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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 동거 첫 날은 왠지 산만해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8.25 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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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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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 편에서 이어집니다 ] : 이전 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bmg&no=3275&page=1



바깥에서 들려오는 건 아침부터 부지런한 새들의 노랫소리.


창문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빛.


후광이 서서히 자신을 향해 비춰오자, 수면 속 세계를 헤메던 세라는 곤히 자고 있던 침대에서 눈을 떴다.


"······으, ······응······."


별안간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아침 공기를 머금은 걸로 봐선 아무래도 아직 해가 뜬 지는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바로 어제 자기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이유ㅡ 『Project : Revive Life』의 역풍으로, 거의 기적에 가까운 확률로 되살아난 자신.


글렌과 왠지 자신을 똑 닮은 소녀이자 그 애제자인 시스티나와의 첫만남.


그리고······ 한 번 생을 마감하기 전보다도, 그에 대한 애정이 훨씬 커져버렸다는 것 또한 동시에 자각할 수 있었다.


비록 5일도 안 되는, 짧다면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은 틀림없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척 값진 경험이었다.


"······아~ 그랬었지, 참. ······후후, 내 정신 좀 봐."


솔직히 말하자면 부활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에 그간 여행의 피로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대로 폭신한 질감의 침대와 이불로 들어가 한숨 푹 자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지금에 와서, 그다지 여유를 부릴 생각은 없기에.


입을 벌려 작게 하품을 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세라는 방에 있는 화장대에 앉아서 간단하게나마 머리를 손질했다.


커다란 거울이 달린 화장대가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곳은 세리카의 방인 모양이었다.


역시 글렌은 자신을 묘하게 이성으로서 의식하고 있는 걸까.


한 명의 여성으로 자신을 여겨주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흘러나온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잠결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질 도구로 일일이 세세하게 정돈하고, 눈처럼 새하얀 피부엔 향유를 손으로 톡톡 펴발랐다.


무엇을 위해서 이러는지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좋아. 이만하면 됐지?"


혹시 몰라 거울 앞에서 마지막으로 몸상태를 체크한 세라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은 후, 묘하게 들뜬 기분으로 방 밖으로 향했다.


물론 이유야 뻔했다. 어찌 됐건, 글렌이 자신을 이성으로 여긴다고 해도, 이대로 있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므로······.


그의 마음은 자세히 모르지만, 이제 더는 자신도 속마음을 이대로 감추고 싶지 않았다.


글렌이 깨지 않도록 방문을 아주 살짝 닫은 세라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자각하며 욕실을 향해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륙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대부호로 통하는 세리카의 저택답게, 욕실 내부도 굉장히 넓고 쾌적했다.


벽과 바닥은 새하얀 대리석으로 말끔하게 처리된 데다, 구석에 자리한 방향제의 향기로운 내음이 욕실을 가득 채웠다.


두 명 분의 욕조도 주기적으로 물을 새로 바꿔 갈아주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들어가서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우와······ 이게 정말 욕실이야? 지금까지 이런 데서 살고 있었구나, 글렌 군······."


세라는 눈을 크게 뜬 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대저택의 복도에도 부르는 게 값일 만큼 값비싼 초호화 미술품들과 가구들이 즐비해있긴 했다.


그나마 그런 것들 중 그녀가 아는 몇 안 되는 미술품은 시장에서는 거의 안 파는 비매품도 있었다.


하지만 원래 고급 가구라는 건 그만큼 막대한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뭐, 세리카의 영향력과 임팩트를 생각하면······ 쓴웃음 밖에 나오질 않았지만.


아무튼 이윽고 씻을 준비를 모두 마친 세라는 입은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다만, 어제의 계획대로 오래 씻을 생각은 없었기에 간단하게 샤워로 끝내기로 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라고 해도 분명 지켜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어째선지 자꾸만 뺨이 붉어졌다.


다 벗은 의복들은 대리석 벽에 달린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뺨을 달래듯 세라는 황급히 가열한 물을 끌어다 쓰는 펌프식 샤워기의 밸브를 돌렸다.


