 죽일것까진 없었잖아요." 얼굴에서 피를 닦아내며 코너가 말했다.

"캠프가 어디있는지는 알고있다," 내가 한 말이다. "그 자는 그의 목적을 다 한거다."

말에게로 돌아가면서,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 생각해보았다. 난 대체 뭘 가르치고 싶었던 걸까? 녀석이 나처럼 부서지고 닳아 버리길 원한건가? 앞날이 어떻게 진행될지 보여주고 싶었던건가?

생각속에 푹 빠진채 한참을 달리자 마침내 나무위로 대놓고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우리는 말을 메어두고 소리없이 은밀하게 다가갔다. 나무 사이에 엎드려 망원경을 들여다보자 캠프 주변을 돌고있는 몇몇과 추위를 피해 불가에 모인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코너를 캠프 왼편으로 보내놓고,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편안히 지켜보고자 했으나,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로는 보이지 않는 곳이였단 말이지, 화승총이 목을 간질이는게 느껴졌다. "요것보소, 이게 다 뭐야?"

나는 욕지거리와 함께 끌려나왔다. 다해서 세명인 놈들은 날 발견한 것에 대단히도 즐거워 보였다. 물론 그래야지, 내가 잡히는건 흔치 않은 일이거든. 십년전이라면, 네 녀석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을테고 소리없이 사라질 수 있었겠지. 이십년전이라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숨은채로 다 제거 해버렸을거야.

두 놈이 내게 화승총을 겨누자 나머지 한 녀석이 초조하게 입술을 핥으며 다가왔다. 놈은 내 암살검을 빼가며 감탄하더니, 단검과 총 역시 가져갔다. 마침내 내가 무장해제되자 엄두가 나는지, 썩어버린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어보였다. 나에게는 아직 비밀 무기가 있지- 코너. 그런데 대체 이 녀석은 어디에 있는건가?

썩은 이빨께서 한걸음 더 다가왔다. 신께 감사하게도 놈의 행동이 너무나 예측가능한 덕에 나의 사타구니를 향한 그 무릎을 피해 낼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녀석이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잠시 엎어져 있어줬다.

"양키측 스파이가 틀림없어," 총을 겨누던 한 놈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니, 그거랑은 좀 다른 놈이지." 자세를 가다듬는 나를 굽어보며 다른 녀석이 말했다. "좀 더 특별한거 말이야. 그렇지 않나, 하이담? 처치가 네 놈에 대해서는 다 말해줬지." 우두머리가 말했다.

"그럼 이보다는 훨씬 더 나아야 할텐데." 내가 말했다.

"지금 협박이나 할 상황이 아니신데," 썩은 이빨이 으르렁거렸다.

"아직은 아닌거지," 태연하게 답해줬다.

"그래? 그럼 어디 증명 해보시지? 이빨 사이에 총이라도 박아 숨겨 놓으셨나?

"아니, 하지만 자네는 그렇게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구만."

"뭐라? 지금 이게 재미있나 보지?"

눈을 들어 위쪽을 보자, 그들 뒤의 나무가지에 웅크리고 있는 코너가 보였다. 그의 암살검이 나와있었고 손가락 하나가 입술에 닿아있었다. 아, 나무타기의 고수로군, 당연한거지. 제 어머니가 가르친 모양이야. 그녀는 내게도 나무 오르는 법을 지도해 줬었다. 세상에서 그녀보다 훌륭하게 나무를 오르내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썩은 이빨을 올려다 보자, 녀석의 발길질이 내 턱을 향하는 바람에 나는 날듯이 뒤에있는 덤불로 떨어졌다.

아무래도 지금이 좋은 때가 아닌가 싶구나, 코너. 고통 때문에 흐릿하긴 했지만 코너가 마침내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암살검이 들린 그의 손이 앞을 향하는 듯 싶더니 이내 불행한 경비의 입속에서 피묻은 칼날이 드러났다. 내가 두발로 설 때쯤에는 나머지 둘도 이미 죽어있었다.

"뉴욕," 코너가 말했다.

"무슨 말이냐?"

"벤자민이 갔을 곳이요."

"그렇다면 그곳이 우리가 향할 곳이로군."



