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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ㄷㅇ소설) 천공호텔 단간론파 2-1화: 《진상》 上앱에서 작성

카즈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11.22 13: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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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단간론파 본가 시리즈의 스토리와 인물에 대한 스포일러, 주관적 해석과 재창작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으니 부디 이를 유념해주시길 바랍니다.

천공호텔 단간론파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 특성상 발언자의 신원을 표기하기 위해 대본체 표기가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읽는데 불편함이 없길 바랍니다.



-



천공호텔 단간론파 ch.2 일상편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


1화. 《진상》


-



<???일 전, ???의 아지트.>



-




"역시 귀찮아, 난 빼주라."

-라고 '나'는 잠꼬대하듯 중얼거렸다. 사실 낮잠은커녕 잡지에 집중하느라 졸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 화제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걸 어필해보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이었다.

아무래도 '나'의 노력따위 멧돼지에겐 아무런 감흥도 없었던 모양이지만.


시무라 카리나: "아아?! 뭐라카노, 니 쫄보가?!"

그 땅딸보 코미디언은 '나'의 멱살을 휘어잡으며 (이때 얼굴 가까이에 대고 읽던 잡지를 놓쳤는데 잡지는 저 멀리 날아가 존나 무거운 소파 아래 틈새로 쏙 들어가버렸다. 도무지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그날 저녁 귀갓길에 새로 한 권 샀다.) 얼굴에 침이 다 튀도록 떠들어댔다.

시무라 카리나: "마, 두 번 다시 안 올 기회를 갖다 쫄고 앉았노! 방송 출연이다, 방송 출연! 보통 방송도 아니고 월드와이드! 이건 엔터테이너라면 마다해선 안 될 영광인 거 모르나!"



아아. 방송 출연.

필시 <천공호텔 단간론파>라는 단간론파 시리즈의 특별 기획의 얘기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당신을 초고교급들에게 대항할 플레이어로 초청합니다'라는 내용의 초대장이 배달된 건 사흘 전의 일이었다.

이번 단간론파는 매우 특별해서 제대로 된 초고교급들과 겨뤄서 이겨낼 특별한 시청자들이 필요하다던가.

요즘같은 시대에 우편 초대장이라니, 수상하기가 짝이 없다고 느꼈지만 일단 방송사에 확인해본 결과 해당 프로젝트가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던 건 사실인 모양이었고…. (캐스팅의 경우엔 극비리 중에서도 극비리라 그쪽에서도 확답을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 녀석들'(대략 시청자 대표로 활약할 나 이외의 녀석들)에겐 수상하기 짝이 없는 초대장이란 물건은 더할 나위도 없이 값진 보물이었다는 게 앞으로 벌어질 모든 사단의 시발점이었다.

이 배운 것 없고, 고집 강한데다 시야는 좁은 쾌락주의자 녀석들에게 그런 고오급 떡밥을 던지다니.

덥썩 물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밟힌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방송 출연, 그것도 하필이면 '단간론파'라니. 싫어. 죽어도 싫다.



"스스로가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걸. 난 어디까지나 자기만족형 쾌락범이지, 서비스 정신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다고. 멧돼지, 너처럼 대단한 사명감 따위 느끼지 않는단 말야."

시무라 카리나: "이 숨 죽은 시래기 같은 새꺄. 누굴더러 멧돼지라 카노! 그게 여자한테 붙일 별명이가! 앙?!"

후네즈 신지: "므후훗. 진정해, 카리나 쨩. 사람을 동물처럼 부르는 건 류 쨩의 나쁜 버릇 같은 거니까. 그냥 넓은 아량으로 보듬어주라구."


구석에서 못생긴 아줌마 형상 따윌 조각하던 신지가 대뜸 거들었다. 역시,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편들어 주는 건 저 녀석 뿐이다. 분위기가 음침한데다 성벽이 좀 역겹긴 하지만.


"아아, 맞아. 나는 보호관찰이 필요한 부진아니까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줘. 아, 나 불쌍해. 내가 날 쓰다듬어주고 싶어."

시무라 카리나: "하이고. 고놈의 주댕이. 말이나 못하믄…."

"게. 다. 가. 멧돼지 양. 방송 출연 같은 걸 했다간 다시 조직으로 돌아오기 어려워질 걸. 얼굴이 팔리는 순간 수수께끼의 유쾌범 놀이는 평생 못 하게 된다고. 체포되지나 않음 다행이지."

후네즈 신지: "어라. 경찰에 체포될 법 한 일을 했었던가, 우리?"


