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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글쓰기 대회] 이세계 최초의 영화감독이 되었다(재업)

무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6 22:36:59
조회 99 추천 4 댓글 2
														
-1-
 주변에서 하지 말라는 건 이유가 있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그 오랜 격언을 실감했다.

“폭발이다! 화산이 폭발한다!”
“감독님! 저거 휴화산이라면서요!”
“......”

 대답하는 사람은 하수, 말할 시간에 튀는 사람은 중수에 불과하다. 

“꺄아아아악! 메테오가 떨어졌어!”
“메테오가 아니라 화산탄이다. 훗, 이런 것도 아는 난 역시 똑똑-”
“슈바인! 슈바인이 화산탄에 맞았어! 모두 대피! 대피!”

 그리고 이런 촬영 환경에서도 묵묵하게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사람은 고수라고 할 수 있다.
 나 고수. 개쌉고수. 완전 프로페셔널.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 같은 프로가 아닌 모양이다.
 쩝. 완전 아수라장이네. 이 정도 사고야 그냥 적당히 무시해도 되는 거 아닌가...

“크리스 감독님! 여기서 뭐하고 계신 거에요!”
“아, 필립.”
“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때가 아닙니다! 도망치셔야 한다고요! 예?!”

 믿고 있던 필립마저 이 모양이다. 실망감에 입을 삐쭉 내밀었지만, 녀석은 그런 내 기분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아니, 그린스톤 화산은 왜 하필 지금 활동을 재개했답니까?! 진짜 미치겠네...”

 그야... 
 그게 더 멋져보였으니까...

 뭐라 말해도 딱히 납득할 것 같진 않았으니 얌전히 입을 닫았다. 이럴 때 필립에게 진실을 얘기해주면 일이 많이 귀찮아진다.
 나는 짐을 챙겼다. 내 소중한 카메라. 이걸 잃어버리면 여기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크게 의미가 없다. 차라리 다 뒈지고 이거나마 살아남는 게 낫지.

“...감독. 텔레포트해?”

 그때였다. 이 모든 사태의 주범이자, 우리 중 유일하게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대마법사 녀석이 눈을 부비며 나타났다.

“유나 졸려. 할 거면 빨리.”
“엉, 해라. 아무래도 촬영은 더 못할 거 같다.”
“알겠어.”

 화산쇄설류와 화산재와 용암과 지진이 우리를 덮치기 일보 직전.
 우리들은 유나의 영창과 함께 세계의 반대편으로 이송되었다.

“헉... 헉... 겨우 살았어...”
“으으... 엄마!!! 나 돌아가고 싶어!”
“이 빌어먹을 노예계약... 저 새끼 언젠가 죽이고 말겠어...”

 눈물도 흘리고 콧물도 흘리고 난리법석이군. 나약하다, 나약해.
 나는 쯧쯧 혀를 차며 이 프로답지 못한 아마추어 놈들에게 몸과 마음을 추스릴 시간을 주었다.

“제이슨 조감독. 손실율은 얼마나 되지?”
“아, 옙. 500명 중 438명 무사 귀환했습니다.”
“비율은?”
“사망 및 실종 처리된 인원은 모두 천민 계층 엑스트라입니다.”

 그럼 손실이 아니잖아.

“카메라, 헬리캠, 반사판, 조명, 뭐 그런 장비들은?”
“그건 전부 무사합니다.”
“그럼 됐네.”

 저 아마추어 놈들에게도 다행이고, 나한테도 다행인 소식이다.
 만약 촬영 장비가 하나라도 손상되었다면 재촬영에 들어가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때부턴 좀 피곤해진다. 계약서를 들이밀어도 안 하겠다고 난동피우는 놈들이 꼭 하나씩은 나오거든.

“<폼페이>... 이 정도면 편집으로 살려볼 수 있으려나.”
“유나 궁금. 폼페이가 뭐야.”
“있어, 이번에 찍는 영화 제목.”

 그렇다.
 난 환생 트럭에 치여 이세계로 오고서도 영화 감독을 하고 자빠졌다.


-2-

‘이야기라는 예술은 세계에서 가장 주도적인 문화적 힘이며, 영화라는 예술은 이야기라는 거대 산업의 가장 주도적인 매체이다.’

 스토리텔링의 거장 로버트 맥키는 영화라는 산업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이 말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하나, 영화는 대중적이다.
 하나, 영화는 가치가 있다.
 하나, 영화는 불멸한다.
 
 과외를 받는 부자와 과외하는 빈민층 사이에 창문을 배치하여 등장인물들의 ‘선’을 관객에게 넌지시 은유할 수도 있다.

