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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 ㄷㅇ소설) 슬기로운 단간생활 1

ㅇㅇ(1.177) 2023.07.26 01:13:27
조회 188 추천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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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교급 고교생 나기사 유우리

초고교급 추리소설 작가 아오바라 카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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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이라는 물건은 본질적으로 가리기 위해 발명된 물건이지만, 동시에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속옷을 보이는 건 부끄럽다. 속옷을 보는 건 파렴치하다.


수영복이라는 물건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으면서도 속옷은 남성과 특히 여성에게 일반적인 의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속옷이란 금기. 금단의 영역. 독이 든 성배.


몸과 마음을 허락하지 않은 상대에게 속옷을 노출하는 행위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급소를 훤히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타인의 속옷을 의도치 않게 목격하게 되었을 때, 혹은 마주쳐버리고 말았을 때, 가장 평균적인 고교생의 이상적인 행동은 무엇일까?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나는 적어도 내 행동이 지극히 신사적이었다고 믿었다.




"너, 줄무늬구나……우왁!"




그러니까, 눈앞에 식칼이 꽂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오바라 카나에.


푸른 달빛 속의 소녀가 내리친 서슬퍼런 사시미는 0.5초 전까지 내 팔이 놓여 있던 책상 위에 지워지지 않을 상흔을 남겼다.


식칼이라는 게... 합판을 뚫을 수 있는 물건이었던가?


얼빠진 비명과 함께 가차없는 일격을 회피한 나는 무게중심을 통제하지 못하고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피했네? 너, 반사신경 좋구나."


"뭐라고?"


"...농담. 일부러 천천히 내려쳤어. 진심으로 하면 다치니까...."



아오바라 카나에는 놀라울 만큼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대체 어딜 봐서 천천히 그랬다는 건지. 빠르게 내리치면 책상이 반으로 쪼개지기라도 하나?



"그보다 너, 용감하네."


"뭐?"


"보통 칼을 든 사람에게 팬티 보인다는 말을 하나...? 용기는 가상하다, 고 말하고 싶은 거야."


"윽. 그건, 조건반사 같은 거라...."


"그것 참 대단한 반사신경이구나.... 어라. 반사신경이라는 말, 또 써버렸네. 동어반복은 나쁜 습관인데. 어휘력이 나빠 보이니까."



갑자기 다른 세상에 빠진 듯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아오바라를 올려다보며 나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너, 이름을 아직 말하지 않았어. 속옷 본 건, 방금 한 방으로 용서해줄 테니까. 지금은 이름을 밝혀."


"내가 사과해야 하는 입장인 거야? 그냥 눈 뜨자마자 보였다고."


"이름. 이걸로 네 번째 묻는 거야. 死. 불길한 숫자네."



이 여자, 정상이 아니야!



"나, 나기사 유우리. 세이료인 고교의 신입생이야. 그러고보니 분명, 입학식에 참가하러 온 참이었는데."


"나기사 군. 체육관의 문을 열었더니 정신을 잃었다는 이야기라면 됐어, 그쯤 해둬. 벌써 열네 번째 듣는 이야기니까. 아차, 또 死라고..."



아니, 욘이라고 발음하면 별로 불길하지는 않잖아.



"열 네 번째? 아니,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나처럼 의식을 잃고 깨어난 사람이 더 있다는 뜻이야?"


"그래, 나기사 군과 나를 포함해서 열다섯 명. 농구팀을 무려 셋이나 꾸릴 수 있어. 한 팀은 성비가 맞지 않아 불리해지겠지만...."



TPO에 맞지 않는 이상한 농담이다.


하지만, 열다섯이라면 역시 입학식에 참가하기로 한 신입생의 인원이겠지.



"아무래도 내가 제일 먼저 깨어난 모양이라, 이 건물을 돌면서 한 명 한 명 깨우고 있었어. 나기사 군이 마지막. 꼴찌. 뱀의 꼬리야. 무능한 녀석. 덕분에 시간을 낭비했어."



아니, 이런 걸로 무능함을 판단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나머지는 모두 한 방에 모아뒀어. 지금쯤 자기소개라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너, 화기애애한 그룹에 끼어들면 소외감을 느끼는 편?"


"아니, 딱히. 이래뵈도 붙임성은 좋은 편이라."


"그래. 처음 보는 여자의 속옷 무늬를 지적할 정도의 붙임성이니까...."


"...미안하다."


"농담이야. 무의식적으로 매력을 뽐내고 만 내 잘못도 있으니까. 365일이 발정기에 가까운 사춘기 청소년이 욕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뭐라는 거야...."


"아참, 내 소개를 깜빡했네. 푸른 장미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미소녀. 아오바라 카나에야. 팬심은 환영이지만 연심은 접어뒀으면 해. 나, 이래뵈도 혼전순결 지향이라."



이름은 이미 알고 있다. 독서광은 아니지만 입학 전에 특집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초고교급 추리소설 작가, 아오바라 카나에.


중학생의 나이에 굵직한 미스터리 공모전을 몇 차례나 휩쓴 천재.


초고교급이라는 오만한 별명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녀가 식칼 휘두르기를 즐기는 사차원계 미소녀라는 소문은 어느 스레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뭐, 이래저래 생각이 복잡하겠지만 지금은 군말 없이 나를 따라와 줬으면 해. 사실, 열넷이나 되는 인원을 일일이 설득하려니까 슬슬 지겨워져서, 한 명쯤 미리 줄여두어도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생각중이거든...."


"내 목숨을 덤 취급하지 마! 그보다 식칼은 왜 들고 다니는 건데?"


