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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번역/ 에반게리온 제노사이드 14-5

ㅇㅇ(14.6) 2021.11.18 01:01:11
조회 424 추천 17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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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 몇 주가 흐르자 게이코의 병실도 차츰 황막한 감옥에서 열네살짜리 소녀의 방으로 변해갔다. 생명 신호를 감지하는 심전도 표시기 위에 인형들이 놓였다. 침대 옆에는 텔레비전이 설치됐다. 흰 이불 위에는 게임기가 놓여 있었다. 희고 붉은 꽃이 곳곳에 놓여 향기를 뿜으며 지독한 소독제 냄새를 어느정도 중화시켰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아무리 들여놓는다해도 이곳이 병실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붕대는 이제 상당부분 제거됐지만 게이코의 오른팔은 여전히 깁스를 한 채였다. 오른쪽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며칠에 한번씩 간호사가 와서 플라스틱 깁스를 제거하고 상처를 닦아줘야했다. 듣자하니, 8호기의 갈비뼈가 부러져 엔트리 플러그를 찔렀을때 게이코의 허벅지가 찢겨져나갔단 것이다.


처음으로 상처를 봤을때, 게이코는 울음을 터트렸었다. 피부가 거의 뼈까지 움푹 들어간게 마치 망가진 플라스틱 장난감 같아보였던 것이다. 무릎 바로 위부터 허벅지의 위쪽 끝까지 가슴 아릴 정도로 검푸른색인 흉터가 나있었다. 이제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대퇴골과 정강이뼈에는 열개도 넘는 철심이 박혀있는 것도 게이코는 알고 있었다. 뼈가 제대로 낫는다면 걸어다닐 수는 있을거라고 했다. 그때도 지팡이를 써야한댔지만.


만사에 어색하고 파일럿으로서도 실패한 소녀는 그런 일들도 모두 받아들였다. 


이 방에서 깨어난 그 순간부터 게이코는 자신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곳에 돌아온거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것이 가능했는지는 아직도 잘 몰랐지만, 스스로 그렇게 선택한 이상 최선을 다해 살아야한다는게 게이코의 생각이었다.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아플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게 곧 삶이었다. 게이코는 그것 하나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정말 오랜만에 웃음을 터트렸을때도,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걸 어떻게 물어봐." 침대 옆에 의자를 펴놓고 앉아있는 알비노 소녀에게 한 말이었다. "어떤 표정 지을지 벌써 눈에 훤하다."


레이는 평소처럼 침착한 얼굴이었지만 눈을 여러차례 깜빡이는 것이 분명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물으면 안되는거야?"


"뭐,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 안해줄걸." 게이코는 또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왜?"


이걸 설명해줘야하는 상황 자체가 조금 어이없었다. 게이코는 등을 받치고 있는 베개를 조금 조정해 허리를 폈다. 사실 게이코는 이제 그런 보조 없이 몸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괜히 근육에 무리를 주는걸 미코가 원하지 않았고 그렇게 편한 것도 아니었다. 다리도 등쪽과 비슷하게, 더이상 고정 장치 같은건 없었지만 쿠션을 통해 받쳐진 상황이었다.


이불이 허리춤까지 흘러내려왔다. 입고 있는 가운은 유사시에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얇은 물건이었다. 얼마 전부터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됐지만 느리고 힘든 일이었고 남의 도움도 필요했다. 밤에는 여전히 기저귀를 차고 자야했고. 몸 곳곳에 연결된 전극과 왼손에 꽂힌 수액 링겔 때문에 게이코는 거미줄에 붙잡힌 파리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힘겨운 처지였지만 게이코는 언제나 모범적인 처신을 하려고 노력했다. 간호사들도 다들 좋아하며 하는 말이, 아스카보다 게이코가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간호사들에게 전해들은 아스카의 일화들은 정말 믿기 힘들 정도였다. 걷어차고, 비명을 지르고, 할퀴고 물고, 정도가 심하면 옆에 아무도 접근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 마취를 해야할 수준이었다니. 반대로 신지는, 간호사들의 말을 믿자면, 게이코와 많이 비슷했다고 한다. 그게 설령 기저에 냉소주의가 깔려있을지언정 일단 신지는 낫고 싶은 기색이긴 했다는 것이다.


