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빌론의 자극적인 묘사에 대해서

라라랜드가 감정에 흘러넘치는 영화지만 그것 자체가 영화의 목적이자 핵심인 것처럼 바빌론 또한 눈요기처럼 보이는 여러 묘사들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핵심과 맞닿아 있고 영화 내용과 잘 조응한다.
2. 할리우드의 역사
바빌론은 1926년부터 1932년까지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당대 영화사가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의 큰 변화를 맞이하는 과도기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재즈 싱어 (1927)
알 졸슨의 영화 재즈 싱어는 영화 역사상 최초로 발성 대사가 들어간 토키 영화로서 이 영화의 영향으로 영화사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할리우드가 이렇게 큰 변화를 맞이하며 많은 사람들이 새로 도입된 유성 영화에 환호했지만 또 많은 영화인들은 이러한 새로운 방식에 저항하기도 했으며 특히 수많은 배우들이 갑작스럽게 변화한 영화 제작 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경우가 많았다.
싱잉 인 더 레인 (1952)

이 시기의 과도기를 다룬 많은 영화들 중 가장 대표적인 영화
바빌론에서 이 영화가 연상되는 장면이 많은데 그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은 싱잉 인 더 레인의 여주인공이 발음 교정을 받는 장면이다.
바빌론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여주인공은 무성 영화 시대의 큰 스타였지만 발음과 목소리의 문제로 유성 영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로 나온다.

바빌론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할리우드에서는 배우들이 각자의 스튜디오에 소속되어 있었고, 그렇기에 다른 영화사의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대여금을 지불해야하던 시기였다. 바빌론에서는 당시 할리우드를 대표하던 무성 영화의 스타 잭 콘레드(브레드 피트)가 소속된 MGM, 그리고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가 소속된 키노스코프라는 두 스튜디오가 나온다
3, 바빌론에서 일부 모티브로 삼은 영화인들(전기 영화가 아니기에 실제 인물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설정이 완전히 같지는 않음)
존 길버트 / 잭 콘래드

: 20년대까지 무성 영화시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였지만 유성 영화 시기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한 비운의 스타이다.
- 빅 퍼레이드(1925)

: 존 길버트 주연의 무성 사극 전쟁 영화로서 잭 콘래드가 영화 초반부에 기사 옷을 입고 촬영하던 사극 로맨스 극의 모티브로 차용된 작품이다.
- His glorious night (1929)

: 존 길버트가 처음으로 출연한 유성 영화이자 당시 관객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그의 몰락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속 여주인공의 이름이 캐서린인데 잭 콘래드가 첫 발성 영화에서 사랑한다며 고백하던 상대의 이름도 캐서린이다.
클라라 보우 / 넬리 라로이

: 클라라 보우는 넬리 라로이라는 캐릭터의 형성에 있어서 잭 콘래드에 존 길버트가 연상 되는 만큼 완전히 차용된 인물은 아니지만 넬리의 캐릭터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녀는 어렸을적 굉장히 불우하게 살았으며 어머니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
클라라 보우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에게 학대를 하기도 하였는데 클라라 보우가 스타가 된 이후 그녀의 아버지가 할리우드에서 얼간이로 조롱 받고는 했었으며 그것이 이 영화 속에서 풍자 되고 있다. 또한 그녀는 눈물 연기를 탁월하게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에디 매닉스 / 마누엘 토레스

: 에디 매닉스는 '헤일, 시저!'라는 영화 속 조쉬 브롤린이 연기한 캐릭터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한 MGM 회사의 매니저 같은 역할을 담당하던 실존 인물이다.