1778년 1월 26일


1


뉴욕은 지난번 방문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불타버렸다. 지난 76년 9월, 파이팅 콕스 주점에서 시작된 대화재로 인해 오백여 집들이 파괴되었고 도시의 사분의 일이 불모지가 되어버렸다. 영국정부는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불타지 않은 집들과 교회들은 영국군 장교들에게 징발되어 교도소, 병영, 혹은 병원으로 개조 되었으니 사방이 온통 침침한 기운 뿐이다. 지금은 영국 국기가 펄럭이고 있는 이 도시도 한때는 갖가지 캐노피피와 주랑 현관 아래 북적거리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의 그 캐노피들은 이제 누더기가 되었으며, 그을음으로 더럽혀진 창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계속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은 시선을 바닥에서 떼지를 않는다. 그들의 어깨는 축 쳐져 있고, 발걸음은 의기소침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벤자민의 행방을 찾아내는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놈이 부둣가의 버려진 양조장에 있음을 밝혀냈다.

“급습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만.” 생각한 바를 조금은 성급하게 말하였다.

“좋아요,” 코너가 답했다. “군수물자들을 한시라도 빨리 되찾고 싶군요.”

“물론, 너를 그 가망없는 목표로부터 붙잡아 둘 수는 없지. 그럼 가자꾸나, 따라 오거라.”

지붕을 통해 나아가는 도중에 뉴욕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오자, 그 폐허와도 같은 전쟁의 참상에 황망해지는 듯 했다.

“말해 주시겠어요,” 약간의 뜸들임 후에 코너가 말을 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절 죽일 수 있었잖아요. 왜 멈췄던 건가요?”

난 네가 교수대에서 죽도록 둘 수 있었다. 토마스가 브리드웰 교도소에서 널 죽이게 할 수 도 있었지. 그때마다 나를 막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답인가? 내가 늙어서? 감상적인 면 때문에? 어쩌면 내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삶에 대한 향수 때문 이었는지도.

하지만 이 중에 어떤 답변도 코너 너와 나눌 수는 없지. 침묵 끝에, 결국 나는 코너의 질문을 묵살하기로 했다. “호기심이 들어서 말이다. 또 궁금한게 있느냐?”

“템플러가 원하는게 뭡니까?”

“질서(order),” 내가 말했다. “목적(purpose), 방향(direction), 그뿐이다. 자유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논의를 늘어놓는 너희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할 뿐이지. 한때는 말이다, 암살단도 분별 있는 목표를 추구하던 때가 있었지- 평화(peace) 말이다.”

“자유(freedom)가 곧 평화에요,” 녀석이 주장했다.

“아니지, 그건 혼돈으로의 초대장일 뿐이야. 너의 친구들이 시작한 이 빈약한 혁명을 보거라. 나는 대륙회의에 참석해 그들이 발을 구르며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자유(liberty)라는 이름 아래 말이다. 하지만 결국 소음에 불과했어.”

“그게 당신이 찰스 리를 선호하는 이유입니까?”

“그는 적어도 국가를 대표하겠다고 나서는 그 바보들보다 무엇이 바람직한 국가인지를 더 잘 깨닫고 있다.”

“당신에겐 오기로 가득 찬 말뿐이군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결정을 내렸어요, 그 결과는 워싱턴 입니다.”

결국엔 이거로군. 세상을 어찌나 명쾌하게 바라보는지, 녀석이 부러워질 지경이다. 아무래도 의구심 하나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있는 것 같다. 언젠간 내 계획대로 진행되어 녀석이 워싱턴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의 세상은, 단지 녀석의 세상뿐만 아니라, 세계관 자체가, 산산이 부서져버릴 것이다. 지금의 녀석이 가진 확고함이 부럽긴 하지만, 그 이후는 그다지 부럽지가 않군.