레이가 신지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게이코는 생각했다.


"이카리군은 남자잖아." 게이코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남자들은 원래 그런 질문엔 잘 대답 못해. 사랑은 복잡한거란 말이야. 당장, 나도..." 게이코는 자신이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단걸 깨달았다. "나도 쟤 잘생겼다 싶은 남자애들은 좀 봤지만, 사랑은 그런거랑은 다른거니까. 사랑에 빠지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댔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너무 쑥스러운 주제였다. 게이코는 적당한 답을 찾는 동안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게이코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목 부상이 다 낫지 않았으니 머리를 과하게 움직이지 말라는게 의사의 권고였지만 레이와 함께 있으면 그런것도 잊게될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미코가 함께 있어주는 것도 좋았고 자신에게 언제나 관심을 주는 것도 좋았지만 레이와 대화하는 것에는 비교가 안됐다. 레이는 무슨 말을 해도 자신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미코 언니는, 사랑에 빠지면 세상의 냄새가 바뀐댔어. 난, 뭐, 그런적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넌 아직 어리잖아." 레이가 게이코의 손등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엄지손가락이 게이코의 손마디를 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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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코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퍼져나갔다. "알아. 알아." 예전에 레이가 와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깨닫게 해줘서 고마워."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레이가 말했다. "나도 너한테서 만흥ㄴ걸 배웠으니까. 네 덕분에 난 내게 주어진 목적과 분리된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있었어. 나만의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게이코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도 그 진실이다 뭐다 하는거 하나도 설명 안해줬지. 그래도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야."


문에서 들려온 노크 소리에 게이코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허리에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퍼져나갔다. 레이가 손을 꽉 쥐어줬다. 게이코가 놀란데는 이유가 있었다. 요즘은 아무도 게이코의 병실에 노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레이와 미코는 하도 자주 들락날락하다보니 노크도 생략했고, 간호사들도 정해진 시간마다 오는 것이 익숙해져 노크가 필요 없었다. 게이코는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다.


"들어와요. 안잠겨 있어요." 깊이 생각해볼 틈도 없이 게이코는 소리높여 불렀다.


문이 열리고 제일 먼저 보인 것은, 길고 아름다운 적금발과 그 위에 놓여있는 뾰족한 빨간색 클립, 그리고 밝게 빛나는 파란 눈이었다. 지금 게이코 옆에 앉아있는 소녀와 마찬가지로 교복 차림이었지만 치마는 무릎 위로 올라올만큼 더 짧고, 블라우스는 훨씬 깔끔하고 잘 다림질되어 있었다. 오만한 자세도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넓게 벌려선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 꼿꼿이 세운 등과 높이 쳐든 코.


게이코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뛰어올라 거기에 딱 걸린 느낌이었다. "아-아스카?"


아스카는 입술을 깨물고 눈앞의 광경을 둘러봤다. 눈이 조심스럽게, 또 단호하게 게이코와 레이의 사이를 오간다. 웬지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등생, 나 할 말 있으니까 좀 나가줄래."


날카롭고 높은 목소리가 아픈 기억들을 불러왔다. 게이코의 마음 속 일부는 아스카와 단둘이 남고 싶지 않았다. 아스카는 게이코에게 언제나 상처와 눈물만 주는 존재였고, 관계가 조금 나아지나 싶었던 뒤에도 결국엔 게이코를 다치게 만들었다. 전투의 기억이 희미한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도가 에바를 강탈한 이후로 게이코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고 기억도 그만큼 파편만 남아있을뿐이었다. 기억나는건 2호기가 뭔가를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는것뿐이었다.


온 몸에 갑자기 고통이 느껴진 뒤에야 게이코는 2호기가 찢고 있던것이 자신의 몸이라는걸 뒤늦게 깨달았었다.


