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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9:xii 저지점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2.13 11: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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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xii 저지점



이것이 지기스문트의 사원이다. 전투의 중심부는 그가 예배를 바치는 곳이며, 칼집을 벗은 검은 그가 봉헌하는 예물이다. 전쟁은 그의 헌신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는 데스 가드 군단의 대열 한 가운데 있다. 그리고 그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전장의 노호가 그와 그의 입회인들을 사슬처럼 얽매고, 그가 일격을 가하는 순간마다 그 사슬이 끊긴다. 이것은 도살일 뿐이다. 그의 기교가 발휘될 곳은 시체의 군주 앞이요, 아주 작은 기술이라 해도 그 순간 의미를 찾으리라.


형제단의 미링스가 스쿨리다스 게레르그에게 먼저 다가간다. 하지만 스쿨리다스는 순식간에 미링스를 브로드소드로 꿰어버린다. 미링스는 노련한 전사이자 훌륭한 검사지만, 스쿨리다스의 검은 더러운 뼈로 만든 병든 검이요, 그 칼날 위로 진물이 뚝뚝 흐른다. 닥쳐들던 미링스의 스파타를 그대로 부러뜨린 놈의 검은 그대로 템플러의 전쟁 방패와 육신을 한꺼번에 꿰뚫는다. 흑백이 교차하는 방패가 그대로 미링스의 가슴에 고정된다.


미링스가 쓰러진 순간 지기스문트가 그 너머에서 닥친다. 미링스에게서 검을 뽑아낸 시체의 군주가 지기스문트를 맞이한다. 스쿨리다스는 검을 비틀거나 뜯어낼 필요가 없다. 국물을 숟가락으로 퍼내듯, 흉측한 갈색 칼날이 시체와 갑주로부터 미끄러지듯 간단히 빠져나온다.


지기스문트는 간신히 놈의 검을 받아낸다. 흑검을 따라 손과 손목에 통증이 전해진다. 검이 부딪힌 묵직한 충격 때문이 아니라, 놈의 검이 맞닿은 것만으로도 상처를 입은 느낌이다. 놈의 검이 두 번 더 소용돌이치며 닥쳐들고, 지기스문트는 연달아 검을 받아낸다. 그때마다 검을 쥔 팔에 신경통이 퍼진다.


과거의 스쿨리다스 게레르그는 검술로 명성이 자자한 존재였다. 그리고 지기스문트는 지금의 스쿨리다스가 어떤 존재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스쿨리다스는 지금 일전의 갑주로는 몸을 다 감쌀 수 없어 갑주 조각을 덧대야 할 정도로 거대해진 채다. 그의 거대한 육신은 모타리온의 다른 많은 아들들과 달리 병증으로 부풀어 오른 것이 아니다. 뼈와 힘줄이 두꺼워지고, 탄탄한 근육이 더해진 것이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마호가니처럼 어두운 색을 두른 낡은 뼈로 빚어진 유기적인 가시 조각이다. 그 칼날은 주먹이나 척추뼈가 그러하듯 일정한 간격을 그리며 매듭이 엮여 있다. 저 멀리서 지기스문트는 시체의 군주가 어깨 위로 휘날리는 망토를 두르고 있다 여겼지만, 그 실상은 찌르레기 무리처럼 그의 뒤를 따르는 빽빽한 파리들로 빚어진 구름이다. 단 하나의 충동을 따르는 백만의 유기체들이다.


그가 풍기는 악취는 끔찍하다. 스쿨리다스가 지기스문트에게 도전하는 짐승처럼 으르렁거린다. 놈의 떨리는 투구 주둥이는 마치 투구로부터 떨어져 나가 면갑 부분이, 그리고 턱 보호대 부분이 얼굴과 엉겨 붙은 마냥 움직인다. 지기스문트는 그 안에서 엿보이는 유기적 공포에 질리지 않은 얼굴을 드러내려 애쓴다.


