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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희와 성준, 그날의 일기(21) - 내가 있어야 할 자리(수정)

그린(121.160) 2017.03.03 11:51:30
조회 582 추천 14 댓글 5
														

그 날 라디오에서는 이름 모를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 쓸쓸한 허전한 무언가 자리해 ........
차라리 알지 못했더라면 이대로 시간이 흘렀다면 이런 생각 이런 슬픔도 느낄 수 없었을 텐데 
그래 내가 있어야 할 곳 내가 살아야만 할 이 곳
왠지 모를 이 아픔은 생각하지 않을래...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는 슬픔 눈물 이별.....


마치 누군가가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며 나를 위해 나직히 읊조려주는 듯한 노래가 심야의 택시 속에서 소음 섞인 스피커를 타고 흘러 나왔다.

차마 들여다볼 자신이 없는 내 마음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대신,

아는 듯 모르는 듯 가만가만 토닥여주는 노래 가사는 마치 델포이의 신탁처럼 내 마음이 향해야 할 곳을 비춰주는 듯했다.


어쩌면 그 신탁을 받기 위해 잠시 택시를 탔어야만 했던 것처럼

나는 신전을 내려오는 순례객처럼 다시 택시에서 내려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이 길은 이미 몇 천년부터 마음의 길을 잃은 수많은 순례객들이 걷던 길이었고 

나 역시 특별할 것도 없는 그 수 많은 무리 중의 한 명일 뿐이다.


그 순간 다시 누군가를 소환하는 듯한 전화 벨이 울리고 

그리스 신처럼 높고 곧은 키를 자랑하는 그가 노여운 얼굴로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방금 전 자신의 전화를 꺼버린 나를 똑똑히 지켜본 듯한 그가 야단을 칠 것만 같은 기세로 나를 노려보던 순간

나는 정말로 뭔가를 잘못한 게 아닌가 싶어져 사실 조금은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이내 신탁을 기억해 내고 그의 쏘는 듯한 시선을 단호히 맞았다.


"제가 본부장님 전화를 꼭 받아야 하나요?"

이것이 우리 관계의 팩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순간 내 말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 걱정을 주고 받아야 할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 임을 깨닫지 못한 채

걱정으로 터질 것 같은 자신의 마음을 아무런 경계도 없이 쏟아내고 있다.


"웃겨요. 본부장님이 왜 내 걱정을 하시는데요?"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내 말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에게 엉뚱한 행선지를 댄 것에 대해 따져 묻는다.

나는 알수 없는 설움이 치밀어 울컥해진다.

'나는...나는...당신을 보호하려고 그 차에 탔고 또 애써 거짓말을 한 것 뿐입니다.

만일 내가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까지 보호해줄 필요 조차 없이 두 사람이 막역한 사이인 줄 알았다면,

내가 굳이 왜 그랬겠습니까. 차라리 무슨 구실을 대서라도 재빨리 차에서 내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나는 어느새  울고 있다. 

내내 잘 참았던 울음이 왜 하필 지금 터져나오는 것일까.


그 때 그가 무언가를 결심하듯이 단호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섰다. 

눈물을 닦아 주던 그의 시선을 피하던 찰나에 그가 갑작스레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는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이렇게 갑작스런 일을 벌였을까.

내게 대한 이상하게도 관대한 당신의 친절이 불러 일으킨 오해를 잠재워 주기는 커녕.

늦은 밤 술기운으로 당신의 연민이 잠깐 변질되어 흔들린 것입니까?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요. 


앞으로 뭘 어쩌자는 건 고사하고 당장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조차 없다.

그에게 따라 잡히지 않기 위해 나는 숨이 끊어지도록 내달려 간신히 내 방으로 숨어들었다.

캄캄한 방에 들어서서야 나는 놀라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끌어내리고 있다.

부끄럽고 떨리는 마음이 내비칠까봐 불조차 제대로 켤 수 없다.

내 자신에게 조차 들킬 수 없는 설레임과 떨림을 숨기기 위해서다.

어쩐지 바깥에서 어른거리는 것만 같은 그의 기척에 더 두근거리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다.


결국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자 내 생의 첫 떨림을 떨쳐내기 위한 긴 밤의 뒤척임 끝에 간신히 출근길에 올랐다.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여러 잔의 커피로 간신히 머릿 속을 각성시키고 다시 분주히 몸을 움직였다.