레이는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게이코에게 고개를 돌린다. "괜찮아." 게이코는 별로 자신이 없는 것 같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게이코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듯, 레이는 그녀의 손을 놔주고 일어나 아스카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아스카는 딱히 옆으로 비켜주지도 않았다. 그자리에 굳은 모습으로 가만히 서서 게이코를 바라보고 있을뿐이었다. 얼굴에는 분노가 섞인 결의가 떠올라 있었다.


레이가 문을 닫고 나가 방에 둘만 남았다. 게이코는 침을 꿀꺽 삼켰다. 레이가 사라지자 용기도 함께 사라진 것 같았다. 더이상 아스카의 시선을 마주할 수 없어 고개를 떨군다.


"사과하러 온거 아니야." 길고 어색한 침묵 끝에 아스카가 내뱉은 말이었다.


게이코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관계에-이걸 관계라고 부를 수나 있다면 말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많은 부분이었다. 혹시라도 아스카가 사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추호에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


"그-그럼 왜 온거야?" 게이코는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얀 깁스 끝으로 빠져나와 가슴 위에 얹힌 손가락들이 보였다. 얇은 병원 가운만 입고 있으려니 거친 아스카를 상대로 완전히 노출된 느낌이 들었다.


"널 위해서 온게 아니야." 아스카가 앞으로 걸음을 내딛자 다리가 움직이며 치마 주름들이 열렸다. 방금 전까지 레이가 앉아있던 의자 옆에 와서 선다. "난 나 자신을 위해 왔어. 난... 어떻게 해야 그날 일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지 알고 싶어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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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코는 할일도 많지 않았던차라 이 상황을 머릿속에서 숱하게 시나리오로 돌려봤었다. 만약 아스카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계속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스카가 눈앞에 나타난 뒤에야 게이코는 깨달았다. 이 일이 벌어질거라곤 스스로도 믿지 않았다는걸. 아무래도 함께 전투에 나간것 정도로는 아스카의 태도도 바뀌지 않을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단 아스카가 여기 오긴 했지 않은가?


"아스카, 괜찮아." 게이코가 할 말은 그것뿐이었다. 이미 레이와 미코에게 한 말이었다. 아마 아스카도 듣고 싶어할 말이었다. "널 원망하지 않아."


아스카는 자신이 다른 두 여자와 다름을 곧바로 상기시켜주는듯했다. "원망해야해."


게이코는 당황해서 눈썹을 치켜떴다. "왜?"


"왜 안하는데?" 아스카의 언성이 올라갔다. "대체 원망 안할 이유가 뭔데? 네가 그러는거 이해하려고 노력해봤어. 어쩌면, 어쩌면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그러고 싶었으니까. 그럴 수가 없었어. 말도 안된다고. 넌 날 미워해야 정상이야!"


"난 그렇지 않은걸." 게이코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냥-"


아스카의 얼굴이 분노로 뒤틀리고 이마에 주름이 졌다. 아스카는 이빨을 드러내며 게이코에게 다가서 몸을 숙이고, 게이코의 머리 양 옆으로 손을 쫙 뻗었다. 목을 받치고 있던 쿠션이 아스카의 손에 쑥 들어갔다.


잔뜩 긴장한 어깨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불 붙은 사파이어 같은 아스카의 눈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게이코와는 고작 몇센티미터 거리였다. 게이코는 어디로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다시 한번 아스카에 대한 두려움이 되돌아왔다.


"넌 왜 그렇게 바보같아?"


"뭐-뭐?"


아스카는 대답 대신 신음을 내뱉더니, 게이코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뜨겁고 날카로운 고통이 뒷통수를 칼처럼 쑤셨다. 목에 비명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스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번 더 끌어올려 게이코의 상체를 거의 들어올리다시피 했다. 고개가 뒤로 벌렁 넘어가려고 해 목근육을 써야했다. 너무, 너무 아팠다.


"그-그만!" 고통 때문에 더듬거리며 게이코는 쓸 수 있는 유일한 손인 왼손을 들어올려 아스카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아스카, 아파!"


"그러면 네가 나보다 나아진다 이거야?" 아스카가 소리쳤다. 손에 힘이 더 들어가고 있었다. "착하다고 남들이 좋아해준다 이거야?"