지기스문트가 다시 공격을 감행한다. 스쿨리다스는 반역자들의 대전사요, 그의 사냥감이다. 지기스문트는 이미 우두머리의 죽음으로 대대 전체가, 혹은 군대 전체가 무너질 수 있음을 경험 속에서 증명한 바 있다. 그의 강습 전력이 이 데스 가드 군단의 대군 앞에서 승리하기 위한 희망이 온전히 그의 성공에 걸려 있다.


하지만 일격이 꽂히지 않는다. 스쿨리다스의 날카로운 검은 너무도 빠르고, 너무도 먼 곳까지 찔러 들어온다. 이 반역자는 무자비한 힘을 가졌고, 무엇에 병든 것인지는 몰라도 그 질병이 도리어 그 검술을 강화시킨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아스타르테스가 갖춘 기술과 기교는 카오스의 은총 속에서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잦다. 혹은, 원초적인 힘에 대한 탐닉 속에서 잊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스쿨리다스의 경우, 불생자가 내린 축복이 오히려 본래 가진 기량을 높여 최고 수준의 실력을 증류해 낸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저 검 때문일까? 지기스문트는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필사적으로 머리와 목줄기를 지키기 위해 받아치며, 저 더러운 검이 바로 빠른 솜씨와 치명적인 기술의 원천이라 여긴다. 검이 공중을 휘저으며 맹렬히 회전할 때마다, 스쿨리다스가 오히려 그 검의 움직임에 끌려오고 있다. 게레르그의 육신에 들러붙은 살점과 근육 덩어리들은 그 맹렬한 끌림 속에서 검을 단단히 쥐기 위한 것이리라.


지기스문트는 검을 통해 전해지는 신경 통증으로 점점 팔이 굳어감을 느낀다. 지금 그를 살려놓고 있는 것은 그의 검이다. 흑검의 빛나는 칼날은 저 뼈로 된 칼날의 전염해 오는 공포를 증명하고 있다. 미링스의 것처럼 더 나쁜 검이었다면, 유리처럼 깨져버렸을 게 분명하다.


스쿨리다스는 지기스문트의 방어를 그대로 빗겨내고 왼쪽 견갑 끄트머리로부터 플라스틸 덩어리를 베어낸다. 견갑은 금이 가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다. 저 반역자의 칼날을 맞은 순간, 물을 베어낸 것처럼 어떤 충격도 저항도 없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갈 뿐이다.


지기스문트는 스쿨리다스의 칼날이 그의 육신의 단 한 부분에 닿는 것도 허용할 수 없다. 살짝만 긁혀도 치명상이 생기거나, 혹은 즉각 터지는 패혈성 쇼크로 사망할지도 모른다. 오직 그의 흑검만이 저것으로부터 면역이다. 물론 지기스문트는 뼈의 검을 받아칠 수 있지만, 스쿨리다스 역시 재빠르다. 방어에 이은 일격을 꽂을 시간이 없다. 곧장 다음 일격을 받아쳐야 하기에.


하지만 검의 위험한 부분은 칼날만이 아니다. 지기스문트가 그대로 밀어붙인다. 그는 자신이 가장 큰 지렛대로 쓸 수 있는 지점인 스쿨리다스의 검날 아래쪽, 자루 방향을 강하게 받아쳐 짓누르며 공방을 교환한다. 파고든 순간, 지기스문트는 물러서지 않고 더 가까이 돌진한다. 온몸의 무게를 실은 채 검을 봉쇄하고 스쿨리다스를 짓누르며 밀어낸다. 힘과 힘이 격돌한 순간 둘은 순간 격렬한 사투를 벌여야 했지만, 뼈의 칼은 움직임이 막힌 상태였다. 지기스문트는 왼손으로 제 흑검의 날이 세워지지 않은 리카소(Ricasso, 각주 1) 부분을 움켜쥔다. 다음 순간, 양손이 흑검을 쥔 채, 그대로 파성추마냥 스쿨리다스의 얼굴에 자루 끄트머리를 꽂아 넣는다.


스쿨리다스의 바이저가 쪼개지고, 시체의 군주는 머리가 홱 젖혀진 채 튕겨 나간다. 봉쇄에서 벗어난 뼈의 칼이 맹렬히 솟구치지만, 지기스문트는 다음 순간 이미 양손에 검을 쥐고 아래로부터 위로 휘두른다. 스쿨리다스의 노출된 목줄기가 그대로 잘려나간다.


