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D&D식 던전 판타지는 SF를 쓰까먹는 쪽이 전통이다. 故 가이객스 옹 본인도 SF의 팬이기도 했지.

레이저 권총은 대대로 D&D 공식 데이터로 수록되었었다. 단지 그걸 써먹을 캠페인 세팅이 적당한게 많지 않을 뿐.

故 가이객스 옹을 비롯한 옛날 D&D 제작진들은 "우리는 암튼 톨킨 영향 안 받았습니다"라고 열심히 말하곤 했음.

개인적으로는 톨킨식 "하이 판타지"와 D&D식 "던전 판타지"는 구분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인데... 이건 또 나중에 할 말일듯.

하지만 둘을 구분해야 한다고 해서, 톨킨이 D&D에 준 영향이 하나도 없느냐? 그건 아니지.

채찍과 검을 들고 불길에 휩싸인 뿔과 날개를 지닌 거대 악마인 발러 (Balor), 가벼운 희귀 금속의 대명사인 미스랄 (Mithral), 인간의 허리깨 즈음 오는 키의 인간형 종족인 하플링 (Halfling)...

솔직히 그냥 슥 훑어보아도 그 유사성을 쉽게 느낄 수 있어. 그냥... 저것들은 발로그, 미스릴, 호빗이잖아?

사실 극초기에는 저 명칭을 그대로 쓰기도 했었어. 하지만 당연하게도 톨킨 재단의 지적을 받았고, 이후 이름을 바꾸게 된거지. 별로 바뀐건 없어. 눈가리고 아웅이지.

(반지의 제왕에서 "키가 큰 종족"들이 호빗을 "반인족 (Halfling)"이라 부르는 장면이 있기도 해)

뭐 지금은 해즈브로 산하니까 돈도 많아져서 매직 반제 콜라보 팩에서 호빗들을 하플링이라고 내버리는 돈법사가 되었다. (당시에는 TSR이었겠지만)

참고로 저 하플링 유형은 포가튼 렐름 콜라보 팩에서 먼저 나왔음. 뭐, 가운데땅의 난쟁이들이 자기를 크하자드라고 부른다 해도 카드 유형은 드워프잖아? 그런 느낌이라 보면 될듯.

아무튼 대충 TSR 시절 배운 사실: 저작권 상, 이런걸 그대로 가져다 쓰면 걸린다.

그런데 D&D를 TSR로부터 받은 돈법사는 역시 저작권의 재미있는 법칙을 이용했다: 기본적으로 룰, 즉 게임을 하는 방법에는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더라!

게임에 "유사성"이 넘치는 이유가 그거임. 게임의 진행 방식에는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음.

(그래서 문제 삼는 것들은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쓰이는 것들임. 게임 내의 코드, 모션, 일러스트를 뜯거나 배껴서 똑같이 가져다 썼다던지...)

그러면 기왕 그런거, 그냥 "선심 쓰는 척" 내어주면 우리 이미지에도 좋은거 아님?

그래서 그렇게 했다.

돈법사는 OGL, Open Game License라는 것을 붙여서 게임의 룰적인 부분을 세상에 풀어버림. 이것이 SRD, System Reference Document라는 물건.

https://www.d20srd.org/index.htm

The Hypertext d20 SRD (v3.5 d20 System Reference Document) :: d20srd.org

The Hypertext d20 SRD (v3.5 d20 System Reference Document) :: d20srd.org

www.d20srd.org

(3.5의 SRD)

저번에 쓴 글에서, 그냥 구글에 검색만 하면 D&D의 룰이 나온다고 했었지. 그 이유는 왜일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bg3&no=343157

"원본 룰에는요..." "이 자료 쩜오잖아;;" - 판본의 구분 - 발더스 게이트 3 마이너 갤러리

발갤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질문글과 그 댓글.

gall.dcinside.com

그냥 공개되어 있으니까! 이게 바로 SRD다. 설정 및 고유명사는 하나도 안 넣고, 룰만 정리해서 공개한 자료집.

그렇게 3.5 시절, TRPG판은 대 d20 시대를 맞는다. 이걸 써먹어도 합법이니까.

당시에는 정말 온갖 것들이 3.5 기반 d20으로 나왔다. 양덕들이 좋아할 것들만 아니라, 기존 다른 시스템을 쓰던 TRPG도 d20 버전으로 책 한 권씩은 냈다.

