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워해머 하면 이게 SF의 탈을 쓴 판타지가 아님 뭐냐 이렇게 말들 하잖아

근데 책을 읽어 보니까 애초에 SF와 판타지는 원래 경계가 모호한 장르라고 하더라고. 적어도 출발은 그랬던 게 맞음

그런데 어떤 학자가 SF와 판타지를 구분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 인지적 낯섦하고 노붐이래

인지적 낯섦은 내가 완벽하게 이해는 못했는데, 낯선 소재가 똑같이 나오더라도 판타지는 신비의 영역으로 낯설게 받아들이지만, SF는 낯설어하면서도 과학이라는 기존의 상식으로 바라본다는 거고

(ex: 똑같이 드래곤이 나오더라도 판타지는 완전한 신비의 존재지만 SF는 과학적으로 생태가 설명되는 생명체로 받아들임)

노붐은 우리가 기존에 지닌 상식 같은 걸 완전히 깨뜨려버리는 소재임. 이건 좀 이해가 간단할 듯. 책에서 예시로 든 건 소설 '타임머신'에 나오는 타임머신임. 기존에도 시간을 초월하는 창작물은 많았지만, 기계의 힘으로 시간을 넘나드는 건 그게 최초였대.

읽으면서 보니까 워해머 생각이 나더라고.

개인적으로 워해머 40K는 SF임을 충족한다고 생각함. 워해머가 사이버-기적술 같은 단어나 워프라는 초현실적 설정을 깔고 가긴 하지만, 전자 역시 어쨌든 이해할 수 없을 뿐 과학이라는 전제가 분명히 있고, 워프도 초현실적이어도 워해머 40K의 우주에서는 엄연히 과학과 물리법칙의 일부임. 다른 SF에 나오는 이차원이랑 같은 맥락임. 단지 워해머 40K는 그 기능이 너무 거대해졌을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음.

노붐은 근데... 잘 모르겠음. 어떤 게 노붐일까? 아예 없는 것 같지는 않지만 명확히 이거다 싶은 것도 안 잡히네. 워해머 40K가 SF라는 장르에 기여한 바는 많지만, 우리가 기존에 지닌 상식을 완전히 깨뜨린 건 뭐가 있을까? 인류가 이렇게까지 퇴보할 수 있다는 거? 

애당초 워해머라는 IP가 노붐이라는 걸 의도하고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SF의 측면에서 어떤 소재로 우리의 관념을 뒤바꾸었는지는 생각해봄직한 듯.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