:영화 속 레이디 페이 주가 처음 등장해서 매혹적인 공연을 하는 장면은 1930년 개봉작 '모로코'에서 등장하는 유명한 장면을 인용한 것이다.
주연 배우인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극 중에서 레이디 페이 주와 똑같이 매혹적인 공연을 펼치다 마지막에 관중 속의 여성에게 키스를 하며 그 장면이 마무리된다.
4. 인물 중심적으로 보는 바빌론
바빌론은 크게 인물 중심적인 관점과 영화 예술에 대한 두 가지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인물 중심적으로 각 캐릭터의 극 중 행적과 변천사를 생각해볼 수 있다.
바빌론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들 모두 별로 호감이 가는 인물이 아니며 스스로 바람직한 생활을 하지 않고 훌륭한 인품과는 거리가 있다는 특징이 있다.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들처럼 관객이 온전히 빠져들기가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다.
- 영화 속 인물들의 공통점
(1) 다들 아웃사이더들이다
넬리 라로이: 시골 촌뜨기 출신 -> 교양도 별로 없으며 스타가 되고자하는 야망만을 가지고 있다
매니 토레스: 멕시코 출신의 이민자
시드니 팔머: 흑인 트럼펫 연주자
잭 콘래드: 어렸을 때 굉장히 가난하게 자라왔고 계급적인 컴플렉스가 있는 것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아내들은 하나 같이 부유한 외국인이거나 잭 콘래드가 고급 예술 종사자로 여기는 뮤지컬 배우이다)
(2) 자신들의 본성을 바꾸도록 요구되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끝내 본성을 바꾸지 않고 쓸쓸하게 퇴장하는 인물들이다
- 매니 토레스

영화는 아무도 없는 황폐한 거리에 서 있는 매니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매니는 코끼리를 언덕 위의 화려한 파티장으로 끌고 올라가야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운전수를 기다리고 있다.
운반을 맡은 운전수는 자신이 순조롭게 말을 끌고 갈 줄 알았지만 뜻하지 않게 매니와 코끼리를 끌고 올라가게 되어 신경질을 부린다. 언덕 위로 끌려 올라가던 코끼리는 저항을 하더 결국 겁에 질려 변을 지리게 된다.
처음부터 과하게 자극적으로 묘사되어 사람들의 거부감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이 장면은 극 중에서 굉장히 중요한 장면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할리우드에서의 매니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 마약이 가득 들어있는 파티장의 창고에서 매니는 넬리에게 자신은 훨씬 더 큰 세계 속에서 일하고 싶다며 그의 야망과 열정을 보여주는 대화를 나눈다. 또한 그는 영화에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강해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내비친다.
매니가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 생각해본다면 그는 말을 타고 파업을 제압하는 것으로 할리우드에서의 첫 임무를 시작했다. 매니는 그때부터 많은 일들을 굉장히 순조롭게 해내며 승승장구해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킬러 앞에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리게 되고 그 이후로 할리우드를 향한 꿈과 열정을 접고 멕시코로 떠나게 된다. 이처럼 매니는 말로 시작해서 순조롭게 승승장구하지만 겁에 질린 코끼리가 되어 배설물을 지리며 퇴장한다.
- 영화 초반부의 긴 파티 시퀀스와 무성 영화 촬영 시퀀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파티 시퀀스는 MGM 회사의 회장, 월락이 주최하는 파티로서 수많은 유명인사와 영화인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영화인들은 그 환락의 파티가 끝난 바로 다음날 영화 촬영 세트장에 출근해서 작업을 해야 한다. 영화는 그 두 시퀀스를 연달아 보여주며 파티장과 촬영장을 서로 대비시키고 있다.
영화의 제목 '바빌론'은 정확하게 두 시퀀스 사이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환락의 도시 '바빌론'이라는 제목은 파티장과 촬영장 중 어느 곳을 지칭하는 것인지 고민해볼 수 있는데 그 두 시퀀스 사이에 정확히 타이틀을 삽입하므로써 당대 할리우드 고위층들의 파티장 모습이 마치 고대 바빌론의 화려하고 정신없는 모습과 동일시 되는 동시에, 그 바로 다음 장면인 무성 영화 촬영장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환락의 바빌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언하면서 영화가 시작하는 것이다.
이 영화 속에는 파티 장면들과 영화 촬영장의 모습이 여러 번 걸쳐서 등장하는데 파티장과 영화 촬영장은 사실상 동일한 의미를 공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매니와 넬리

