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xxvii 잠입

마침내 해치가 차례로 열린다. 긁히는 소리,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서로 맞물려 있던 네 겹의 아다만틴 층이 풀리고 벗겨진다. 내부 차폐막이 뒤흔들리다 사라진다. 인장관의 안식처는 마치 금고처럼 요새화된 공간이다. 습기 어린 석재와 책의 먼지가 뒤섞인 퀴퀴한 공기가 불 꺼진 입구에서 흘러나온다. 며칠, 어쩌면 몇 주 동안 여기 온 이는 아무도 없다.

아몬은 일행을 어둠 속으로 이끈다. 연필처럼 얄팍한 광선이 두꺼운 출입부를 통과하는 이들을 스캔해 그들의 생체 패턴을 출입 기록부에 기록한다. 처리 설비가 공기를 순환시키며 쿵쿵대는 묵직한 울림이 숨죽여 울린다. 그들의 앞에 움직임을 감지한 조명 설비가 깜박이기 시작한다.

내부는 외부에서 본 것보다 훨씬 넓다. 석벽 위로 플라스틸, 포가 보기에는 사이큐리움으로 보이는 보강용 받침대가 늘어서 있다. 위로 향하는 나선형의 석조 계단은 흡사 아성에서 보이는 드럼 포탑을 연상시킨다. 조명들이 연이어 들어온다. 각 층의 천장에 매달린 전기 조명과 구불구불한 계단 곳곳에 밝고 굳건한 별처럼 매달린 개별 조명구들이 길을 안내한다.

일행은 위로 올라간다. 2층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곡선을 그리는 벽에 딱 들어맞는 책장들이 줄지어 있다. 3층도 마찬가지로 책이 가득하다. 다만 계단이 방향을 바꾸어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듯 선을 그린다.

”흔히 보기 어려운 설계군.“

포가 입을 연다. 이제 겉으로나마 그는 발이 전혀 안 아픈듯싶다. 포가 걸음을 서두른다.

다만 아몬은 멈칫한다. 그는 안식처의 계단이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졌었음을 확신한다. 위에서 아래로, 항상 시계 반대 방향의 나선을 그리고 있었노라고.

”여기 시계가 멈췄네!“

포가 저 위에서 소리친다.

일행은 4층에 오른다. 크산투스와 안드로메다는 곳곳을 둘러보는 포를 지켜본다. 벽에는 더 많은 책이 꽂혀 있다. 그 옆에 수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간 측정 기구와 고풍스러운 과학 도구, 냉습 보관함에 보존된 표본, 해부학자의 근육 도상, 존재가 취소된 신들과 검열된 구세주들의 조각들, 앵무조개 껍데기의 단면, 카드 뭉치와 놀잇말들이 가득한 통, 밀랍 원반과 봉인들, 스탠드에 장식된 작은 고양잇과 동물의 섬세한 골격까지,

”더 많은 것을 기대했는데.“

포가 중얼거린다.

”더 많이 있소.“

크산투스가 대꾸한다.

”저 위에 더 많은 층이 있지. 저층부는 잡화점에 가까운 공간이오. 하지만 인장관께서 직접 연구하던 것들은 거의 위층에 있소.“

”필요한 걸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포는 무뚝뚝하게 되받는다(개인적으로는 이곳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인장관이 직접 쓴 원고와 기록들이 있다니?). 포는 다음 계단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아몬은 이 층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다시 계단이 비틀림을 알아차린다.

”빌어먹을, 계단이 정말 많군.“

포가 불평을 늘어놓는다.

”나는 이제 젊지 않단 말일세.“

걸음을 멈춘 포는 몇 계단을 내려오더니 책장 사이에 꽂혀 있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그도 마찬가지였나 보군.“

정교한 휴대용 의료 장비다. 꼿꼿이 세워진 장비는 휴대를 위해서인지 작은 바퀴들이 달려 있다. 산소 탱크, 마스크, 생체 신호 모니터, 소형 약품 보관함, 소형 제세동기가 결합된 물건이다. 숄로 반쯤 덮인 채 살짝 튀어나와 있을 뿐이지만, 손이 쉽게 닿을 곳에 있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렇소.“

크산투스가 대답한다.

”간혹 건강상의 이상을 겪으셨지.“

포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이에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포가 말을 이어간다.

”아, 아마도 그 작자를 제외하고 말이지. 찾아오는 나이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인장관께서는 막아내셨소.“

크산투스가 살짝 짜증이 난 듯 대꾸한다.

”그분의 실험실에는 다양한 장비가-“

”실험실이라고?“

포가 묻는다. 아무렇지 않은 말투지만, 눈빛에서 흥미를 읽을 수 있다.

”그렇소. 많은 단계들을 연구하셨고-“

”그래서 그건 어디 있나?“

포가 서둘러 계단을 오르며 묻는다.

아몬은 재빨리 그를 따라간다. 그들의 앞에 두꺼운 방폭 해치가 붙어 있다.

”열게나, 아몬.“

포가 말한다.

아몬은 뒤의 계단을 따르고 있는 크산투스와 안드로메다를 돌아본다.

”그가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오.“

크산투스가 입을 연다.

”감독 없이는 불과하오.“

”당연하지.“

안드로메다가 아몬에게 대꾸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구려.“

아몬이 입을 연다.

”우리 중 누구도 지금 이 꼴을 바란 사람은 없을걸.“

포가 조용히 입을 연다.

”하지만 저 밖에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네, 커스토디안. 전쟁을 멈추고 싶겠지, 그렇지 않나? 내 무기가 그 유일한 기회를 만들 수도 있어.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우리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는 걸세.“

아몬은 노인을 응시한다. 포는 살짝 뒷걸음질을 친다(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지만, 이 쿠스토데스란 놈들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놈이지. 그런 놈이 날 똑바로 쳐다본다니…) 포는 아마도 금지 사항과 제한 사항의 목록이 주어지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 표정만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조금이라도 선을 넘는 순간, 아몬은 즉시 그를 죽일 것이다.

아몬이 일련의 코드를 입력한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숨겨진 자동 방어 시스템을 해제하고 구역의 잠금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최고 수준의 암호화된 권한 입력이 필요하다. 방폭 해치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고, 조명 배열들이 깨어난다.

포는 출입구를 통해 그 안을 들여다본다. 다음 층은 작업장이다. 바닥과 벽, 천장까지 모두 스테인리스 강철 패널로 뒤덮여 있고, 벽에는 공기 세정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공간에 맞게 둥근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금속제 작업대에는 각종 장비들이 보인다. 수술 장비, 네트워크 연결 숙고기, 원심 분리기, 유전자 방적기와 미세 이식 장비, 세포 스캐너, 스플라이서, 유전 샘플 추출기들이 벽면의 고정대에 널려 있다. 극저온 안정화 장비가 작업대 아래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는 중이다.

”오, 정말 놀라운 물건들이군.“

포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