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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9:xx 파편들 (1)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2.21 11: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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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xx 파편들 (1)



아버지와 아들의 격돌 속에서 수많은 것들이 산산이 파편으로 부서진다.


충격 속에 공기가 뒤흔들린다. 소리와 압력의 충격파가 소닉 붐처럼 바깥을 향해 터져 나온다. 그 힘 속에, 궁정의 벽이 부풀어 오른다. 플라스틸과 세라마이트로 빚어진 함선의 물질적 골조이자 본래 구조가, 그리고 사이킥적 프랙탈로서 빚어진 장엄한 천공을 담아 정교한 위장처럼 덮인 비물질적 구조가 함께 부풀어 오른다. 아다만티움 격벽이 휘어지며 신음하고, 그 위를 덮은 석재가 가루가 되며 폭발한다. 비늘처럼 덮인 흑요석의 기하학적 구조가 제 무늬를 지키기 위해 싸우기라도 하듯 검은 깃털처럼 파문을 일으킨다. 갑판 바닥이 비틀리고, 세라마이트 벽이 영거리에서 총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동시게 깨져 나간다.


물리적 영역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황제의 검이 파고들 때마다 조각들이 휘날린다. 월드브레이커의 자루에서 파편이 튕긴다. 파워 클로와 발톱이 격돌할 때마다 금속 조각들이 떨어진다. 금색 갑주와 밤의 어둠을 담은 갑주가 격돌할 때마다 충돌의 압력 속에서 비틀린다.


힘과 힘이 충돌한다. 인류의 주인이 발하는 사이킥이 워마스터의 카오스로 기름 부어진 혈광과 격돌해 찢어낸다. 다음 순간, 물질과 반물질이 만난 순간을 연상시키는 쌍소멸 현상이 벌어진다. 찰나의 순간, 재앙을 연상시키는 폭발이 그 충격의 끝을 맺는다.


음향의 충격 속에 소리가 구멍을 뚫고 나선다. 빛은 어긋나고 끊긴다. 시간은 이미 깨졌으되, 루퍼칼의 등시적인 순간, 그의 날 중의 날이 빚은 순간이 유리구슬처럼 미친 듯 빛나며 머문다.


물질과 워프의 꿈이 중첩된 현실은 지금의 순간이 남긴 시체의 가죽을 벗기고 찢어내며 불타올라 수렁에 빠진다. 그렇게 지금의 순간은 잿더미가 되어 분해된다. 테라의 영역을 거의 온전히 삼킨 끓어오르는 워프가 폭발하듯 파문을 일으킨다. 끝없이 움직이며 토해지고 딱딱대는 워프의 흐름은 천공의 물질들이 격렬하게 움직이며 맹렬한 이글거림이 된다. 속삭임은 비명이 되고, 비명은 무의 영역에 이른다.


다른 것들도 산산이 부서진다. 정의조차 내릴 수 없는 것들이다. 두 존재를 하나로 묶어주던 혈연과 충성, 그리고 지난 역사는 모두 지나치게 당겨진 케이블처럼 끊긴다. 두 존재가 지탱하던 가족, 제국, 유산의 골조는 무너지는 탑처럼, 사상누각처럼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둘 다, 신경 쓰지 않는다. 둘 다,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비, 절제, 존중, 연민, 사랑까지,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폭발해 사라진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황제는 처음 발견한 이의 핏빛 눈에서 자신의 모든 죄업이 해체되는 것을 본다. 모든 꿈이, 모든 계획이, 모든 순열과 구성이, 수천여 년에 걸친 고통스러웠던 작업들이 지워지고 있다. 하지만 황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으며, 무엇도 느끼지 못한다. 그 상실을 처리할 수 있는 인간성이라는 장치가 버려졌고 사라졌기에.


호루스 루퍼칼은 제 아비의 백열하는 하얀 눈빛 속에서 인정과 승리를 담은 자신의 꿈과 상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본다. 그 안에는 그가 음미할 고통도, 분노도, 상처도 없고, 충격과 절망도 없기에. 그는 카오스의 격노로서, 의절 당한 자식의 원한으로서, 미쳐버린 환희로서 그를 맞이한다. 그 스스로의 만족을 찾기 위해서다.