매니와 넬리가 파티장에 처음으로 등장해서 영화 촬영장까지 향하게 되는 모습이 겹친다.
- 매니는 남의 차를 타고 사고를 내며(코끼리가 떨어질 뻔함) 파티장에 도착한다.
- 넬리도 남의 차를 타고 사고를 내며(장식품을 부숨) 파티장에 도착한다.
- 둘 다 파티장에서 영화와 관련된 일을 처음 얻게 된다.
- 넬리는 어제 타고 온 남의 차를 타고 파티장을 떠난다.
- 매니도 남의 차를 타고 잭 콘래드를 태워 파티장을 떠난다.
- 넬리가 영화 일을 얻게 된 것은 기존의 스탭이 쓰려져서 그 역의 대타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 매니가 촬영장에서 일을 얻게 된 것은 기존의 스탭이 창에 찔려 죽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대타로 일을 맡게 된 것이다.
--> 둘 다 기존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일을 수행할 수 없자 그들의 대타로 영화계에 입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넬리와 매니가 반대로 자신의 일에서 물러나게 되고 새로운 스타나 인물들이 그들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이렇듯 전체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대타가 기존의 역할을 대체하는 순환적 구조가 잘 드러난다.
5. 시작과 끝이 거울처럼 마주 보는 영화의 구조
영화는 파티장 --> 촬영장 장면으로 시작해서 촬영장--> 파티장 장면으로 끝나며 시작과 끝이 거울처럼 서로 마주 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의 촬영장은 무성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이며 마지막에 등장하는 촬영장은 잭 콘래드가 다른 배역의 대타를 맡아 출연하게 된, 바닷가에서 촬영하는 유성 영화 촬영씬이다.
그 영화에서의 잭은 초반의 매니와 넬리처럼 다른 배우들의 대타로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영화 속 촬영장의 스탭들은 아무도 집중하지 않으며 잭을 크게 신경 쓰지도 않는 듯하고 심지어 극 중에서 영화가 쓰레기라고 언급하는 장면도 나온다.
즉, 이 영화는 초반부와 후반부가 같은 성격을 지닌 채 대응되면서도 동시에 서로 대조되는 모습도 보인다.
영화 후반부에는 여러 번의 파티 장면이 등장하지만 가장 중요한 파티 장면은 LA의 똥구멍 시퀀스이다.
LA의 지하 파티 장면은 언뜻보면 파티로 보이지조차 않지만 그 곳으로 매니를 안내해주는 제임스 맥케이(토비 맥과이어)는 그 곳이 LA에 남은 마지막 파티장이라며 직접 언급한다.

매니가 돈을 갚으러 왔다가 맥케이에 의해 파티장으로 끌려가는 시퀀스는 영화의 첫 파티 장면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 대응되는 장면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매니가 파티장으로 가기 위해 산 위의 화려한 파티장으로 올라가지만 지하 파티장 장면에서 매니는 반대로 더러운 파티장을 향해 지하 깊숙하게 내려가게 된다. 이처럼 두 파티 장면은 서로 성격이 같지만 동시에 정반대로 대조되는 모습도 보인다.
- 양쪽 파티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서 동물이 등장한다 (코끼리 / 악어)
- 두 파티의 주도자는 모두 괴물처럼 묘사된다 (월락 / 맥케이)
- 양쪽 파티 모두 사람이 죽거나 쓰러진다 (미성년자 배우 제인 / 가래침을 뱉는 부하 윌슨)
- 첫 장면에서는 코끼리가 배설물을 지리는 것이 강조되고 지하 파티 장면에서는 윌슨이 가래침을 뱉는 것이 강조된다
- 양쪽 파티에서 매니의 행적과 위치가 동일하다
지하 파티장 속 쥐를 잡아먹던 기인은 잭 콘래드와 넬리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시점 맥케이가 소개해준 배우로서, 영화의 서사 위치상 잭과 넬리를 대체할 배우로 등장한다(그 근거로 극 중에서 돈을 갚으러 온 매니에게 멕케이가 넬리의 안부를 먼저 물을 뒤 새로운 배우를 소개 시켜주겠다며 대사를 한다).
그러한 면에서 후반부 지하 파티장과 초반부의 저택 파티장은 서로 대응되는 장면이며 두 장면 모두 배우의 물갈이가 이루어지는 시점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시선으로 두 장면을 바라본다면 첫 번째 저택에서의 호화스러운 파티 장면은 넬리나 매니등의 인물들이 영화계에 입성하는 화려한 상승기이지만 마지막 지하 파티장 장면은 반대로 그들이 영화계에서 퇴출 또는 퇴장 당하는 시기이기에 큰 순환기 속 동일한 시점임에도 서로 대조되는 면모를 보인다. 이처럼 이 영화는 오르막길로 시작해서 내리막길로 끝나는 구조적으로 큰 순환 사이클을 이루고 있다.
6. 변하는 세상 속 본성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바빌론은 바뀌는 세상 속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같이 변화하지 못해서 도태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도록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의 본성을 지키기 위해 숭고하게 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양면성이 모두 들어 있는 것이 데미언 셔젤 영화들의 특징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 넬리의 본성
넬리는 영화 내내 스스로가 이미 스타라며 대사를 한다. 실제로 그녀가 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도 그녀의 화려한 면모와 또 불우했던 집을 생각하며 흘릴 수 있었던 눈물이었다. 즉, 넬리는 그녀의 본성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성 영화 시대가 도래하자 그녀의 본성은 영화 업계에서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된다. 그런 상황 속 넬리는 키노스코프로 스카웃 된 매니에게 자신은 어떻게든 바뀔 준비가 되어있다며 말한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변화하지 못하며 두 번의 파티장에서 폭주를 벌인다.
그 첫 번째 파티장은 수영장이 있는 야외 파티장이다. 파티장의 화장실에 있던 넬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깔보며 뒷담화 하는 것을 엿듣게 된다. 그 말을 듣고 견디지 못한 그녀는 밖으로 나와 아버지한테 방울뱀과 싸우도록 강요한다. 넬리의 아버지가 방울뱀과 싸우지 못하자 직접 방울뱀을 집어든 넬리는 뱀에게 물리고 만다.

