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저장고는 리멤브란서들과 근무를 끝낸 군인들로 북적였다. 이샤크는 바에 가기 위해 사람들을 어깨로 수도 없이 밀치고 나가야 했다. 물론 그러다 작전 지휘 갑판에서 근무하던 군인과 부딪치고는 한 소리 듣는 상을 차지했지만 말이다. 겨우 바 테이블에 도착한 그는 플라스틱 비커에 담긴, 엔진 오일을 증류해서 만든 싸구려 술을 한잔 주문했다(이런 곳에서 지내면서 돈을 아낀다는 것은 말도 안됐다.) 당연히 몸에 좋을 리는 없는 술이었지만 지금 당장 죽지는 않으니 그러려니 하면서 마시면 될 일이었다. 그는 그 값으로 구리 동전 몇 개를 지저분한 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초인들이 사라지니 그의 주머니는 채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샤크 주위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은 죄다 똑같았다. 행성 강하, 반역, 그리고 호루스, 호루스, 다시 또 호루스. 그가 재미있었던 것은 이야기의 주제보다도 그것들을 떠드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황제가 대성전을 저버렸다,' '호루스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는 정당하게 반란을 일으킨 거다.' 등의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지금껏 한 달도 넘게 함선을 돌아다녔다. 워프를 항해하는 기간 내내 말이다.

이샤크는 바로 옆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남자가 뒤돌아보자 수없이 나있는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유카 연대 근무복을 입고 있었고 보조 무기는 홀스터에 매달려 헐렁였다.

"뭐요?"

"방금 반란을 일으켜도 정당하다고 했지요? 저한테는 인류 제국에 반기를 드는 말로 들리는데요."

유카 연대원은 코웃음을 한번 치더니 다시 뒤돌아 앉아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었다. 이샤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그걸 듣고 싶어요."

"꺼져, 이 애송아."

"그냥 답변만 해주면 돼요. 어려운 일 아닙니다."

이샤크가 미소를 지었다. 유카 연대원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이빨 사이에 낀 오트밀 조각만 아니었으면 협박이라고 착각했을 법한 미소였다.

"워마스터께서는 이 은하계의 절반을 점령하셨지. 황제폐하는 그 동안 뭘 했나? 그 양반은 테라에 편히 앉아 50년 가까이 숨어있단 말이야."

아, 거 참 실망스러운 대답이로군. 그래, 항상 이런 식이다. 제대로 가늠할 수 조차 없이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느라 정신이 없는데도 그걸 이해조차 못하는 것들은 당장 눈앞에서 쉽고 편하게, 직관적으로 전투를 이끄는 이를 더 좋아하는 법이다. 숫적으로, 질적으로, 전술적으로 우세한 호루스의 전투는 눈에 잡힐 듯 훤하니까.

"한번 정리해보죠. 당신은 절대로 질 수 없는 군세를 가지고 전쟁을 이끄는 자를, 이 은하계 전체에 걸쳐있는 제국을 다스리는 사람보다 더 높게 여기는 건가요?"

유카 연대원은 이샤크의 말에 코웃음을 치더니 몸을 돌려 리멤브란서를 무시했다. 잠깐이지만 이샤크는 그 모습에 자기가 혹시 중요한 내용을 빠뜨렸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워드 베어러 군단은 호루스가 일으킨 반역을 진압하고자 제국 황제의 칙령을 받아 이곳에 왔다. 그런 워드 베어러 군단을 보조하는 원정 함대에 소속된 군인이 호루스의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는 술을 한 입 마셨다. 괜히 건드려서 이야기 상대만 잃어버렸다는 후회감이 들어 바 테이블 너머에 있는 여종업원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이거 맛이 꽤 괜찮네."

추근대는 것도 질린 이샤크는 조용히 주변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언제나처럼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는 한 귀로 흘려버리며 열심히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이럴 때 그는 평소와는 달리 신중하고 조용히 집중할 줄 아는 남자였다. 그 편이 불필요한 마찰이나 싸움을 피하는데 효과적이었다. 군인들이 내려오기 시작한 이후로 이곳은 더욱 더 싸움이 일어나기 쉬운 곳이 되어버렸다.

"워드 베어러 군단은 절대로 워마스터를 공격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전쟁을 하러 온 것이 아니야. 협상이나 적당히 하다가 끝날테지."

누군가가 확신에 차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샤크는 그를 비웃었다. 멍청한 녀석, 그게 실패하면 바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모르겠냐.

"황제폐하는 대통합 전쟁 시절에나 대단했던 위인이야. 이제는 골동품같은 존재라고. 그 분이 진짜 제국의 주인이라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야만 해."

"워마스터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어. 황제는 그저 겁에 질려서 과잉 반응하고 있는 거라고."

"로가께서 오신 마당에 전쟁은 무슨. 그 분이 그 꼴을 내버려 두실 것 같은가?"

"아니, 막말로 사태가 정말로 심각하다고 하자고. 그러면 황제 본인이 직접 와야 할 것 아냐? 왜 다른 이들을 보낸 거지?"

"쳇, 나는 요즘 그 양반이 자기 제국을 챙기려는 생각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워."

"내가 듣기로는 호루스가 다른 프라이마크들을 이끌고 테라로 갈 것이라는군."

이샤크는 마시던 잔을 비우지 않고 민간인 거주 구역 위에 위치한 자신의 개인실로 향했다. 그는 자신이 싸구려 증류주가 몸에 안 맞았다거나 분리주의자들이 떠드는 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아 자리를 뜬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더 세속적이고 단순한 이유였다. 가진 돈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한 절반쯤 왔을까? 그는 마음을 바꿨다. 개인실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비록 술 한잔 사 먹을 돈도 없는 그였지만 여전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남아있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이란 바로 갈 보르박을 인터뷰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수 없이 많은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샤크는 갈 보르박 대원을 만나지 못했다. 듣기로는 황제폐하의 친위대인 쿠스토데스들 마저도 갈 보르박 대원들의 개인실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샤크는 계속 거부 당하는 것에 질리기도 했고 전투 취재에 참여해야 했기에 한동안은 다시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돈도 다 떨어지고 할 것도 없어진 지금, 다시 한 번 전의를 불태울 때가 온 것이다. 이샤크는 카메라의 배터리를 확인한 뒤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 줄 이들을 찾아 나섰다.

글 짤려서 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