오직 소수만이 살아남는다. 온전히, 파편조차 되지 않은 채 남는다. 너무도 조밀하게 응축되고 고도로 강화되었기에, 거의 지각의 특질을 띠기까지 한다. 분노, 증오, 살인, 복수, 결단, 멸절. 이 모든 것들은 이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파괴할 수 없는 것들로 변해간다.


넷, 오래된 넷은 충돌 속에서 비틀린다. 골격이 뒤흔들리고, 살점에는 물집이 박힌다. 그 맹렬함이 그들을 채찍질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들은 여전히 몸을 앞으로 숙이고 목을 뺀 채 야성적인 기쁨 속에서 응시한다.


전쟁의 칼날이 전율한다. 마울이 휘둘러진다. 거대한 적대자들이 일격을 교환한다. 그 충격 속에, 이미 산산이 부서진 것들이 파편이 되어 다시 부서진다.






로켄, LE 2, 그리고 커스토디안까지, 격돌이 벌어지는 순간, 이들이 대비할 방법은 없다. 황제와 호루스가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그들은 채 몇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마치 폭발의 순간 폭탄 주위에 있는 존재들처럼 그들은 물리적인,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충격에 휩싸인다.


허공에서 휘날리며 그들의 육신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튕긴다. 갑판에 다시 곤두박질치기 전 충격 속에 다시 들렸던 육신이 거듭 부딪히고 튕긴다.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역류가 연속적으로 빚어내는 충격의 물결이 그들을 거듭 튕겨낸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에게 쏟아내는 일격은 너무도 강력하며 인외의 영역에 속하리만큼 빠르다.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폭발에 잠긴 듯이, 길고 고동치는 충격 속에 흐릿하게 비칠 따름이다. 궁정의 구조물들은 그 충격에 강타당하고 갈기갈기 찢길 뿐이다.


저 셋이 감히 끼어들 수 있는 격돌이 아니다. 아스타르테스와 쿠스토데스의 힘, 용기, 초인의 역량조차도 비참하리만큼 역부족인, 그 규모가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싸움으로 화한다.


세 사람 모두 거기에 비하면 필멸의 존재이자 쉬이 부서질 것들에 불과하다. 불멸의 충돌 속에 그들은 옆으로 나뒹군다. 파괴의 중심부에서 번져 나가는 잔해의 눈보라 속에 더해진 세 개의 파편일 뿐이다.


카이칼투스 더스크는 사이킥 충격파에 마치 나뭇가지 다발처럼 나뒹군다. 기울어진 궁정의 갑판 위로 그가 무력하게 던져진다. 흑요석 기둥을 본 카이칼투스는 가까스로 기둥을 붙든다. 흡사 숲 전체를 휩쓸어 무너뜨릴 허리케인을 맞아 나무줄기에 매달린 꼴이다. 찢겨나간 수호자의 방패는 강풍을 맞은 금빚 잎사귀가 되어 튕기고, 모범의 창은 그의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미끄러진다. 궁정의 수평이 빠르게 비틀려 수직으로 변하듯 보이기에 기둥을 붙든 손을 풀지 않는다. 테프라와 재, 검은 타일 파편, 돌 조각들이 폭발 속에 휩쓸려 바깥으로 날아들며 그를 스친다. 파편이 번득이며 그를 찢어낼 때마다 얼얼한 통증이 인다.


피로 흠뻑 젖어 미끄러운 그의 손이 광택이 나는 돌 위로 미끄러진다. 그 스스로의 피다. 그의 아퀼론 갑주는 처음 발견된 자가 휘두른 마울의 타격을 받아내는 데 거의 도움이 못 되었다.