영화 속 방울뱀은 할리우드를 형상화하고 있다. 넬리는 방울뱀과 싸워 이길 수 있다며 당당하게 말했고, 무성 영화 시대에는 그것이 통했지만 시간이 발성 영화의 시대가 오자 그녀는 방울뱀에 목을 물려 쓰러지게 된다. 이는 할리우드와 넬리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녀의 두 번째 폭주는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모이는 실내 파티장에서의 폭주인데 넬리는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발음 교정까지 받으며 파티장에 참석하지만 부족한 교양으로 인해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적응하지 못한다.
- 사람들이 조지 엘리엇에 대해 묻자 넬리가 He is~ 라고 대답하는데 조지 엘리엇은 남자 필명으로 활동하는 여성 작가이다.
- 사람들이 미스 줄리에 대해 묻자 넬리는 She is~ 라고 대답하는데 미스 줄리는 인물이 아니라 작품명이다.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 넬리는 결국 폭주를 하게 되고 저속한 말을 뱉으며 손으로 음식을 마구 집어먹더니 비싼 양탄자에 토까지 한다.
넬리가 억지로 그런 분위기를 견뎌냈다면 조금이나마 배우로서의 생명을 연장 할 수 있었겠지만 그녀기 스스로 본성을 감추지 않았기 때문에 퇴장을 맞이해야 했던 것이다.
영화의 초반 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내 방식대로 할거야", "그들은 나를 바꿀 수 없어", "언젠가 그 날이 오면 나는 어둠 속으로 춤을 추며 사라질거야"라며 말하는데 그 말이 영화의 후반부에 그대로 실현된다.
넬리의 퇴장은 한 배우의 커리어나 그녀가 가졌던 꿈을 생각해보면 슬픈 새드 엔딩으로 볼 수 있지만 또 보면 자신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켜내 스스로의 본성을 꺾지 않고 숭고하게 퇴장을 선택한 위엄 있는 결말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잭 콘래드와 조지의 죽음

잭 콘래드 또한 숭고하게 퇴장을 선택한 인물이다. 잭은 처음으로 유성 영화가 들어섰을 때 크게 저항하지 않고 변화를 환영하며 적극적으로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는 영화에 소리가 결합되면 고급 예술이 될 수 있을거라 믿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변화를 맞이하던 잭도 유성 영화 산업 속에서 한순간에 미끄러져 추락한다. 결국 잭도 넬리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며 그 또한 관객들이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자 스스로 퇴장을 선택한다.
그가 퇴장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그의 오랜 친구 조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조지는 잭의 재능을 처음으로 인정해준 사람이자 그가 영화를 사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조지는 계속된 실연 속에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하다가 마침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조지의 상황과 잭의 처지가 겹쳐있다
- 시드니 팔머