비록 남에게도 결코 말 못할 부활이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양보차 온 거긴 하지만, 홀로 사는 남성의 집에 방문한 것이다.


그런 데서 거리낌 없이 평소처럼 생활하려고 하자니 도저히 마음이 가라앉을 리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글렌이 아무런 타산 없이 자신을 도와준 건 어쩌면······.


"······으~ 내가 더 의식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래도 이건 이것대로······."


빨갛게 익은 얼굴을 한 채 밸브를 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그러자 따듯함을 가득 머금은 물줄기가 샤워기에서 세차게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에 물이 닿자, 최고급 실선이 하나둘 천천히 빛나더니 그 자체로 성스러운 광경을 형성했다.


사이로 물이 흐르는 두 개의 풍만한 골짜기, 맑고 깔끔한 피부, 고운 선을 그리는 허벅지가 눈부신 백광을 이리저리 반사했다.


"······으응, 아니야. 조금은 더······ 들이대, 볼래······. 언제까지고 제자리일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조용히 결의를 다진 세라는 수증기를 뿜고 있는 머리를 식히며 마저 씻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글렌의 방.


"······쿠우우우우우우우울~. 드르렁~."


세라의 결심이 무색하게도, 글렌은 해가 완전히 뜬 지금까지도 몸을 대자로 뻗은 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쪽도 여행의 피로가 다 풀린 건 아닌 것 같지만, 어제 시스티나가 아침 일찍 온다고 한 건 전혀 모르는 듯 했다.


그렇게 그가 꿀 같은 단잠에 빠져 이불 속을 허우적대고 있자ㅡ.


캉! 캉!


밖에서 익숙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어제 시스티나가 찾아온다고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뭐야, 진짜. 시끄, 럽게······ 쿠우우우울~."


간신히 눈을 살짝 떴지만 금새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캉! 캉! 캉!


한참 동안 두들겨도 아무 반응이 없자, 시스티나의 노크소리가 한 층 더 거세졌다.


"······아······ 그러고, 보니······."


몽롱한 의식 속에서 때마침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분명 어제 대화 중이었을 것이다.


이름은 모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누군가가······ 분명······.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다고 했었······던가.


얼굴이 낯이 익었다.


살랑이는 은색 머리카락에······ 살짝 건방지지만······.


······이름이 분명ㅡ.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침대 위에서 수직으로 몸을 펄쩍 뛴 글렌은 잽싸게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어, 어쩌지······?! 저 녀석, 지금쯤 분명 무진장 화나있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여유로운 휴일 아침부터, 설교 종합선물을 받는 건 죽어도 싫었다.


2층 계단을 서슴없이 쿵쿵 뛰어내려온 글렌은 냅다 도어락을 해제했다.


"······왜 이렇게 늦어요. 제가 문을 몇 번이나 노크했는지 아세요?"


예상대로 현관문 앞에서 등장한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살짝 언짢아져 있었다.


그리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글렌의 모습을 무서울 정도로 상하좌우 면밀히 살폈다.


그 눈은 어째 짜증이라기보단······ 남편의 바람을 추궁하는 아내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미, 미안! 방금 전까지 자고 있었거든. 실은 네가 온다는 것도 일어나서야 생각났지 뭐야."


"으······ 어제 분명 말하지 않았어요? 제, 제가 아침 식사를 차려드리러 선생님 댁에 온다고······."


『제가』라는 말만 묘하게 강조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어, 어라? ······왜지? 의외로 화가 안 났잖아? 평소대로라면······ 분명 나를 들들 볶듯 갈궜을 텐데······.'


자세히 보니 뺨도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 혹시 어쩌면 이번 귀향길로 인해 마음에 한 단계 성장이라도 이루어낸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고 무사히 따라와준 게 기특한 건 사실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긍정적인 변화는 교사로서 축하해줘야 마땅하리라.


"그래. 그러고 보니 성장하는 건······ 실력만이 아니었지. 바로 시스티나······ 너처럼 말야."