시체의 군주가 쓰러진다. 뼈의 검도 함께 나가떨어진다. 피로 물든 대지 위에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질 따름이다. 파리로 된 망토 역시 그대로 마치 수의처럼 스쿨리다스 위에 뒤덮인다. 여전히 따뜻한 시체를 먹어 치울 요량인지, 갑주의 관절 사이로 파리들이 쏟아져 들어간다.


지기스문트는 몸을 돌려 다른 놈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지기스문트는 반응을 기대한다. 우두머리가 쓰러진 적군을 뒤덮는 불안의 물결을, 그리고 자신과 입회인들이 전투의 균형을 바꾸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흔들림과 당혹으로 빚어진 전환점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전환점은 오지 않는다. 데스 가드 군단은 패배를 의식하지 않은 채 계속 싸울 뿐이다. 개인전의 달인 지기스문트는 마침내 적의 끔찍한 힘을 확실하게 이해한다. 놈들은 마치 벌집이 그러하듯 전체로서 싸우며, 파리떼가 그러하듯 하나의 뜻으로 싸운다. 아무리 중대한 개인이 쓰러지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머리에 치명상을 입히는 것으로, 놈들을 끝장낼 수 없다.


지기스문트의 근본적인 방법론이 무의미한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압박 속에 갇힌 지기스문트의 우편에는 폰티스가, 좌편에는 잔자르가 있다. 파우스탈은 이미 죽은 뒤다.그를 따르던 수하들 대부분은 전사한 채다.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올 유일한 기회였던 그의 용맹한 전술은 끝장이다.


십수 개의 검과 창이 빚어낸 혼돈이 그를 감싼다. 다음 순간, 그는 적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음을 깨닫는다. 처음에 든 생각은-물론 생각에 쏟을 여유는 거의 없다. 싸움에 전력을 쏟아야 하기에-, 시체의 군주가 처형당한 것이 데스 가드 군단의 열병에 휩싸인 심중에 뒤늦게나마 반응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데스 가드 군단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은, 다른 군대가 이 전장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퀼라 가도의 기억이 되어버린 곳 위에서, 킬러는 그 목소리의 메아리를 듣는다. 틀림없는 전쟁의 외침이요, 소집을 명하는 외침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도움을 청하는 외침이기도 했다. 그녀의 심중에, 그 어느 때보다 묵시의 빛이 선명하게 비친다.


묵시 치고는 참 기이한 종류다. 킬러는 그것이 그녀에게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으나, 그 방법과 이유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믿어야만 한다. 그녀의 신앙이 이것을 받아들이도록 허해야 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그녀는 자신이 지기스문트와 동류임을 안다. 그가 압도적인 적을 상대로 돌격을 감행하도록 박차를 가한 타협하지 않는 헌신이다. 각각의 걸음마다, 각각의 일격에 그는 전심을 쏟았다. 결과는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결과가 아닌 사진이 해야 할 일에 전심으로 집중했다.


미래는 여기도 아니요, 지금도 아니다.


그녀는 휘몰아치는 싸움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어떤 두려움도 남아 있지 않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구릿빛 먼지 위로, 그녀가 살아남을 수 없을 폭력의 소용돌이를 향해 침착하게 걷는다.


첫 순간, 그녀는 홀로 걷는다.


“킬러! 무슨 짓이오?”


지-멩 경이 그녀의 뒤에서 외친다.


“킬러!”


하지만 다른 이들도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한둘, 다음 순간 평의회의 구성원들, 그리고, 멈춰 섰던 순례행의 모든 이들이 함께 걷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끎을따르고 있거나, 혹은 그녀가 느꼈던 것과 같은 확신 속에 감동을 받았거나. 그녀는 웨레프트를, 그리고 리타 탕을 본다. 그들은 지금 그녀와 거의 나란히 걷고 있다. 킬러를 힐끗 바라본 리타는 미소를 짓는다.


“북쪽으로!”