흑인 트럼펫 연주자 시드니 팔머도 자신의 인종적인 본성을 바꾸는 대신 영화계에서 퇴장을 자처한 또 다른 인물이다. 그 또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영화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강압적인 시대의 요구 속에서 숭고한 선택을 하고 작은 카페에서 연주자의 생활을 이어간다
- 매니 토레스
매니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본성을 바꾸는 인물이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계속해서 찾고 실력도 없는 아버지를 매니저 자리에 앉히는 넬리와 달리 매니는 멕시코에서 함께 이민 온 가족들이 차를 타고 30분 거리에 살고 있는데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매니는 MGM에서 키노스코프로 이적을 가기도 하며 영화 전반적으로 변화를 적극 차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파티장에서 영화계 인사가 그에게 멕시코 출신이냐고 묻자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이라고 바꿔 말한다. 매니는 영화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유일하게 본성을 바꾼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랬던 그도 결국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모든 꿈을 접고 할리우드를 도망치듯 떠난다.
7. 영화 예술 중심적인 관점
데미안 셔젤의 영화들은 어떻게 보면 새드 엔딩이고 어떻게 보면 해피 엔딩인 두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 위플래쉬는 영화 속 주인공이 그토록 오르고 싶었했던 위치에 도달한 성취와 그 과정 속에서 상실한 인간성의 패악이라는 이면성을 모두 담고 있다.
- 라라랜드 또한 러브 스토리로 본다면 새드 엔딩이지만 또 주인공 둘 다 본인이 원했던 꿈을 이루어낸 해피 엔딩으로 볼 수도 있다.
- 바빌론은 각 캐릭터들이 스스로의 위엄을 지켜내기는 했지만 결국은 자신이 몸담고 싶었던 영화판에서 쇠퇴해 사라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새드 엔딩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영화판 전체의 관점으로 본다면 해피 엔딩으로도 볼 수 있다.
바빌론은 많은 영화가 그렇듯 영화에 대한 러브레터를 바치는 영화로 볼 수 있는데 특이한 점은 영화가 러브레터를 바치는 대상들이 크게 호감을 이끌어낼 만한 인물들이 아니란 것이다. 매니가 사랑에 빠진 넬리는 영화계의 스타 또는 영화 그 자체로 묘사되는데 그녀는 교양이 있거나 고급스러운 인물로 묘사되지 않고 마약과 도박 중독에 빠져 살며 구제불능의 사람으로 묘사된다.
데미안 셔젤은 영화가 소수의 엘리트들만 즐길 수 있는 고급 예술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넬리처럼 형편없고 저속한 면모가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모습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 파티와 영화 촬영 도중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는 이유
영화의 파티 장면들과 촬영장의 장면들은 동일한 장면으로 묘사된다. 두 장소에서 사람들이 죽거나 쓰러지는 것은 영화 촬영 현장이 얼만큼 투박하고 조악한지 잘 보여준다. 그런 제작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예술이 영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데미안 셔젤은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이 영화는 극 중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에 대한 별다른 애도 없이 바로 다음 장면으로 전환되는 특징이 있다.
넬리가 처음으로 유성 영화를 찍을 때 카메라 박스 안에 오랫동안 갇혀있던 직원이 죽게 되는데 그 바로 다음 장면이 유성 영화를 환호하는 파티장에서 폭죽이 터지는 장면이다. 심지어 잭 콘래드의 쓸쓸한 죽음 이후에도 여운을 느낄 시간 없이 바로 장면이 전환된다.
이렇듯 영화 제작의 조악한 환경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쓸쓸히 퇴장을 맞이하지만 영화판 전체는 그럴 때마다 끊임없이 대타가 들어와 멈추지 않고 순환되는 것으로 묘사가 된다. 데미안 셔젤은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개개인들이 세트에서 사라지더라도 그들이 축조해낸 영화사의 큰 틀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8. 저속한 예술인 영화
영화 속에서 똥, 오줌, 가래침 등의 배설물이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것은 영화의 속성 자체가 저속한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거부감이 느껴지지만 오히려 어떤 면에서 인간스러움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잭이라는 인물은 영화의 예술적 수준을 고양시키고 싶어했다. 그의 아내인 에스텔은 잭이 고급 예술의 종사자라고 여기는 연극 배우이다. 잭은 초반부에는 영화에 소리가 결합된다면 굉장한 고급 예술이 될 수 있을거라 믿었지만 후반부에서는 아내에게 소리치며 영화 예술을 옹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잭이 영화를 옹호하는 것은 영화가 고급 예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의 본성이 저속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해 공방하는 것이다.
- 엘리노어와 잭의 대화

