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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번역/ 에반게리온 제노사이드 9-8

ㅇㅇ(14.6) 2021.08.16 00:08:53
조회 1384 추천 32 댓글 18
														

9장의 감동적인 결말이다


어드바이스 앤 트러스트는 월요일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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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집안일을 마무리한 신지는 베란다로 나와 의자에 앉아 SDAT를 듣고 있었다.


마지막 빨랫감들이 머리 위 빨랫줄에 널려 있었다. 너무 크거나 민감한 물건들이라 세탁기에 넣을 수 없어서 손세탁해야 했던 물건들이었다. 대부분은 속옷들이었다. 자기 자신의 삼각팬티에 나머지 두 사람의 브라와 팬티들. 아스카의 게으름이 근래 들어서는 미사토에게까지 묻어난 모양이었다. 그래도 신지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 빨래들 너머로는 주황색 석양이 보였다.


"신지!"


찢어질 것 같은 고음의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차마 대답하는게 두려운 신지였다. 오늘 아스카가 네르프 본부에 호출된 이유를 신지는 알고 있었고, 비록 아스카가 별 일 없을거라고 약속은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전혀 예감이 좋지 않았으니까. 이쪽 동네에서 새로운 기체나 새로운 파일럿 같은건 좋게 끝나는 일이 없었다. 3호기, 토우지, 그리고..카오루.


죄책감과 그리움의 파도가 몰아쳤다. 그 이름을 떠올릴때면 언제나 그랬다. 그런 상처는 쉽게 낫는것이 아니었다.


"여깄네." 아스카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아스카가 베란다로 나오고 있었다. 교복 어깨끈을 내리고 셔츠를 밖으로 빼입은 모습이었다. 거친 콘크리트 바닥을 걸어오며 양말 소리가 사그락거렸다.


아스카는 볼이 살짝 상기됐고 눈도 찌푸리고 있었다. 얼굴 표정이 긴장되고, 약간 아파보이기까지했다. 눈빛도 평소보다 조금 둔중했다. 몸 전체가 지치고 늘어져보였다.


"그 울보, 나가라가 파일럿이래." 아스카는 걸려 있는 수건을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서는, 난간에 기대서서 바깥 하늘을 바라봤다. "딴 사람도 아니고 걔가. 말이나 돼?"


"누구든 말도 안되는 일이야." 신지는 고개를 떨구며 이어폰을 뽑아냈다.


"무슨 착오가 있었을거야." 아스카는 이를 악물고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파일럿은 싸움꾼이여야지. 울보를 거기 앉혀놓으면 어떡해."


신지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나가라 게이코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정말, 그보다 나쁜 선택이 있을지 신지도 의문이었다. 히카리는 꽤 권위를 내뿜을 줄도 알았다. 하다못해 켄스케도 나가라보단 나을 것이다. 나가라는... 가슴 달린 신지 같은 사람 아닌가.


"나가라는 괜찮은거야?" 거의 물어보는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아스카가 잠시 멈칫했다. "응." 신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스카쪽에서 말을 이었다. "나... 조금 거칠었을지도. 그래도 별 일 없었어. 에바가 폭주하지도 않았고, 누가 죽지도 않았고, 알고보니 파일럿이 사도였더라 같은 일도 없었고. 그냥 아무 일 없었어. 너 왜 그렇게 걱정한건지 모르겠다니까."


알면서, 라고 신지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아스카의 거칠고 낮은 목소리 톤에서 아스카가 지금 뭔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가라 관련은 아닐 것이다. 아스카가 나가라에 관해서 굳이 거짓말 할 사안이 뭐가 있겠는가. 아스카가 거짓말 할 주제는 따로 있다.


"응, 아스카 말이 맞았을지도." 신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스카는 어때?"


아스카는 말이 없었다. 심호흡을 하며 어깨만 오르락내리락거렸다.


안 괜찮구나, 신지는 단번에 알아봤다. 나한테 말해주기 싫은거고.


끝까지 입다물고 있으려나 싶을때, 아스카가 고개를 돌리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머리 때문에 죽을 것 같아."


신지는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스카는 집에 돌아온 시점에서 두통 때문에 고생은 좀 했었지만 한동안은 나아지고 있다고 그랬었다. 이제 다시 재발했다고? 호들갑떠는 것처럼 들리고 싶진 않았지만 그런건 신지에게 불가능했다. "미사토씨한텐 얘기해봤어?"


"미사토는 나한테 아무 관심 없어. 나가라한테만 신경 팔려서 나한텐 어떻냐고 묻지도 않아."


"그런 말 하지마."


그 말을 끝으로 몇 분 동안 아스카는 말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신지는 아스카를 바라보며, 이 주제를 더 밀어붙여야 할지, 미사토는 아스카에게 관심이 있다고, 몸이 어떤지 얘기 해야하는지 고민했다. 결국 신지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손에 든 이어폰으로 시선을 떨궜다.


