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체적으로 신화와 종교에서는 결함투성이 인간(혹은 세계) 와 완전한 신(혹은 완전한 것으로 표현되는 천국)의 대립이 나타나는데 컬티스트 시뮬레이터에선 인간과 신의 경계가 생각만큼 뚜렷하지 않았음.
컬티스트 세계관의 신이라 할 수 있는 시간들은 이름이나 다른 시간들에게 그 지위를 위협받고 또 대체될 수 있다는 것. 또 불완전한 인간이 신의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선했음. 보통 신화에서도 끽해야 영웅 끽해야 반신 정도로 마무리 되니까.
이건 고대 그리스에서나 보던 세계관이라도 더더욱 놀랐음. (가이아가 우라노스에게 죽고 우라노스가 크로노스에게 죽고 크로노스가 제우스에게 죽고 하지만 제우스의 자리도 다시 나타날 또다른 후계자에게 위협받을 예정)
절대적이고 수직적이고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체계로 채워진 기독교적 전통이 익숙한 현대 사회에서 이런 고전적인 세계관을 베이스로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놀랐음. 굳이 그렇게 하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2.초월의 과정은 아마도 카발라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음.
만수스에 위치한 각각의 장소들. 또 그 가장 위에 존재하는 영광. 이 영광에 이르기 위해선 특정한 길이 존재한 점에서
만수스에서의 각각의 특징들을 카발라에서 말하는 세피로트의 나무와 대응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짜 대응해보진 않아서 그건 모르겠고.
카발라에선 초월의 너머의 세계를 3단계로 구분하는데 아인(무), 아인 소프(무한), 아인 소프 오르(무한한 빛)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장생자 이름 시간으로 대응될 수 있을 것이라 여김.

3.맨 처음엔 게임 혼자만 알고 있는 고유명사에, 상호모순적인 텍스트들이 넘쳐나서 또 그럴싸한 개소리들을 나불거리는 똥겜이구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게임의 법칙들을 이해하면서 부터였음. 법칙은 각각 세계를 이루는 원리이며 이는 순환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음.(법칙은 각각 개별적으로 작용되지 않고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서로에게 영향을 줌)모든 형태는 변하고 고정적인 진리도 없으니 모든 텍스트는 처음 말과 뒷 말이 달라지고 끊임없이 모순 투성이로 점철된 말을 할 수 밖에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모순을 진실로 받아드리는 순간 텍스트의 이면으로 전해지는 그 법칙들에 대해서 진짜로 이해하게 됨. 이 쾌감이 진짜 대단했음. 이 쾌감 때문에 다들 이 게임을 놓지 못하는 것 아닐까 싶음.
이 법칙이 현실의 지식이나 앎 경험과 연결되면서 이 게임이 단순한 게임이 아니게 되버리더라.

4.보통 초월이라 하다면 정신의 초월 혹은 영혼의 초월을 의미하는데 컬티스트 시뮬레이터의 세계관에서 초월은 정신과 무관한 육체의 영역이더라. 정신이 변하더라도 그건 육체의 변화에 따른 영향 정도로 묘사가 되고. 그 점도 아주 특이한 지점이었음. 정신보다 육신을 중시하는 건 니체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다른 신화들 (특히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육신의 변화로서 인물의 초월성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 모티브를 얻은 것 같기도 함. (또 그 초월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닌 것이기도 하고)

5.찾아보니 후속작 나온다고 하는데 이 게임의 설정이나 로어들이 더 많이 풀렸으면 좋겠음. 좀 더 정돈된 형태로서.

전반적으로 텍스트들이 파편적으로 흩뿌려져 있어서 게임 하다보면 텍스트 읽고 정리할 새는 없고 수사관 처리하랴 돈벌랴 여행하랴 그러다보면 텍스트는 눈에 안들어오고 지금 위키 뒤적거리며 내 나름대로 설정 정리 중.

나중에 기회되면 내가 이해한 걸 바탕으로 팬픽이나 설정 정리 같은 거 연재해보고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