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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종말과 죽음 3부] 고통의 파편들 v : 어둠 속의 빛 (完)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3.17 17: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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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파편들 v : 어둠 속의 빛



그는 그녀를 최대한 멀리까지 호위한다. 어쩌면, 가능한 것보다 좀 더 멀리. 여기까지 그녀를 데려오는 것조차 견책당할 수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그가 본래 해야 하는 것보다도 더 신경 쓰는 것인지도.


그녀는 생텀 임페리알리스의 내부에 이렇게 깊이 와 본 적이 없다. 그들의 걸음은 느리다. 그녀가 너무 허약한 상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계속 주위를 둘러보며 멈춘 채 경이에 빠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방이 폐허로 뒤덮였음에도, 황궁 속에서 그녀는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녀 눈에는 잔해와 흙, 깨진 유리 조각, 금이 간 타일, 황금빛 벽 곳곳에 남은 탄흔, 그리고 뒤덮인 피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녀는 영원의 문 아래 먼지를 헤치고 걸어가며 경외가 담긴 시선으로 올려다본다. 마치, 여전히 우뚝 솟은 기념비이자 승리와 영광 속에 빛나는 아치라도 되는 것처럼.


영원의 문은 폐허가 되었고, 상부 구조물은 다 사라진 뒤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원의 문은 장엄했다. 거기 비하면 여기 두 사람은 왜소한 존재일 뿐이다. 사실, 그 아래를 드나드는 사람들 모두가, 그리고 일광을 받으며 상처 입은 짐승처럼 절룩이는 전쟁 기계들조차 왜소해 보인다.


공기에는 연기가 가득하다. 사방에 깊고 위압적인 어둠이 깔려 있지만, 황금과 오라마이트는 여전히 빛난다. 화염을, 불타는 폐허의 잔해를, 병사들과 서두르는 의무병들이 든 횃불을 받아 빛난다. 하늘의 불길 속 섬광을, 구름 너머 흐르는 빛을, 마치 오로라처럼 빛나는 빛을 받아 빛난다.


“저게 바로 우주전이오.”


그가 그녀에게 말한다. 나머지는 그녀가 알 필요가 없다. 그녀는 상상한다. 궤도에서 서로를 찢어 놓는 함선들의 형상을.


그는 길을 안다. 와 본 적 있고, 여기 오도록 허가도 받은 존재이기에. 그들의 곁을 스치는 수많은 이들 모두, 더럽고, 충격과 혼란에 굳어 있다. 다들 중요한 업무를 서두르는 중이다. 그의 흑백으로 물든 갑주를 마주할 때마다 고개를 숙인다. 심지어 적색과 백색, 그리고 황색의 갑주를 두른 동료 아스타르테스들조차도 그렇다.


하지만, 그녀 역시 스스로 길을 아는 것처럼 느낀다. 마치 아퀼라 가도가 그녀를 여기까지 오는 내내 이끌었듯, 앞으로 펼쳐진 모든 것을, 그녀의 눈에 닿는 모든 곳까지 그녀를 이끄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은 두 행진로가 교차하며 솟아오른 공간에서 멈춘다. 지붕은 부분적으로 무너져 내렸고, 플라스틸 들보는 기울어져 있다. 마치 거대한 손가락처럼 기울어진 들보는 끊긴 케이블 가닥으로 묶여 있다. 이곳에는 다른 대전사들과 영웅들을 그려낸 황금빛 조각상들이 있다. 몇은 대좌에서 넘어진 채다. 그을음으로 뒤덮인 벽에는 옥좌에 앉은 한 형상을 둘러싼 반신과 천사들을 담은 장식이 드리워져 있다. 옥좌 위 형상의 얼굴은 손상으로 알아볼 수 없지만, 태양이 내쏘는 빛처럼 그 뒤를 둘러싼 후광을 통해 그 형상이 담은 굳건한 위엄이 전해진다.


“더는 갈 수 없소.”


그가 말한다.


“얼마나 더 갈 수 있나요? 얼마나 길이 더 남아 있나요?”


그녀가 묻는다.


“여기서부터 은의 문까지는 대략 5킬로미터 정도요.”


그가 답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가깝다. 그녀는 여기까지 올 수 있다고 생각조차 못했다.


“여기까지 데려다 주셔서 정말 갑사합니다.”


그녀가 말한다.


지기스문트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까지 데려다 주어서 정말 고맙소.”


지기스문트가 그녀를 응시한다. 킬러는 너무 가늘고 너무 연약해 보인다. 그녀를 감싸고 있는 로브는 그녀의 날씬한 몸을 감추기보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 그녀의 얼굴은 수척하고, 피부는 거의 반투명하게 보일 지경이다. 살아남아 산을 떠난 순례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고작해야 5분의 1 정도일까. 그리고, 살아남은 그들의 대부분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은 뒤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밝게 빛난다.


지기스문트의 팔에 기댄 킬러가 숨을 고른다. 그리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주변의 벽을 바라본다.


“이제 뭘 할 생각이오?”


지기스문트가 묻는다.


“아마, 경과 같은 생각이겠지요.”


그녀가 답한다.


“모두와 같은 것 아닐까요. 희망, 노력, 치유.”


킬러는 지기스문트를 힐끗 바라본다.


“그리고, 믿는 거지요.”


그녀가 덧붙인다.


그녀의 미소는, 다른 육신에 비할 바 없이 강하다. 마치 그 미소가 그녀를 지탱하는 것 같다. 한때 그녀였던 젊은 여성의 섬광이 거기 거한다. 그리고 그녀의 안에 실린 힘을 향해 말한다.저 너머 어딘가에서 비치는 빛이다. 이해의 힘이요, 수용의 힘이자, 평화의 힘이다. 올바른 방향을 볼 힘이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힘이다.


그들 모두, 그 힘이 필요하다.


“돌아가야 할 것 같소.”


지기스문트가 말한다.


킬러는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죠. 잠시만요.”


그녀가 답한다.


킬러는 절룩이며 그에게서 벗어난다. 그녀의 시선이 장식의 중심을 향한다. 옥좌 위의 형상은 도금이 벗겨지고 찢긴 데다, 온통 손상된 곳과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먼지와 어둠 속에서도 뚜렷한 형상이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킬러가 몸을 낮춰 먼지 속에 무릎을 꿇는다. 그녀의 시선이 벽의 형상을 올려다본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린다.





끝이다. 


끝났다. 시발. 진짜 끝났다.


와 끝났다. 와우 끝났다. 진짜 끝났다.


눈물이 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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