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우려했던 번역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상태가 괜찮다고 느꼈던지라

딱히 일본어를 존나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감질날 것같아서 리디에서 쭉 사서 읽음

오히려 번역 자체보다는 중간중간에 있는 오타가 더 신경쓰이더라고

물론 아마이저 → 아마이제처럼 고유명사가 이랬다 저랬다하는 건 처음부터 좀 잘해놓지 싶긴 한데

하여튼

직접 읽어보니까 비단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도 작가의 문체부터가 좀 난해하구나 라는 감상이 먼저 들더라

특정 대상을 표현할 때 묘사가 왕창 달라붙는다거나

A 시점에서 서술하다가 대뜸 B 시점에서 대화를 전개하고 뒷 문단에 가서야 그게 B라는 걸 알려준다거나

어떻게 보면 작가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처음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삼키기 좀 힘들겠거니 싶었음

권수가 뒤로 갈수록 나아지기도 하고 그렇게 어려운 건 또 아니니까 진득하게 붙잡고 읽을 사람은 별 상관없겠지만

그렇다치더라도 가독성이 좋다고는 말 못하겠음

그리고 생소한 용어 관련인데

사실 이건 비슷한 마이너 소재(SF라든가)를 채용하면 똑같이 벌어지는 현상이라서

관련된 지식이 없는 입장에서는 흐름에 올라타서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임

고속철갑탄이 어쩌고 포구 초속이 저쩌고 → 아 존나 세구나

압연강판 두께가 어쩌고 방호력이 저쩌고 → 아 존나 단단하구나

쇼크 업소버가 어쩌고 액츄에이터가 저쩌고 → 아 존나 빠르구나

식으로

아니 뭐 그런식으로 읽냐고 할 수도 있는데

가령 내가 1권 막 읽기 시작했을때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고속철갑탄 다섯 글자만 띡 적혀있길래(HVAP)

'하긴 다각병기가 날뛰는데 대전기 탄종을 쓰는것도 이상하니까 감독이 애니에서는 센스껏 날탄으로 바꿨구나(APFSDS)' 했는데

정작 3권에는 APFSDS라고 제대로 적혀있었음

딱히 아무런 지식 없이 볼 때만 그런 게 아니라

수박겉핥기 수준으로나마 알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게 뭐지 싶은게 있어서

잘 모르겠으면 그냥 그런게 있나보다 하는게 마음 편하지 싶음

다만 문제는 앞서 언급한 모든 요소가 한데 어우러지는 전투씬인데

웹소설처럼 주인공 혼자서 다 해먹기는커녕 캐릭터 하나하나마다 역할과 분량, 서사가 부여된 군상극 형태의 소설에서

온갖 군사 전문 용어와 복잡한 묘사, 이리저리 오가는 시점으로 이루어진 서술에다가

가장 익숙한 맨몸도 아니고 그나마 흔한 이족보행병기도 아니고 생소하기 짝이 없는 다각보행병기로 쌈박질을 해대니까

이게 과연 무슨 상황인지를 머릿속에 떠올려야 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뇌정지가 올수밖에 없음

이걸로 정점을 찍은게 아마 4권이지 싶음

5권처럼 약도라도 던져줬으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그마저도 없이 오직 텍스트만으로 주어진 모든 상황을 이해하려니까 다음 페이지로 쉽사리 손이 안 가더라고

이외에는 야흑종이니 백은종이니 하는 종족 구분 좀 날잡아서 한번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정도

쨌든 아쉬웠던 건 이정도고

그래서 결국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먹기는 까다롭지만 그만큼 맛있는 글이지 않았나 싶음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상처를 딛고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스토리에 적절한 변주를 줬다고 하면 맞을라나

내가 독후감이랑은 연이 없는 인간인지라 더는 뭐라 못적겠네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