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e - Unleash

시카고 풋워크 장르는 빠른 리듬과 강렬한 서브베이스, 쉴새없이 쏟아지는 묵직한 킥 덕분에 춤을 추기 위한 음악으로써의 역할을 완벽히 하고 있음. 유튜브에서 chicago footwork를 검색하면 나오는 수많은 댄스 튜토리얼 영상들만 봐도 알 수 있음.

그런데 의외로 이런 풋워크에 묘하게 주술적이고 몽환적인 구석이 있음. 계속해서 반복되는 셋잇단 기반의 리듬, 꽉 차있지 않고 널널한 사운드 스케이프, 반복해서 되뇌이는 보컬 샘플과 같은 요소들로 인해 신나게 풋워크를 듣다가도 나도 모르게 반복적인 리듬 속에 무아지경이 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음. 마치 근본은 신나는 댄스음악이지만 벅차오르는 구성과 화려한 신스 덕에 최면에 걸린 듯 홀리게 되는 트랜스 음악처럼 말이지.

Heavee의 Unleash는 이런 풋워크의 주술적인 특성을 극대화한 앨범이라고 생각함. 이 앨범에선 자극적인 소리는 최대한 억제되어 있음. 서브베이스 음역이 살아있는 킥과 아주 심플한 퍼커션, 그리고 가끔씩 나오는 배음이라곤 쥐톨만큼도 없는 가볍고 airy(이런 표현이 실제로 있나? 가득 채워져 있는게 아니라 빈 공간이 많은)한 신스만으로 음악을 채워나감.

덕분에 소리가 차지하는 사운드 스케이프는 홀가분하게 비워져 있고 음과 음 사이, 소리와 소리 사이가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음.  마치 uk bass의 하위 장르 중 하나인 weightless의 풋워크 버전과도 같음. 여기에서 오는 미니멀한 느낌이 정말로 좋음. 요즘 전자음악의 흐름은 역시 최신 기술로 만든 신기하고 자극적인 소리를 가득 채워넣는건데 이렇게 비울 거 다 비워 놓고 몇 안되는 악기들의 질감과 그루브만으로 승부를 보는 이 앨범이 오히려 신선했음.

이렇게 뺄거 다 빼고 나니 풋워크 특유의 매우 반복적인 셋잇단 리듬과 잘게 chopping된 보컬 샘플에서 오는 주술적 분위기가 앨범 전체를 지배하게 됨. 실제로 난 이 앨범을 들을 때 의자에 미동도 없이 가만히 기대 누워 러닝타임 40분 내내 명상하듯 들은 거 같음. 마치 앰비언트나 다운템포 음악들을 들을 때처럼. 분명히 높은 BPM의 빠른 리듬이 흘러나오는데, 나는 오히려 이 앨범에서 강한 에너지보다 절로 차분해지는 편안한 느낌을 받았음. 그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킥 리듬에 주의를 집중해서 듣다 보니 마치 최면에 걸린 것과 같은, 몽환적인 각성상태에 빠져들었음.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었던 것 같음.

하지만 이런 식의 앨범구성이 40분 내내 쭉 이어진다 생각하면 아무리 그래도 지루해지기 마련이지. 그래서 이 앨범에선 저음역대 킥을 포함한 비트를 싹 뺀, 오직 배음이 가득한 풍성한 신스(트랜스 신스와 같은)로 만들어진 인터루드를 트랙 중간중간에 삽입했음. 나는 이게 이 앨범의 완성도를 높인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함. 명상할 때와 같이 묘한 각성상태를 계속 유지하다가 밝고 풍성한 신스를 맞닥뜨리면 몽롱한 상태에서 황홀한 상태(트랜스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들었을 때 처럼)로 갑자기 전환되면서 이전까지의 분위기가 한번에 환기되는 효과가 있음. 이걸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이 앨범의 타이틀인 Unleash 바로 다음에 오는 See the Sun이 흘러나올 때임. 앨범에서 저 부분이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음. 덕분에 40분이라는, 길지도 않지만 짧지도 않은 러닝타임 내내 미니멀한 구성으로 앨범이 전개되지만 절대 지루하거나 힘들지가 않았음.

그런데 이 앨범에도 단점이라고 할 구석이 하나 있음. 보컬 샘플을 활용한 것까진 좋으나 그 샘플 안에 비속어가 들어 있는게 상당히 많음... 강렬하고 신나는 댄스음악이라면 전~혀 문제가 안됐겠지만 편하게 누워 감상하고 있다가 Fxxk, Shxt 같은걸 들으면 아무래도 조금 깨지... 보통의 풋워크 앨범이었다면 흔히 사용되는 샘플이지만 이런 weightless한 앨범에선 좀 안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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