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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앙그론 단편] 데쉬아 이후 (6)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7.13 08: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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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끝났지만, 오직 침묵이 내릴 뿐이었다. 앙그론은 여전히 선 채, 자기 고개를 숙이고서 주먹으로 이마와 얼굴을 감쌌다. 내려드는 빛이 그의 두개골을 따라 기이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금속과 흉터들 때문에 울퉁불퉁한 그림자였다.


칸은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렸지만, 균형을 아직 잡은 채였다.


“저는 황제 폐하께서 주군께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 도리가 없나이다. 하지만 저희는-”


앙그론이 몸을 돌린 순간 칸은 움찔했다. 프라이마크의 눈은 불타고 있었다. 날것의 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으르렁거리는 것이 아닌, 널찍하고도 사나운 미소였다.


“뭘 별로 많이 하진 않았지. 내가 그러도록 놔둘 성싶더냐? 이 내가?”


앙그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빛 아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거기 선 채로, 높이 선 자들이 보낸 살육자들을 보았으니까. 데쉬아의 내 형제자매들을 죽이러 오는 것을 보았으니까. 난 알았다. 알고 있었다고. 으아아아!”


그의 손이 앞으로 튕기듯 허공을 할퀴었다.


“제가 내 형제라도 된 마냥. 제 친족으로 된 근위대. 죄다 금도금된 갑주를 두르고서, 나처럼 흙바닥에 발을 딛고 있음에도 제가 높이 선 자들이라 착각하는 머저리들. 그 조그마한 칼날을 나에게 겨누고서 말이야!”


앙그론은 그대로 몸을 돌려 도약하여 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손바닥이 칸을 그대로 후려쳤다. 


“놈들이 나에게 무기를 겨눴어! 나에게! 놈들이… 놈들이…”


앙그론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서 손바닥으로 머리 양옆을 짓눌렀다. 끓어오르는 생각을 멈추기라도 하려는 듯. 무시무시한 힘으로 짓눌렀다. 잠시 그렇게 얼어붙어 있던 앙그론은 그대로 몸을 내던지며 칸의 머리 옆 석재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 충격에 날카로운 돌 파편들이 비산했다.


“그래도 한 놈은 죽였지.”


앙그론은 침을 뱉고서 다시 몸을 일으킨 뒤 서성이기 시작했다.


“네 황제놈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으, 그 목소리는 도살자의 대못보다도 더 지독하더군. 그 목소리가 내 귓가에 아직도 맴돌아…”


앙그론이 손가락은 그의 두개골에 박힌 금속을 쓸어내리고 문질렀다. 그의 시선이 다시 칸을 직시했다.


“그래도 한 놈은 잡았어. 황금을 두른 그 개자식들 중 하나를 잡았단 말이다. 너처럼 종이인형이나 다름없는 황제놈은 그걸 감당조차 못 하겠지. 날 저기로 밀어냈어… 거기로… 데쉬아에서 날 끌어내서는…”


앙그론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기억을 떠올리며 깊어졌다. 그의 몸이 숙여지고 굽혀졌다.


“텔레포트입니다.”


칸은 앙그론의 말을 이해했다.


“폐하께서 주군을 텔레포트로 옮기셨지요. 처음에는 폐하의 기함으로, 그리고 나서는 이곳으로.”

“네놈은 이해하나 보군.”


앙그론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적외선 너머로도, 그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의 연기같은 형상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팔을 뻗은 모습은 흡사 높은 회랑에 선 청중을 향해 연설하는 모습 같았다.


“내 형제자매들과 나는 높이 선 자들의 소유물이었다. 놈들은 우리 위로 까마귀 망토를 두른 채 날아다녔지. 우리가 놈들의 피가 아니라 서로의 피를 흘리게 하는 동안, 놈들의 구더기 같은 눈알이 우리 주변을 윙윙대고 날아다녔다.”


으르렁거리며, 앙그론은 머리 위의 허공을 후려치고 할퀴었다.


“그리고 칸, 네놈은 황제의 소유물이지. 네 피를 뽑아내고, 제가 뛰어들지 않을 전쟁에 금빛으로 빛나는 꼭두각시를 내던지는…”


칸은 고개를 저었고, 앙그론은 그런 칸을 보았다.


“자, 봐라.”


앙그론의 목소리가 그림자 속에서 울려 퍼졌다. 다시, 위협적인 으르렁거림이 돌아왔다. 그 으르렁거림 속에, 칸은 자신이 거기 비하면 얼마나 약한지, 얼마나 다쳤는지, 얼마나 비무장인 채인지를 상기했다. 


“칸은 나를 거짓말쟁이라 했다. 칸은 제 황제를 위해 제 프라이마크에게 의심을 품으리라 생각한다.”


앙그론이 도약 한 번으로 어둠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칸의 바로 앞에 앙그론이 내려섰다. 주먹을 한껏 뒤로 당긴 채였다.


“인정해라, 칸.”


앙그론이 으르렁거렸다.


“왜 말하지 않지?”


움켜쥔 주먹이 부들거렸지만, 휘둘러지지는 않았다. 앙그론은 칸의 살점을 물어뜯기라도 하려는 듯, 그대로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말해! 말하라고!”

“그분을 뵌 적이 있나이다.”


칸이 입을 열었다.