“사람들은 선택 한 게 없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자신들의 풍족함을 채우려는 비겁한 특권계층에 의해 만들어 진 거지. 밀회를 통해 이익이 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린 거란 말이다. 그들이 듣기 좋은 말들로 포장했겠지만, 진실은 그렇지가 않다. 유일한 차이점은 말이다, 코너, 나와 너의 동료들의 유일한 차이점은, 나는 결코 애정어린 척 가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녀석이 나를 바라보았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녀석에게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시도는 해보았지,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말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2


양조장에 도달하자 코너를 위한 변장이 필요함이 명백해졌다. 그의 암살자 로브는 도드라지게 눈에 띄는 편이다. 옷 한벌을 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실력을 뽐낼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나 역시, 칭찬에 인색하게 굴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적절하게 차려 입은 우리 둘은 붉은 벽돌로 지어져 빈틈하나 없이 가려진 창문을 가진 공장 내부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나자 양조사업에 쓰이는 나무통과 수레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순찰을 돌고 있는 자들이 보였다. 벤자민이 대부분의 기사단원들을 자신의 용병들로 대체 해버린 듯 했다. 아, 반복되는 역사로군, 문득 에드워드 브래독이 떠올랐다. 그저 벤자민은 브레독 만큼이나 처리하기 힘들진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하지만 왠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 요즘들어 그 무엇에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서라, 외부인들!” 경비 한 명이 발목쯤 차오른 안개를 헤치며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지금 사유지에 들어온 거요. 무슨 일로 왔소?”

모자를 기울여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해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인도하기를.” 나의 말에 경비가 긴장을 푸는 듯 싶더니, 코너를 신중하게 살펴보았다. “당신은 내가 알아보겠는데,” 그가 말했다. “이 야만인은 그렇지가 않아.”

“내 아들이네.” 내 입을 떠난 그 문장이 다시 들려올 때 느낌은...이상했다.

그 와중에 코너를 찬찬히 뜯어본 경비는 곁눈질을 던지며 내게 말했다. “숲속의 열매를 맛보셨구만?”

그냥 살려뒀다. 적어도 지금은. 대신에 미소를 지어주었다.

“들어가보시오, 그럼.” 아치로 된 입구를 지나 스미스 앤 컴퍼니 양조장의 중앙 공장이 나오자, 우리는 재빨리 창고와 사무실이 있는 옆 구역으로 숨어들었다. 첫 번째 문에 이르러 코너는 망을 보고 나는 자물쇠를 여는 동안 우리는 대화를 나누게 됐다.

“이상하셨겠어요, 제 존재를 알았을 때 말이에요,”

“사실은 말이다, 네 어머니가 나에 대해 뭐라고 했을 지가 궁금하구나.” 자물쇠를 따며 답했다. “그녀와 내가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인생이 되었을지 종종 생각해봤다.” 본능에 가까운 연기력(acting on an instinct)으로 녀석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어머닌 어떻게 지내시냐?”

“돌아가셨어요,” 그가 말했다. “살해 당했다구요.”

워싱턴 손에 말이지...떠오르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뱉은 말은- “유감이구나.”

“그러세요? 당신 부하가 한 짓입니다.”

마침내 문이 열렸지만 나는 다시 닫고, 코너 쪽으로 돌아서 얼굴을 마주보았다. “뭐라고?”

“내가 어릴 때 그들이 장로들을 찾으러 왔더군요. 위험한 자들이라는 걸 알았기에 전 침묵 했구요. 찰스 리가 절 때려눕혀 기절시켰습니다.”

결국 내 추측이 정확했던 거로군. 찰스가 코너에게 정신적으로는 물론 물리적으로도 템플러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겨 준 모양이다.

내 얼굴에 경악이 서리도록 내버려두는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비록 이어지는 말에 충격 받은 척 하기는 했지만.

“다시 깨어났을 때 내 마을이 불타고 있더군요. 당신 부하들은 이미 떠났었고, 그건 내 어머니를 살리려는 희망도 마찬가지 였어요.”

지금이었다- 지금이 바로 진실로서 그를 납득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럴 리 없다,” 내가 말했다. “나는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어. 오히려 그 반대였지. 부하들에게는 더 이상의 유적 수색은 하지 말 것을 명령했었어. 우린 좀 더 현실적인 목…”

코너는 관심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지나 버린 지 오래니까요.”

오, 아니지. 상관 있고 말고.

“하지만 넌 내가– 네 애비인 내가 그 잔학행위에 책임이 있다고 믿으며 자라왔단 말이더냐. 나와는 일말의 연관도 없었던 그 일을 말이다.”

“어쩌면 당신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구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3


침묵과 함께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나무통들과 멀지 않은 곳에 등 진채 서있는 인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자가 장부를 넘기는 소리만이 정적 속에서 들렸다. 놈을 확인한 나는 긴 한숨과 함께 그를 불렀다.

