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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내가 미안해 -8-

소이사랑(222.102) 2024.04.26 10:29:17
조회 263 추천 1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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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주와 함께 내무반으로 돌아오니, 어디 짱박혀 있는지 모를 상경들이 모두 돌아와 있었다.

강승희, 김현리, 민지선, 육근옥, 설유라.

정말 숨막히는 조합 가운데 라시현은 그들의 시선을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다희, 리아. 잠깐 나좀 도와주겠니.”

“일경 류다희.”“일경 마리아?”


자리로 향하자마자 곧바로 관물대를 열어봤다.

안에는 짱 박아둔 사제 담배와 책 몇 권, 그리고 근무복과 활동복이 있었다.

뭔가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것들을 하나둘씩 관물대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라시현 상경님?”


자신의 행동이 의아했던 걸까.

내무반에 있는 거의 모든 인원의 시선이 전부 저를 향하고 있었다.

특히 설유라가 이쪽을 향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그녀와는 딱히 나눌 대화가 없었기에 시선을 무시했다.


“미안하지만 내 짐좀 정화 옆으로 놔줄 수 있겠니.”


그 한마디에 다희와 리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당황하는 사람은 그녀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쪽에 시선을 집중하는 사람들 모두,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아해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마리아가 “잘못들었습니다?” 하고 되물을 뻔했지만, 변한 라시현의 모습을 접한 다희는 그녀의 짐을 챙겨서 오정화의 옆자리에 두려고 했다.

햇볕이라고는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으슥한 구석진 자리로 옮기려 했다.


“너, 지금 뭐해?”


설유라가 나타나 다희의 앞을 가로막기 전까진.


“설유라 상경님.”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두 사람은 맞선임, 맞후임 관계이기에 앞서 중대에서 알아줄 정도로 서로 각별한 사이였다.

설유라는 라시현을 항상 감싸줬고, 그녀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줬다.

반면 라시현은 그런 설유라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깍듯하게 예우를 다해주었고.

그런 두 사람이 지금 내무반 안에서 살벌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리라고는 두 사람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박민주 수경님과 이야기 나눈 일입니다.”

“....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

“무엇이 말입니까.”


무미건조한 시선.

처음에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담아서 저를 바라보던 그 시선마저도 이젠 완전히 사라졌다.

설유라는 입술을 깨물고서 앞에 있는 제 맞후임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줄 텐데.’


만약 시현이 조금이라도 굽히고 들어온다면 방금까지 엇나간 일들은 모두 용서해줄 생각이었다.

그만큼 그녀를 좋아했기에, 더 나아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맞후임이었기에, 함께 오래토록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다.

군생활이 끝난 뒤에도.

그런데 지금 그녀의 시선은 아까만도 못해졌다. 마치 남을 바라보듯, 차갑기 그지없는 시현의 시선 앞에 설유라의 기분은 더더욱 바닥으로 흘러갔다.

나중에 가서 단둘이 이야기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시현의 시선을 보고서 유라는 해선 안 될 말을 꺼냈다.


“내가 못 봤을 것 같아?”


오정화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그 말에 라시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정도 했으면 유라는 시현이 그만 제 말을 알아듣길 바랐다.

삐딱선은 그만하라고. 더 이상 봐주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시현의 표정은 뒤바꼈다.


“그러셨습니까?”

“너, 너!”


냉소를 머금고서 매서운 시선으로 시현은 유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선임에게 보인 적 없는.

특히 유라에겐 더더욱이 보인 적 없는 표정.


“챙짱의 지시니까, 어서 움직이렴.”

“예, 예쓰!”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먼저 자리를 피한 건 라시현이었다.

지금 그녀와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날의 자신이 떠올랐고, 덩달아 오정화에 대한 혐오감이 역겹게 느껴졌다.


‘동기가 전출간 것 가지고 사람을 자살로 몰아넣는 건 맞는 일일까.’


터벅터벅. 옮긴 자리에는 정화가 앉아있었다.

탁해져 버린 눈빛과 의기소침한 얼굴, 그리고 자신감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두 어깨.

아마 박민주도 이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자신에게 허락해준 것이겠지.

한숨이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너니까. 그러니 더욱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정화는 시선을 바닥에 두었다.

두 눈으로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없더라도 태평하게 돌아가는 내무반.

누군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끝없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불안했고, 무서웠으며,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다른 이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시현아.’


자신의 옆자리로 옮겨온 그녀.

자신에게 떠나가라고 소리치던 그녀, 라시현이 지금 옆에 있었다.

몸이 자연스럽게 떨렸다.

네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갑자기 상냥해진 그녀가 너무나 불안했다.

분명 바닥으로 내리 깔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시선을 마주하게 된 시현이는 저를 보고 웃어왔다.


‘아.’


너의 웃는 모습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상처받은 마음이 아직 다 낫지 않았기에 나는 널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

네가 상냥해지길 바랐다.

이런 식으로 나를 바라봐주길 바랐다.

그런데 막상 네가 이렇게 다가와 주는데도 나는 몹시 두려워졌다.


“잘 지내자. 정화야.”


시선이 떨리는 와중에 시현이 귓가에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상시처럼 차갑고 날이 바짝 서있는 것이 아닌 상냥하고 부드럽게.

타인이 들으면 안 되기에 조용했지만,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마음이 멋대로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에게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정화는 그곳을 바라봤다.


‘.... 아, 안돼.’


그곳에는 서슬 퍼런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는 설유라가 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하자 지난 날에 겪었던 일들이 플래시백 됐다.

손이 무섭게 떨렸다.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설령 자리를 벗어난다 한들 이곳은 군대였다.

군대 안에 갇혀있는 지금 이곳에서 그녀에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오정화.”


잠짓 날카로운 목소리로 저를 불러오는 라시현.

그에 자신은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녀가 선임들 몰래 자신의 떨리는 손을 잡아왔다.


“어딜 한 눈 파는 거야.”


자신의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손과 달리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가 잡아준 덕분에 떨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겉으로는 차갑게 구는 그녀,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식으로 나를.

아직은 모르겠다.

아무것도.

그렇지만 지금 당장만큼은 마음이 편안했다.

적어도 지금은 너 덕분에, 내 마음이.



...


본격 정화 챙기기 시작

사랑해 정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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