게이코는 절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그러는데?!"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게이코는 어떻게 한건지 간청하는 시선을 아스카의 분노에 가득한 파란 눈에 똑바로 보내고 있었다. 뭘 해야할지, 뭐라고 말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저번에 에바에 탔을때처럼 무섭고 무기력했다. "제발, 아파!"


아스카는 잠시 그러고 있다가, 게이코를 부드럽게 내려놨다. 부드러운 동작이었음에도 게이코는 고통에 몸을 떨었다.


"나... 난.." 아스카는 고개를 떨구고, 게이코를 놓아준 다음 다시 뒤로 물러났다.


언제 나온건지 알 수 없는 눈물이 게이코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왼손을 들어올려 눈을 닦아내자 아까까지 봐왔던 화난 아스카는 온데간데 없고 우울한, 그리고 너무나 상처받은 아스카만 남아 있었다.


게이코는 두려움도 억누르고, 간호사를 부를 수 있는 긴급호출 버튼을 누르고 싶은 충동도 억제했다. "왜... 왜 이게 그렇게 신경쓰이는거야?"


"난 용서 안했을거니까." 아스카가 곧바로 대답했다.


"아스카가 그런다고 다른 사람도 꼭 그래야하는건 아니잖아." 고통이 잦아들자 용기도 돌아오는 것 같아, 게이코는 조심스럽게 말해봤다. 게이코의 물리적 고통이 천천히 사라진 장소는 이제 아스카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적 고통이 채우고 있었다. "내가 그래야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내 선택이야."


아스카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도 푹 처진채로 레이의 의자에 앉았다. 사실, 어느 모로 봐도 아스카의 말이 맞았다. 게이코는 아스카를 미워해야 맞았다. 하지만 게이코는 자신이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느끼는 것이었다.


"괜찮아."


"이게 어떻게 괜찮아?" 아스카가 고개를 휙 들었다. 왼팔을 한바퀴 휘저어 병실을 가리켜본다. "대체 이게 어떻게 괜찮단건데? 너 눈에도 문제 생겼어? 네가 여기 쳐박혀있어야하는건 나때문이란 말이야. 왜 화가 안난다는건데! 대체 무슨 일이었던건지 나한테 묻지도 않고! 내가 왜 그랬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아무것도 변할게 없잖아." 게이코가 엄숙하게 말했다. "그런걸 알아도 난 어차피 여기 계속 있어야 하는걸. 요즘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는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거니까." 게이코는 손을 가슴에 갖다댔다. "그날, 나가기 전에, 날 지켜주겠다고 그랬잖아. 날 해치고 싶었던거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해. 이카리군이 보고 있는 앞에선 더더욱."


아스카는 여전히 뚱한 기색이었지만 이카리 신지의 이름이 언급되자 조금 기분이 풀리는 눈치였다.


"그래."


"봐." 게이코는 할 수 있는 최대한 밝게 말해봤다. "아스카는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


그날 일을 떠올려보면, 신지가 두 사람을 얼마나 걱정했는지가 눈에 훤했다. 아스카에게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한 것도 생각났다. 그때 게이코는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무서웠었지만 그래도 신지가 얼마나 아스카를 걱정하는지는 알아볼 수 있었다. 아스카도, 비록 숨기려고 들었지만, 신지에게 신경쓰고 있는 것은 뻔히 보였고. 게이코를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신지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그랬던게 분명했다.


"N2 폭뢰가 터지는걸 봤을때..." 게이코는 말을 흐렸다. 그 순간의 공포는 여전히 생생해 그때의 일을 입에 담기가 힘들었다. "사도가 나한테 왔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네 말이 맞았던거야. 난 파일럿 같은걸 하면 안됐어. 아스카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을거라고 생각해. 어떻게 내가 널 탓하겠어?" 


아스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난 탓했을거야."


"우리가 그만큼 다르다는거겠지." 게이코는 부상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이건 게이코에게 그렇게 참신한 결론이거나 한건 아니었다. 게이코는 아스카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많았고, 레이와 조금이나마 논의도 해봤다. 아무리 아스카라도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다음 바로 배신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아스카가 그럴 생각이 없었노라 말했다고 미코에게 전해듣고나자 게이코의 생각도 확고해졌다.