잭이 엘리노어를 찾아가 자신의 쇠퇴의 원인에 대해 묻자 엘리노어는 그것은 개개인의 노력과 관계 없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며 그 순간 나누고 있는 그들의 대화도 미래에 끊임없이 반복될거라 말한다. 그러나 엘리노이는 잭에게 그들 모두가 죽고 수십년 후 누군가의 자식이 그가 출연하는 영화를 재생한다면 그는 그 순간 스크린 속에서 되살아나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 사실에 감사하라 당부한다.
잭과 엘리노이, 넬리가 모두 죽은 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말이 매니에 의해 예언처럼 실현된다. 1952년 매니가 가족들을 데리고 키노스코프에 방문한다. 매니는 20년 전 영화계를 떠난 뒤 영화를 보지 않고 뉴욕에서 오디오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 아이스크림
매니의 딸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며 엄마와 떠나자 매니는 혼자 길거리를 거느리다 충동적으로 영화관에 들어간다.
영화 초반부에 넬리가 차 안에서 매니에게 아이스크림에 대한 말을 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왜 있는 그대로 좋아하지 않고 계속해서 토핑을 올리는지 모르겠다며 격한 감정으로 얘기한다.
이는 넬리가 자신의 본모습을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그녀의 키가 너무 작다거나 뚱뚱하다는 등의 잔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에 대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얹히는 여러 조건들이 아이스크림의 토핑으로 비유가 되고 있으며 아이스크림은 넬리의 본성 그 자체이다.
메니는 딸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하자 넬리의 생각이 떠올라 충동적으로 영화관에 들어간 것으로 생각된다.
매니가 들어간 영화관에서는 싱잉 인 더 레인이 상영 중이었는데 넬리와 마찬가지로 발음을 교정 받는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본 매니는 눈물을 흘린다.
그 때 매니의 눈 속에는 자신만의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한다. 그의 영화 속에는 과거 넬리의 모습이 비춰진다.
20년 전 도박 빚을 진 넬리가 매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자 매니는 화를 내다가 결국 그녀를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그 장면속에는 매니의 플래시백이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데 그 플래시백은 현재의 망가진 넬리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 잘 나가던 넬리의 화려한 모습들이 담긴 내용을 담고 있다. 순간적으로 스쳐간 그 기억에 매니는 넬리를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과거 넬리의 화려했던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을지 몰라도 매니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매니의 영화 속에서는 그가 멕시코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넬리에게 고백하는 장면과 그 고백을 넬리가 받아들이는 장면도 상영된다. 이 때 매니의 고백은 이미 시기가 늦은데다가 넬리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조건이기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던 그들의 사랑도 현실에서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러나 넬리는 옆에 있던 카메라맨을 통해 매니와의 사랑이 이루어진 그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결국 잭과 마찬가지로 넬리와 매니의 사랑 또한 현재로는 이루어질 수 없지만 미래의 누군가에 의해 재상영됨이 된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불멸의 존재가 된 것이다. 이는 매니가 보는 영화 속에서 실현된다.
마지막으로 매니의 영화 속에는 영화사의 수많은 작품들이 스쳐가며 상영되는데 이 때 이 영화를 보는 매니는 관객 그 자체를 나타낸다. 매니와 넬리의 사랑은 관객과 영화 간의 사랑인 것이다. 매니가 끊임없이 사고를 치던 넬리를 보살펴주고 도와주던 모습은 관객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바치는 모습처럼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영화의 장면들이 나열되어 상영되는 것은 영화가 그때까지 받아온 관객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보답해주는 방식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다.
언택트톡 내용의 순서나 디테일한 표현들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중요한 내용 위주로 최대한 왜곡 없이 적긴 했는데 이동진이 말로 설명한걸 글로 정리한거라 표현 상의 차이에 따른 약간의 내용 왜곡이 있을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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