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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종의 황혼, 과잉의 새벽 (3) 컬트

khid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5.16 17:35:18
조회 125 추천 3 댓글 3
														



"한심하기는!" 사드마가 이 말을 중얼거린 게 서른 번은 되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스라니에게 반려자까진 아니어도 연인이 


생긴 건 좋은 모습 아닌가. 그러나 차츰 시간이 갈수록 자기 마음에 상처가 


남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가끔씩 보랏빛 꽃밭을 보고 있자면 일라나의 눈동자를 떠올렸고, 거리의


 여인들을 보면서도 그녀가 항상 먼저 떠올랐다. 적어도 자신은 상대에게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만하기 그지없는 착각에 불과했다.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며 무도장으로 향했지만, 자신이 알던 무도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향수가 섞인 수증기가 발목 아래로 깔리며 맑은 조명은 


좀더 어둡고 현란한 색상으로 변해 있었다. 발을 디디는 순간에도 자기가 남의 


발을 밟은 지도 알 수 없었고, 분홍과 자주색 광선이 매순간 눈을 찔러대는 통에 


보호구가 필요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음악이 달라져 있었다. 은은하게 마음에 스며드는 나직한 


노래 대신 찢어질 듯 높은 목소리에 날카로운 북소리와 피리소리가 심장을 


격렬히 뛰게 만들었다.


그건 가사도 뭣도 없는 그저 비명과 불협화음을 묶어 놓은 듯한 음악이었다.


모두가 흥분과 소음 속에서 함께 미치고 싶은 듯 거의 허우적대며 춤을 추고 있었다. 


어디서 비명을 질러도 넘어갈 법한 혼란 속에서 사드마는 겨우 자리를 잡았지만


 그저 술로 목을 축일 뿐이었다.


"혼자 오셨군요." 고개를 들자 나르쉬가 앞에 있었다.


"그냥 놔두시죠." "싫습니다." 


웃고는 있었지만 단호한 대답에 사드마는 눈을 치켜떴다.


"볼일도 없을 텐데. 당신 얼굴이나 보며 술 마시기도 싫고 말요."


"아뇨, 당신께 볼일이 있습니다."


그 소음 속에서도 나르쉬의 목소리는 신기할 정도로 뚜렷하게 귀에 파고들었다.


"빨리 말하고 꺼져요." 사드마도 내심 이상했지만 지금은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주위를 보세요.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그 말에 사드마는 한 바퀴 무대를 둘러보았다. 음악이 잦아들고 모두 탈진한 듯 


축 늘어진 채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그냥 주저앉은 이도 있었고, 술을 물인마냥


 들이키거나 서로 입을 맞추며 더듬는 이들도 있었다. 그건 민달팽이들이 


짝짓는 것처럼 보기 불편한 모습일 뿐이었다.


"다들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건 사실이야, 하고 사드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아엘다리는 극단적인 종족입니다." 나르쉬가 설명을 이어갔다.


"분노와 슬픔, 기쁨과 고통을 다른 지성체보다 몇백 배는 격하게 오가죠. 그건 축복입니다.


우리의 문화를 한없이 높은 경지로 이뤄낸 기반이요. 하지만 한계


에 부딪혔죠." 나르쉬는 사드마의 잔을 뺏어 들이켰다. 마치 자기 것인마냥 


서슴없는 모습에 대꾸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당신도 그렇죠. 사드마. 고통을 위로받고 싶지만 어쩔지를 모릅니다.


 실연은 언제나 낯설게 느껴지는 고통이니까."


"비웃고 싶은 거였구만, 나르쉬 씨." 사드마의 표정이 흉한 웃음으로 일그러졌다.


"그래, 차였소. 내 친구가 그녀의 사랑을 얻었지. 그래서 어쩌라고, 나보고 


100살 난 애처럼 울어제끼란 말요?!"


"당신이 우는 모습엔 관심없습니다. 하지만." 나르쉬의 얼굴이 한층 가까워졌다.


"도와드릴 순 있죠. 잠시가 아니라 영원히 말입니다. 고통을 이해하고 더 나을 수 있도록.


보다 새로운 삶을 위해서 말입니다." 


사드마는 잠시 눈 앞의 이 남자를 생각했다. 자신의 무례함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이 자가, 과연 무슨 제안을 하려는 걸까?


"어떻게?" 사드마의 떨리는 목소리에 나르쉬의 미소가 한층 진해졌다.


"한 번 겪어보시면 알게 됩니다."



1시간 후, 사드마는 <새벽의 인도자>들의 사원 문 앞에 서 있었다.


"왜 하필이면 지하에 있는 거죠?"


"상징적인 의미죠." 사드마의 질문에 나르쉬는 도리어 의문을 얹었다.


사실 지하에 있었지만 어둡거나 불쾌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문 틈으로 몇 종류의 


꽃향기와 향유 냄새가 슬며시 새어나와 방문객을 기대로 부풀게 만들었다. 문도 


덩굴 사이로 향연을 누리는 남녀를 다소 과장될 정도로 기쁘게 표현한 것만 빼면


하얗고 말끔했다. 


"이제 문을 열 겁니다. 그러면 예전의 삶과는 결별을 고하게 되겠지요."