원단 패턴을 잔뜩 손에 든 채 그를 갑작스레 맞닥뜨렸다.

그가 순간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맞은 편의 나를 바라보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의 눈을 마주쳤고, 

아직 말 한 마디 쉽게 건네기 힘들다.

그가 굳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않은 검고 기다란 눈으로 내 기색을 살피자, 

나는 더욱 눈 둘 곳을 찾기 힘들어져 고개 숙여 간신히 목례를 했다.

오늘도 그 옆엔 어김없이 그 여자가 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대화에 자꾸 신경을 곤두 세우게 된다.

그 여자와 몇 마디를 나누던 그가 슬쩍 뒤돌아서 그들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를 살피는 것을 느끼자

나는 다시 가던 길을 서둘러 지나쳤다.

상관 없는 일이다.


사무실에선 어수선한 대화들이 오가고 있다.

그가 맡은 콘텐츠 팀이 폐쇄될 위기라는 얘기에 비로소 방금 전 그의 기색에 감돌던 긴장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오빠가 입힌 피해도 분명 그의 위기를 부채질 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염려로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다.

집안에도 심상치 않은 풍파가 밀어닥쳤다.

하루 아침에 아이가 바뀐 언니가 서럽게 운다.

워킹맘으로서의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아이들을 키워냈던 언니의 세월을 알기에

그런 언니가 하염없이 안쓰럽고, 하루 아침에 뒤바뀐 조카의 운명도 가엽기만 하다.


오늘따라 순둥이 뭉치마져 시끄럽게 짖어댄다.

너도 맘이 편치 않은 일이라도 있는 거니?

그래도 오늘 밤 만큼은 집안이 온통 난리니 너라도 좀 참아주렴.

그런데 널 보면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구나.

당장은 그의 얼굴을 직접 보기 조차 민망해졌지만 

그래도 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좋아하는 뭉치 너에게만은 그에 대해 편히 농담을 던져본다.

"오빠한테 이를 거야."

그를 떠올리자니 갑자기 마음 속 깊이 가둬 놓았던 어제 밤의 일이 떠오른다.

기억이라는 게 자꾸 미화되는 탓인지 어젯 밤의 당혹스러움 보다는

그가 입을 맞추던 그 순간 만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올라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도리질을 한다.

제발. 제발. 제발. 떠오르지 않게 해주세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뭉치가 누군가를 향해 반갑게 짖는다.

어느 틈에 와있었는지 그가 엷은 웃음을 띈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그의  투명한 시선이 어쩐지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방금 전의 생각을 그에게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오늘 낮의 당황하던 기색과는 달리 

지금 그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하고 담담한 기색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게 말을 걸어온다.

"뭉치가 많이 짖었어요?"

우리는 예전과 다름 없이 뭉치를 사이에 둔 대화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를 어색하지 않게 대할 자신이 없다.

그가 뭉치에게 간식을 건네려 고개를 숙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얼른 자리를 피해 볼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몸을 돌릴 새도 없이 재빨리 다시 말을 건넸다.

나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눈길을 

다시 한번 힘겹게 피해보려는 내 노력이 무색하게 그는 자신이 할 말로 곧장 향했다.

아직 쉽게 터놓고 얘기할 만큼 생각이 정리되지 못한 나와는 달리 그는 그날 밤 일을 분명한 어조로 사과했다.

당연할 법한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이 순간 내 마음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진다.

어쩌면 이렇게 쉽사리 정리되어 버리는 지금 이 순간이 두려워 계속 그를 피했는 지도 모른다.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보던 그가 다시 한 마디를 덧붙인다.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또 다시 엷은 웃음을 보이며 무언가를 더 전하려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루가 더 지난 지금에 와서야 겨우 그가 던진 짧은 몇 마디.

하지만 나는 이제 그의 길지 않은 말에 담긴 의미들을 어쩌면 충분히 알 것 같다.


어제는 그의 진심이 어디 있는 지 몰라 힘들었다면

오늘은 그 진심 때문에 나는 더 말을 잃어 간다.

그의 진심을 알게 된 짧은 순간의 위안도 잠시,

그의 진심이 바꾸어 놓을 일들이 많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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