킬러가 외치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확신이 있다. 강하고 차분한 은총이 그들 위로 드리운다. 부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표현할 수는 없을 집단적인 목적이 임한다. 그녀의 뒤에는 순례행의 조용한 흐름이, 끝없는 인류의 강이 따른다. 휘몰아치고 쏟아지는 강이다. 당황도 없고, 서두름도 없다. 처음 그녀를 따르기 시작했을 때처럼, 모두가 그대로 나아간다.


“킬러! 킬러!”


절룩이며 허둥대는 지-멩이 페레바나의 부축을 받아 그녀를 따라잡는다.


“킬러!”


지-멩이 외친다. 그의 먼지투성이 손이 저 앞에 펼쳐진 대학살의 현장을 가리킨다.


“놈들이 우릴 죽일 거요!”“각하.”


킬러가 답한다.


“저희 전부를 죽이지는 못할 겁니다.”






창백한 왕의 군세가 전율한다. 황토의 먼지를 망토처럼 뒤집어쓴 채, 지기스문트의 공세가 뚫어낸 국지적이지만 맹렬한 구멍을 말살하기 위해 꿈틀거린다. 지기스문트 휘하 입회인의 3분지 2가 죽은 채다. 완벽한 대패의 목전에 와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데스 가드 군단이 흔들린다. 수천 명, 수만 명, 어쩌면 수백만 명에 달하는, 저 말라붙은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대열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대부분이 비무장 상태이지만, 경악스러우리만큼 침착하고 두려움을 찾을 수 없다. 그 감각이 군단의 안에서 퍼지기 시작한다. 혼란스럽고, 수수께끼나 다름없으며, 설명할 수도 없는 사건이다.


반역자들은 혼란과 주저 속에 돌아서기 시작한다. 일부는 전진하는 세력과 마주하기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반역자들의 태반은 전투에 대한 집중력을 놓치기 시작한다. 고갈을 향해 가던 지기스문트의 병력들은 그 내부에서 놈들의 전열을 무너뜨리며 더 세게, 더 깊게 공격을 가한다. 전투는 서툴러지고 흐트러진다. 마치 데스 가드 군단의 집단적인 움직임이 개인을 상대로는 효과를 보았지만, 또 다른 대규모 집단이 통합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당황한 느낌이다.


제14군단의 일부 병력들이 전열을 짜고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놈들은 비무장한 이들이나 민간인들을 죽이는 데 어떤 거리낌도 없다. 자제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열몽 속에는 어떤 구분도 없다. 가짜 황제의 종은 어떤 형상이건 간에 가짜 황제의 종일 뿐이다. 지기스문트와 그의 동료 공격자들을 끝장낸 다음은 어차피 저들이었고, 대대적인 학살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놈들은 살육에 능하다. 그 문화 자체가 살육이었으니.


볼터와 중 라스가 짖어대며 화력을 토하기 시작한다. 민간인들이 쓰러지거나 그대로 증발하면서 순례행의 파도가 그려낸 선두에서 구멍들이 뚫린다. 하지만 그 거침없는 흐름에는 멈춤이 없다.


질량 반응탄이 킬러를 스쳐 지나간다. 불타는 추진체의 열기가 느껴진다. 충격음이 들리고, 뺨에 피가 튄다. 파이셀린의 악취가 느껴진다. 라스 볼트가 날아든다. 몇은 너무 가까워 거의 움찔하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미동도 없다. 그녀는 계속 걷는다.


전열에 합류한 데스 가드 군단병이 두 배로 늘어난다. 발사 속도도 완전 자동 사격으로, 급속 사격으로 전환된다. 이들이 힘을 합쳐 불태우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기 모인 사람의 수가 백만이라 해도 그러할 것이다.


킬러는 먼지와 연기로 뒤덮인 채 계속 걷는다. 공기가 흔들린다.


드디어 때가 왔다. 그들이 받아 마땅한 존중을 반역자들이 보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들은 그럴 자격을 얻었다. 더 이상 죽음 앞에 부끄러움도, 진정한 고통도 없다.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겪는 진정하고도 유일한 고통은 실패하는 것, 그리고 저항을 거부하고 신앙을 잃는 것일 뿐.