“벤자민 처치, 자네는 템플 기사단을 배신하고 개인적인 이득을 위하여 원칙을 저버린 혐의를 받았네. 범죄의 중대성을 고려해, 자네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바이네.”

벤자민이 뒤돌아섰다. 그게 벤자민이 아니었다는게 문제지만... 그는 미끼(decoy)였다. “지금이다, 지금!” 놈이 옆방을 향해 소리치자 총과 칼을 든 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발 늦으셨어,” 미끼가 흡족해 하며 말했다. “처치와 화물은 이미 멀리 가버렸지. 안타깝게도 당신이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구만.”

아킬레스와 그의 교육에 신의 축복을- 코너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군이 우세 할 때는 기습이 최선이라는 생각 말이다. 방어상태를 공격상태로 바꿔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 서로에게 보내는 약간의 눈짓과 함께 각자의 암살검을 해제하고 기습을 감행했다. 일단 앞에 있던 경비에게 날을 박아넣자 비명 소리가 돌벽을 타고 창고를 울렸다. 총을 겨누고 있던 자들 중 한 놈을 넘어뜨려 상자로 머리를 내려친 다음 얼굴에 날을 휘두르자 그자의 두개골이 느껴졌다.

몸을 돌리자 낮은 자세로 손안의 칼날을 이용해 적을 베고 있는 코너가 보였다. 때마침 두 명의 운나쁜 경비가 배가 갈라진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쓰려지고 있었다. 총알 한 방이 발사되었다- 공기를 찢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으로 미루어 나를 지나친 것 같으니 사수는 목숨을 지불해야지.

싸움은 잔혹하면서도 짧게 끝이 났다. 나는 벤자민이 기사단원이 아닌 용병들을 준비시킨 행운에 감사 드렸다. 놈들이 기사단원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상대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피로 젖은 돌바닥에 홀로 남은 미끼는 코너의 그림자 밑에서 공포에 질린 아이처럼 떨고 있었다.

내가 다가갈 때쯤 코너가 물었다. “처치는 어디에 있지?”

“말하겠소,” 미끼가 흐느끼며 말했다. “뭐든지 말하겠소. 날 살려둔다고 약속만 해준다면 말이오.”

코너가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합의를 본 것인지 안본건지 알 수가 없지만, 코너는 놈이 제 발로 일어서도록 도와줬다. 초조한 눈동자로 우리를 번갈아 보던 미끼가 말을 이었다. “그는 어제 웰컴(welcome)호 라는 이름의 무역선을 타고 마르티크 섬(Martinique)으로 떠났습니다. 애.국자들로부터 훔친 군수품의 절반을 싣고 갔어요. 그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맹세코.”

뒤에 서서 척추에 날을 찔러 넣자 놈은 자신의 가슴을 타고 내리는 핏자국을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약속 했잖소….” 그가 말했었다.

“그리고 '그'는 약속을 지켰지,” 차갑게 대답한 후 코너를 돌아보자 마치 내게 반박이라도 하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가자,” 막 덧붙여 말할 때 세명의 소총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발코니로 뛰어들어왔다. 그들이 어깨를 들어 조준한 것이 우리가 아니라 옆에 있던 나무통이며- 그것들이 화약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첫 번째 폭발이 일 때 코너와 나는 겨우 맥주통 뒤로 몸을 날릴 수 있었다. 귀청이 터질 듯한 우렛소리와 함께 계속되는 폭발들로 공기가 휘고 시간이 멈춰버리는 듯 했다. 맹렬한 파열음 때문에 나는 눈을 감고 손으로는 귀를 감쌌다. 마침내 일어섰을 때에도 여전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창고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직 그곳에 있던 자들은 내동댕이쳐지거나 폭발로 인한 공황사태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경비들은 이내 몸을 추스려 각자의 총을 챙겨들고는 먼지 속에서 우리를 찾아 소리치기 시작했다. 화염이 나무로 된 상자와 통들을 집어 삼키며 솟아오르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경비 한명이 비명과 함께 불타오르더니 반쯤 녹아버린 얼굴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야말로 불타오르는 지옥이었다.

다시 총알이 날아들기 시작하자, 우리는 두명의 칼잡이와 한무리의 소총수를 제거해가며 건물 버팀목을 이용해 위로 올랐다. 불길이 빠르게 번지자 이제는 경비들마저 탈출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위로 오르던 우리가 마침내 도달한 곳은 양조창고의 다락방이었다.

