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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번역/ 에반게리온 제노사이드 15-14

ㅇㅇ(14.6) 2022.01.05 00:10:46
조회 365 추천 18 댓글 15
														

3막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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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3화)












이런 격렬한 진동은 한번도 좋은 징조인 경우는 없었다. 그래도 격납고는 에반게리온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시설이니만큼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았다. 진동이 멈추자마자 미사토는 무릎 꿇은 자세로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들고 칠드런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머릿속으론 숫자를 세본다. 칠드런들이 지표면에 도착하는데 걸렸을 시간과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한 시점을 비교해보고, 폭발-이 정도로 심각한 진동은 그것 외엔 설명이 되지 않았다-은 에바 기체들이 지표면에 나오기 전에 벌어졌을거란 결론에 도달한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자 미사토는 핸드폰 화면을 확인해봤다. 신호가 끊겨 있었다. 종료 버튼을 누르고 이번엔 지령실로 전화를 걸어본다. 그러는 동안 후우카가 자기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진동이 시작되자마자 후우카는 미사토를 바닥으로 끌어당겨서 통행로 양측의 난간에 보호받을 수 있게 해준 참이었다. 지금은 미사토의 몸 앞에 무릎을 꿇고있다.


"이것 좀 들어보시죠."


잘 숨겨진 스피커가 작동하기 시작하자 잠시 지직거리는 소음이 울리고, 곧 당황한 목소리의 콜 사인들이 여럿 이어지더니..


"...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응답하라."


곧 훨씬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 부대 주목. 사단 지휘소가 침묵 중이다. 전원 현 위치에서 대기."


"위에선 대체 뭐 하고 있는거야?"


내용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가 반복되는 것을 듣고, 미사토는 이것이 사단 본부가 응답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사전에 녹음되어 송출되는 메세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놈들, 전술 채널도 아닙니다. 공개 주파수로 평문을 쏘고 있어요. 말도 안되는 상황입니다." 후우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휘 계통에 어지간히 심각한 문제가 생긴거라면 모를까."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군부대가 메이데이 같은 말을 재미삼아 입에 담지는 않는다. 미사토가 뭐라 입을 열기 전에 라디오에 새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2여단 주목. 2 소대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지오프론트가 개방됐다. 3여단과는 통신이 되지 않는다. 민간인 피해는 알 수 없다."


미사토의 고개가 위쪽으로 재껴졌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된 천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방금 들은 말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지오프론트가 개방됐다고? 뚜껑이 열리는 식으로? 위쪽 사람들은? 도시는? 칠드런들은?"


"별 일 없을겁니다." 후우카가 마치 미사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자위대가 에반게리온과 교전을 시작했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기초적인 보안도 준수하지 못하고 있는 놈들이 그정도 사안을 함구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지금 터진게 뭐든간에 저쪽도 무사히 넘어가진 못했을겁니다."


미사토는 아직도 울리고 있는 전화를 손에 쥐고 자리에 주저앉으며 다시 한번 무력감에 몸부림쳤다. 할 수 있는건 다 한 것 같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목숨 걸고 나가 싸우고 있는데 미사토는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는채 여기 앉아 있어야한다.


핸드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사토는 황급히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댔다. "여보세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소령님. 상황이 조금 복잡해졌습니다." 휴우가의 황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바 시리즈가 투입되어 현재 터미널 도그마로 향하고 있습니다. 저지를 위해 칠드런들을 그쪽으로 보낸 상황입니다."


마기가 다시 공격 받는 것 같다고, 그래서 부사령관이 마기의 전원 차단 명령을 내렸다는 설명이 뒤이었다. 방금 지오프론트를 뒤흔들었던 폭발이 지하공동의 천장을 날려버렸다는 것도 휴우가가 확인해줬다. 전략자위대측의 피해 현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제3 신동경시가 거의 완전히 파괴됐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미사토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후우카는 마치 그 정도는 다 예상했다는 듯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전달까지 다 마친 미사토에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지령실로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기가 작동이 중단된다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전투의 향방에 영향을 줄 수단 같은 것도 없었다. 지금 미사토가 가야할 곳은 따로 있었다.