그녀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무장 상태건 비무장 상태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스스로가 믿는 바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킬러는 거의 멍해진 채로 궁금해한다. 마침내 그녀가 저들의 전선에 닿았을 때, 그렇게도 오래 버틸 수 있다면,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장을 하고 갑주를 두른 아스타르테스 군단에 속한 거인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깨지지 않는 장갑판을 맨손가락으로 움켜쥐고 할퀴며 찢어대리라 상상한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다. 인간의 두 손으로, 반역자 군단병을 찢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하지만 백만이라면? 2백만이라면? 3백만이라면?


바위 위로 찰싹이는 물길과 마찬가지다. 만 년이 걸릴지언정, 결국 바위는 닳아 없어진다. 호루스 루퍼칼의 이단이라는 잔학 행위가 인류에게 강요한 소름 돋는 논리요, 가장 끔찍한 종류의 비대칭전이다. 적은 강하고, 그녀의 목숨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국의 신자들이 품은 참된 영혼은 수없이 많으니, 그녀는 여기 서서 저항할 것이다.


너희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반역자들아. 그 기회를 잡았어야지. 이 확률은 네놈들 마음에 드나?


킬러는 주먹을 쥔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각오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럴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거의 속은 기분이다. 그녀의 앞에 촘촘히 짜여 있던 제14군단의 전열이 후퇴하고 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한다. 데스 가드 군단은 그녀를, 혹은 그녀와 함께 걷고 있는 거대한 수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그 신비함에 미혹되었을 뿐이다. 저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전례가 없는 이 사태를 처리하기 위한 후퇴를 강요당한다.






지기스문트와 피투성이가 된 그의 병력들은 전세가 뒤집힌 틈을 최대한 활용해 뒤로 물러나는 적을 사방으로 공격한다. 맹공을 지휘하며, 지기스문트는 적이 진영 후방에서 메사의 선을 갈라놓고 있는 깊은 협곡을 따라 전장에서 이탈하려 함을 깨닫는다. 지기스문트는 능선을 따라 오르며 살육을 이어간다. 데스 가드 군단이 그 엄폐 지대로 철수한다면 재편은 물론 현재 상황을 다시 생각할 시간을 벌게 될 것이다. 어쩌면, 협곡의 깊은 그늘 속에서 지원 병력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적이 안전한 피난처에 도착하기 전, 지기스문트는 놈들의 결의를 깨고 중추를 부수기를 바란다. 그 역시 다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깨 너머로, 불가능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기에. 마치 쏟아진 잉크 위에 눌린 압지처럼, 순례행 전체가 꾸준히 전진하며 반역자들의 저항을 빨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광기에 사로잡힌 것인가?


아니, 광기가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건, 그 역시도 그것을 느끼고 있으니까.


폰티스, 그리고 다른 몇을 옆에 끼고서 지기스문트는 길을 뚫는다. 협곡 입구로 이어지는 돌더미 능선의 황갈빛 바위를 향한 길이다. 전투는 이제 지저분한 국면에 접어드는 동시에 전적인 혼란의 장이 된다. 협곡의 우뚝 솟은 바위 관문 근처에서 아르톨룬의 남은 병력들과 합류한 지기스문트는 그대로 치열한 집중공세를 펼쳐 더 많은 데스 가드 군단병을 쓰러뜨린다. 이제 인외의 결집을 상실한 적의 대군은 협곡을 따라 빠져나갈 뿐이다.


“추격합니까?”


아르톨룬이 묻는다.


“추격한다.”


지기스문트가 답한다. 행운이 다하기 전에, 이 기이한 이점을 활용해야만 한다.