네놈은 지난번 작전 때 코뿔소 거시기에 낙서를 했잖냐. 반드시 체포될 법한 일이야, 그거. 누가 제발 좀 이녀석들에게 현실을 알려주라. 이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니까, 진짜로.


시무라 카리나: "아 쫌, 그냥 좀 하면 안되나! 마, 이런 기회 더 없다니까?!"

"아 거, 싫어요. 조직에 다른 놈들 많은데 왜 꼭 나여야 해? 그런 거라면 사족을 못 쓰잖아."

시무라 카리나: "안된다 안카나! 딴 놈들은 너무 똑똑해서 내 우승에 방해된다꼬~ 니처럼 무능한데다 의욕이라곤 조금도 없는 인간 언저리가 딱 제격이다!"

"아 거 참 말 좀 돌려서 듣기 좋게 합시다…."


속내를 숨길 생각도 없는 그 점이 참 괘씸하다. 꼭 틀린 말도 아니고 들어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점도 있었지만.


후네즈 신지: "그보다 의외네, 류 쨩. 류 쨩은 단간론파의 팬 아니었어?"

시무라 카리나: "엥? 이건 또 무슨 말이고?"

"어이. 신지. 그만. 그만둬."

후네즈 신지: "그 왜, 캐릭터 상품 같은 것도 전부 사모으고~ 초고교급 행운이었던가? 그 캐릭터 좋아했잖아? 또…."

"―예전 일이야."


더 쓸모없는 말이 나오기 전에 딱 잘라 부정했다.

<천공호텔 단간론파>의 초대장을 받았다는 이야기따윌 기쁘게 늘어놓아봤자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는 게 당연하다.

그야….


"나는 3편 애니에서 세뇌비디오 나올 때부터 탈덕했다고. 그딴 유아적인 컨텐츠를 아직도 빨고있냐. 대가리 덜 깨졌네. 덜 깨졌어."

시무라 카리나: "아앙?! 뭐라카노! 니 지금 말 다했ㄴ…."

레이몬 하루히: "얘들아, 요 앞에 오픈한데서 스콘 사 왔어― …어라? 싸우던 중?"

'나', 신지, 카리나: "아닙니다!!"


약속시간보다 30분 정도 뒤늦게, 하지만 양손 가득히 따끈따끈한 빵과 커피를 싸들고 온 하루히의 등장에 일단 그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후, 일단 커피와 빵이다. 커피와 빵.

인류사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받은 영혼들이 이 두 가지 보물에 구원받았던가.

따뜻한 커피에 달달한 빵을 먹으며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화하다보면, 카리나의 이 멧돼지 같은 고집도 언젠간은….




-





-





-


"아아, 씨발."

레이몬 하루히: "류이치 군, 그런 심한 욕은 쓰지 마."


하지만 그 숱한 발버둥과 하루히가 사다준 커피, 스콘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 이름은 <천공호텔 단간론파> 참가자 명단에 당당하게도 올라가버렸다.

보나마나 멧돼지 녀석의 수작이다. 아니, 항상 의외의 포인트에서 뒤통수를 치는 면이 있는 신지의 짓일지도.

젠장, 같이 나가는 사람이 인간언저리든 뭐든 간에 스스로 좀 존나게 파이팅 할 생각을 하란 말이다. 멧돼지 녀석아. 어차피 상대는 초고교급이라는데 같은 팀을 견제해서야 벌써 승산이 없는 싸움이잖아.

어쨌건간 이쪽 4인의 출연이 확정된 후 방송사 측에선 '초고교급 출연자'들의 자세한 신상정보가 담긴 파일들을 보내왔다.

마치 줫밥 고삐리들이 초고고급들에게 조금이라도 버텨내기 위해선 이 정도 어드밴티지라도 없으면 안된다는 듯이 말이다.

아~주 정확히 보셨다.

출연을 결정한 우리 4인('나'도 일단은 끼여서)도 염치도 없이 그 정확한 소견에 동의해, 주최측에서 제공한 정보를 몇날 며칠을 외우고 분석하고 예측해가며 가상현실 살인게임에 대비했다.

여기서 내 입버릇대로 참가자들에게 동물 별명을 지은 게 화근이 되어 시청자 대표 4인은 사흘만에 정체 발각이라는 대참사를 당하게 되지만 그건 한참 뒤의 일.

당장 우리에게 닥친 숙제는 '어떤 초고교급 학생과 파트너를 맺을 것인가'란 문제였다.


"초고교급 학생 사이에 섞여서 2인 1조라니. 이거 시청자 대표의 정체를 숨겨줄 생각은 있는 거냐. 뒤늦게 이런 룰을 추가한 이유가 뭘까?"