나는 죽어가고 있구나, 그가 생각한다. 나는 죽었다. 하지만 나의 왕께서는-


그가 고개를 비틀어 시선을 돌린다. 그가 붙든 흑요석 기둥은 저 멀리 위에서 사이킥 폭풍우 속에 휘청이며 흔들리는 중이다. 저기. 저기다! 불후의 격돌이 펼쳐지는 현장, 검과 마울을 서로에게 휘두르며 베어내려 드는 두 형상이다. 한 인물은 백금빛으로 빛나고, 다른 하나는 크토니아의 어둠이다. 둘 다 벌써 기진해 보일 지경이다.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격돌하기라도 한 것처럼. 피로 속에 몸을 숙인 채, 어떤 섬세함도 세련됨도 없는 야만적인 일격이 서로를 향한다.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서로를 거듭 내리치고 후려칠 따름이다. 불과 몇 미터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모든 호흡과 신음이 들린다. 일격이 꽂힐 때마다 피어오르는 피의 안개가 입자 하나까지 내보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억겁의 너머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잘려나간 현실 속의 압축된 길 위에 자리한 점처럼 줄어들어 보인다. 광대하고도 흐릿한 운명의 원형 경기장 속에, 두 명의 장난감 전사만이 자리한 것처럼.


거대한 콜로세움의 관중석과 모든 층이 꽉 차 있다. 수조의 그림자로 빚어진 관중들이 마지막 시합 속에서 조소한다. 이단과의 전쟁 속에서 가득 쌓인, 길을 잃고 저주받은 희생자들이다. 그들은 이 전쟁의 끝을 목격하기 위해 모여 있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로구나, 카이칼투스는 이해한다. 모든 것을 결정할 단 한 번의 전투를 지켜보기 위해 이 자리가 주어졌구나. 지켜보고 기다리기 위해서…


그것이 그의 삶이 아니었던가. 미동도 감정도 없이 버텨 서는 것. 항상 경계하며 지켜보는 것. 늘 준비 태세를 갖추고 기다리는 것. 황금 옥좌 아래에서 동상처럼 움직임 없이 보낸 세월 동안, 그 근처에서 역사가 일어나고…


그는 구경꾼이 되지 않으리라. 지금은 안 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이 순간이 그가 나설 순간이 아니라면, 그가 지금껏 무엇을 위해 기다렸단 말인가? 이 위험이 그가 감시할 것이 아니라면, 그가 무엇을 지켜봤단 말인가? 제 주인의 삶을 빼앗으려는 이 시도가 그가 경계할 바가 아니라면, 그가 대체 무엇을 경계하며 살아 왔다는 말인가?


카이칼투스 더스크는 그저 한낱 구경꾼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그는 헤타이론이다. 오직 주인의 의지에 따라 그는 섬기고 나선다. 이 순간이 그가 평생 경계를 유지해 온 이유 아니겠는가. 이 순간이 그가 만들어진 이유 아니겠는가. 그 순간이 마침내 도래했음에도 그는 아무것도-


그는 외면한다. 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라면, 차라리 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휘어지는 검은 돌 위로 매달린다. 대리석 파편이 그의 황금빛 투구와 갑주를 치고 지나간다. 피에 흠뻑 젖어 미끄러워진 그의 손이 돌에서 자유로이 풀려나…


하지만 그는 헤타이론이다. 그는 카이칼투스 더스크이다. 오직 주인의 뜻으로서 존재하고 섬길 따름이며, 그의 봉사는 오직 주인의 의지에 바칠 뿐이다.


내가 숨 쉬는 한, 내 삶의 왕 곁을 떠나지 않겠다. 그저 좌시하지 않겠다. 나는 주인의 곁에, 주인과 함께 서겠다. 죽음의 한계를 넘어, 내가 빚어진 목적대로 그분의 곁에서 싸울 것이다. 나는 헤타이론이다.


카이칼투스의 팔이 팽팽히 조여진다. 물어뜯는 바람에 맞서, 더 강하게 쥔다. 그의 손이 돌을 뚫는다. 발뒤축이 검은 프랙탈 무늬를 갈아내듯 파고든다. 마치 가득 쌓인 흑단의 비늘을 파고들듯이.


그가 일어선다. 오직 제 주인의 의지로서, 그가 일어선다.


무의 바람이 그를 휩쓴다. 하지만 그는 숙이지도, 굽히지도 않는다. 마치 그의 뒤에 있느 ㄴ거대한 돌기둥처럼. 사이킥 충격파가 그를 강타한다. 하지만 역시 수그리지도, 움찔하지도 않는다.


