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시 일어났을 때, 팔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손은 무게를 단 것처럼 무거웠고, 팔 전체가 무언가에 눌린 것 같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눈을 뜨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끙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간신히 그의 팔뚝 안 쪽에 부드러운 살을 만져볼 수 있었다.

욱신거리는 고통을 참으며 남자는 자신이 얼마 동안 기절해 있었는지 궁금했다. 잠에 든 기억은 없으니 기절이 맞을 텐데, 뭐 어차피 특별할 것도 없으니 아무래도 좋겠다 싶었다. 잠에 들었든 기절했든 그는 이곳에서 기분 좋게 자리에 누운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잠이란 '기억 사이의 공백'과 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저들이 자신을 잠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기절시키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너의 이름은 26호다+

남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꽤나 부드러워졌다. 물론 고압적인 태도는 여전했지만.

+너는 새로운 이름을 얻기로 동의하였으니, 곧 첫 번째 단계에 들어선 것이리라. 이제 너의 이름은 26호다+

"내 이름..."

26호라 이름 붙여진 남자는 침을 삼키며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되뇌었다.

"내 이름은 26호란 말이지."

+지금이 몇 년도지?+

그는 입술을 핥았다. 대답을 잘못하면 자신이 방금 전 이룬 '성과'를 잃어버리게 될까 두려웠다.

"나는 몰라. 정말이야. 맹세코 나는 모른다고."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남자는 머뭇거렸다. 진실만으로 부족하다면 어떡하지? 공포에 압도된 그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래서 알고 싶어. 지금은 몇 년도지? 올해가 언제인 거야?"

정적이 흘렀다. 목소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꽤 긴 시간 동안 답하지 않았다. 다시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406년이다+

그게 서력인지 우주력인지, 어쩌면 자신이 모르는 달력 체계인지 모르겠지만 남자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궁금한 것은 그 대답에 다시 되물어도 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럼...나는 몇 살이야?"

+너는 테라의 기준으로 15년 동안 존재했다+

남자는 거의 웃을 뻔했다.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어난 애송이었던 것이다. 꽤 오랫동안 남자는 자신이 다 늙은 성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남자는 어쩌면 그 생각이 사실일지도 몰라서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26호, 일어나거라+

남자는 조그맣게 욕지기를 내뱉었지만 순순히 목소리의 명령에 따랐다. 기운이 없어 고통스러웠지만 벽을 지지대 삼으니 그럭저럭 일어설 수 있었다.

+눈을 뜨거라+

"난..."

+눈을 뜨거라+

그가 눈을 깜박였다. 떨리는 손가락 끝이 차갑게 식은 얼굴을 만지며 눈가를 쓸었다. 그의 눈앞에서 더러운 손가락이 움직였으나, 그 눈동자엔 빛이 스며들지 않았다. 그는 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눈을 뜨거라+

"이미 떴어."

+26호, 눈을 뜨거라+

"난 떴어! 눈을 떴다고!"

+26호, 다시 말한다. 눈을 떠라+

남자는 어둠 속에서 울부짖으며 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벽에 번진 핏자국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말했잖아! 난 눈을 뜨고 있다니까!"

+26호, 눈을 떠라+

조금 진정되자 남자는 다시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들어 순순히 말에 따랐다. 그는 이미 뜬 눈을 다시 크게 뜨려고 했고, 그제서야 깨어났다.

황제의 선물 프롤로그는 뭔가 번역하면서 암 걸리는 느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