하지만 이것도 아스카에겐 그렇게 만족스러운 결론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아스카는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나," 아스카는 천천히, 공허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일 있고나서, 나한테 이상이 있는거 깨달았어. 뭔가가 잘못됐었어. 나, 2호기, 세상 전체가. 신경 연결기도 안하고 다녔어. 그러다 하루는... 죽으려고도 했어."


망치로 후려치는 것 같은 말이었다. 게이코는 헐떡이며 왼손으로 가운 앞섶을 붙잡았다. 입이 열렸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 게이코는 두려운 침묵속에 아스카를 쳐다봤다. 게이코가 선망하고, 닮고 싶었던 그 오만하고 아름답고 인기 많고 용감한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가, 자살을 하려고 했다고?


게이코는 정말 많은 것을 겪어왔지만 이번에야말로 마음이 부서질 것 같았다.


정말, 가슴속에서 뭔가 부서진 느낌이 들었다. 숨이 한번에 빠져나갔고 다시 들이키려고 하니 호흡이 되질 않았다. 목이 죄어오는 것 같았다.


심전도 측정기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게이코의 심박수가 올라가며 신호음도 덩달아 빠르게 울려퍼졌다. 공황에 빠진 게이코는 눈을 꾹 감고 천천히 심호흡하려고 시도해봤다. 진공 상태에서 숨을 들이키는 것과 같았다. 몸을 뒤틀다 부러진 다리가 받침에서 거의 떨어질뻔했다.


"나가라, 괜찮아?" 호흡곤란의 혼란 너머 어딘가에서 아스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이코는 고개를 젓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입 밖으로 빠져나온건 헐떡이는 속삭임뿐이었다. 아스카의 손이 어깨를 누르는 것을 느끼고서야 게이코는 아스카가 다시 가까이 왔다는 것도 깨달았다.


"진정해." 아스카가 귀에 대고 속삭여왔다. "숨 쉬는걸 상상해봐. 천천히."


게이코는 천천히, 마음을 비우고 몸에 힘을 뺐다. 몸이 발작을 멈췄다. 스스로도 조금 한정되어 있는걸 인정하고 있는 의지력을 모두 그러모아 호흡에 집중해보는 게이코였다. 이상하게도, 아니, 상황을 생각해보면 우스꽝스럽게도, 게이코의 생각은 마지막으로 엔트리 플러그에 앉아 있었던 때로 돌아갔다. 울면서, 아스카에게 제발 와달라고 간청했던 때로. 그때 아스카는 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스카가 옆에 있었고, 게이코는 거기서 힘을 얻었다.


"천천히 해봐. 할 수 있어."


느릿느릿하게 게이코의 호흡이 되돌아왔다. 가슴이 벌떡이는 것도 멈췄고 심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눈을 떠보자 아스카가 잔뜩 걱정된 얼굴을 하고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둘의 얼굴이 너무 가까워 곧바로 키스로 이어질 수도 있을 정도였다.


"아 정말, 겁나게 만들고 있어." 아스카는 짜증을 내며 한대 때릴 것처럼 손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너 때문에 신경쓰는건 이미 충분히 했거든."


게이코는 힘겹게 침을 삼켰다. 입을 열어도 힘겨운 속삭임만 나왔다. "미-미안..." 앉으려고 해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다시 쓰러졌다. "도와줘."


아스카는 게이코의 어깨 뒤로 팔을 넣어 앉은 자세로 세워줬다. 게이코는 오른팔이 털썩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왼손으로 받쳐들었다. 적당히 자세가 안정됐다 싶자 다시 가운 앞섶을 붙잡고 심호흡을 이어간다. 아스카는 매트리스 가장자리에 앉아 게이코가 혼자 앉아있을 수 있을때까지 붙잡고 있었다. 


병실 문이 벌컥 열리고 간호사가 뛰어들어왔다. 레이가 바로 뒤를 따랐다.


"무슨 일이니?" 간호사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이제 괜찮아요." 게이코는 헐떡거리는 호흡 사이사이로 대답했다. "숨이 안쉬어졌어요. 아스카가 도와줬어요."