의지를 그러모으며 미사토는 핸드폰을 닫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터미널 도그마로 가겠어요. 위쪽 일을 맡길게요."


미사토가 일어서려고 하는걸 후우카가 어깨를 붙잡아 멈춰세웠다. "미친 짓입니다." 우려가 가득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한다. "밑의 상황도 모르잖아요."


"그럼 어쩌란거죠?" 미사토는 후우카의 손을 밀어냈다. "여기서 다음 처형부대가 올때까지 기다리고 있을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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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맞을지 몰라도, 터미널 도그마로 달려가겠단건 머리로 생각한 판단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내리는 판단 같은거에요."


미사토는 홀스터가 잘 고정됐는지 어깨춤을 만져 확인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단거죠?"


"뭐, 문제 없겠죠." 내려다보이지 않겠다는듯 후우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미사토보다는 키가 작았지만, 큰 차이는 아니었다. 사실 장구류를 잔뜩 착용한 지금 거의 위협적이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지금 잔뜩 인상을 쓰느라 모여든, 타고난 부드러운 이목구비만이 지난 몇 주간 그녀가 유지해온 위장의 마지막 남은 잔해였다. "목표가 개죽음이라면 말입니다."


사나다 후우카 당신은, 그게 진짜 이름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나다 후우카는, 용병에 한없이 근접한 무언가에 불과하다고, 미사토가 아스카와 신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미사토는 억지로 가라앉혔다. 후우카에겐 이것도 어쨌거나 임무인 것이다. 미사토와는 입장이 달랐다. 둘이 싸움에 나서는 동안 미사토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가만히 있을수는 없었다. 본인이 지시한 싸움인 이상 더더욱.


미사토는 몸을 돌려 통행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후우카가 얼른 뒤쫓아오더니 다시 미사토의 앞을 가로막았다. "최소한 제가 계획이라도 세우게 해주시죠. 어차피 우리라고 여기 계속 있을수는 없습니다. 탄이 다 떨어질거에요."


당장 비키기나 하라고 말하려던 미사토는 격납고 출입구 중 한 곳에 소란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에 시선을 빼앗겼다. 사부로-아스카와 난투극을 벌인 요원이었다-가 네르프 제복에 소총을 든 남자 하나를 대동하고 격납고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바로 뒤에는 나카지마와 미코가 들것으로 보이는 판을 운반하며 따라 들어왔다. 들것에는 오른팔과 오른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는 소녀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 광경에 미사토는 슬픔으로 가슴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나가라 게이코에게 벌어진 일은, 스즈하라 토우지와 마찬가지로, 에바를 조종한 모든 파일럿들과 마찬가지로, 부당하고 잔인한 일이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위 끝에 어떻게든 살아남은건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모습을 보자니 미사토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8호기가 갈기갈기 찢겨진 모습을 보고 느꼈던 죄책감이, 그것이 자신의 명령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신지와 아스카에게 자신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도 다시한번 상기됐다.


출입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후우카도 한숨을 내쉬며 옆으로 비켜섰다. "상하관계도 아닌데 막을 수도 없겠죠." 사부로와, 그와 같이 온 남자가 이쪽 방향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뒤에서는 나카지마와 미코가 부상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게이코를 내려놓았다. 하나코가 확인을 위해 그쪽 방향으로 갔다. "저한테도 피곤해질 때가 있어요. 가슴으로 생각할 수 없는건."


사부로와 함께 온 남자가 경례를 붙이자 후우카가 손을 내저었다.


"상황은 어때, 켄지?"


그는 게이코의 병실에서 벌어진 총격과 사살당한 병원 직원들에 대해 모두 보고했다. 어제의 미사토였다면 방금 들은 말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의 의구심도 들지 않았다. 죽음과 비극에 대해 더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터미널 도그마로 간다는 생각에도 변화는 없었기에 미사토는 그대로 켄지의 옆을 지나쳐 통행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다리 아래쪽에서 나카지마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칠드런들은 어딨습니까?"


"에바에." 미사토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고개만 까딱해보였다. "게이코는 어때요?"


