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이, 그곳에 도착했다.

그때, 그 남자는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제목은― 「멜갈리우스의 마법사」.

시간은 마침 해질녘.

타오르는 듯한 석양의 주홍색과 흑의 음영으로 빚어내는 아름다운 자연공원의 풍경 속에서 그 남자의 평온한 모습은 시간이 멈춘 듯, 마치 한 장의 그림 같았다.

"있잖아."

"말해봐······ 어째서, 결말은 정해져 있는 거지?"

갑자기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재미있어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고뇌가 배어있는 듯한 그런 어조.

"하하하. 무슨 바보같은 짓을······ 라고 생각하는거야? 그 생각이 맞아."

"왜냐하면 이야기는 「작가」에 의해 짜여지고, 그려지고, 그리고... 「결말」이 정해지니까."

"일단 정해진 이야기가 책의 형태로 장정된 이상, 아무도 그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없어······."

"그래, 비록 그게 「작가」일지라도 말이야······."

"······"

"하지만······ 만약, 그 정해진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이상으로 설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옳고 정의로운 행동이라면 더더욱."

그런 식으로 온화하게 말하는 남자 ―― 전 제국 궁정마도사단 특무분실 집행관 넘버 11 《정의》 저티스 로우판의 말을,

"잠꼬대 하지마, 저티스. 일어나······ 빨리 결착을 내자."

제국 궁정 마도사단 특무분실 집행관 넘버 0 《광대》 글렌 레이더스는 총구를 겨누며 철저하게 무시했다.

피아의 거리는 약 10미터.

"이런이런, 성격도 급하구나 너는"

저티스가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책장을 넘긴다.

그런 저티스에게 글렌이 말한다.

"네놈이 왜 이런 바보같은 소동을 일으켰는지는 몰라."

"관심도 없고 물어볼 생각도 일절 없어."

"「봉인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들을 생각도 없어!"

"그냥 죽어! 네놈은 알자노 제국에 싸움을 건 최저 최악의 국가 반역자로서, 무의미하고 비참하게 죽어라!"

하지만 그런 글렌의 증오와 분노와 매도를,

"하하하하, 역시 대단하네 글렌. 너만은 『읽지 못했어』."

저티스는 봄바람처럼 가볍게 받아넘겼다.

"뭐······!?"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이 일련의 사변의 흐름을 전부 『읽고 있었어』."

"완벽하게 다 읽고 있었어."

"이 시기에 「원탁회」가 임시로 개최되리라는 것도."

"리엘과 크리스토프가 제도에 없는 것도."

"아젤 르 이그나이트 경만 결석하리라는 것도."

"이브가 총지휘를 맡는 것도, 특무분실들이 분산되는 것도."

"도중에 네가 나의 진정한 의도를 간파하는 것도, 이브가 마지막에 판단을 그르치는 것도, 세라가 부상으로 전선을 이탈하는 것도······."

"모든 것을, 나는 다 읽고 있었던 거야."

평범한 상대라면 이런 망언, 단순한 허세라고 웃어 넘길 것이다.

하지만 글렌은 전혀 웃지 못했다.

저티스에게는 이미 미래예지·예언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정확한 수수께끼의 행동 예측 마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의 마지막 행동은 『읽지 못했어』."

"······뭐?"

"너는, 내 계산에 의하면······ 세라가 부상당한 시점에서 그녀를 돕기 위해 전선을 이탈할 터였다. 그런데······ 넌 여기 서 있어. 너는 또 내 계산을 뛰어넘은 거야."

"너는 내가 연출한 완벽한 이야기에 상처를 냈어. 이건 역시나 화가 나네."

"정말 분해, 그토록 공을 들여 계산에 계산을 거듭하고 검산을 반복해서 꼼꼼하게, 완벽한 준비를 했는데 말이지."

"너 같은 3류 마술사가 이 나를 앞지르다니. 하지만 말이야······."

저티스는 말과는 달리 입가를 옅은 미소로 일그러뜨린다.

"너라면 올 거라고 믿고 있었어. 모든 예측을 넘고 여기에 설 거라고, 계산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렇게 예측하고 납득하며 기대했지."

"그럴 확률은 몇 번을 다시 계산해도 0%인데."

"그 0%의 광경을 앞에 두고 진심으로 감동하는 내가 있어."

저티스가 책을 덮고 옆에 놓으며 천천히 일어선다.

낯익은 특무분실의 예복이 아니다. 중절모, 프록코트, 지팡이······ 마치 요술사 같은 멋쟁이 차림이다.

그리고 저티스가 천천히 글렌 쪽으로 돌아선다.

"글렌. 넌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넌 정말 굉장한 남자야."

"이런 식으로 항상 이야기의 결말을 바꿔 버리지."

"이래봬도 난 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어. 그러니까 나와 너의 이 싸움이야말로 이 사변의 분수령을 장식하는데 적합하겠지."

라며 저티스는 검지손가락을 세웠다.

"공정하지 않으니 제대로 설명할게."

"글렌, 타임 리미트는 앞으로 10분이야. 엔젤 더스트를 이미 「원탁회」의 멤버에게 주입해놨거든."

"앞으로 10분후에······ 엔젤 더스트의 피투여자들이 말기 증상을 보이면서 지금까지의 싸움으로 완전히 허술해진 원탁회 내부를 산산조각 낼 거야."

"고참 멤버도, 여왕 폐하도 예외없이 말이지."

"뭐, 항상 방비가 철저한 여왕 폐하와 「원탁회」의 패거리들을 한데 묶어 단번에 암살하려면 계산상 이런 방법밖에 없었어."

"그래서 그것을 막으려면······ 네가 나를 죽이는 수밖에 없어."

"······"

"자, 시작하자 글렌. 비록 네가 신의 각본조차 뛰어넘는 연기자일지라도······ 나는 너를 쓰러뜨리고 나 자신의 「정의」를 관철해 보이겠어."

"나의 「정의」가 너의 「정의」보다 위라는 걸 증명하겠다."

그런 식으로 글렌을 똑바로 바라보는 저티스의 눈은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의 나락을 보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흔들림 없는 신념과 의지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심코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눈초리였다.

"나는 바보니까······ 네놈의 말은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어."

"네놈이 뭘 위해서 이런 빌어먹을 짓을 저질렀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말이다······ 한 가지, 알기 쉬운 내용이 있었네? 신기하게도 마음이 맞잖아."

"그래, 어디 해보자는거지······ 이 썩을 놈이! 네놈은― 이 내가 쳐죽여주겠어!"

글렌이 저티스에게 총구를 겨눈 채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그렇게 나오지 않으면······"

휙!

지체없이 저티스가 두 손을 흔들었고, 흰 장갑에서 의사 영소 입자가 흩뿌려졌다.

즉시 저티스 주위에 소환된 인공 천사 【허스 엔젤】 시리즈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전장에 저티스의 폭소와 천사들의 날갯소리, 그리고 글렌의 포효와 총성이 하늘 높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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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이 아닌 추상일지 10권 중 글렌과 저티스가 싸우기 전에 나눈 대화임.

의역이 있지만 감상하는데 지장은 없을거라 생각해요. 번역하시는 분 존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