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헬멧의 아스타르테스가, 길리먼의 기함에 다시 발을 딛었다.

본래 스페이스 마린. 그것도 일개 분대장급인 그가 길리먼의 기함에 발을 딛는것은 그 자체로 영광스러워 마땅해야할 일이나, 그는 좌불안석이었다.

에오니드 티엘.

불경한 짓. 대 아스타르테스 전술을 연구했다는 이유로, 그는 저번에 프라이마크를 독대하였고, 그곳에서 프라이마크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물론, 프라이마크는 그에게 어떠한 직접적인 처벌을 내리지는 않고, 그저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헬멧을 붉게 칠하라는 처분 그 이상의 벌을 내리진 않았다.

그가 정말로 반역이나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 그저 전술적인 호기심으로 그러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붉은 헬멧은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있는지 가려주고 있었지만, 만약 그가 헬멧을 벗고있다면 좌불안석인 그의 표정을 누구나 알수 있었으리라.

그는 그 견책이후로 프라이마크를 다시 만날때,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들킨건가...'

바로, 프라이마크로부터 금지당한 대 아스타르테스 전술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프라이마크가 금지한 것이기에, 그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그럼에도 학구적이기 그지없는 길리먼의 자식이어서 그런것인가. 아니면 그의 천성적인 기질에 의한것인지. 그는 결국 전술을 연구하는 것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던것이다.

이제는 분대단위의 전술이 아닌, 중대... 심지어는 리전의 특색마저 분석하여, '울트라마린이 다른 리전들을 상대할때 어떻게 상대해야하는가'에 대해서도 고찰하며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 시점에는 그저 유별난 아들의 말썽이었다면, 지금은 분명 아비의 말을 거역한 아들이 되어버린것이다.

쿵. 쿵. 쿵. 그의 보폭은 길리먼의 집무실로 향할수록 조금씩 줄어들어... 이내 그의 방문앞에 도달했을때는, 아예 뒤를 돌아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기꺼이 길리먼의 심판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자비로운 주군은, 다른 프라이마크라면 주지 않을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를 걷어찬것은 티엘. 자신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있었기에, 그는 길리먼이 자신에게 죽음을 선고해도 기꺼이 받아들일수 있었다.

시종이 문을 열어주자, 처음 독대했을때 그를 보았듯, 길리먼은 집무실의 한 가운데. 그곳에 서있었다.

서있다. 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저 서있는 것일 뿐인데, 벌써부터 티엘을 꾸짖는듯한 카리스마와 위압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티엘."

길리먼이 그를 보았다.

티엘은 자신이 프라이마크 앞에서 투구를 쓰고 있다는 불경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투구를 벗고 그에게 무릎꿇으려 했다.

"되었다. 티엘."

티엘은 그를 올려다 보았다. 길리먼은 분노하고 있지도, 실망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티엘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길리먼은, 아들의 예의마저 생략할정도로 조급하고, 다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네 프라이마크의 말에 단 하나의 거짓을 고하지 말라 에오니드 티엘. 네 연구는 계속하고 있었나?"

실제로 길리먼은, 그 길리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급하게, 티엘에게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하고있었다.

"...네. 주군."

물론 티엘은 그의 주군에게 거짓을 고할 생각따위는 없기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그러나 길리먼은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실망하거나 분노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티엘은 조금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가 미리 가져온 저장장치를 길리먼에게 보여주었다.

"주군께 진실로 고하건데... 이것이, 제가 저장하고 분석한 모든 데이터를 저장한 장치입니다. 제 죄를 고하기 위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

길리먼은 조용히 저장장치를 받아들고, 그의 코지데이터에 그것을 꽂아 넣었다.

"......훌륭할정도로, 자세하고 뛰어난 분석이군."

"...송구합니다."

티엘이 과거, 농담을 하였을때 길리먼이 재밌다고 하였던것과 비슷한 반어법이라 생각한 티엘이 대답한다.

"아니. 티엘... 이것은 진심어린 칭찬이다."

"주군...?"

영문을 모르겠다는 티엘의 말에, 길리먼은 대답한다.

"이것으로, 울트라마린은 다른 군단에 큰 이점을 가지게 될것이다."

...울트라마린은, 대반역때 충성파 군단을 상대할때, 매우 유연하고 뛰어난 대응책을 지닌 전술을 선보여 효율적으로 충성파에 막대한 피해를 강요했다.

이 전술의 기초는 다름아닌, 대반역자. 로버트 길리먼의 조언가. 에오니드 티엘이 만든것이라 전해진다.

그는 지금도 길리먼의 전술가이자 카오스 로드로서, 울트라마린을 끔찍하리만치 유능한 살육집단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로가 아우렐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