그가 한 걸음을 내딛는다. 두 번째. 세 번째 걸음. 각각의 걸음이 원소의 폭력에 맞서는 격무에 가깝다. 카이칼투스가 나뒹군 창에 손을 뻗어 집는다. 그의 왕이 남긴 힘의 마지막 불꽃이 창에 엉기며 거친 소리가 난다.


몸을 돌린 카이칼투스는 걸음을 옮긴다. 불가능한 걸음을 한 단씩 쌓으며 싸움을 향해 나아간다. 카이칼투스는 황제를 섬기며 도구로서 불타 이미 한번 죽음을 맞았다. 그는 주인에게 내어줄 수 있는 두 번째 삶이 있음에 감사한다. 더 많은 삶을 바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리투는 거칠게 나가떨어진다. 튕기고 굴러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다 간신히 멈춘다. 주위의 갑판에 잔해가 쏟아진다.


상처를 입었고, 숨이 가쁘다. 어지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어난다.


저 악명 높은 루퍼칼을 바로 옆에서 직접 보게 되다니. 인류의 주인이라 해도, 홀로 저런 괴물과 맞서야만 하는 것은 아니리라.


리투는 빌린 검을 다시 쥔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음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엇이건 할 것이다. 제 여주인에게 그러리라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런 약속은 구속력을 갖는다. 리투는 그의 뒤를 이어 등장한 아스타르테스들처럼 정식 순간의 맹세를 바친 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에르다에게 바친 약속은 더 개인적인 것이요, 더 강력한 것이다. 리투는 만물의 애도를 쥐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의 눈에는-


그가 감히 속할 수조차 없을 싸움이 펼쳐진다.


황제와 호루스는 불과 30미터 떨어진 곳에서 결투를 벌이고 있다. 리투가 살아가는 동안, 저 결투의 주인들이 발하는 힘과 기술에 비근한 것을 본 기억은 단 한 번도 없다. 황금빛 후광을 발하는 황제는 클로와 검으로 맹공을 펼친다. 한 무기가 일격을 가한 순간의 찰나에 두 무기가 동시에 일격을 후려친다. 근접전의 달인이나 펼칠 수 있을 기술들이다. 거대한 검과 찢어대는 클로는 둘 다 묵직하고 잔혹한 공세를 퍼붓는 도구다. 강력한 공격으로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도록 설계된 병기이건만, 황제는 마치 그 둘을 레이피어와 단검을 휘두르듯 가볍고 눙숙하게 휘두른다. 끝없는 돌진과 회전, 방어에 이은 베어내기, 그리고 찌르기까지. 눈부신 정확성과 우아함 속에 두 무기가 휘둘러진다. 그 날렵한 움직임은 리투가 언젠가 제 여주인을 따라 이유 없는 여정을 떠났던 시절 목격했던 아엘다리 춤꾼들을 떠올리게 한다. 절대적인 전쟁을 예술로 표현한 신성한 가면극의 연속이었지.


호루스는 소용돌이치며 펄펄 끓는 워프의 흐름 속에서 황제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흉물이다. 그 무장은 황제에 비하면 투박하다. 그의 발톱은 거대한 공업용 집게나 다름없이 공압식 밸브에서 증기를 뿜어낸다. 그의 마울은 오직 때리고 부수는 것 외에 무엇도 할 수 없는 설계다. 하지만 리투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믿지 못할 정도다. 밤의 어둠처럼 거대하고 잔학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한없이 유연하고 민첩하다. 순수한 힘을 가졌음에도, 정교함과 민첩함에서 제 적수와 대등하다. 아니, 대등 이상이다. 그의 공격과 회피는 단순한 무의미한 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섬세하고, 정교하며, 직관적이다.


긴 세월 동안, 리투는 루퍼칼의 전투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오직 훌륭한 전사만이 워마스터로 기름 부음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에 호루스가 훌륭한 전사임을 의심한 바는 없다. 하지만 호루스의 재능과 기술에 대해 전해지는 지나치기까지 한 화려한 무용담은 신중하게 검토해 왔다.


