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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원기옥 발싸

단팥빵(212.102) 2024.01.27 18:29:53
조회 1309 추천 32 댓글 9
														

그리고 한 순간, 빛이 명멸한다.


자그맣다. 너무도 작디작다. 테라와 태양계를 익사시키며 휘몰아치는 워프물결warpflux의 소용돌이에 비할 수도 없이 작은 사이카닉psykanic 에너지의 섬광이다. 마치 끓어오르는 용암 속의 불똥 하나, 혹은 들썩이는 대양이 흩뿌린 물방울 하나, 혹은 생명체를 이루는 물질 중의 분자 하나와도 같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그것은 하찮을 뿐이다.


또한 그것은 덧없을 만큼 짧다. 채 8초조차 지속되지 않거니와, 시간이 중단됨에 따라 그 수 초조차 스쳐 지나가는 의미없는 것일 뿐이다. 그 8초는 자하리엘 엘'주리아스가 '시작' 이라는 단어를 내뱉은 순간부터, 타이퍼스Typhus의 쉬익거리는 대낫이 탄데리온Tanderion을 반으로 가르고, 아스라댈Asradael의 두 다리를 모두 끊고, 자하리엘이 몸통이 갈라진 (*sliced open이면 개인적으로는 개복수술 하듯 갈라서 안이 드러나도록 열린 이미지) 채 땅으로 내동덩이쳐져 세 사서Librarians의 사이킥 조화가 깨질 때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그 8초 동안, 명멸하는 빛은 순수한 사이킥 힘의 섬광이 되어 비물질적인 소용돌이에 작디작은 구멍을 태워 뚫고 타이퍼스의 뼈의 노래bone-song의 케이아스적Chaotic 화음을 부순다.


명멸이 끝난 직후 노래는 다시 시작되고, 울부짖는 워프는 순식간에 구멍을 다시 메꾼다.


허나, 그 8초 동안, 뼈의 노래는 침묵했다.


산의 소리공동geophonic chambers 안에서, 유프라티 킬러는 명멸한 빛을 느낀다.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기반암, 벽, 높이 솟은 천장, 그녀가 밟고 선 바닥까지조차 전부, 숨통을 죄이던 뼈의 노래가 중지한 순간 물렁해지는 듯 한다. 한순간 위축에서 벗어난 산이, 마치 뻣뻣한 근육을 푸는 것처럼, 혹은 다시금 숨쉬려 목구멍을 여는 것처럼, 기지개편다. 마법의 속박에서 벗어난 차가운 바람이 공동 안으로 신음하며 갑작스레 들이친다. 바람은 수많은 군중의 누덕누덕한 옷자락과 더러운 머리카락을 펄럭인다. 몇은 겁에 질려 소리지르지만, 대부분은 계속, 킬러가 읖조리는 말을 합창하듯 되풀이한다. 그녀의 입은 바싹 마르고 목구멍에는 피가 찼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내가 들었던 이 말을, 여러분께서도 같이 말해 주십시오. 황제 폐하께서 사시기를.'


산이 숨을 내쉰다. 목죔에서 풀려나와, 산이 숨을 헐떡인다. 산이 숨을 들이킨다.


산이 말한다. 산이 그들이 하는 말을 따라 말한다.


산은 빛으로 그 말을 발한다.


빛이 차오른다. 벽면에서부터 스며나온 빛은, 처음에는 꺼질 듯 깜빡이는 불똥과 섬광의 패턴일 뿐이다. 그리고는, 마치 네온처럼 벽의 주름과 무늬의 윤곽을 따라 달리다, 마침내 부드러운 빛이 쌓이고 쌓여 공동의 모든 바위표면이 마치 안에 조명을 품고 있는 듯 환한 빛을 발한다.


그리고 빛은 더욱, 더더욱 밝아져만 간다. 그림자가 사라진다. 윤곽이 희미해진다. 보기에는 너무 밝은 빛이다.


어둠이 이 살인적인 빛에 의해 분해되어 죽는다.


바람이 그녀의 얼굴에 닥친다. 그녀의 두 눈에 빛이 깃들어 있다. 그녀는 군중이 울부짖는 것을 듣지만, 그게 공포에 차서인지 경이에 차서인지를 구분할 수는 없다. 그녀는 떠오른다. 다른 이들도,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빛에 휩싸인 채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순례자 중 몇몇은 떠오름과 함께 몸을 떨며 마치 메마른 종잇장처럼 먼지를 흩뿌린다. 혹은 하얀 꽃잎처럼. 아니면 재로 만들어진 인형처럼.