파이조의 패스파인더나 펠그레인의 13시대는 아예 OGL 달고 출판된 상업룰임.

뭐, 이렇게 쩜오가 어떻게 되고, 사탄이 어떻게 되고, 오판이 어떻게 되고, 원댄디가 어떻게 되고... 많은 이야기가 따라오지만. 일단은 저작권 이야기를 마저 해보자.

그래서 SRD에 포함되지 않는 설정 및 고유명사는 뭔데?

The following items are designated Product Identity, as defined in Section 1(e) of the Open Game License Version 1.0a, and are subject to the conditions set forth in Section 7 of the OGL, and are not Open Content: Dungeons & Dragons, D&D, Player’s Handbook, Dungeon Master, Monster Manual, d20 System, Wizards of the Coast, d20 (when used as a trademark), Forgotten Realms, Faerûn, proper names (including those used in the names of spells or items), places, Red Wizard of Thay, the City of Union, Heroic Domains of Ysgard, Ever-Changing Chaos of Limbo, Windswept Depths of Pandemonium, Infinite Layers of the Abyss, Tarterian Depths of Carceri, Gray Waste of Hades, Bleak Eternity of Gehenna, Nine Hells of Baator, Infernal Battlefield of Acheron, Clockwork Nirvana of Mechanus, Peaceable Kingdoms of Arcadia, Seven Mounting Heavens of Celestia, Twin Paradises of Bytopia, Blessed Fields of Elysium, Wilderness of the Beastlands, Olympian Glades of Arborea, Concordant Domain of the Outlands, Sigil, Lady of Pain, Book of Exalted Deeds, Book of Vile Darkness, beholder, gauth, carrion crawler, tanar’ri, baatezu, displacer beast, githyanki, githzerai, mind flayer, illithid, umber hulk, yuan-ti.

이렇게 되시겠다.

대충 말하자면... 던전 앤 드래곤이라는 상표명을 직접 쓰지 말고, 책 이름을 바로 명시하지 말며, 돈법사 사명이나 d20이라는 시스템 명칭을 팔아먹지 말고, 포렐, 페이룬, 고유 명사 (주문이나 템에 붙은 것도 포함; 그냥 멜프 언급만 말고 멜프의 산성화살에서의 멜프도 안됨), 그 외 지명이나 단체명, 몇가지 괴물들.

판타지 장르를 보던 사람들 중에는 "비홀더는 저작권에 묶여서 못 쓴다"는 얘기를 들어본 경우가 많을텐데, 맞음. 그리고 기스나 마인드 플레이어도 여기 포함.

종족 자체가 SF스럽기도 하지만, 진짜 맨 위의 표지에도 나올 정도로 근본 종족인데 아는 경우가 많지 않은 이유는... 이건 D&D 고유 설정이라 안 풀려서 써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

https://www.reddit.com/r/dndnext/comments/10mynrc/all_pi_that_wotc_accidentally_released_under_cc/

Reddit - Dive into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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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돈법사 놈들이 찐빠를 내면서 최신의 OGL에는 이 고유명사들을 제한하는걸 까먹어버려서 사용이 가능하긴 할거라던데... 왜 새 OGL은 아직 아무도 안 쓸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pg&no=175738

75만? 7억5천만을 벌어도 라이센스비는 없다 - TRPG 마이너 갤러리

https://gizmodo.com/paizo-wizards-of-the-coast-dnd-open-rpg-ogl-1-1-1849982443 Paizo Announces Its Own Gaming Li

gall.dcinside.com

유료라고 해서. (지금은 철회함)

사실 아직 발표 안됨.

돈법사는 OGL을 달고 낸 서적이 75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내면 라이센스비를 돈법사에게 제공해야 하는 식으로 비밀 업데이트를 하던 중 들키게 된다.

(그 외에도 여러 돈법사에 유리한 조항이 있었음)

이것이 빌미가 되어서 파이조를 필두로 한 TRPG 출판사들과 D&D 서드파티들은 탈-OGL, 새로운 라이센스인 ORC 라이센스의 제작을 발표하는데...

과연 도둑의 왕 파이조는 폭정으로 민심을 잃은 술탄 돈법사를 몰아내고 다시금 1위의 자리를 탈환할 수 있을 것인가?

(발붕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그냥 대충 넘어간 부분이 많으니 본문에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댓글로 추가 설명해주면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