"겁먹었어요." 미코가 대신 답했다. 말하면서도 게이코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였다. 바닥에 놓여있는 소녀의 갈색 머리카락을 미코가 쓰다듬어주는 가운데, 아직 거동이 가능한 기술반원 몇명이 주변에 모여들어 원을 그리고 서있었다. 미사토가 걸어가자 다들 비켜서서 미사토에게 길을 내줬다.


"그렇게 겁먹진 않았거든요." 게이코는 들것에 꽁꽁 묶여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머리를 들어 미사토쪽을 보며 말했다. "8호기 처음 탔을땐 너무 무서워서 토했으니까. 오늘은 토는 안했으니까 그것보단 나은거에요."


"우릴 너무 과대평가하는구나." 나카지마가 옆에 앉으며 말했다. "우리가 대신 토해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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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코가 깔깔 웃었다. "역겨워."


미코는 웃을 기분이 아닌듯 음울한 표정으로 게이코의 머리만 계속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친밀하고 편안한 제스쳐처럼 보일 일이겠으나 지금은 묘한 슬픔이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미사토였다. 미코는, 미사토의 생각에, 여기 있는 사람 중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게이코를 잃을뻔 했으니. 미사토가 신지와 아스카를 아끼는 것만큼 미코도 게이코를 아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죠?" 미코가 속삭임처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게이코를 이곳에 내버려두고 아이들을 쫓아가는건 잘못된 일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위대는 게이코도 죽이려고 했다. 이젠 더이상 파일럿도 아니었는데. 지난 몇 달간 병상에 누워 있었던 어린아이에 불과한 것을, 죽여서 아무것도 얻을게 없는 아이를 죽이려고 했다.


후우카의 말이 맞단 생각이 들었다. 미사토는 지금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게 아니었다. 터미널 도그마까지 어떻게 내려간다고 치자, 그 다음엔? 자위대에게 본부가 포위당한 상태에서 뭘 어떻게 해야하지? 투항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투항해봤자 사형장으로 직행하는 결말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른 대안은?


"날아가는건 어떻습니까." 후우카의 목소리였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고 있는 후우카쪽으로 고개들이 돌아갔다.


후우카는 방탄조끼 목깃을 만지작거리며 미사토의 방향으로 걸어왔다. "미코씨, 제 기억이 맞다면, 사령관 개인용 VTOL기가 따로 있는거죠?"


미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요. 전세기쪽을 선호하시거든요. 물론 정비는 문제 없이 꼬박꼬박 했지만. 무장도 안 달려있어요. 접근에도 제한이..." 미코의 말이 잠시 끊기고 눈에 희망 비슷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제 유지보수용 권한으로도 격납고에는 접근이 가능해요."


"생각처럼 안될겁니다." 나카지마의 말이었다. "전략자위대가 작전에 나서면서 공역 확보도 안해뒀을리가 없습니다. 레이더에 잡히는 그 순간 격추당할거라고요."


후우카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것도 격추할 수단이 있을때 얘기죠. 지오프론트 뚜껑을 열때 하늘에 있던 것들도 모조리 쓸려나갔을겁니다. 통신망이 아직도 난장판이에요.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선 작은 항공기 하나쯤 몰래 빠져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겁니다."


나카지마가 가는 눈썹을 찡그리며 손을 들어올려보였다. "잠깐만요. 지오프론트를 열었다고요?"


"좀 긴 얘기에요." 미사토가 대신 답하고, 후우카쪽으로 의심이 담긴 눈빛을 쏘아보낸다. "당신들 VTOL기 조종할 수 있어요?"


후우카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요."


"별로 확신이 안느껴지는데요." 나카지마가 중얼거렸다.


"직접 몰아본건 좀 예전 일이라. 남들이 조종하는거 타고 다니는데 익숙해졌거든요."


나카지마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속으로 상황을 정리해보려는 모습을 보며, 왜 그렇게 망설이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미사토는 생각했다. 그도, 미사토처럼, 보호해야할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목숨이 오가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싶지 않은게 당연했다. 하지만 후우카의 제안이 사실상 유일한 해답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인정해야할 것 같았다.


"여기서 빠져나간다치고, 그 다음엔 어디로 갈겁니까?" 나카지마가 물었다.