"······예?"


시스티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깜박거릴 뿐이었다.


"굳이 마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그 자체로 사람이 한 발짝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그렇게 생각한 글렌이 솔직하게 격려의 말을 입에 담으려고 한 순간이었다.


"······아."


시스티나의 눈이 갑자기 글렌 뒷쪽의 한곳으로 고정되고 말았다.


"······응? 왜 그러냐,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한 글렌도 시스티나의 점이 된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ㅡ.


"""············."""


우연히 시선을 마주친 세 사람은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넋을 잃고 말았다.


눈앞에 펼쳐진 건······ 고작 가운을 하나 두른 채 육감적인 바디라인을 그리는 세라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당연히, 샤워 가운은 걸치고 있어서 불합리한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풍만한 가슴은 가릴 수가 없었는지 가운 밖으로 삐져나온 데다······.


금방 샤워를 한 지 얼마 안 된 직후라 몸 곳곳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남자의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이럴 때는 정말로 원망스럽지만······ 어쩔 수 없지만······.


저절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슴 쪽으로 쏠리게 되는 건······.


"으, 으으으으으~."


하지만 어째선지 먼저 반응한 건 시스티나 쪽이었다.


글렌 앞에서 손바닥을 펼치면서 최근 한 층 더 강해진 흑마 【게일 블로】를 순식간에 발동했다.


얼굴을 분노로 새빨갛게 물들였지만 눈물을 글썽거리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이 바보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으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대체 내가 뭘 했다고?!"


그러자 글렌의 몸이 붕 떠오르며 공중부양하더니 어마무시한 바람으로 인해 저멀리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아르포네아 저택의 주방.


"그래서? 결국 넌 여기에 아침 식사를 차리러 온 거냐? 아니면 아무런 죄 없는 내 몸을 날려버리러 온 거냐? 응?"


바로 앞의 식탁에 앉은 글렌은 언짢은 눈으로 시스티나를 흘겨보며 투덜거렸다.


"······그, 그치만! 어, 어쩔 수 없었는걸요! 그게······ 제 몸이랑은······ 으으으~."


또 다시 알 수 없는 이유로 고개를 푹 숙인 시스티나는 현재 주방에서 능숙한 솜씨로 재료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조, 조금 진정해, 둘 다. 이제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글렌의 맞은편에 앉은 세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어색해진 분위기의 두 사람을 애써 달랬다.


이걸로 당초의 계획이 살짝 틀어지게 되겠지만······ 뭐, 이건 이것대로 좋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참, 그건 그렇고······ 하얀 고양이. 뭐 하나만 물어보자."


"예?"


한창 분주했던 요리가 겨우 한숨 돌릴 틈이 되자, 때마침 글렌이 시스티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평소엔 도시락만 싸주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왜 굳이 번거롭게 휴일에 찾아오면서까지 이러는 건데?"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휴일에는 각종 고고학 자료 수집과 비밀스러운 소설 쓰기로 시간에 쫒기다시피 했던 그녀가 대체 왜?


아무튼 글렌 입장으로선 지극히 정당한 의문이리라.


"아, 그, 그건······ 그게······."


이럴 때만 유난히 날카로운 글렌의 지적에 시스티나가 식은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모색한 순간ㅡ.


"정말이지, 글렌 군도 여전하다니까. 그런 걸 물어보는 건 굉장히 실례야. 모처럼 요리를 해주러 온 손님한테, 그치?"


위기에 봉착한 시스티나에게 세라가 싱긋 눈읏음을 지으며 윙크를 보냈다.


(가, 감사합니다, 세라 씨. 덕분에 살았어요. ······그런데 어쩌죠. 이럼 제가 너무 죄송해지는데······)


(후훗, 신경쓸 거 없어. 다른 건 몰라도 글렌 군은 이런 데에 있어선 면역이 전혀 없으니까)


"······?"


그렇게 서로 자기들끼리 알 수 없는 텔레파시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본 글렌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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