그 화려한 무용담에 한 점 과장도 없었다. 카오스의 화신으로서 그 무게에 짓눌린 채 워프에 가려진, 리투가 보기 두려우리만큼 끔찍하고 가학적으로 왜곡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호루스는 여전히 대가로서 싸우고 있다. 숭고하기까지 한 전투 기술이다. 마울과 발톱을 휘두룰 때마다 상대를 경악하게 만드는 천재성이 엿보인다. 모든 동작은 벼락처럼 빠르고, 십수 차례의 동작을 모조리 앞서 계산해 나아가며, 단 하나의 움직임도 둔탁함이 없다.


그리고 둘 다, 압도적으로 빠르다. 말 그대로 인외의 경지에 닿는 속도다. 궁정에서 소용돌이치듯 흐르는 한 쌍의 움직임은 리투에게 그저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리투의 초인적인 지각력으로도 자취를 쫓기 바쁘다. 무기가 격렬하게 나누는 대화도 마찬가지다. 너무도 빠르게 움직이기에, 공기가 격렬하게 그 비어버린 자리를 메우며 끝없는 격동이 터져 나온다. 리투가 그들을 향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격렬한 선회를 벌이며 리투가 따를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인다. 저 전투에 뛰어들려는 시도는 사실상 달리고 있는 차량에 오르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리투는 계속 시도하지만, 저들 옆에 선 리투는 거의 꼼짝 않고 멈춰선 꼴이나 다름없다. 그들을 쫓아 리투가 열주 사이로 달린다. 하지만 리투가 거기서 마주한 것은 휘몰아치는 일격 속에 튕겨나간 벽의 조각들, 묘목처럼 쓰러진 아치로 교각의 부서진 돌과 잔해들의 파편 뿐이다. 저들은 이미 그를 지나처 움직이고 있다. 리투는 몸을 돌리지만, 거의 저들의 움직임 속에 짓밟힐 뻔한다.


전투에 참여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저들은 말 그대로 다른 범주의 속도 속에서 격돌하고 있다. 리투의 반사신경이 절정에 있다 해도, 공격을 가할 정도로 충분히 오래 저들의 속도에 보조를 맞출 수 없다. 시도하는 순간 순식간에 무용지물처럼 부서져 버릴 것이다. 거의 비참하기까지 한 외경 속에서 리투는 응시한다. 그는-


전투 중인 아스타르테스를 목도한 필멸자들이 느끼는 얼어붙게 하는 공포, 그것을 지금 리투가 느끼고 있다.


리투는 무력하고 쓸모없는 검을 내린다. 이 거대한 투쟁 속에서 리투는 그저 고독한 관찰자, 침입자인 동시에, 잉여물일 뿐이다. 무대 측면에 서 있다가 무대로 넘어진 우연한 방관자일 뿐이다. 그에게 어떤 배역도 없고, 무슨 대사를 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무력감은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지금 펼쳐지는 이 순간이 종족의 운명을 결정할 것임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지켜보는 것 뿐이다.


분노와 좌절 속에 숨이 막힌다. 리투는 다른 이들을 찾아 둘러본다. 모두가 함께라면, 어쩌면-


하지만 이 궁정에 루나 울프 군단병 로켄도, 자랑스러운 커스토디안의 프로콘술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도 리투와 마찬가지의 것을 시도했을까? 싸움에 몸을 던졌다가 신들의 분노 속에 찢겨져 한 줌 얼룩이 되어버렸을까?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향해 모든 집중력을 쏟고 있다. 리투는 어쩌면 저 둘 다, 제 발 아래 무엇을 짓밟았는지조차 알아차리리 못하지 않을까 의심한다.