후우카는 답을 미리 준비해놓은 모양이었다. "동쪽으로. 레이더에 걸리지 않게 저공비행. 버지니아함과 접촉할 수 있는 복호화기를 갖고 있어요. 연락이 닿는대로 부상해서 우릴 회수해줄겁니다. 그 뒤론 6주에서 8주 정도 미국식 손님 대접만 즐기면 끝이에요."


미사토가 얼마 전에 사토를 만나 아스카의 여권을 보여주고 망명을 요구했을때와 얼개 자체는 별로 다르지 않은 계획이었다. 과정이 조금 위험할뿐 결과는 같을 것이다. 이들 미국인들의 실력은 오늘 눈으로 봤으니 신뢰해도 될 것이다. 이 나라에 남는 것은.. 오늘 자위대가 벌인 일을 본 뒤론..


"이륙은 어떻게 한다고 치고, 아스카랑 신지는요?" 미사토는 둘의 이름을 말하며 자신도 모를 이유로 게이코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이는?"


"레이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후우카가 말했다. "현재 위치도 파악되지 않았어요. 아마 사령관과 함께 있겠죠."


"레이 걱정은 안해도 돼요." 게이코가 말했다. 아주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였지만 마치 비명이라도 지른 것처럼 주변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게이코는 몰려드는 시선에 살짝 얼굴을 붉혔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게 있는거니?" 미코가 말했다.


"아니, 그런건 아니야. 그래도, 꼭 필요하거나 아니면 그렇게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면 레이쪽에서 먼저 우릴 찾을거라고 확신해. 아마 그렇게 해줄거야. 다시 보기로 약속했는걸."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다른 말을 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지금 게이코의 말은 너무할 정도로 순진하고 어쩌면 바보같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미사토는 마음만은 게이코의 말이 맞기를 기원했다.


"아스카와 신지쪽으로 말할 것 같으면," 후우카는 다시 미사토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소령님께서 처리하겠다고 하셨죠."


후우카와 시선을 마주한 미사토는, 그 눈에서 살인 전문가의 차가움이 아니라 공감이 어린 따뜻함을 찾고 살짝 놀랐다. 이게 나름 사명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이해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고민이 들게 만드는 그런 눈빛이었다.


"고마워요." 


"별 말씀을." 후우카는 손을 내저어보였다. "일부 인력 차출해 붙여드리겠습니다. 화력 늘어난다고 누가 죽는 일은 못들어봤으니까요." 그러곤, 자기 말이 황당했던걸 깨달았는지 살짝 웃어보인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미사토의 전술적 복안은 이게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란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미사토는 더이상의 책임을 떠맡을 자신이 없었다.


"아래쪽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요. 그건 당신 스스로 한 말이에요. 갔다가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어요. 나는 가족이니까 가봐야하지만, 당신들은 이미 해줄 수 있을만큼 다 해줬어요."


자신을 찬찬히 뜯어보는 후우카의 눈에서 미사토는 지금 그녀의 머릿속이 바쁘게 굴러가는 것이 거의 보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돌아오긴 하실건가요?"


"아이들을 찾으면, 예." 미사토의 답이었다. "찾지 못하면.. 모르겠어요."


그런 경우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아이들을 찾아야 한다. 그걸로 끝이다.


후우카는 더 얘기해봤자 의미도 없다는걸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VTOL기를 확보해놓고 있겠습니다." 후우카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손짓해보이곤 손을 돌려 미사토를 가리켰다. "아이들을 확보하자마자 연락주십시오. 데리러 가겠습니다. 기지 전체를 다 파내야해도 상관 없으니, 데리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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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토는 또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발짝 물러나 게이코쪽으로 향하자 미코와 나카지마가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진 않았다.


미사토는 게이코의 옆에 무릎 꿇고 왼손을 잡아줬다. "레이가 네 말대로 해줬으면 나도 좋겠어." 이 상황의 무게가 마침내 온전히 찾아와, 미사토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와서 이렇게 말해도 의미는 없겠지만, 정말 미안해. 이런 일들 말려들게 해서."


게이코는 미사토의 손을 꼭 쥐어줬다. "카츠라기 소령님 잘못이 아니잖아요."