'꽤나 허풍이 세군.' 사실 여기까지 왔지만 사드마는 그렇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래뵈도 자신은 이런저런 쾌락을 거의 다 즐겨봤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술과 향담배부터 심지어는 몇 종류의 무해한 약물까지도 섭렵했던 것이다. 그게


아엘다리에겐 그렇게 낯설거나 드문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처음에 사드마를 덮친 것은 향기였다. 한순간에 코를 알싸하게 만들더니, 


적어도 여섯 가지 이상의 향이 흡사 음악을 연주하듯 다양한 농도로 코와 입


안에 퍼져갔다. 그건 마치 빛을 향으로 표현한 듯 다채롭고 선명했으며, 


냄새를 눈으로 보고 맛보며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색채가 그를 압도했다. 기본은 분홍색과 자주색, 풍성한 비취색과 금색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색들이 존재했다. 적자색, 청록색, 감청색, 유황색, 


이외에도 이름조차 모르는 과시적인 색상들이 그를 꿰뚫었다.


건축양식은 기본적으로 곡선이 강조되었다. 뱀이 똬리를 튼 듯한 벽장식과 


구불거리는 기둥들, 푹신한 방석과 침상들 모두가 찬란한 빛 아래서 흐늘거리며


그를 환영해주었다. 빛을 내뿜는 돔형 천장에는 나체의 남녀가 누군가를 중심으로 


원무를 추며 손을 뻗어 찬양하고 있었다. 너무 눈부셔서 뭐라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진한 보랏빛 밤하늘을 아엘다리의 형태로 그린 듯 했다.



"놀라셨나 보군요." 나르쉬의 말에 사드마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그의 얼굴에서는 눈물뿐만 아니라 콧물에 침까지 흐를 지경이었다.


황급히 얼굴을 닦는 사드마를 뒤에 두고 나르쉬는 사원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그제서야 사드마는 자기말고도 다른 이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들 젊은 아엘다리들로, 하나같이 낯선 이에 대한 경계 없이 도취와 흥분을 품은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새벽을 맞을 친구들이여." 나르쉬가 말하자 모두가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이들 사이에서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닌 모양이었다.


"오늘 우리는 새 형제를 맞이했습니다. 나는 그와 오늘 집회에 함께하고자 합니다.


그의 이름은 사드마입니다."


"환영합니다, 사드마 형제여!"


60명은 넘는 회원들이 일제히 그의 이름을 외치자 사드마는 가벼운 고갯짓으로 답례했다.


"자리에 앉으세요. 이제 시간이 다가옵니다."


회원들은 일제히 가운데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 많은 이들이 마치 양떼처럼 


나르쉬의 말에 복종한다는 사실에 사드마는 경계심마저 들었다.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사람들은 원형을 이루어 바닥에 앉았고, 나르쉬는 창백한


 피부의 아엘다리와 함께 작은 병들 속 내용물을 큰 대접에 섞고 있었다. 아마


약물이나 향료의 일종인 듯 또다른 향이 느껴졌다.


대접 속의 액체는 검붉은 빛을 띄어 마치 굳은 피 같았다. 그것을 나르쉬는 잔들에 


조금씩 옮겨 담았고, 한 명씩 돌아가며 잔을 나누어 주었다.


사드마는 자기 잔의 내용물을 지긋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피나 생물의 체액을


섞어 놓은 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쌉싸름하고 쏘는 듯한 향은 분명히 피가


아니었다.


갑자기 징소리가 질게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내장을 긁듯 오랫동안 사드마 속에 


퍼져 나갔다. 


"나는 이 잔을 새로운 신을 위해 마십니다. 그는 쾌락과 고통의 주인, 과잉과


극단의 주인이니, 그와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나르쉬가 말하자 다른 회원들이 같이 외쳤고, 사드마는 낯선 말들을 따라하려 애쓰다


마지막엔 거의 웅얼거렸다. 회원들이 잔을 가슴 위로 들어올렸다.


"여섯 하늘의 주가 우리 위에, 그의 은총이 우리 안에."


그러고는 잔을 순식간에 들이켰고 얼떨결에 사드마도 따라하고 말았다.


짜면서도 쓴 액체는 강한 박하향을 풍기며 미끈거리는 감촉을 목에 남겼다.


"이제 일어나세요." 일어나자 주위가 한층 밝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달라져 있었다. 하얀 기둥은 마치 살아있는 듯 퍼득거리고 색채들은


혀를 날름대듯 자신을 위협했다. 주위의 사물들은 마치 살아서 그를 희롱하듯 


에워쌌으며 주위의 회원들이 훨씬 세밀하게 보였다. 그들의 털, 모공, 손톱과 


눈동자, 피부까지도 마치 그들을 이루는 원자까지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춤추어라, 형제와 자매여, 춤추어라!"


어디선가 알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게 누군지는 전혀 상관없었다.


춤이 시작되었고 자신은 춤추면 그만이었다. 춤은 단지 뛰노는 게 아니었다.


서로가 부딪히며 껴안았고 서로의 뼈대와 근육의 촉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가랑이 사이가


예전보다 훨씬 단단히 솟는 것을 느끼며 사드마는 가장 가까이 있던 여인을 껴안았다.


그녀 또한 그에게 달라붙으며 옷이 하나씩 찢겨져 나갔다. 


자신이 웃고 있는 건가? 아무튼 어떤가. 눈 앞의 서로는 단단하고 부드러우며, 


또 이렇게나 즐거운 것을!


그것은 원시적인 쾌감이었다. 몇 번, 몇 십 번이고 상대는 바뀌었고 감각은 더더욱 


강렬해져 갔다. 몇 번이고 자신이 폭발한 듯한 쾌감을 견디자 어둠이 찾아왔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침대같은 잠 속에서 사드마는 아기처럼 웅크려 잠을 청했다.


누군가, 아니 무수히 많은 목소리가 나직히 금속성의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잠들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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