간호사는 아스카에게 묘한 눈빛을 보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신 침대 뒤에 손을 넣어 플라스틱 호흡기를 꺼내든 다음 게이코의 입에 걸어줬다. 그사이 아스카는 물러나 간호사와 게이코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게이코가 다시 심호흡을 해보자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간호사는 호흡기가 제대로 끼워졌는지 확인하고, 산소 공급까지 확인한 다음 아스카에게 몸을 돌렸다. "이제 가줘야겠어."


"아니요." 게이코는 뭐라 생각해보기도 전에 말부터 내뱉고, 간호사에게 간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부탁이에요. 잠시만요."


간호사는 엄격한 눈빛을 아스카에게 보내는 것이 방금 사건의 책임을 물으려는 것 같은 눈치였지만, 다음번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호출 버튼부터 누르라는 말만 남기고 물러났다. 레이는 잠시 문간에 서서 둘의 모습을 뒤돌아보다가 문을 닫고 사라졌다.


게이코는 한번도 아스카가 혼나는건 본적이 없었다. 아마 반응이 아주 안좋을거라고, 짜증을 낼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스카는 그러지 않고 고개만 떨궜다. 그 모습까지 보고서야 게이코는 애초에 자신이 왜 호흡곤란에 빠졌던건지 상기했다.


"너.. 아스카..." 게이코는 자살이란 말은 차마 입에 담을수도 없었다. 대신 호흡기 때문에 살짝 왜곡된 목소리로 질문해본다. "어쩌다 그렇게 된거야?"


"어디가 잘못된건지도 몰랐어." 아스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마다 악몽을 꿨어. 아주 끔찍한 꿈을. 내가 다음번엔 다른 사람을 다치게 만들까봐, 내게 소중한 사람을 해치게 될까봐,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내가 없어지는게 낫다고 생각했어." 아스카는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들어 게이코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혹시 남들한테 말하면-"


"안할게. 약속해." 비록 둘 사이가 친구 같은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게이코는 이런 종류의 일을 떠벌리고 다니는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아스카의 입으로 직접 들은 게이코도 믿기 힘든 얘기였으니 남에게 해봤자 게이코만 거짓말쟁이 취급 받기 딱 좋긴 했지만.


아스카에겐 그정도 약속이면 충분한 모양이었다.


"너 나에 대해 완전히 잘못 생각했던거 알아?" 아스카의 목소리엔 무거운 자아성찰이 담겨 있었다. "너도 다른 애들이랑 똑같았어. 전부 다. 무식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모욕에 가슴이 아파왔지만, 그래도 게이코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오랫동안 그랬다는 것을. 감정이 북받쳐 몸을 통제하기가 힘들었다.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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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 입장을 한번도 이해 못했어. 내게 어쩌면 얄팍한 아이돌 이상의 뭔가가 있을거란 생각은 못했어. 네가 원하는걸 내가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당연히 내가 행복할거라고도 생각한거야. 사실 내가 세상에 보여준 나는 내가 아닌데. 넌 내가 널 좋아해주길 바랬지만, 현실은 이래. 난 내 자신도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남을 좋아하란거야?"


아스카의 목소리를 듣고 게이코는 마침내 깨달았다. 아스카는 오랫동안 고통받았고,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 미소 밑에는 깊은 상처가 있었다는걸.


"난 몰랐어."


하지만 고통이라면 게이코도 받았지 않았던가. 대부분은 아스카 때문에. 게이코도, 진짜 감정을 속이고, 학대를 감내하고, 울고 또 울었지만 혼자가 되는게 두려워서 매번 다시 고통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던가. 왜 그랬을까? 남들과 함께 있는게 몰래 화장실에서 우는 것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그런 고통에 공감해줄 사람은 세상에 없을거라고, 게이코는 언제나 생각해왔다.


놀랍게도, 그런 사람은 있었고 그것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스카였다.


약했던 순간도 잠시, 아스카는 곧 평소의 거만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뭐, 넌 원래 별로 안똑똑했으니까. 그 바보랑 똑같아."