"눈을 뜬 곳이 우연히도 부엌이었던지라."



'왜'와 '어쩌다'를 완전히 혼동하고 있다, 이 아이. 글러먹었다.


일본의 문단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뭐, 낯선 곳에서 눈을 떠서 호신용으로 집어들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곤 해도 보통은 아니다.



"잡담은 그만. 여기까지."



아오바라는 책상에 깊숙히 박힌 칼날을 쑥 하고 뽑아들고는 뒤돌아 나섰다.



"가자. 열세 명 정도, 머리가 좀 이상한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오래 두면 무슨 사고를 칠 지 몰라."





-




아오바라의 뒤를 따라 어둠이 잠식한 복도를 한참이나 걸었다.


어둡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침침한 정도의 조명은 비치고 있어서, 아오바라의 느린 걸음에 맞춰 주변의 지형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장소는 기본적으로 학교를 표방하고 있다.


기다란 복도에 가벼운 미닫이문이 줄지어 서 있고, 1-A, 1-B 등의 반패도 머리 위로 튀어나와 있는 구조는 어떻게 보아도 평범한 고등학교의 이미테이션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장소는 절대로 학교가 아니다.


걸음마다 삐걱거릴 정도로 습기를 머금어 썩은 마루.


불쾌하게 숨통을 조여오는 곰팡이 어린 공기.


무엇보다, 세상 어떤 교육기관이 온 복도와 교실의 창문을 두터운 철판으로 막아놓는다는 말인가?


이래서야, 마치....



"감옥 같지?"


"아니. 감옥이어도 창문 정도는 내놓지, 보통은. 이건 뭐랄까, 조금 더...."




적당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나와 아오바라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처음의 복도에서 계단을 한 번 내려간 뒤, 또다시 긴 통로를 빙글빙글 돌아 도착한 널찍한 장소의 커다란 문.


저열하기 그지없는 완성도의 팻말에 의하면, 그 장소의 이름은 <식당>인듯 했다.


식칼을 어딘가에 수납한 아오바라는 양쪽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힘껏 문을 열어제꼈다.



"돌아왔어. 내가 생각한 대로 가장 구석진 복도에 한 명...."



말을 하다 말고 쯧, 하고 혀를 차는 아오바라.


식당 안쪽을 보지 못한 나는 그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이 아이의 심기를 불편케 해서 이로울 게 없다는 원리쯤은 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아오바라에게 닿지 않도록 힐끔, 까치발을 살짝 들어 어깨 너머로 상황을 살폈다.


그곳에 보인 건 과연 축구팀을 꾸리고도 남을 정도의, 개성과잉 소년 소녀.


그리고, 난투극...으로 번지기 직전의 난장판.




"이 샌님 새끼가, 뭐라고 말했냐?! 아앙? 다시 한 번 지껄여 봐, 이 새끼야! 죽여버리겠어!"


"아아, 일단 이건 좀 놓고 말하지. 기름 냄새가 밸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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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한 캐쥬얼 패션 차림을 한 녀석이 멀끔한 정장을 차려 입은 녀석의 멱살을 있는 힘껏 붙잡아 올리고 있었다.


구경꾼은 당연히 열셋에서 둘을 뺀 열 하나.


개중에는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는 녀석도, 안절부절 못하며 싸움을 말리려는 녀석도, 웃기는 꼴을 다 보겠다며 그야말로 수수방관하는 녀석도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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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좀 말려봐, 토키토! 저러다 코다마 군이 얻어맞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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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바나. 이번 기회에 좀 쳐맞아보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나는. 3분 안에 끝난다에 걸지."


"바보! 저건 몇 대 맞아서 개과천선할 놈이 아니라고, 당해봐서 알잖아?! 마노가와 씨, 마노가와 씨라도 좀 말려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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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청춘이란 좋구나! 저렇게 남정네끼리 몸을 비비면서 친해지는 거겠지? 격투기도 일종의 스포츠니까~"


"바보가 한 명 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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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듯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무리 속의 작은 무리.


사이가 좋다기보단 한 명이 유독 별난 것 같긴 하지만, 저들의 정체는 뭘까?




"세이료인 중등부에서 올라온 OB 녀석들이야. 지금 한 대 얻어맞으려는 저 사람도 아마.... 아."




생각을 읽은 듯 아오바라가 설명해주던 찰나, 힙합 녀석의 주먹이 정장 녀석의 안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가격과 동시에 멱살을 잡은 손아귀에서 풀려난 정장 녀석.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다 그대로 카펫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덩치는 꽤 좋아 보이는데, 보기보다 쉽게 당하는걸.




"맛이 어떠냐? 이 새끼, 순 약골이구만?"


"야만적이군.... 딱 예상했던 것처럼. 뭐, 폭력을 휘두르는 걸로 네놈의 열등감이 좀 해소되었다면 다행이다만. 나는 오히려 앞날이 걱정이로군. 살면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두르고 볼 네놈의 불우한 앞날이 말이야."


"뭐...라고....! 이 새끼, 역시 죽여버리겠어!"




상황은 대충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대로 두었다간 정말 큰 싸움으로 번질 지도 모르겠는데,


중등부 OB라는 사람들은....




"코다마 군! 밀리지 마! 맞서 싸워!"


"마노가와 씨! 부추기지 마세요!"




적어도 말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 상황을 누가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칼 든 또라이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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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거기까지! 더 이상의 소란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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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교급 고교생 나기사 유우리

초고교급 추리소설 작가 아오바라 카나에

초고교급 튜너 니시자와 야스히코

초고교급 수집가 코다마 렛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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