"네가 어떻게 그렇게 의연할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 아스카를 원망하지 않는다니 정말 기뻐. 아스카도 너같이 그냥 어린 아인데, 아스카는.." 미사토는 게이코가 에메랄드 서판의 존재와 리츠코가 2호기와 아스카에게 해놓은 짓을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때 아스카는 좋은 상황이 아니었어. 난.. 난 달라. 난 어른이었는데. 널 거기 내보내는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뻔히 알면서도 널 내보냈어. 네가 싸울 준비 같은게 안된걸 다 알고도."


"전 둘 다 원망하지 않아요." 게이코의 눈에 눈물이 살짝 차올랐다. "절 내보내신걸로 소령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아스카도 원망하지 않아요. 아직 좋아하니까." 게이코는 미코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더는 부럽지 않아요. 아스카가 부러웠던 적이 있었지만 이젠 아니에요. 우리 둘 다 많은걸 배웠다고 전 생각해요. 상처를 받았다고 그게 제가 약하단 의미는 아니란걸 전 배웠어요.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꼭 상처준 사람을 미워해야하는건 아니란걸 전 배웠어요. 아스카는, 뭐, 물어봐야 알겠죠."


"게이코는 어른이구나." 미사토가 말했다. "이번 일 다 끝나고 같이 물어보자."


게이코는 고개를 저었다. "안그러는게 좋을걸요. 엄청 화낼거에요. 정말 많이."


다른 두 아이를 대할때와 비슷한 따뜻함을 가슴속에 느끼며, 미사토는 몸을 숙여 게이코를 짧게 하지만 진심을 담아 포옹해줬다. "그래, 네 말이 맞을거야. 아스카는 그런 얘기는 꽁꽁 숨겨두는 타입이니까."


미사토는 정말 게이코에게 더 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아이는 이미 자신이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걸 스스로 찾아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게이코를 지켜줘요." 미사토는 나카지마에게 말했다. "당신도 몸조심하고."


나카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령님도 조심하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미사토가 일어났을 무렵 후우카는 이미 주변에 모여든 기술진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실전경험이 있다는 것 외엔 사실 후우카는 이들을 통제할 권한 같은건 없었고 이미 몇몇의 얼굴에선 불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기술진 중 하나가 한걸음 나섰다. "이러나 저러나 상관 없는거라면, 저흰 차라리 여기 남겠습니다. 동료들이 목숨을 버려가며 지킨 곳입니다. 손 털고 포기할 수는 없어요."


"여긴 이제 더 지킬 것도 없어요." 미사토는 후우카의 곁에 서서 말했다.


"지킬건 언제나 있습니다." 기술반원은 정색한 얼굴로 대답했다.


다른 기술진들도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여기 남아있다간 아마 죽을 것이라는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엔 존중되어야 할 희생도 있는 법이기에, 미사토는 더는 설득하지 않고, 대신 후우카를 한쪽 구석으로 끌어냈다. 남들의 귀를 피해 마지막으로 해야 할 대화가 있었다.


"오늘 해준 일 정말 고마워요." 미사토는 숨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기 전에 알고 싶은게 하나 있어서 그래요. 당신, 나와 아이들을 위해 목숨도 걸어가며 싸워줬는데, 아직 당신의 이름도 몰라요."


후우카는 씩 웃어보였다. "다음번에 만나면 말씀드리는걸로 하죠."


둘은 악수했다. 운이 따라준다면 다시 볼 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뭐, 그런 일까지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세상엔 존중되어야 할 희생이 있었다. 후우카도 그건 잘 알고 있을거라 미사토는 확신했다. 이것이 미사토의 희생이었다. 어떤 계획의 일부라서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 미사토 자신의 운명이 이 아이들과 얽혀 있기에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죽든, 살든, 어느쪽이든 미사토는 함께할 것이다. 미사토는 아이들과 함께 해야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 바뀌지 않을 사실이었다.


총을 확인해보고, 미사토는 아까 격납고로 들어왔던 통로를 그대로 되짚어나가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다. 불타버린 잔해 위에 흩어진 검은색 차림의 시신들을 지나치며 미사토는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못했다. 사방에 흐드러진 탄피가 밟힐때마다 미끄러웠다. 완전히 복도로 나가자마자 미사토는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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