레이몬 하루히: "왜. 초고교급과 짝이라니, 말만으로도 난 좋은걸."

시무라 카리나: "내는 너무 안 튀는 놈이 좋은디. 내보다 존재감이 크면 카메라에 안 잡힐 꺼 아녀."


벌써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우리 피에로 아가씨들.
대체 누구의 독촉으로 누가 방송에 출연하는지 알아볼 수가 없는 시츄에이션이다.

파트너를 고민하는 시무라에게 신지가 가볍게 한 마디 조언했다.


후네즈 신지: "흐음~ 튀는 게 싫다고. 그렇담 검은양(초고교급 사서)는 어때?"

시무라 카리나: "엑. 금마는 뭔가 가늘고 길게 갈 인상이라 싫은디. 별로 '초고교급' 같이 보이지도 않고마."


그게 미간을 찌푸릴 정도로 싫어할 일이냐.


시무라 카리나: "차라리 고슴도치(초고교급 변호사)가 낫겠고마. 그럭저럭 기럭지는 있지만 시선을 끌 것 같진 않고. 여차하면 든든한 내 편도 되주지 않겠나? 명색이 변호산디."

후네즈 신지: "오호. 활약이 기대되는 한 쌍인걸. 그럼 나는… 이 아이로 할까."


신지는 이런저런 문서가 어지러져있는 책상 위에서 반짝거리는 회색 머리가 인상적인 푸른 눈의 소녀 사진을 집어들었다. 이미 지난 며칠동안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을 만큼 새겨놓은 얼굴이지만, 책상에 둘러앉은 모두가 다시금 감탄을 내뱉을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이었다.


"초고교급 동화작가? 너무 사심 채우기 아니냐? 큭. 투샷이 상상이 안가는데. 천국과 지옥 같잖아."

후네즈 신지: "후훗. 그렇게 말해도 아주 부정할 생각은 없는 걸. 하지만 그런 건 아니고, 사실 이 아이가 모든 초고교급들 중에서 가장 존재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거든."

시무라 카리나: "'존재가 수수께끼'…? 무슨 외계인이나 도시전설처럼 들리는디."

레이몬 하루히: "도시전설 맞아…. 《붉은 발의 아리스 님》이라는, 몇 년 쯤 된 거긴 한데…. 조금이라도 독서에 관심이 있거나 미스터리에 빠삭한 사람이라면 알 법한 실종사건이야. 놀랍게도 우리가 받은 자료의 '아리스'가 바로 그 당사자인 것 같고."

시무라 카리나: "흥. 책 같은 거 읽어서 뭐하노. 묵지도 못하는 거."

"나도 동화 같은 파스텔톤 키워드에는 관심 없어서 모르겠네."

후네즈 신지: "어쨌든 난 이 아이로 픽스. 하루히 쨩은?"

레이몬 하루히: "난… <초고교급 펜싱선수>. 이유는…."

시무라 카리나: "뭘 이유씩이나, 뻔할 뻔자구먼. 으휴, 여시같은 뇬."

레이몬 하루히: "그, 그런 거 아냐…!"


아니라곤 하지만 하루히는 정육점 조명으로 써도 될 만큼 얼굴을 환히 붉혔다.

가벼운 놀림과 웃음으로 차례가 얼버무려지고선, 곧 남은 순서가 '나'밖엔 없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후네지 신지: "후훗. 그럼 류 쨩만 남았네. 난 류 쨩의 선택이 가장 궁금한걸. 항상 추녀 취향, 추녀 취향을 입에 달고 살던 인간의 선택은~?"

"아아, 뭐. 나라면 당연히…."

시무라 카리나: "음~ 류이치는 로리콘처럼 생겼으니까 거북이(초고교급 랭킹메이커)를 고르지 않을라나."

"어이."

레이몬 하루히: "아냐. 류이치 군은 도 M인 척 하는 도 S니까, 적당히 기 세보이면서 살살 말로 약올리며 괴롭히기 좋아 보이는 사람으로 고를 것 같은데…."

"이야. 하루히가 날 기가막히게 잘 아네. 네에, 인간언저리 류쨩의 파트너 선정은 해당 기준으로 진행되었답니다."

레이몬 하루히: "우와아, 진짜였어…. 농담으로 한 말인데…."

시무라 카리나: "기분나쁜 새끼…."

후네즈 신지: "후훗. 자, 그러면 이번엔 진짜로. 류 쨩의 변태성욕의 희생자가 될 그 어린양은 누구~?"

"그야…."