이 궁정은 더 이상 리투가 황제의 곁에 선 채 들어섰던 어두운 성당이 아니다. 이제 리투는 궁정의 실체를 본다. 그들이 처음 보았던, 처음 발견된 이에게 속한 파멸의 신전의 무한한 건축물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폭발이나 다름없는 힘 속에서 산산이 부서졌거나, 혹은 호루스가 전투에 모든 힘을 쏟기 위해 저 검은 프랙탈의 광기가 사라지도록 허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제 드러난 것은 한때 제왕과도 같았을 전함의 거대한 격실이다. 그 껍질은 벗겨진 채 썩어들어간다. 우슬릿과 얼룩덜룩한 대리석을 깎아 빚어낸 창백한 갑판위로 움푹 패인 자국과 상처가 새겨진 채다. 황동의 벽과 검은 도관들은 녹슬었고, 부식의 흔적이 리벳이 박힌 이음매에 딱딱하게 엉겨 붙는다. 리투는 한때 자랑스러운 중대기가 걸렸을 벽은 불타서 그을린 십자 뼈대와 틀만이 남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오직 하나, 대성전을 상징하는 테라의 눈만이 남았을 뿐이다. 시커멓게 그을려 너덜너덜한 꼴이다.


리투는 끔찍하고 무한한 건축물이 사라진 것이 희망의 약속일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루퍼칼의 궁정은 워프가 처음 발견된 이의 방문객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위협하기 위해 빚어낸 측면이지 않겠는가. 루퍼칼이 제 사지에 힘을 주기 위해 워프의 흐름을 멈추게 한 것이라면, 그의 힘은 유한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카오스의 무한한 표출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지금 황제의 힘에 의해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약해지고 있는 것일지도.


그렇다면 왜 저 전투가 1대 1의 결전이 되고 있는 것인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리투의 눈에 사이킥 결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육신을 움직이는, 그리고 각각이 무기에 동력을 부어 넣는 내면의 힘이 그리는 자취만이 보일 뿐이다. 저 둘 사이에 비물질적인 결투의 흔적은 없다. 사이킥 힘의 폭발도, 뿜어내는 벼락도, 날카로이 쏟아지는 광선도 없다.


어쩌면, 저 속도와 힘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닳게 하고 소진시키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검과 마울, 클로와 기술이 지금의 결투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일지도.


하지만, 그럼에도 리투는 천둥처럼 닥쳐오는 움직임을 피해 몸을 날리게 된다. 호루스는 황제를 가드레일과 칸막이 격벽 쪽으로 몰아붙인다. 격벽이 폭발하며 파편이 되어 그들 사이를 가로지른다.


몸을 일으킨 리투는 천사를 본다.


로켄과 카이칼투스의 흔적은 없지만, 황제의 고결한 아들의 시신은 여전히 부서진 갑판 위에 놓여 있다. 가루와 파편이 온통 그 위를 뒤엎은 채다. 리투는 시신으로 달려간다. 시신은 어설피 흐트러진 채 널브러져 있다. 그 위에 새겨진 상처는 보기에도 끔찍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리투는 손을 뻗어 피투성이인 목줄기를 부드러이 만진다. 맥박도, 열기도 없다. 생귀니우스는 차갑게 식어 떠난 뒤다. 실로 그는 생명이 없는 것 이상으로 보인다. 대천사는 마치 필멸의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겪은 것 같다. 정신이, 영혼이 온전히 지워진 것이나 다름없다. 마치 생명이 끝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다름없이 느껴지는 끔찍한 소멸의 느낌이 든다.


리투는 근처의 그림자 속에서 움직임을 본다. 환기 배관에 꿈틀대는 쥐새끼들, 냉각수 배관 너머의 벌레들이 꿈틀대는 것이 보인다. 죽음의 냄새에 이끌려 먹이를 구하러 온 청소부들이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재앙에 가까운 결전 속에 겁을 먹고 주저하지만, 놈들의 허기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살금살금 기며 몸을 옮긴 놈들이 서둘러 움직인다. 뼈를 뒤적이고, 입안 가득 살점을 물어뜯고, 챙길 수 있을 만큼 시신으로부터 갉아낸다. 그리고서 다시 그림자로 돌아가 먹잇감을 삼킨다.


당혹한 리투가 달리기 시작한다. 첫 놈이 뻔뻔스럽게 달려든다. 마치 가죽을 벗긴 개처럼 보인다. 리투는 만물의 애도를 놈의 해골에 그대로 꽂아 쓰러뜨린다. 두 번째 놈이 달려들고, 그대로 리투의 검이 휘둘러진다. 세 번째 놈에게 검을 휘두르자 놈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하지만 네 번째 놈이 이미 튀어나와 천사의 발목을 물어뜯고, 다섯 번째 놈이 젖은 날개의 깃털 아래 피로 범벅이 된 채다.