신지와 동일선상에서 언급되는건 게이코에겐 기분 좋은 일이었다.


"우리 이제 사귀어. 혹시 궁금했다면."


"그럴줄 알았어!" 게이코는 살짝 몸을 폈다. 하지만 흥분도 잠시, 안좋은 기억이 다시 떠올라 게이코는 고개를 숙였다. 갈색 머리칼이 이마로 쏟아졌다. "미안, 나..."


"그때, 네 말이 맞았었어." 아스카의 목소리엔 예전 체육관에서 뿜어져 나왔던 적개감 같은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젠 정말 한평생 전의 일처럼 느껴지는 일이었다. "그땐 널 진짜 해치고 싶었어. 이시자와 아니었으면 진짜 그렇게 했을거야. 나한테 있는지도 몰랐던 상처를 헤집어 놓은 느낌이었어. 한동안은 진심으로 널 증오했어."


증오. 게이코는 속으로 그 단어를 되뇌어봤다. 그게 아마 아스카가 고통에 대처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때 게이코가 그걸 알았더라면...


보기드문, 그리움 같은 표정이 아스카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러곤.. 그날 양호실에서, 네가 어머니 얘기 하면서 울었을때, 너에 대해 뭔가 이해한 것 같았어."


하지만 아스카는 그게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고, 심전도 측정기 위에 놓여있는 인형만 바라볼뿐이었다. 신경 연결기가 전등 빛을 받고 반짝였다.


한번도 아스카가 저 클립을 하지 않은 모습은 본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건 마치 아스카의 인격 일부처럼 영구적인 무언가로 보였다. 신경 연결기는, 당연히, 에바 파일럿으로서의 아스카이기도 했지만 또 그 이상으로, 남의 관심을 끌고 싶어하고 세상 모두에게 자신의 특별한 위치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아스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공산품이기도 했다. 부서질 수도 있었다. 마치 파일럿이 부서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치 게이코가 부서진 것과 마찬가지로.


에바 파일럿으로서 게이코도 잠깐이나마 자신만의 신경 연결기를 가졌던 때가 있었다. 아스카의 것보다는 조금 덜 뾰족하고 색은 노란색이었다. 게이코 역시 특별하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선택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물건이었다. 학교에 한번도 하고 간적이 없었던게 조금 후회됐다. 아니, 생각해보면 남들에게 보여준 적 자체가 한번도 없었다.


"아직도 네가 싫어." 아스카가 가볍게 말했다. 시선은 아직도 인형에게 꽂혀 있는 상태였다. "넌 아직도 그냥 울보야. 그래도 친구하고 싶으면 난 상관없어."


게이코는 뒤늦게야 인형 중 하나가 적황색 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코가 선물해준 것이었다. 어쩌다 이걸 이제야 눈치챘을까? 그러곤, 눈이 번쩍 떠지고 아스카에게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뭐라고?"


"최소한 너 몸 나을때까지는." 아스카는 별거 아니라는듯 덧붙이며 게이코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치만-"


"호들갑 떨지마." 아스카는 방금 한 말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손을 내저었다. "말로 할때 저 인형 버리고."


아스카가 가볍게 넘기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은 게이코도 알았지만, 이미 충분히 기뻤기 때문에 더이상은 캐묻지 않았다. 대신 게이코는 목의 통증도 무시하고 열렬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갑자기 가슴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아스카의 성격상 여기서 게이코가 더 감정을 드러냈다간 생각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왔지만, 그래도 게이코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굳이 막으려들지 않았다.


감정에 압도된 게이코는 왼팔을 뻗어 아스카를 끌어당긴 다음 단단히 포옹했다. 잠시동안 아스카는 너무 놀라 꺅 소리만 내고, 한동안은 별 반항 없이 게이코가 안고 있게해줬다. 그러고는, 자신이 누군지 뒤늦게 생각났다는듯,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주 시끄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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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에서 일러스트 밀도 엄청 높아질건데 여기서 벌써 그 전조가 보인다... 텍스트 상으로는 한 파트고 4500자쯤 되는데 그림이 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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