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손지훈-김기훈이라는 화려한 주연 3인 캐스팅은 관람 전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다. 특히 김건우 테너가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신 이지현 소프라노에 대한 (큰 극장용 한국인 소프라노 3인 중 한명이라는) 추천사 역시 내 기대를 부풀게 했다.
손지훈 테너는 유튜브에서 들은 것보단 조금 더 살이 붙어있는듯한 소리였다. Un di felice에서 amor를 외치며 보여준 크레센도와 탄탄한 중고음이 인상 깊었으며 2막의 아리아들에 대한 기대를 높여줬다. 그리고 대망의 2막 시작. 개인적으로 알프레도의 실력 가늠을 Luge da lei와 그 후 이어지는 고난이도 카발레타인 O mio rimorso를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로 판단하는데,모든 음이 중고음~고음역대에서 머물러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 어려운 카발레타를 편안하게 소화했으며 마지막 음을 하이C로 올려서 질러줬는데 여유롭게 외투를 입으며 무려 10초 가량을 내질렀다. 도박씬 역시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고음역대를 선보임과 동시에 찌질한 하남자 연기 또한 수준급으로 해냈다.
이지현 소프라노는 왜 김건우 테너가 큰 극장용 한국인 소프라노 세명 중 한명이라고 추천하며 소새해줬는지 본인의 가창으로 증명해줬다. 3층 뒷자리에 앉았는데 또랑또랑하게 들리는 성량과 훌륭한 강약조절이 인상 깊었다. Sempre libera의 마지막 E flat까지 깔끔하게 도달해주며 고음 역시 훌륭했다. 도박씬에서의 연기도 훌륭했고 3막에서 침대에 앉아 몸이 ㄴ자 모양이 되어 노래하기 불편했을텐데도 흔들림 없이 훌륭한 가창을 보여주었다.
김기훈 바리톤은 개인적으로 전막 오페라에선 지난 마술피리 이후 두번째 보는데 확실히 베르디 극이라 그런지 마술피리 때 보다 본인의 역량을 훨씬 더 잘 보여줬다. 첫 등장부터 엄청나게 넓은 흉곽에서 나오는 큰 성량에 압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음에 능한 바리톤이라는 특성 덕에 Di provenza의 마지막 고음에서 대포를 연상케 하는 울림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김기훈 바리톤은 연기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제르몽의 꼬장꼬장한 꼰대 같은 연기도 너무나도 잘 살려서 발암캐의 진수를 보여줬다.
연출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극불호였다.
무지성으로 현대식 연출을 혐오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스토리 파괴, 개연성 증발은 용납하기 힘들었다.
일단 파리를 파리 호텔이라고 바꾼 것부터가 불안하기 짝이 없었는데 2막 2장에서 나오는 투우사들의 출신지는 그냥 정직하게 마드리드라고 박아둔 것에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비올레타가 매춘부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개연성은 날아갔지만 듀폴 남작이 친1파라는 설정을 들었을때 어째 개연성이 더욱 산으로 갈 것 같아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비올레타를 비롯한 독립군들이 듀폴의 암살 계획을 짰다는 스토리 파괴는 더이상의 흐린 눈은 힘들었다.
심지어 알프레도와 듀폴의 결투에서 알프레도가 쫄아서 총을 못 쏘고 듀폴이 알프레도에게 쏜 총을 비올레타가 대신 맞았다는 점, 듀폴이 알프레도의 총에 맞는게 아닌 독립군에게 사살 당한다는 되도 않는 전개는 분노를 금치 못하게 했다.
심지어 비올레타의 사망이 지병으로 인한 사망이 아닌 총에 맞아 병이 생겨서 죽는다는 말도 안되는 설정으로 바뀌었는데, 결정적으로 이런 식의 전개는 1막에서 잔뜩 뿌려놓은 비올레타의 병사 떡밥이 모조리 맥거핀이 되어버리고 산으로 가는 스토리 라인의 정점을 찍었다.
진지하게 연출과 단장은 베르디와 오페라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
결론 - 가수진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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