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틱 하나와 배치된 둥근 버튼 여섯개, 이만큼 전자오락의 향수를 짙게 뿌려주는 모습이 또 없다. 요즘은 격투게임 유저들이나 만진다고 하지만

소위 오락실 세대인 나는 이 스틱으로 모든 게임을 다 했다. 던전에 들어간 용사의 손과 발과 검이었고 파이터들의 킥과 펀치였으며 비행기 조종사의 계기판이었다.

물론 그때라고 체감형 게임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교복을 입은 큰형님들은 운전대를 잡고 오토바이를 탔지만 코흘리개 꼬마들에게 판당 백원 이상을 요구하는 게임은 생일에나 즐길법한 고급 유희였다.

조이스틱은 나의 모든 게임이었던 것이다.

나는 츄파춥스 스틱과 느낌표 스틱의 추억을 공유한다. 주먹 한아름 가득 잡히는 추파춥스 스틱은 다소 촌스러운 게임들의 추억을 상기시킨다.

여닫이 유리 문짝에 단색 스티커를 커다랗게 싸바른채 커다란 판본체로 오려낸 오 락 실 이라는 글자를 덧붙여 바른 오락실의 추억은 이 추파춥스 스틱과 함께한다.

이 때의 오락실 주인은 게임을 모른다. 아케이드 게임기의 이름을 표기하는 머리맡의 커다란 현판에는 매직으로 꾹꾹 눌러쓴 임의의 제목이 있다.

이카리가 람보라는 제목으로 둔갑하여 어린이들의 시선을 끈다. 그순간부터 이카리는 없고 그 게임은 람보로 불린다.

머리에 끈을 동여매고 기관총을 쏘며 전진하는 게임이 람보가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는 "람보 하러 가자" 라고 말하며 오락실로 향한다.

느낌표 스틱은 아마도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세련된 오락실"의 느낌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서서히 모든 오락실들의 오락기가 느낌표 스틱으로 바뀌며, 게임들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오락실 주인들은 점점 게임의 제목를 제대로 적어놓기 시작하고 가게 안에는 동전 교환기가 생겨났다. 천원을 들고 가면 문을 드르륵 열며 동전 열개를 세던 할배들은 이제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픽이 향상되고 숨겨진 요소들이 생겨났다. 혼자서는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비기들이 게임 속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슬슬 "클리어"에 뒤따르는

"파고들기"가 게임에 추가되기 시작한다. 1945 시리즈는 전통의 불살플레이와 점수 불리기를 하는 유저가 생겨났고 킹 오브 파이터즈는 특정 팀으로 보는 히든 엔딩이 생겨났다.

스틱 오락은 한판에 백원.

내 나이 스물에 가까워지도록 뇌를 지배하던 하나의 법칙이다.

고교 시절을 재미없는 학교와 집의 반복만으로 살아오고 대학식당 밥을 먹게 된 내가 몇년만에 찾은 오락실은 나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데에는 거금 오백원이 필요했고 좀비를 쏘기 위해

머신건을 집어드는데에 천원이 들던 것이다. 나는 그저 아연실색하여 뒷걸음질치듯 오락실을 빠져나온 것이다. 물가의 상승이나 유지비에 대해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과거와의 커다란 숫자의 차이가 나를 겁먹게 만든것이 아닐까라는 변명밖에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요즘은 숫제 오락실에서 자신의 카드를 집어넣고, 온라인 서비스를 받아서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한다고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 감흥이 들지 않는다. VR을 끼고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요즘 게임세대에 그 정도 쯤이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 더이상 오락실은 내가 생각하던 곳과는 꽤나 다른 곳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오락실에서는 게임 소리보단 젊은이들의 방음처리된 노래소리, 요란하고 청명한 인형뽑기 기계의 멜로디가 귀를 울린다.

일 때문에 낯선 도시의 번화가에 가면, 나는 반사적으로 허름한 오락실 간판에 눈길을 주고는 한다. 최첨단 기술이 아직은 닿지 않은 허름한 오락기를 보면, 물론 별것도 아닌 것이지만 나는 푸근한 마음이 되고는 한다.

하지도 않을 거면서 스틱을 붙잡고 움직여 본다. 끼릭 끼릭, 하며 부드럽고도 찰지게 움직이는 스틱의 소리를 듣고 싶은 만큼 들어보며, 카운터 주인의 시선이 느껴지면 슬그머니 오락실을 나선다. 그 소리를 곱씹어 보면서.