모두의 열렬한 성원과 기대 속에, '나'는 만지작대던 스테이크 나이프로 '그 녀석'의 얼굴 사진을 깔끔하게 내리찍었다.


"당연히 이 녀석이지."



-




그렇게 터무니없이 가벼운 사고회로의 작동대로 '나'는 흰토끼와 짝을 이뤘다.

'나'의 심술 섞인 장난이 아니었더아면 아마 흰토끼는 그렇게나 아끼는 도박사 친구 녀석과 한 태그를 이룰 수 있었겠지.

…이후에 그 둘 사이에 벌어진 일을 생각해보면, 그 결정은 내가 평생 남긴 숱한 과오들 중에서도 가장 질 나쁜 것 중 하나였다.




-





<살인게임 1일차, 태그 A의 개인실>





-



"아, 씨발…. 존나게 쫄리네…."



눈 앞에서 대롱대롱거리는 밧줄 매듭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발 아래선 균형이 살짝 안 맞는 의자가 불안하게 덜컹거렸다.


<단간론파> 출연은 역시 크나큰 실수였다.

가상현실이래서 적당히 픽션 티가 날 줄 알았더니, 지나치게 리얼하다.

그레이트 에구이사루가 자기 몸집에 비하면 개미만한 몸집의 여고생을 짓밟아버리는 걸 보고선 허리깨가 오싹해졌다.

피가 튀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그런 건 재현율이 아무리 뛰어나봐야 좋지 못하다.

픽션은 어디까지나 철저한 픽션이기에 의미가 있는 법.

픽션이 현실 흉내를 내거나, 현실이 픽션 흉내를 내는 순간부터 세계는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개막부터 문답무용으로 한 명을 아웃시켜놓고 시작할 셈이었다니. 무슨 그런 근본없는 전개가 다 있는가?

심지어는 '초고교급 보디가드'가 그렇게 당하고 나서도 게임 오버가 안 되어서, 허둥지둥대며 개막을 뒤로 미루겠다니….

<단간론파>는 이미 옛적에 끝장났다는 사실만 재확인했을 뿐이었다. 내가 알던 그 단간론파는 더는 없다.

이런 답도 없는 공간의 공기는 잠시라도 더 마실 수가 없다.

빨리 뒤지고 현생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에서 창고에서 조용히 밧줄을 챙겨 개인실에 몸을 감췄다.

멧돼지 녀석도 이해해주겠지. 어차피 참가 조건만 맞추면 되는 거였으니까 이쯤에서 발을 뺀다고 해도 별 불만은 없을 거다.

문제는 본능이었다. 인간이기 이전 생명으로서 DNA에 깊숙히 새겨진 생존 본능.

아무리 가상현실이라는 단어를 되뇌이고 되뇌여도 가슴이 진정되질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시발, 뒤진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숨이 죄어들거나 목이 부러지는 고통은 그대로 느껴질텐데!



그렇게 천장에 매단 밧줄을 양손으로 고이 쥔 기묘한 자세로 얼어붙어있길 한 시간 여.

복도를 지나는 인기척에 청각이 먼저 반응했다.

사뿐 사뿐 카펫을 밟는 가벼운 구두소리.

기척을 감추는 게 버릇이 되어있지만 그럼에도 감추어지지 않는 존재감이었다.

곧 발소리의 주인이 현관문을 여는 전자음이 들려왔다.

아아. 예상대로.

흰토끼, 카미나기 한나.

그 녀석과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이유 모를 소름이 말초신경을 타고 머리 끝까지 찌릿거리게 몸을 관통했다.

그리고 어째선지 그 녀석이 내 존재를 인지한 그 순간 '나'는 확신을 가지고 몸을 현생의 올가미 속으로 내던질 수 있었다.

안도감?

아니, 그건 100% 옳은 단어는 아닌 것 같다. 50% 정도.

그저 카미나기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출판 만화와 실사 영화의 차이만큼이나 뚜렷해지는, 그런 모든 애매모한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역시 이게 현실일 리가 없다, 라는.




"카흑, 컥, 크흑…. 하악, 하아, 하아, 하악…!"

카미나기 한나: "당신, 정신이 좀 드시나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어, 어째서 목을…."

"하, 하악, 하아, 하아…. 큭! 크큭, 크하하하하하핫!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카미나기 한나: "……."



카미나기가 겨우 기지를 발휘해 나를 그 가짜 세상에 붙들어두었을 때에도, '나'는 그저 웃었을 뿐이었다.

태엽이 고장난 인형처럼, 그것도 디자인이 유아용치곤 꽤나 해괴해서 밤중에 보면 까무러칠만한 그런 인형처럼 웃음이 자꾸만 터져나왔다.

