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이 그의 얼굴을 노리며 다가왔다. 천천히, 에너지를 두른 칼날이 로가의 황금색 피부를 날카롭게 찢었다. 한꺼풀씩 살갗이 벗겨지고 그 틈을 전류가 타고 들어가 황금색 살점을 까맣게 태웠다. 여기서 살아난다고 해도 그 상처는 평생 그의 턱 끝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 역시 잘 알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둘을 감싼 싸이킥 불꽃이 로가의 고통에 반응하여 밝게 타올랐다. 코락스는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고, 그 짧은 방심이 그의 완전한 승리를 앗아갔다.

로가는 재빨리 레이븐 가드 군단의 주인을 밀어냈다. 코락스가 부스터를 점화하기도 전에 들어올려진 일루미나룸은 이미 목표물을 향해 내려지고 있었다. 워드 베어러의 군주는 칼날을 쳐낸 뒤 주먹을 휘둘러 파워 클로가 장착된 건틀릿을 완전히 부셔버렸다. 하지만 그는 그 사이를 파고든 두번째 칼날을 막지 못했다.

족히 1 미터는 될 법한 칼날 손톱이 로가의 배를 관통했고, 척추 부근을 뚫고 솟아오른 칼날 끝이 번뜩였다. 프라이마크 같은 인외의 존재에게 그 정도는 큰 부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코락스가 손톱을 움직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까마귀 군주는 로가의 복부를 꿰뚫은 손을 그대로 위로 들어 올렸고, 하중이 실린 칼날은 황금빛 거인의 몸 속을 사정 없이 헤집었다. 그는 내부에서부터 로가를 반으로 갈라버리려는 심산이었다. 부상 당한 프라이마크의 손에서 일루미나룸이 힘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로가는 힘겹게 손을 들어 자신을 조각 내려는 까마귀 군주의 목을 움켜쥐었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코락스가 형제의 손길을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로가는 힘이 다하기 전 이마로 코락스의 얼굴을 찧었고, 덕분에 그의 코가 박살났지만 몸 속에 박힌 칼날은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 군주는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되는 로가의 박치기를 버티면서도 꿋꿋이 칼날을 움직였다. 로가는 쿨럭거리며 말했다.

"황제를 위한다라...허나 그는 거짓말을 했어. 아버지는 우리 모두에게 거짓말을 했단 말이다."

이제 그의 입에선 말보다 피가 더 많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코락스는 대답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작업에 집중했다. 칼날이 뼈에 걸린 듯 금속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허나 까마귀들의 주인은 마치 톱질을 하듯 손가락을 살짝 앞뒤로 움직여 뼈들을 모두 끊어냈다. 뼈가 서서히 부서지는 고통은 처음 복부를 꿰뚫린 것보다 더욱 극심했다. 로가가 손을 들어 복부를 짚었다. 빠져나온 칼날에는 전류에 증발한 피가 붉은 안개를 피워 올렸다.

"아버지는 거짓말을 했어."

로가가 무릎을 꿇었다. 코락스는 공허를 박아 넣은 듯한 검은 눈을 그에게 고정한 채 한 쪽만 남은 클로를 들어 올렸다.

"그래. 끝장내거라."

황금빛 거인이 중얼거렸다. 둘을 깜싸던 싸이킥 바람과 안개같이 넘실대던 불꽃도 모두 사라졌다. 이제 로가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로가 아우렐리안, 황제의 17 번째 아들, 아버지를 형상화한 존재, 전쟁 도구로써 만들어진 20개의 영혼 중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한 자. 그리고 마침내 이 전장의 한복판에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고 있었다. 자신의 양 어깨를 짓누르는 그 불결한 아이러니는, 우습게도 꽤 적절하다고 느껴졌다.

다리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감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았고,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고통 뿐이었다. 시야도 어두워져 바로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처형집행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급하게, 그리고 과하게 싸이킥 재능을 열어버린 탓일까. 눈가를 좁히며 집중하니 흐릿하게나마 높이 들어 올려진 파워 클로의 칼날이 보였다.

"어서 죽여!!"

로가가 자신의 형제에게 소리쳤다. 그 외침이 마치 신호라도 된 듯 칼날이 떨어졌고,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로가는 과연 죽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