“노브 쉔닥에서였습니다. 8-2-17 행성이었지요. 벌레들이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거대하고 지능적인데다 증오로 가득했지요. 놈들의 무기는 필라멘트였습니다. 금속 깃털을 박아 제 육체로부터 직접 힘을 끌어내 방출하는 도구였지요. 놈들이 거의 발밑에 올라온 순간 그 필라멘트가 지면을 휘젓는 꼴을 본 기억이 납니다. 평범한 인간만큼 두껍고, 주군만큼이나 거대합니다. 얼굴에는 주둥이가 셋 달렸는데, 주둥이마다 십수 개의 이빨이 돋았지요. 진흙탕을 뚫고 초음속의 괴성과 사악한 속삭임을 내뱉습니다. 놈들에게 노예로 전락한 세 개의 행성계를 발견했습니다. 놈들의 식민 둥지를 모조리 불태우고 고향으로 내쫓았습니다. 하지만 놈들의 요람 행성에서, 저희는 인간을 찾았습니다. 그곳의 인간들은 어느 순간 땅을 기는 노예로서 자신이 인간임을 잃었습니다. 그 벌레들은 습지 바다 위를 오가며 인간을 사냥하고, 인간을 재배하며, 인간을 죽였나이다.”


앙그론의 눈은 여전히 날카롭게 조여져 있었고, 주먹은 들어 올려진 채였다. 하지만 그 주먹이 휘둘러질 기미는 없었다. 칸은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워 하운드 군단의 푸르고 하얀 갑주가 벌레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황혼을 빛내던 모습을 기억했고, 달의 조수가 날카로운 돌로 빚어진 대륙을 가로질러 끝없이 신경을 갉아내던 빨아들이는 소리를 뿜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언 워리어 역시 저희와 함께였습니다. 랜스 포격으로 착륙 지점을 황폐화시킨 뒤, 페투라보 전하와 그분의 강습 공병대가 착륙했지요. 그분은 그 질척한 곳에서조차 땅을 준설하고 지형을 다듬는 법을 알아냈습니다. 그곳에는 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었나이다. 독소의 흔적으로 가득한 진창뿐이었지요. 기반암을 그 진창이 너무 두텁게 두르고 있어 사람이 발을 디디면 빠져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싸웠던 것이냐?”


앙그론이 물었다.


“발을 땅에 디딜 수도 없는데?”

“고출력 라스건을 장비한 경비 기계들을 배치했나이다, 군주시여. 진흙의 움직임을 읽고, 놈들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기계들이었지요. 저희는 공사지역 주변에 폭발물을 심어 놈들이 굴을 파고 있는 곳을 공략했나이다. 페투라보 전하의 공사는 기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진흙으로 된 바다에 참호와 제방을 쌓고, 진흙을 긁어내어 벌레들을 몰아내고 비참한 신세에 놓인 인간들이 다시 디딜 수 있는 대지를 확보했지요. 그리고 벌레들이 저희와 싸우러 나온 순간, 놈들이 마주한 것은 황제 폐하와 그분의 워 하운드 군단이었나이다.”

“지금 너희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로군.”


앙그론이 입을 열었다.


“그러하나이다.”


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타르테스 제12군단 워 하운드입니다. 주군의 형상을 담아, 주군의 전사로서 빚어졌나이다, 프라이마크시여. 폐하께서는 저희가 세픽 하이브의 난잡한 길목에서 싸우는 것을 보셨고, 북방의 예쉭 전사들이 부리는 하얀 사냥개로부터 이름을 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저희를 그 이름으로 영광스럽게 하셨나이다, 프라이마크시여. 저희는 그 이름을 자랑스러이 여기며, 주군께서도 저희를 영예롭게 하시기를 바랄 뿐이나이다.”


앙그론은 으르렁거렸지만, 그 으르렁거림이 말로 빚어지지는 않았다. 꽉 쥐었던 주먹이 풀렸다.


“페투라보 전하가 빚어낸 대공사의 남쪽에서 지탱점이 되는 것은 아마 그 지역에서는 산이라 불러도 될 법한 바위였습니다. 유일하게 진흙의 파도가 쓸어내지 못한 존재였지요. 벌레들은 기계교단이 그 행성의 대지를 바꿔내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산 아래에서 저희를 부수려 몰려들었나이다. 놈들은 저희가 감지할 수 있는 영역 밖에서 진흙에 몸을 숨기고 그 아래로 다가와 저희에게 달려들었지요.”


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빨라졌다. 그의 기억 속에서 독소로 오염된 대지의 날카로운 악취, 그리고 제국군 포병대원들이 뒤흔들리는 진흙 바다를 보고 발하던 경고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앙그론은 뒤로 물러나 앉았다. 고개는 내밀었고, 눈은 집중으로 가득 찬 채였다.


“놈들의 제1파는 파도나 다름없었나이다.”


칸이 계속 말을 이었다.


“놈들은 공사 현장의 경계 일대로 숨어들어 펌프와 준설기를 작동시키던 인력 몇을 납치했습니다. 몇 달 가까이 저희는 놈들과 결정적인 결전을 벌이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그 시점에 기어와 페투라보 전하께서는 놈들의 공격 패턴을 파악했고, 반격이 가능하도록 저희를 배치했습니다. 저희는 페투라보 전하가 구축한 수로의 벽 사이에 진형을 짜고 버텨 섰나이다. 아직 완공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하늘은 반쯤 막혀 있었지요. 저희는 순간의 맹세를 바치고 볼터를 정비하고 있었나이다.”

“볼터?”

“화기입니다. 강력한 화기지요. 아스타르테스의 제식 병기이나이다.”

“으. 그래, 계속해라. 벌레들이 공사 현장에 이르렀다 이거지.”


앙그론은 칸의 머리 위를 응시하는 것 같은 시선을 던졌다. 그의 손은 앞뒤로 흔들렸고, 발은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제야 칸은 프라이마크가 그의 심중에서 방어전의 형상을 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전열을 짜고, 지형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놈들이 가시로 굳힌 전선에 뛰어드는 사냥개처럼 뛰어들었다 이거냐? 방패벽에 돌격하다니, 멍청한 짓이군. 네놈들이 무엇을 했는지 말해라.”





썰을 푸는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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