리투가 으르렁거린다. 그는 이 모독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리투는 놈들을 쫓아내며 죽일 수 있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버린다. 하지만 쫓겨나기 무섭게 다시 나타나 울부짖고 짖어대며 저항한다. 몇은 아예 다른 각도에서 대담하게 맹렬히 달려든다.


불쾌해진 리투는 아예 천사의 육신 바로 옆에 선 채 찌르고 베며 놈들을 막아선다. 놈들은 그림자 속에서 떼를 지어 에워싸는 물결이다. 짖고 으르렁대며 킁킁댄다. 설치류 만한 작은놈들도 있지만, 몇은 더 크고 겁이 없다. 덥수룩한 털에 거친 눈을 한 끔찍한 놈들, 침을 흘리며 웃는 것들, 반짝이며 미끄러지는 가시 돋은 놈들, 도살을 위한 발톱과 절단용 끌이나 다름없는 이빨을 가진 불어터진 것들까지.


그대로 광란이 펼쳐진다. 검이 광분할 때마다 피와 근섬유가 조각나 허공에 휘날린다. 갑판이 영액으로 흠뻑 젖는다. 놈들은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다.


거듭 베어내고 찔러대며 리투는 깨닫는다. 놈들에게 시체의 고기는 쉬이 취할 수 있는 식욕이 돋는 먹잇감임을. 그리고, 살아 있는 사냥감의 육신 역시 놈들에게 별미이리라는 것을.





역시 길어져서 조금 잘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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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755 번역 The Emperor's Gift, 서리의 심장 속으로 -3- [5] 리만러스(222.110) 03.07 280 13
303667 번역 바퀴 교단 도대체 왜 나왔는가? [20] 오거아저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6 1988 41
303656 번역 [10th] 퍼라이어 넥서스 - 뒤틀린 징조 🔟 [11] 스틸리젼(잡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6 654 15
303619 번역 여명인도자 3권 요약 - 아쿠시 성전군 [8] 오거아저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6 858 27
303530 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10:x 무로 돌리는 자 [9]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6 785 37
303476 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10:ix 위임의 기사 [6]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6 830 34
303456 번역 [Blood Reaver]딸을 잃은 아비를 위로하는 나이트로드 [20]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6 1995 44
303446 번역 The Emperor's Gift, 서리의 심장 속으로 -2- [3] 리만러스(39.123) 03.06 228 10
303421 번역 솔라 억실리아 아이톤 중 센티널 [19]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5 1600 24
303306 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10:viii 텅 빈 옥좌 [12]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5 951 32
303245 번역 Sea of Souls에서 너희들이 알아두면 될것 [4] 꺼삐딴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5 675 16
303235 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10:vii 공백 너머의 승리 [14]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5 938 38
303208 번역 와일더핀드의 설정 [11] 뻬인타놉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5 1702 26
303186 번역 [10th] 퍼라이어 넥서스 - 죽음의 진군 [9] [8] 스틸리젼(잡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4 776 23
303100 번역 나이트 가문) 카이사리안 가문 [17]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4 1670 21
303097 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10:vi 더스크 [10]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4 1040 41
302983 번역 Shadows of the eighth - 3부 - 2 - 7중대의 투입 [2] Cpt_Tit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3 214 11
302977 번역 Shadows of the eighth - 3부 - 1 - 그들이 온다 [2] Cpt_Tit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3 23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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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789 번역 The Emperor's Gift, 서리의 심장 속으로 -1- [3] 리만러스(222.110) 03.02 215 12
302663 번역 줜나큰다카) 고크와 모크의 선지자 스나기 요약 [8]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1 1754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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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180 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10:iii 돌의 목소리 [9]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7 824 28
302172 번역 The Emperor's Gift, 먼지 속 생존자 -3- [2] 리만러스(222.110) 02.27 14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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