되돌아가면 적들과 불길뿐이다. 창 밖을 내다보니 아래에 물이 보여 나는 출구를 찾아보는 중이었다. 코너가 나를 붙잡더니 창문 쪽으로 휘둘렀다. 우리 둘로 인해 창은 박살이 났고, 그렇게 해서 나는 항의 해볼 기회조차 없이 바다로 떨어졌다.



1778년 3월 7일


1


벤자민이 빠져 나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아퀼라(Aquila) 호에 승선해 벤저민의 범선(schooner) 뒤를 쫒으며 로버트 폴크너(Robert Faulkner) 선장과 그의 선원들 사이에서 갇혀 지낸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배는 대포의 사정거리 밖에서 요리조리 도망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조롱하듯 갑판위에 서있는 벤자민의 모습만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니 더욱더 빠져나가게 허락할 수는 없지. 멕시코 만 부근에 도달해 그 범선을 거의 따라잡은 무렵에는 그 괘씸함이 정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코너를 밀쳐내고 직접 이 배의 키를 잡은 이유다. 우현으로 키를 강하게 잡아 돌리자 배가 휘청이며 범선 쪽으로 돌진했다. 누구도 예상하진 못했을 것이다. 놈의 선원들뿐만 아니라 아퀼라 호의 선원들도, 심지어 코너와 로버트 마저도, 오직 나를 제외하곤 말이다. 사실 나도 저지르기 전까지는 확실히 알지 못했다. 미처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선원들이 갑판에 내동댕이 쳐지고 아퀼라의 뱃머리가 무역선의 선체에 박혀 파편을 휘날릴 때까지는 말이다. 어쩌면 내가 경솔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코너에게, 정확히는 폴크너 선장이겠지만, 그의 배를 부숴버린 점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놈을 도망가게 놔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2


잠시 동안은 충돌의 여파 속에서 정적이 흘렀다. 무언가가 휘어지는 소리, 선체가 갈라지는 소리, 파편이 바다로 떨어지는 소리 뿐 이었다. 머리 위로 산들바람이 불어왔지만 돛도, 배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되찾은 양쪽의 선원들이 고함치기 시작했다. 나는 코너를 지나쳐 아퀼라의 뱃머리를 타고 벤자민의 범선 갑판으로 뛰어들었다. 나를 향해 무기를 조준하는 첫 번째 선원이 눈에 들어오자 암살검을 해제해 찔러 넣고 비틀어 배 밖으로 던졌다.

해치 쪽으로 달려가자 마침 달려 나온 선원의 가슴팍에 날을 박아 놓은 뒤, 마지막으로 내가 벌려 논 참상을 돌아보았다. 두 거대한 배가 이제 갈고리에 묶여 서서히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해치 문을 걸어 잠궜다.

위에서는 천둥 같은 발소리들과 고통에 찬 신음, 발포되는 총소리, 누군가가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곳 갑판 아래는 이상할 정도로 축축한 공기와 기분 나쁜 적막 뿐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벽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발밑에서 철벅거리는 웅덩이를 통해 이 무역선이 가라앉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순간 벽에서 판자가 떨어져 나오더니 흘러 나오던 물방울이 물줄기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얼마나 더 떠있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때 코너가 조만간 발견하게 될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그토록 오랜 시간을 찾아 다녔던 그 물자들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거로군- 아니면 적어도 이 배안에는 없는 것이던지.

이 사실을 흥미롭게 관찰하던 중 소리가 들려 몸을 틀자 그곳에는 벤자민 처치가 양손으로 총을 겨눈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안녕하신가, 헤이덤.” 그가 으르렁거리듯 말하더니 이내 방아쇠를 당겼다.

괜찮은 솜씨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좋은 솜씨를 가졌기에 자신이 우위를 점한 즉시 방아쇠를 당긴 것이리라, 또한 좋은 솜씨를 가졌기에 정조준이 아닌 나의 우측을 쏜 것일 터이다- 왜냐하면 오른쪽으로 주로 싸우는 내가(right-sided fighter) 자연스레 강점을 지닌 우측으로 피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를 훈련 시킨건 나였다. 내가 우측이 아닌 왼쪽으로 미끄러지자 그의 총알은 허공을 지나 선체에 박힐 뿐이었고, 나는 놈이 칼을 빼들기 전에 재빨리 굴러 멱살을 잡으며 총을 쳐낼 수 있었다.