신지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아스카가 길쭉한 손가락으로 이어폰을 가리켰다. "뭐 듣고 있었어?"


잠시 생각해봐야했다. "어... 베토벤."


아스카는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걸 왜 들어? 베토벤 우울하잖아. 나폴레옹 찬양곡 쓴 적도 있는거 알아? 하긴 오스트리아인한테 뭘 바라겠냐만."


"베토벤도 실수할 수 있는거겠지." 나폴레옹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신지는 몰랐다. 그냥 베토벤 곡이 좋아서 듣는거였으니까. 아름다우니까. 이유는 그정도면 충분했다.


"너무 어두워, 베토벤은. 있잖아, 비장하고 그런거."


"아스카라도 그렇지 않았겠어?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 있었어. 귀가 멀면 자길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던 뭔가도 잃을까봐 무서웠던거야." 신지의 눈에 살짝 진지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지금 신지는 베토벤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걸까? 알고 지내는 어떤 사람의 얘기와 너무 비슷했다.


아스카도 그 부분을 깨달은 것 같았지만 만약 정말 그랬다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한걸까?" 아스카가 말했다. "귀가 안들리는 상태에서 작곡한거.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음악을 느낀거겠지, 아마. 볼 수 있었을거야. 머릿속에서 들을 수 있었을거야."


"속이 타들어갔겠지." 우울하게 중얼거리는 아스카였다. "진짜로 듣는거랑은 다를거니까. 같을리가 없어."


"다른 방법도 없었던거 아닐까? 거기서 포기해버리면 좋아하는 일도 더이상 할 수 없으니까. 고통스러웠을거야." 신지가 말했다.


"선택권이 없다고." 아스카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선택권이 없으면 살아서 뭐할까?" 신지가 뭐라 묻기도 전에 아스카가 난간을 밀치고 걸어오더니 신지의 손에서 이어폰 하나를 뺏고 옆에 털썩 앉았다. "아무 말 하기 싫어."


그 말을 끝으로 아스카는 이어폰을 귀에 꽂더니 몸을 붙여왔다.


신지도 무슨 말인지 알아먹고 자기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둘 사이에 가는 플라스틱 선이 둥둥 떴다. 고개를 들자 주황색이었던 하늘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아스카는 신지와 반대로 자기 발치를 보고 있었다.


예전에 누가, 신지가 이렇게 아스카와 나란히 앉아서 석양빛을 받으며 베토벤 9번 교향곡을 함께 듣고 있을거라 말해줬다면, 신지는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게 기이하게 느껴졌다. 음악이 부드럽게 마음을 달래줬지만 그보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스카의 존재였다. 아스카에게도 자신이 그렇기를, 함께 있는 것으로 가슴 속 아픔과 고통을 잠시라도 잊게 해줄 수 있기를 소망하는 신지였다.


이러고 있을 수 있다는게 믿기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아스카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가버릴 것 같았다. 이렇게 함께 있자니, 한때 도저히 같이 있을 수 없을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천천히, 신지의 두려움도 사라져갔다. 아스카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핑계든 대고 가버리는걸 막을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스카는 계속 남아 있었다.


아스카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지평선을 바라보는 눈이 붉은 석양빛을 받아 푸른색을 잃었다. 잠깐동안 신지는, 저 예쁜 머릿속에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하고 고민했다. 아무 말도 하기 싫다고 하지만 않았던들 물어봤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함께 있어주는 것이 최선일 것이었다.


환희의 송가가 나오기 시작하자 신지는 조용히 곡조를 따라 흥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지의 흥얼거림에 가사가 따라붙었다.


"Wem der große Wurf gelungen, eines Freundes Freund zu sein...(위대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자여, 진실된 우정을 얻은 자여...)"


너무 익숙해 평생 들어온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신지는 잠시 놀랬다. 아스카가 노래하는 것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음정도 제대로 맞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어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Wer ein holdes Weib errungen, mische seinen Jubel ein!(여인의 따뜻한 사랑을 얻은 자여, 다 함께 모여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

그제서야 신지는 아스카가 자신의 손 위에 손을 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Ja, wer auch nur eine Seele sein nennt auf dem Erdenrund!(그래, 이 땅에 단 한 명 뿐일지라도 마음을 가진 자라면 환호하라!)"

신지가 손을 펴자 아스카의 손가락이 얽혀왔다.

"Und wer's nie gekonnt, der stehle Weinend sich aus diesem Bund!(그조차 할 수 없다면, 눈물 흘리며 조용히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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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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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고백하는건 소류의 전통 같은거야


전 파트에서 아스카가 객관적으로 좆같이 군건 사실인데 이게 또 서판 침식 때문에 정신 슬슬 나가고 있는건데도 소류 평소 혐성이랑 많이 다르진 않으니까 아무도 아스카한테 이상 있는건 눈치 못챘고...신지만 눈치까고 너 괜찮음? 하는게 포인트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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