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라노르 승전식과 헤러시의 유혈 사태가 종식된 지 오랜 세월이 흐르고, 몰락의 어둠이 드리우고 몇 년 후, 인류는 한때 그들이 나눴던 희망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테라 밖으로 걸음을 내딛고 재결합을 이어갔을 때, 희망이란 참 멋진 것이었다. 인류와 신인류 동등하게, 그들 마음에 내재되어준 영혼이자 그들의 영혼을 북돋아주었으니. 그들은 계몽가였다. 그들 모두가. 옛밤의 기나긴 그림자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된 세계와 별들을 밝혀줄 순수한 불을 지니고 다닌 자들.

역사는 이 시기를 대성전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대성전이란 이름은 이를 이끈 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었다. 황제, 현재는 굽어 살피는 신이 된 그는, 여러 번 그의 아들들에게 더 나은 이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말하곤 했다. '성전'이란 단어는 복수와 정화, 세계를 쓸어버리고 모든 적들에게 무자비한 멸망을 안겨줄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적들이라 할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호루스 루퍼칼이 말했었다.

'고립과 역경이 우리와 은하 사이를 가로막았다. 옛 길과 교차로들은 사용되지 않은 채로 폐기됐고 미동도 안하는 먼지에 파묻혔다. 우린 그 길을 수 세기 동안 건너지 않았다. 우리가 그 길을 건너는 건 불가능했다. 물론, 우린 무기를 지니고 갑옷을 착용했으며, 적들의 등장에 철저히 준비되어 있다. 허나 우린 그들을 적이라 예상해서도, 그들이 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대우해선 안될 것이다'

전쟁이 벌어졌다. 필요에 따른 폭력적 정복의 업적이 생겨났다. 역사가 그 시대를 기억해줄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저항한 모든 세계와 문화들, 친선 제안의 거부, 인류의 도래에 앞을 가로막고 무기를 꺼내든 모든 외계종들이 있을 때마다, 원정 함대가 본인 세상의 하늘에 정박하자 안도로 기뻐하며 환호하던 백여 개의 세상 또한 있었다. 후대에 대성전이라 불리울 시기는, 대부분의 경우 평화적이었다. 테라 밖을 나선 원정 함대는 마치 파쇄 폭탄의 조각처럼 나아갔지만, 그들 여정의 목적은 파괴가 아닌 인류라는 종의 잊혀지고 흩어진 가지들을 찾는 데에 있었다. 투쟁의 시기와 옛 밤에서 쪼개졌던 은하의 문화를, 재건하고 재점화하려 한 것이다.

이제 인류는 그러한 희망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한때 그들을 이끌었던 희망을 잊어버렸다. 헤러시 전쟁의 상처는 역사의 기록에 무자비할 정도의 구두점들을 남기며 직전의 세월에 존재했던 낙관주의의 영혼을 떠올리거나 심지어 존재했음을 믿는 것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죽기 이틀 전, 호루스 루퍼칼은 모든 희망이 죽었음에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그는 내전을 끝낼 살육을 예견하지 못했다. 그와 가까웠던 자들, 물론 그때 쯤 그의 곁엔 아주 소수만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호루스 루퍼칼이 울라노르 이전, 다빈 이전, 이스트반과 칼스 이전의 세월을 애도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희망을 품은 영혼들, 부서지지 않을 것만 같던 결의의 시대. 헤러시의 환상이 아닌, 미래를 위한 영광스럽고 고무적인 표본이 되어줄 웅장한 꿈.

가능할 것만 같았던 미래, 죽을 가치가 있었던 미래, 그리고, 분명 살 가치가 있었던 미래가, 갑자기 아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