“우리에겐 꿈(dream)이 있었잖나, 벤자민.” 놈의 얼굴에 소리쳤다. “자네가 부수려고 하는 그 꿈 말일세! 그러니 타락 해버린 내 친구여, 이제는 값을 치룰 때야.”

놈의 사타구니를 걷어차자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구부렸다. 복부와 턱에 연속해서 주먹을 날리자 피범벅이 된 이빨 두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놈이 쓰러지도록 두자 이미 바닷물로 젖어가기 시작하는 바닥에 물을 튀기며 자빠졌다. 이내 배가 또 한번 휘청거렸지만 내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벤자민이 손과 무릎을 모으며 다시 한번 일어서려 하자 이번엔 발로 걷어찼다. 놈에게 숨이 얼마나 붙어있는지 따위는 더이상 상관없다. 놈의 발을 끌어 드럼통에 밀쳐놓고 밧줄을 찾아 몸뚱이를 세운 채로 단단히 죄었다. 고개가 떨어지자 머리채를 잡아 놈의 눈을 마주하고는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콧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자 나는 물러서 손마디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만!” 뒤에서 코너가 소리쳤다.돌아보자 그가 역겨운 표정으로 나와 벤자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 온건 이유가 있어서...”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명백히 다른 이유들이지.”

그러나 코너는 나를 지나 이제는 발목까지 차오른 바닷물을 철벅이며 벤자민에게 향했다.

“당신이 훔쳐간 물자들은 어디에 있지?” 코너가 물었다.

벤자민이 침을 뱉었다. “지옥으로 꺼져버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영국 국가(Rule Britannia)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앞으로 나섰다. “입 닥쳐, 처치.”

내 말로는 멈추지 못했다. 그는 계속해서 노래했다.

“코너, 저 자에게서 네가 필요한 것은 받아내고 이제 끝내자꾸나.”

마침내 코너가 앞으로 나섰다, 칼날을 해제시킨 채로, 그리고는 벤자민의 목으로 가져갔다.

“다시 묻겠다,” 코너가 말했다. “당신 화물은 어디에 있지?”

벤자민이 그를 보더니 눈을 껌벅였다. 그 잠시동안, 나는 그가 코너에게 욕설을 하거나 침을 뱉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대신에 입에서 나온 것은- “맞은편 섬에서 수송을 기다리고 있지. 하지만 네 놈에겐 자격이 없어. 네 것이 아니야.”

“그래, 내 것이 아니지,” 코너가 말했다. “그 물자들은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를 믿는 남녀들을 위한 거야. 당신 같은 자들의 압제에서 자유롭기 위해 싸우다 죽는 그런 사람들의 것이지.”

벤자민이 애석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영국제 철로 만들어진 총으로 싸우는 그 남녀들을 말하는 건가? 영국인이 만든 붕대로 상처를 감는 그 자들을 말하는 거야? 우리가 일을 다 해놨으니 놈들에겐 참 편리 하겠군. 상이라도 줘야할 일이야.”

“당신은 범죄를 둘러댈 핑계만 장황하게 늘어놓는군. 마치 당신은 무고하고 그들이 도둑인 것처럼 말이야.” 코너가 반박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관점의 문제일 뿐이다. 인생에 정당하고 공평하면서 위협이 되지 않을 한가지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네 녀석 생각엔 왕실이라고 명분 하나 없는 줄 아나? 그들에겐 배신감 느낄 권리가 없나? 템플러에 맞서기로 결심 했으면 이보다는 더 잘 알았어야지 자신들의 일을 정당하다고 보는 사람들 말이다. 또다시 네 녀석의 행동이 대의를 위한 것이라 주장 하려거든 잘 생각해보지 그래. 너의 적은 너와는 달리- 명분 없이 행동하지는 않거든.”

“당신 말에 진심이 있을지는 모르나,” 코너가 속삭였다. “진실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끝내었다.

“잘했다,” 벤자민의 고개가 떨구어지고 가슴에서 스며나온 핏방울이 물에 번질 때 내가 말했다. “놈의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자, 네가 섬에서 물품을 되찾는데 내 도움을 원할꺼라 생각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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