 배우의 애절한 연기로 관객을 한 순간 몰입시켜 이 거대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가상의 영웅들이 힘을 합쳐 거대한 악당을 물리치는 것으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다.

 단지 영화 감독의 역량이 높고, 투자자로부터 충분한 자본이 주어지고, 연기를 잘 하는 배우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만 한다면!
 영화는 그 어떤 문화보다 높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예체능이란 참으로 빡시다. 빛 보는 자만 빛을 보고, 그 외의 머저리들은 빚만 늘어 나락으로 굴러떨어진다.
 첫 번째 삶에서 실패한(=더럽게 가난한) 예술가로서 환생 트럭에 몸을 날린 나는, 두 번째 삶이 되고서야 이 지고한 사실을 통감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다는 얘기는 곧, 이쪽 세계에서도 영화 감독을 했음을 반증한다.

"'영화'? 그게 뭐지?"
"아... 그게......."

 애초에 지구에서 통용되는 상식은 집어치워야 했다. 고구려 수박도에도 적혀있듯, 판타지 세계에서는 마법이 과학을 대체한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한 일.
 그러나 수박도를 만든 고구려인들은 상상력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마법은 단순히 과학을 대체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마법은 문화를 바꿨다.

"그런 건 그냥 환상 학파에서 하는 일이잖니. 그쪽으로 가고 싶다고?"
"아니, 저는 예술 쪽... 그러니까 예술 아카데미로 가고 싶은데..."
"아렌델 국립 아카데미? 그쪽으로 가고 싶으면 소설이나 연극, 그림 같은 걸 다뤄야지."

 중세 시대에서부터 AI가 성행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비교적 '상상력'이라는 것을 발휘하기 어려운 분야, 즉 소설이나 추상화 같은 건 그나마 명백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단히 마이너한 취미생활에 그쳤지만.
 이 세계의 주된 예술은 마법과 연결되어 있었다.

 '환상술'이 개발되어 있으니 사람들의 상상력은 자신들이 다룰 수 있는 수준으로 억제되었다.
 카메라 역할을 하는 수정구슬 따위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건 아렌델 제국-즉 내가 몸담고 있는 두 번째 고향-에서 금기시하게 되었단다.

 연설 따위를 저장해놓고 자기들끼리 돌려보고, 나아가 마법 커뮤니티에 유포시키는 공화주의자들 때문이다.
 더 웃긴 건, 황권에 문제된다고 유용하게 쓰이던 아티팩트를 싹 박살내버렸다는 것. 아직도 수정구슬을 비롯한 기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살인죄와 동일하게 처분한단다. 
 이게 황실의 위엄인가? 중국이 문자의 옥과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것을 생각해보면 자국민 탄압을 해야 강대국이 되나 싶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

"그리고 크리스 너는 마법도 못 다루잖니. 마나통이 작아서."
"선생님, 학생에게 못하는 말이 없으시군요. 그거 성희롱이에요."
"어른들은 원래 다 이래. 꼬우면 경찰에 신고하렴."

 나는... 마법을 못 쓴다!
 앞에 공화주의자니 뭐니 염병을 하며 설명해댔지만, 사실 이게 제일 크다!
 수정구슬이 내 눈앞에 있어도 마나를 주입을 못 한다. 불덩이 한 번 날리면 선천진기 싹 다 소모하고 폐인이 될 수준인데 주입할 마나가 어디 있겠는가.

 걸음마를 떼고 이 세계의 글을 익힌 직후,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절망했다.
 영화가 없다니!
 영화를 만들 수도 없다니!
 
 초당 24개의 사진이 점멸하는 200분 남짓의 거짓.
 환상 마법이 없고서도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하나의 기적. 그 자체가 예술의 한 갈래.

 그걸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야 하게 생겼다.
 최소한 카메라가 있어야 무성 영화나마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마법만 한가득인 이 사회에서 카메라를 만들 만한 고도의 기술을 축적해야 한다는 건가? 그것도 황실 몰래?

 그렇다. 이쯤 되면 어렴풋이 눈치채겠지만, 난 영화에 다소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삶에서도 영화에 대한 것만 생각할 만큼.
 내 머릿속엔 아직도 시나리오가, 그에 따른 연출이, 미장센이, 언제 어떻게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을 찍을 건지, 음향 효과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둥실둥실 자리잡고 있었다.
 난 아직 '내 영화'를 찍지 못했다.

"너 또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설마요."
"크리스. 성적 잘 나오잖니. 취업 잘 되는 곳에 가렴."
"좋죠. 취업."

 난 그 길로 예술 아카데미로 진학했다.
 일단은, 문화예술 전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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