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xxxii 용광로의 꿈

어둠에 잠긴 참호는 흡사 오븐처럼 느껴진다. 테인은 흙으로 쌓은 벽과 겹쳐 올린 탄약 자루, 그리고 벽 자체를 뚫고 치미는 열기를 느낀다. 저 밖에서는 모든 것을 소각하는 노호가 굉음을 뿜어낸다. 굉음에 멈춤이 없다. 문틀의 갈라진 틈 사이로 화염이 흘러들고 뜨거운 연기가 새어 나온다. 문이 점차 구겨지며 흘러내릴 지경이다.

테인은 일어나 베렌돌과 두 신병에게 더 깊이 들어가라고 지시한다. 참호를 거듭 넘어가며 최대한 폐문을 이어간다. 외부의 열기 때문에 락크리트 바닥의 낡은 용제 얼룩에서 악취가 치민다.

뜨거운 어둠 속에서 네 번째, 다섯 번째 구획으로 비틀대며 걸음을 옮긴다. 아마 그들은 여기서 말 그대로 요리될지도 모른다. 이 안에서 끓어오르게 될지도. 만약 외문이 망가지고 화염이 본격적으로 밀고 들면, 그들은 살아 있는 채 화장당하게 될 것이다. 테인은 콜퀴스를, 그리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던 그 모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불타는 모습을, 녹아내리는 형상을, 살아 있는 채 죽어가는 모습을…

테인이 길을 이끈다. 이 참호지대를 벗어날 출구가 있으니까. 분명히 있다. 테인은 이 참호지대를 확보한 뒤 개인적으로 정찰하며 전체 구조를 파악했었다. 6번째 구획은 한때 군수품 보관소로 쓰인 곳이었는데, 락크리트 교차로로 이어지는 곳이다. 왼쪽으로 향하면 깊숙이 놓여 있는 방폭 상자들과 캔버스로 덮인 수면 구역이 있다. 거기서 똑바로 가면 지원 참호로 이어지는 방폭문이 나온다. 만약 거기까지 닿을 수 있다면…

테인은 저 앞에서 그 문을 본다. 플라스틸로 빚어진 문은 단단히 닫힌 채다. 테인이 문을 후려치지만, 문은 그대로 닫힌 채다. 잠금 시스템이다 서보 경첩에 전원이 공급되지 않는 것 같다. 테인은 망치를 휘둘러 자물쇠를 후려치지만, 문은 여전히 움찔도 하지 않는다. 테인은 걸쇠와 수동 볼트, 잠금 클립을 찾는다.

“막시무스…”

테인의 뒤에서 베렌돌이 으르렁거린다. 기압이 변화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들 뒤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녹여대는 노호가 비명이 된다.

테인은 양손으로 망치를 쥐고 문을 후려친다. 세 번 내리치고 나니 문틀에서 균열이 생긴다. 테인은 경첩에 걸린 채 흔들리는 문을 걷어차며 그대로 몸을 던진다. 다른 이들도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뒤따른다.

무엇이 있건, 저 뒤 구획의 목줄기를 타고 흘러드는 존재보다는 나을 테니까.

테인은 바로 문을 닫는다. 그리고 아까 도제 형제가 보였던 빠른 손놀림으로 망치로 네다섯 번 후려쳐 휜 문을 펴낸다. 다시 문은 본디 자리에 들어맞는 형체가 된다.

“막시무스.”

베렌돌이 입을 연다.

테인은 아랑곳도 안 한 채, 잔뜩 흥분해서 프레임의 금속부를 후려쳐 문을 고정시킨다.

“막시무스.”

테인은 다음 일격으로 문지방을 후려쳐 제 자리에 들어맞게 만든다.

“테인!”

테인이 몸을 돌린다. 다음 순간 테인은 압도당한다. 찰나의 순간, 테인은 기계교단이 지원 참호에도 대형 플레이머를 쏟아부어 후방 전선을 불태웠다고 생각한다. 불지옥에서 또 다른 불지옥으로 넘어온 꼴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테인을 압도한 빛은 화염의 빛이 아니다. 금빛, 선명한 노란 금빛이다. 가장 순수한 화염의 빛이지만, 화염 자체가 아닌 무언가가 발하는 빛이다.

그리고 참호는 더 이상 참호가 아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베렌돌이 묻는다.

테인은 꿈을 꾸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오류고 실수이며, 잘못된 방향이자 환상이다. 그는 탈출에 실패했다. 콜퀴스를 집어삼켰듯 화염은 테인 역시 삼켰고, 그는 죽었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그저 그의 정신이 열기로 가득찬 용광로 속에 갇힌 채, 마지막 순간에 요리해 낸 꿈일 뿐이다.

장엄하고 거대한 복도다. 공기는 차갑고, 순환 체계가 휘저을 뿐이다. 그들의 발이 닿은 거울처럼 빛나는 우슬릿 바닥에 재와 모래, 오물의 자국이 남을 뿐이다. 번쩍이는 오라마이트 벽 위에 조화와 불화의 상징, 그리고 벼락을 두른 독수리의 형상이 박혀 있다. 푸른 타일로 채워진 드높은 천장에 전기 조명 펜던트들이 매달려 있다. 복도는 끝 간데 없이 이어진다.

“이 구역에 이런 곳은 없었을 텐데…”

베렌돌이 입을 연다.

“그랬지.”

테인이 동의한다. 

“자네 아까 이곳을-”

“당연히 조사했네.”

“그러면 대체 어떻게 이 문을 몰랐던 건가?”

베렌돌이 묻는다.

“이 참호는 또 어떻고? 이건 무슨-”

“이곳은 참호가 아닐세.”

테인이 입을 연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형제여, 우리는 지금 생텀 안에 와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