그녀는 이제 산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카테우스Cartheus 또한 그러하다. 눈 먼 지-멩Zhi-Meng조차 그러하다. 그들 모두가 그러하다. 수십만이 그러하다. 돌거죽을 꿰뚫어, 반투명한 막 위에 새겨진 과거와 미래의 자취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사제들과 마술사들을 본다. 예언자들과 성스러운 바보holy fools들,광인들과 성인들을, 다른 시대의 다른 순례자들을, 진리를 쫒는 이들을, 추방자들을, 수사novitiates들을, 이곳에 왔었던 모든 이들, 이곳에 끌린 모든 이들, 살아숨쉬는 바위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상상력이 있던 모든 이들을 본다. 세대로 세어야 할 만큼 많다. 수백 세대, 아니 수천 세대다. 바위 표면 너머로 보이는 것은, 역사의 가장 오랜 끝자락으로부터 이어지는 고요한 그림자의 무리다. 그들은 몸을 칠한 주술사들을, 창을 쥔 채 염료병을 공물로 바치던 호기심 많은 사냥꾼들을, 그 뒤로 조심스러운, 매혹된, 호기심 많은, 겁에 질린, 아직 인간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언젠가 그리 될 이들을 본다. 혈통이다. 유전부호가 시작된 순간부터 세월과 세대를 넘어 이어져온 유산이다. 


'내가 들었던 이 말을, 여러분께서도 같이 말해 주십시오. 황제 폐하께서 사시기를.'


킬러는 웨레프트가, 울부짖으며, 솟구쳐올라, 빛 속에서 종이 띠로 녹아내리는 것을 본다. 다른 이들 또한, 우아한 공포와 섬뜩한 경이 속에서, 천천히 솟아올라 섬광과 세포먼지와 소름끼치는 광휘로 흩어진다. 허나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육신 안에서 부재한다는 것은 빛 안에 존재하는 것이라.


그녀는 리타 탱이 들어올려짐과 함께 비명지르는 것을 듣는다. 타오르는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그녀는 킬러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그녀 또한 그저 바람에 휘날리는 별이자 재로밖에 남지 않았다.


할로우 마운틴Hollow Mountain이 전율한다. 산의 어깨가 들썩임과 함께 그 위에 얹힌 눈이 푹 떨어진다. 수십만 톤의 눈더미가 험준한 비탈로 쏟아져 내리며 하얀 안개구름처럼 얼음조각들을 피어올린다. 산을 에워싼, 칠흑같이 어두운 폭풍은, 산꼭대기에서 200 킬로미터 너비의 파문이 퍼지며 역류한다. 새까만 구름이 거대하게 펼쳐지는 광륜halo에 차곡차곡 접혀진다. 칠색의 전광이 텅 비어가는 하늘을 가르고 흝는다.


산의 관문들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푸르고 희며 맹렬한 빛이, 눈과 얼음을 녹이고 그림자를 멸살한다. 데스 가드의 뼈의 노래가 더더욱 소리높혀 울려퍼졌지만, 이제는 겨룰 수조차 없다. 시생 역병Archean blight, 가장 오래된 유기체 부패균, 고대바이러스학, 시원적인 성간 박테리아 균체, 테라에서 처음 무언가가 죽기조차도 이전에 존재한 태고의 부패의 정수로부터 태어난, 그것이 검은 절벽에서 벗겨지고 불타는 플랫폼에서 닦여나가 살균되고 소독된다. 죽은 바이러스성 물질이 지저분한 검은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린다. 짜내어진 고름처럼 죽은 벌레 껍질이 절벽을 따라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검은 형체들이, 수천씩 무리지어, 터져나가거나 대피하거나 빛사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으스러진다. 혹은 떨어져나간 눈더미와 압축된 얼음에 휩쓸려 사라진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파괴 속에서 짓눌린 울부짖음이 들린다.


그 울부짖음 중 일부는 타이퍼스의 비명이다. 그의 노래는 한낱 잡음으로 으깨진다.



휘몰아치는 연기와 소용돌이치는 재 너머, 저 멀리에서, 한때 아마도, 지평선이었을 곳에서, 빛기둥이 솟구쳐 있다. 빛은 마치 해돋이처럼 끝없는 황폐 위에 떠올라 어둠을 몰아낸다. 그 흰 불꽃은 어마어마하고도 눈부시다. 다음 순간, 빛은 모든 것이 그저 희게 물들어 보일 정도로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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