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갈레오가 분노를 억누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넘실대는 무형의 파도 위에 뚜껑을 덮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야를의 딸은 다시 상처 입은 늑대에게 몸을 돌렸다.

+부탁이에요. 말해주세요. 프로스트 본 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

그녀의 간절함이 빛을 발했는지 그라우프르는 천천히 모든 것을 말했다. 물론 펜리스 출신이 대개 그렇듯이 문명인들에게 기대할 법한 세부적인 내용들은 거의 들어있지 않았지만, 그만큼 단도직입적으로 주요한 내용만을 말했기에 이해하기는 쉬웠다.

우리가 예상한 대로 이 배에서 타락과 빙의가 발생했었다. 황제폐하의 전사들은 악마에게 잠식된 필멸자 승무원들을 막아내지 못했고, 이 배를 탈출한 인원은 극소수였다.

타락에 저항한 이들은 에어락을 통해 공허로 내던져지거나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것들에게 잡아먹혔다. 그리고 이 모든 광기와 오염은 한 명에 의해 발생한 일이었다. 제국의 자비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거나 사라졌어야 했을 부류가 일으킨 학살이었다. 말을 하는 그라우프르의 목소리는 피가래가 끓었다.

+네비게이터....우리의...저주받을 네비게이터가 벌인 일이야. 악마들은 그의 몸을 타고 함선에 침입했어+

+우리도 그자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보았소. 함선이 함락 당하기까지는 얼마나 걸렸소?+

옆에서 듣고 있던 말카디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길어봤자...몇 분 정도였지. 겔러필드가 꺼진 순간...승무원들은...몰살...당했으니까+

+황제폐하의 빛을 저버린 네비게이터 만큼 사악하고 애처로운 존재도 없지+

소티스가 거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늑대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바실라가 성호를 그으며 최후의 축복을 내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느리고 부드러웠다.

+당신의 형제들은 고귀하고 명예롭게 죽었어요+

+알고 있어. 내...두 눈으로 직접 보았거든+

안니카는 그라우프르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음 같이 푸른 눈동자가 나에게 고정됐다.

+해야 할 일은 알고 있겠죠? 다 끝난 뒤에 카라벨라 호에서 만나요+

그때 달포드가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니카, 우리는 이 정보가 확실한 지 알 수 없습니다. 설령 그의 말이 맞다고 해도 저스티카가 옳아요. 우린 당장 이 배를 버려야 합니다+

+아니, 우리는 확실히 매듭지어야 해. 만약 이 전사가 말한 괴물이 여전히 이 함선에 있다면 반드시 박멸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군요. 이단심문관, 지금 그대가 원하는 것은 일을 매듭짓는 것이 아닙니다. 쓰러진 펜리스인들을 위해 복수하는 것이죠."

내 지적에 의외로 그녀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녀가 이토록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저기 있었던가. 과거에 본 일이 없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려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인정하는 겁니까?"

+아마도 그런 것 같네요+

그녀가 순순히 인정했다. 안니카가 이토록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야를의 딸은 역시 펜리스인이었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어요. 히페리온, 당신은 여전히 내 명령에 따라야 해요+

나는 갈레오를 바라봤다. 내 형제들은 마치 동상처럼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침내, 저스티카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데드스페이스 느낌 나는 것 같기도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