기이하고도 서늘한 황혼이 협곡에 드리운다. 차량이 지나갈 정도로 넓지만, 너무도 팽팽하고 깎아지른 듯 솟아 있어 안심을 장담할 수 없는 공간이다. 높은 절벽의 벽을 따라 이상하게 말라붙은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협곡을 이룬 돌과 암반은 마치 불길 속에 빚어진 듯 더 어두운 색을 띤다. 처음 그 광경을 마주한 지기스문트는 사막의 평지를 구릿빛으로 달궈 놓은 빛이 막혀 어둠이 승리한 계곡의 당연한 결과라 생각한다. 하지만 확인된 제14군단의 전사들을 하나씩 처리하면서 길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지기스문트는 마치 무연탄처럼 검게 물들고 젖은 듯이 반짝이는 바위를 발견한다. 그 후 데스 가드 군단과의 교전은 세 차례나 더 이어지고, 통로의 기슭을 따라 벌어지는 교전은 말 그대로 피튀기는 근접전으로 변한다. 저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진다. 지기스문트는 자신이 지나치게 열정이 앞선 것은 아닌지, 그의 너덜너덜해진 입회인들이 복수를 위해 몰려드는 적의 완편 대형과 맞서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공세가 시작된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공세다. 볼트와 라스 사격이 맹렬하게 쏟아지고, 그의 수하 여섯이 더 전사한다. 나머지는 그대로 엄폐물을 찾아 움직인다. 지기스문트는 데스 가드 군단의 후위대가 있음을 본다. 놈들은 서서히 지기스문트가 있는 협곡을 따라 움직이며, 추격을 막아서기 위해 자유 사격을 퍼붓고 있다.


협곡에 섬광이 번진다. 무장이 쏘아지며 빛이 거듭 깜박이며 쏟아진다. 그리고 다른 위치에서도 사격이 시작된다. 더 높은 절벽 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점이다. 어쩌면, 중화기를 발사할 채비를 갖추는 것 같다. 그의 열정이 지금 징책을 당하는 중일까? 데스 가드 군단은 혼란 속에서도 철퇴할 기미가 없다. 이것은 지기스문트의 병력들을 협곡의 살육 구역 안으로 유인하기 위한 계산된 노력으로 보인다.


딱 하나만 빼면 말이다. 그 고지대의 중화기는 지기스문트의 병력들을 향하지 않는다. 그 포격은 데스 가드 군단의 후위대를 휩쓸고 있기에.


“각하!”


지기스문트는 충격적인 포격의 노호 너머 폰티스가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계곡 바닥의 바위를 엄폐물로 삼은 지기스문트는 고개를 숙인 채 폰티스에게 달려간다.


폰티스는 계단을 발견했다. 협곡 측면을 따라, 바위를 깎아 만든 계단이다. 거대하고 오래된 계단들로, 무언가로 이어지는 짧은 계단이다. 동굴, 갈라진 틈, 혹은-


“옥좌의 이름으로!”


저 위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부하들을 이끌고 이리 오시오!”


지기스문트는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내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계단을 오르자, 절벽 아래에 있는 검은 바위를 깎아낸 묵직한 석제 플랫폼이 등장한다. 그리고 한 형상이 그를 마주한다. 거대한 아스타르테스 전사의 형상이다. 지기스문트는 저 위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총기들이 조준하고 있음을 느낀다.


“지기스문트요.”


그가 입을 연다.


“황제 폐하의 대전사지.”

“대전사라고 하셨소?”


다른 이가 답한다.


“내가 기억하는 지기스문트라는 이름과는 들어맞지 않는 것 같소만. 하지만 어쨌든, 보게 되어 정말 반갑소. 드디어 구원군이 여기 온 거요?”

“난 그쪽이 구원군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기스문트가 대꾸한다.


절벽의 그림자 너머로 형상이 움직인다.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지기스문트조차 설명할 수 없지만, 그 형체는 다크 엔젤 군단의 선임 장교 중 하나다.


“제9 기사단의 트라간이오.”


형상이 입을 연다.


“만나서 반갑소, 지기스문트.”

“여긴 뭐 하는 곳이오, 형제여?”


지기스문트가 묻는다.


“우리 챕터 마스터께서는 이곳을 저지점이라 불렀소.”


트라간이 답한다.


“당신들에게는, 공백의 산의 일곱째 관문이라고 해야겠군.”





각주 1 : 칼막이 바로 윗부분의 날이 세워지지 않은 칼몸을 가리키는 표현.


연휴 동안에는 한 장도 번역 안하고 손 놨다. 한글도 계속 프리징이 걸려서 아직 못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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