발작이 의심될 정도로 미친듯이, 배꼽을 부여잡고 웃었다. 웃다가 지쳐서 울고 울다가 지루해져서 다시 웃고, 호흡이 넘어갈 때까지 또 웃다가 갑자기 배가 너무 아프다면서 손으로 바닥을 쾅 쾅 쳤다. 그러곤 손이 너무 아프다면서 울상을 짓다가 또다시 웃었다.

아아. 초고교급 카지노 딜러에게 이 꼴은 대체 어떻게 보일라나. 겁에 질렸을까? 아니면 다리가 많은 벌레에게서 얻는 혐오감 같은 걸 똑같이 느낄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약이라도 빤 것처럼 기분이 구름 위를 날아다녔으니까. 그래서 난 내 활발한 주둥아리가 자유분방하게 뛰어놀도록 줄을 풀어주었다.



"큭, 와 나 이거, 진짜 장난 아니네…! 가상현실 맞아? 진짜 뒤지는 것 같잖아?! 큭!"

카미나기 한나: "…저기요."

"큭, 크큭… 응? 아, 흰토끼구나? 거 타이밍 맞추는 재주 한번 좋네. 죽지도 못하고 목뼈만 살짝 흐물흐물해졌어. 덕분에 키가 좀 자란 것 같기도 하고."

카미나기 한나: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방금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냐고 물었습니다."

"뭐야, 화내는 거야? 아니, 화내는 것 치고는 표정이 전혀 변하지 않는데…. 이게 그 포커 페이스라는 건가? <초고교급 카지노 딜러>의 재능이라는 건 신기하구만."

카미나기 한나: "제 질문에 대답하세요."

"와- 이거 무섭네. 큭, 이쪽은 오히려 사과를 받아야 할 입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적반하장도 유분수구만."


한쪽 손으로 목을 어루만지며 넘어져있던 의자를 바로세워 걸터앉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미소지었다. 솔직히 존나 아파서 당장 응급실에 실려가고픈 상태였지만 가오가 몸을 지배한 상태라.


카미나기 한나: "사과? 적반하장? 그게 무슨…."

"방해받았잖아, 죽으려고 했는데.'

카미나기 한나: "네?"

"죽어버리려고 했다니까, 어차피 전부 가짜잖아? 모노쿠마, 그레이트 에구이사루, 이 밧줄, 이 테이블, 이 카펫과 양탄자…. 그리고 너! 난 가상현실 따위 아무래도 좋다고. 현실에 있는 젊고 싱싱하고 잘생긴 몸으로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단 말야. 애초에 난 여기 참가하게 된 것도 자의가 아니고, 죽어도 현실의 몸뚱이는 멀쩡하다며? 아주 잠깐의 고통만 견디면 이 이상한 나라를 벗어나서 그리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네가 꼬이게 만들었네. 멍청한 흰토끼."

카미나기 한나: "……."

"아까 곤죽이 된 보디가드 기집애를 살리겠다고 또 한바탕 쇼를 벌였었지. 잠깐 목을 맸을 뿐인 나도 정신을 못 차릴만큼 아픈데 그 작은 여자애는 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라나."

카미나기 한나: "아자부 양은 고맙다고 했어요."

"고맙다는 말만 했어? 차라리 죽게 내버려두지라는 말, 정말로 하지 않았나?"

카미나기 한나: "……."

"큭, 쉽네. 쉬워."

카미나기 한나: "…당신, 뭐에요?"


담백하면서도 경멸에 가득찬 비수 같은 낱말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말을 뱉은 카미나기도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미움받는데 익숙한 내게 그 정도 감정 분출은 아무런 사건도 아니었다.


"뭐냐니, 그야 뻔하잖아. 극상으로 잘 굴러가는 혓바닥을 지닌 초고교급 미식가, 카라스야마 류이치입니다. 엣큥! …이었던가? 큭! 아, 미치겠네! 아, 네 소개는 됐어. 벌써 다 알고 있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거든."

카미나기 한나: "……."



그때의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 카미나기 한나라는 인간은 그 짧은 순간에도 이미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걸.

그리고 흰토끼의 인도에 속절없이 빨려들어가 이상한 나라의 미아가 되어버린 '나'의 앞에 어떤 시련과 역경이 펼쳐질 지도, 몰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알았다고 하더라도 아마 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생의 많고 많은 불행한 사건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 역시 어디까지나 '나'의 손으로 직접 내린 선택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럼그럼, 잘 부탁해! 킥."





-


곧바로 《진상》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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